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08화 (608/1,307)

# 608

모든 마법사들이 귀를 쫑긋 세운다. 매지션 로드로서 깨달음의 지름길을 알려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을 위험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시 제군들 가운데 그런 의문을 가져본 사람이 있는가?”

“없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며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 물에 중독이 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

모두들 생판 처음 듣는 이야기이기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로드께서 하신 말씀이시니 진리이겠지만 그래도 믿어지지 않은 것이다.

“물이 좋다고 너무 많이 마시면 배설과 섭취의 평형이 깨지게 된다.”

이 대목에서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왠지 일리 있는 말처럼 느껴진 것이다.

“과함은 부족함만 못하느니라. 그러니 정진은 하되 과하지 않도록 늘 경계하라. 이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이것을 준다. 마탑주는 앞으로 나오라.”

“네, 로드시여.”

스타이발 후작이 다가오는 동안 아공간에 담겨 있던 것을 꺼낸다. 이는 백두마트 서초점 다구 판매 코너에 전시품으로 진열되어 있던 것이다.

이것의 정식 명칭은 계영배(戒盈杯)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해 보면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그린 상도(商道)라는 드라마에도 등장했던 것이다.

술잔의 7할 이상 술을 따르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한 방울도 먹을 수 없게 된다. 임상옥은 과한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뜻에서 이 잔을 늘 가까이 두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스타이발 마탑주는 현수가 건네는 계영배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였다.

“모두들 잘 기억하라.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

현수의 말이 끝날 때 스타이발 후작은 계영배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다. 갑작스런 마나 유동이 시작된다.

우우우우웅―!

“앗! 커렌 마법사가 깨달음을 얻는 중이다!”

우우우우웅―!

“부탑주님께서도 깨달음을 얻고 계십니다!”

우우우웅―!

“카룬다 마법사도 깨달음의 경지에 접어들었다!”

우우우우웅―!

“여기도 깨달음을 얻고 있다! 모두 비켜서라!”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심한 마나 유동이 일어나고 있다. 헤아려 보니 일곱 명의 마법사가 깨달음의 경지에 놓여 있다.

“제군들은 즉각 깨달음을 얻고 있는 동료 마법사들을 보호하라!”

깨달음을 얻고 있는 동안 외부의 충격이 가해지면 무산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모두가 깨달음을 얻고 있는 마법사들의 주변을 둥글게 에워쌌다.

일련의 행동을 보던 스타이발 후작이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로드이십니다. 저들은 작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간 깨달음을 얻지 못해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드의 한 말씀에 단번에 깨달음을 얻는군요.”

스타이발 후작은 감사하고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다. 마탑의 능력이 일순간에 업그레이드된 것이기 때문이다.

“탑주도 깨달음이 있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아쉽군.”

“아직은 아닙니다. 저는 이제 겨우 7서클 유저입니다. 깨달음을 얻기엔 아직 성취가 부족하지요. 로드께서 하사하신 이것을 지켜보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스타이발이 겸손히 고개를 숙인다.

안내를 받아 마탑 입구에 당도하니 방명록을 꺼낸다. 지난 수백 년간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자취를 남긴 것이다.

앞부분을 살펴보니 전대 황제가 마지막 서명자이다. 기준 이상의 자격을 갖춘 자만이 서명할 수 있는 듯싶다.

앞장을 넘겨보니 덕담들이 쓰여 있다. 주로 마탑의 무궁한 발전을 바란다는 내용이다. 무엇을 쓸까 생각하던 중 문득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미판테의 현자라 불리던 아르가니 에이런 판 포인테스 후작은 6서클 마법사였다.

영화 파라다이스의 히로인이었던 피비 케이츠와 비슷한 분위기였던 절세미녀 케이트 에이런 판 포인테스의 조부이기도 하다.

6서클에 오르고도 30년 동안이나 깨달음을 얻지 못해 정체되어 있던 마법사이기도 하다.

