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07화 (607/1,307)

# 607

에베레스트가 정사각뿔인 산이라면 높이가 8,848m이니 한 변 길이는 12,511㎞쯤 된다.

이것의 체적을 구하면 46.164㎦가량이다.

지리산의 7분 능선은 1,340m쯤 된다.

이 높이를 정점으로 가진 정사각뿔의 한 변 길이는 1.895㎞이다. 같은 방법으로 체적을 구하면 1.604㎦이다.

둘을 나눗셈으로 계산해 보면 에베레스트가 지리산 7부 능선 높이의 산보다 체적이 28.78배나 크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전장의 학살자라 불리는 토마스와 같은 소드 마스터 28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현수에게 패한다. 이기려면 29명 이상이 합공해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29명이 덤벼도 이길 수 없다.

단순한 그랜드 마스터가 아니라 유사 이래 단 하나의 인간도 오르지 못한 10서클 대마법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륙의 모든 소드 마스터가 합공한다 하더라도 현수를 이겨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쨌거나 토마스가 무릎을 꿇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픈 욕망은 가졌다. 하지만 그 길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토마스가 전장의 학살자가 된 것엔 여러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던 이판테 왕국군에 의하여 미리엄 왕국군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양친 모두를 잃은 토마스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 절치부심하며 검술에 일로매진했다.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고 내려와 보니 복수할 상대가 애매해졌다.

미리엄 왕국군이었던 사람이 미판테 왕국의 기사와 병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산에서 수련하는 동안 이판테 왕국에 의하여 미리엄 왕국 사람들이 동화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부모를 죽인 사람들과 한곳에 살 수 없어 미판테 왕국을 떠났다. 그리곤 더 높은 화후를 이루기 위한 수련 여행을 시작했다.

먼저 용병 등록을 했다. 돈을 벌어야 목숨을 부지하기 때문이다. 돌아다니며 소드 마스터들에게 비무를 청했다. 처음엔 많이 졌지만 요즘은 거의 지지 않는다.

대련 상대였던 소드 마스터 대부분이 고위 귀족이었다. 그들은 대련의 대가로 자국의 전쟁에 참여하길 원했다.

이에 토마스는 침략군이 아닌 경우에만 참전을 했다. 다시 말해 침략 받는 쪽에 서서 싸웠다.

미리엄 왕국의 슬픈 역사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피가 끓었다. 부모님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던 장면이 오버랩되곤 했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사는 마을에 침략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을 어찌 살려두겠는가!

눈에 뜨이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켰다. 한번 남의 것을 빼앗아 먹은 놈은 나중에도 또 그러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전장의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얼마 전 새로운 소드 마스터가 출현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테세린 영지와 유카리안 영지전에 등장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건 본인의 이름을 팔아먹었다는 것이다.

징계할 겸 새로운 소드 마스터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다. 그러다 화후를 가늠하기 어려운 청년을 만나 수작을 걸었다.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청년이 바로 그랜드 마스터라고 한다.

무릎을 꿇고라도 한 수 가르쳐 달라고 청해야 할 존재이다. 그런데 어제 반말을 하며 팔씨름을 하라 강권했다.

그렇기에 스스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모두 일어서십시오. 어서요!”

“마탑주님의 명을 받잡습니다.”

“위대하신 그랜드 마스터님의 명을 따르옵니다.”

“매지션 로드의 명을 따릅니다.”

모두가 일어났지만 아주 조용하다.

“자리에 앉으세요. 그리고 꼬마야.”

“네, 마탑주님!”

열두 살짜리 소년이 화들짝 놀라며 바라본다.

“여기 있는 손님들에게 술 한 잔씩 따라주겠니? 돈은 여기에 있다.”

팅―!

금화 한 닢이 허공을 날아 열두 살 꼬맹이의 손으로 들어간다.

다른 때 같았으면 탐욕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하긴 어느 안전이라고 한눈을 팔겠는가!

꼬맹이가 받은 걸 확인할 때 현수가 입을 연다.

“오늘 술은 내가 삽니다. 마음껏 마시되 취할 정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와와와! 마탑주님, 감사합니다! 만세!”

“그랜드 마스터님 만세! 잘 먹겠습니다!”

“매지션 로드님,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린다.

언제 이실리프 마탑주이자 매지션 로드이며 그랜드 마스터인 사람이 사주는 술을 마셔보겠는가!

모두에게 일생의 광영이고 늙어선 손자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미스터 토마스, 같이 앉읍시다.”

“네? 아, 제가 어떻게…….”

토마스는 겉보기에 40대로 보이지만 실상은 70이 다 되었다. 소드 마스터가 되면서 바디체인지를 겪어 세월을 거스른 모습이 된 것이다.

토마스가 생각하기에 현수는 200살도 훨씬 넘은 존재이다. 그러지 않고는 그랜드 마스터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를 수 없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여 몹시 공손하면서도 어려워하는 모습이다.

“괜찮아요. 여기 앉아요.”

“네에, 알겠습니다.”

자리에 앉자 꼬맹이가 다가온다.

“돈 모자라지 않겠지?”

“그럼요. 남아요. 그것도 아주 많이! 거스름돈은 가실 때 계산해 드릴게요.”

“아니다. 남는 건 네가 가져라. 그 돈으로 아버지께 공부 시켜 달라고 해. 알았지?”

“네에, 고맙습니다.”

꼬맹이가 환히 웃는다. 똘똘해 보이는 녀석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10골드짜리 금화가 쥐어져 있다.

“설마 마탑주님이 그 영지전에 나타났던 전장의 학살자였던 겁니까?”

“내 스스로 전장의 학살자라 한 적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한 것뿐이지요.”

“아이고, 말씀 낮추십시오. 저 이제 겨우 예순아홉 살밖에 안 되었습니다.”

“……!”

문득 우미내 마을에 계시는 아버지보다도 늙었다는 생각을 할 때 토마스가 말을 잇는다.

“어제는 제가 실례 많이 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예의 바른 소년이 존경하는 할아버지를 대하듯 지극히 정중하고 조심스런 모습이다.

“괜찮습니다. 자, 한잔하고 어제의 기억은 털어냅시다.”

“네, 영광입니다. 그리고 말씀 낮추십시오.”

“차차 그러지요. 지금은 이게 편합니다.”

팅―!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마셨다. 그런데 조금 미지근하다.

“꼬맹아!”

“네, 마탑주님!”

테이블을 오가며 손님들에게 술 따라주던 소년이 쪼르르 달려온다.

“여기 술 창고가 어디에 있니?”

“네? 그건 왜요?”

“술이 조금 더 시원했으면 해서.”

“으응, 이게 제일 시원한 건데. 그리고 술 창고는 지하에 있어요. 저기 계단으로 내려가면 있어요.”

“그래, 알았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술 창고로 내려간 현수는 항온마법진 하나를 부착시켰다.

마시기 좋은 맥주 온도는 여름철은 4∼8℃, 겨울철은 6∼10℃이다. 술 종류가 다르기에 4℃를 유지하는 마법진을 그려 넣은 것이다.

내려간 김에 술통 하나를 꺼내왔다. 항온마법진을 설치해도 금방 시원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미지근하다.

“아이스!”

샤르르릉―!

마나가 스며들자 통 자체가 시원해진다. 흡족해져 절로 미소가 나온다.

“자, 이제부턴 조금 시원한 술을 마십시다. 꼬맹아, 너 이리 와보렴.”

“네, 마탑주님!”

소년이 다가오자 마법을 구현시켰다.

“아이스!”

샤르르릉―!

“우와! 갑자기 시원해졌어요. 이거 마법이죠? 되게 신기해요. 저도 이런 거 배울 수 있어요?”

“그럼! 열심히 공부하면 가능하단다. 열심히 할 거지?”

“헤헷! 네, 그럼요. 열심히 공부할게요.”

이 소년은 나중에 자라 영광의 마탑 탑주가 된다.

현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주점 주인으로 그쳤거나 종업원으로 일생을 살았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얻은 계기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끊임없이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다.