그때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늘 마나의 바닷속에 잠겨 있다는 생각을 하라.

이토록 널려 있는 마나를 굳이 몸에 담아 무엇하겠는가!

아르센력 2855년 10월 28일.

이실리프 마탑 제2대 마탑주.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

현수가 떠난 뒤 이 글귀를 화두로 삼은 아르가니 에이런 판 포인테스 후작은 깨달음을 얻어 7서클 마법사가 되었다.

따라서 영광의 마탑 마법사들도 이것 때문에 각성하게 된다. 그 수효가 물경 220여 명이다.

단 두 줄의 글이 마법사들의 굳어 버린 뇌를 강타해서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준 것이다. 물론 나중에 일어날 일이다.

“좋은 말씀 써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가?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군. 자, 그럼 마탑 구경 좀 해볼까?”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스타이발 후작과 몇몇 마법사가 현수를 수행하며 마탑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매지션 로드는 모든 마법사의 왕이다. 그렇기에 감추고 자시고 할 게 없는 행차이다.

“흐음, 제법 아늑하네.”

마탑 최상층에 위치한 마탑주 집무실을 둘러보며 현수가 한 말이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짜이네. 흐음, 그런데 이건 바싹 마른 후작이 쓰기엔 조금 딱딱하군.”

소파 비슷한 것인데 말 그대로 딱딱하다.

“아! 그렇습니까?”

스타이발 후작은 송구스럽다는 표정이다.

“아공간 오픈!”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시커먼 공간이 일렁인다.

현수는 손을 넣어 가구 전시 코너에 있던 푹신한 소파 세트를 꺼냈다.

1인용, 2인용, 그리고 3인용이 각각 하나씩이다. 탁자도 꺼냈다. 초록색 융이 깔려 있고 10㎜짜리 유리로 덮여 있다.

“이건… 세상에, 이런 유리가 있다니…….”

탁자 모양대로 모서리가 굴곡진 유리를 본 스타이발 후작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낸다.

황태자가 주최한 만찬에 등장했던 후춧가루 병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유리이다.

이토록 크고 투명한 유리는 본 적이 없다.

“내 선물이네. 쉴 때는 확실히 쉬어야 하지 않겠나?”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타이발 후작의 입이 귀까지 찢어진다. 물론 너무나 좋아서이다.

“그나저나 이곳에 오면 대륙의 좌표들이 있을 듯한데.”

현수가 짐짓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스타이발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단번에 캐치한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꺼내오겠습니다. 잠시만요.”

스타이발은 커다란 책장으로 다가가 맨 위에 있는 상자를 꺼냈다. 7서클 마법 중 텔레포트라는 걸 잃어버린 이후론 써먹을 일 없는 것이 좌표이다.

그렇기에 상자에 담아 맨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후우∼! 으으, 먼지.”

잔뜩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는 뚜껑을 열어 담긴 것을 꺼내왔다. 두께가 거의 60㎝쯤 된다. 종이가 아니라 양피지를 엮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륙 주요 장소의 좌표입니다.”

“허흠, 어디 보세.”

‘대륙좌표일람’이라 쓰인 표지를 넘기니 대략적인 지도가 그려져 있다. 보아하니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대륙 곳곳의 좌표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현수는 A4 용지를 꺼내놓고 카피 마법을 구현시켰다.

그러자 담긴 내용 전부가 옮겨졌다. 가져온 건 60㎝쯤 되는데 A4 용지로는 100여 장에 불과하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스타이발 후작은 A4 용지의 깨끗함과 균일함에 넋 나간 표정을 짓는다.

“잘 보았네.”

“무슨 말씀을……. 로드께서 읽어주신 것만으로 무한한 광영이옵니다.”

“자, 이곳에서의 볼일은 이제 끝났네. 다른 마법은 다 제쳐두더라도 텔레포트는 익히게.”

“알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소인을 불러만 주시면 재깍 달려가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지.”

현수가 극진한 대접을 받고 마탑을 떠난 건 상당히 늦은 시각이다.