물론 나중에 일어날 일이다.

“토마스, 테세린으로 갈 겁니까?”

“마스터께서 그곳에 머무시겠다면 따라가고 싶습니다.”

무엇을 바라는지 어찌 모르겠는가!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좋습니다. 같이 가죠. 그런데 최종 목적지는 테세린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어디든 마스터께서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현수가 빙그레 미소 지을 때 누군가 다가오더니 무릎부터 꿇는다.

털썩―!

“어제는 이놈의 눈이 멀어 감히 마스터이신지도 모르고 실례를 했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네, 저도 용서하여 주십시오.”

시선을 돌려보니 똥치기 대장 란돌프와 그의 아우 레이먼, 그리고 어제 팔씨름을 했던 하만이다.

“자네 직업은?”

“네, 제 직업은 수도의……. 이 녀석은 팔씨름으로……. 하만은 제 부하로…….”

“흐음, 그래? 그런데 이렇게 내게 온 까닭은?”

“마스터님, 저희를 거둬주십시오.”

“네, 거둬주십시오.”

“거둬주십시오.”

셋 다 고개를 조아린다. 그리곤 란돌프의 말이 시작된다.

“저희 형제는 조실부모하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이다.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나름대로 성실히 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말하길 수하로 거둬주면 가문의 영광이란다.

이 대목에서 피식 웃지 않을 수 없다.

가난뱅이로 살던 부모를 일찍 여위어 조상이 누군지도 모른다면서 가문을 따지니 웃겼던 것이다.

“좋아, 그렇다면 가진 거 다 버리고 나와 함께 가겠나?”

“물론입니다. 어디든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네, 죽을 때까지 충성하겠습니다.”

“저도요. 저도 갑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직한 수하 셋을 거느린 기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알베제 마을 인근엔 다른 마을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곳의 치안을 유지하려면 무력이 필요하다.

토마스가 나서면 개기는 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없으므로 그렇지 않아도 보좌할 인원이 필요한데 잘되었다.

“나는 잠시 마탑에 다녀올 것이네. 그때까지 이곳에 머물고 있게.”

“저희가 먼저 출발하는 게 아니고요?”

“맞습니다. 여기서 테세린까진 엄청 멉니다.”

현수는 피식 웃어주었다. 그러다 이들이 마법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서 기다려. 여기서 테세린까지 가는 건 눈 깜짝할 사이면 충분하니까.”

“네, 그게 무슨……. 아! 마법이 있었군요.”

“헐! 그게 가능한 겁니까? 우리 모두 한꺼번에 말입니다.”

“그러게요. 여기서 테세린까지는 어마어마하게 먼데.”

“9서클 마스터이시라는 걸 깜박 잊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리지요.”

토마스의 말을 끝으로 주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영광의 마탑으로 향했다.

마탑은 수도 외곽의 한적한 숲 속에 고고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한 층당 일곱 개 층으로 이루어져 모두 49층이다.

마탑주가 8서클이 되면 8×8 하여 64층까지 짓고, 9서클이 되면 9×9 해서 81층까지 짓는 것이 묵시적인 약속이다.

아무튼 영광의 마탑은 마탑주가 7서클인지라 겉보기엔 7층이고, 내부로 들어가면 49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지션 로드를 알현하옵니다.”

마탑으로부터 대략 200m 정도 떨어진 곳까지 좌우로 길게 도열해 있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로브의 모자를 벗으며 깊숙이 허리를 숙인다.

“……!”

이게 대체 웬일인가 하는 표정을 짓는데, 마법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소리친다.

“영명하옵고 위대하시며 더없이 자애로우신 로드께서 저희 마탑을 방문해 주심에 일생의 광영으로 알겠나이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걸 깬 사람은 현수이다.

“모두들 일어서시게.”

“로드의 명을 받잡사옵니다.”

이번에도 큰 소리를 내며 모두가 일어난다. 그리곤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든다.

“본인도 영광의 마탑을 방문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마법에 정진하다 보면 깨우침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여 한마디 남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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