마법사들과 대화 시간을 가져달라고 애원하여 청을 들어주었더니 끝도 없는 질문이 쏟아진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 세 명의 마법사가 각성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렇기에 그토록 많은 질문이 쏟아진 것이다.

* * *

“여긴… 확실히 카이엔과는 다르군.”

카이엔 제국의 건축물이 바로크 양식2)이라면, 이곳은 고딕 양식3)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광의 마탑에서 베껴온 좌표로 온 이곳은 라이셔 제국의 수도 코린이다.

접경지대에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건만 이곳은 아주 평화로운 모습이다. 길모퉁이에 바이올린과 비슷하게 생긴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이 있다.

끼이잉! 끼이이이잉! 끼이이이잉!

가만히 들어보니 아주 부드러운 선율이다. 듣기 좋아 잠시 음악을 감상했다. 그러던 중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걸 그룹 다이안에게 곡을 써주기로 했던 것이다.

“이것도 상당히 괜찮네. 조금만 빠르게 하면 괜찮겠어.”

악공에게 조금 더 다가가 1실버를 던져 주었다. 고맙다는 뜻으로 환히 웃어준다. 잠시 곁에 서서 녹음을 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또 다른 악기를 든 악사가 모자를 뒤집어놓고 연주 중이다. 가만히 템포를 들어보니 탱고4)에 가깝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율인지라 1실버를 내고 가까이 다가가 녹음했다.

더 많은 돈을 줄 수도 있지만 그러면 사람들의 눈에 뜨이기에 적당한 선을 유지한 것이다.

멀리 황궁이 보인다. 뾰족하게 솟아 있는 첨탑이 한두 개가 아니다. 많은 건축물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황도답게 눈에 뜨이는 도로 모두 돌로 포장되어 있다.

천천히 걸으며 이국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러는 동안 상당히 많은 악사들을 보게 되었다. 각기 다른 곡을 연주했기에 열 개 이상의 아름다운 선율을 녹음할 수 있었다.

상점도 많고 오가는 행인도 많다. 어쩌다 뒷골목으로 접어들면 여느 도시처럼 빈민들이 돌아다닌다. 이걸 보면서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5장 허가 받아오세요

“삐이꺽―!”

문을 열고 들어서니 술집 특유의 냄새가 풍긴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푸른 빛깔 앞치마를 걸친 40대 아줌마가 손짓을 한다. 현수는 여전히 C급 용병 차림이다. 왠지 이게 편해서이다.

현수가 자리에 앉자 주문하라는 듯 옆에 버티고 선다.

“식사만 할 겁니다. 이 집에서 잘하는 걸로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여기 헤론찜 1인분!”

헤론찜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바벨강을 건너기 전 케이상단 알론이 데리고 갔던 여관이 있다. 지금은 백작가의 차남과 결혼한 세실리아라는 아가씨가 그 집 딸이다.

그 식당의 헤론찜이 일품이라고 했다.

다른 곳의 그것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진짜 일품인지 오늘 한번 알아볼 생각이다.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손을 비비며 주변을 살폈다. 대낮인지라 술을 마시는 테이블은 거의 없다.

삼삼오오 모여서 배를 채우며 대화하는 중이다. 이때 바로 곁 테이블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이보게, 그게 정말인가?”

“뭐 말인가?”

“엄청난 몬스터들이 로만 영지를 쑥밭으로 만들었다는 거 말이네. 작년에 왔던 놈들의 세 배였다면서?”

“아, 그거? 로만 영지는 원래 그래. 오크들 번식력이 엄청나서 5년에 한 번씩 엄청난 숫자가 몰려들곤 하네.”

“그게 원래 그런 거였나?”

“아직도 몰랐어? 자네 혹시 카이엔에서 파견한 간세야?”

“무슨 개소리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놓고.”

“그런데 왜 로만 영지 몬스터 습격 사건을 몰라?”

“그거야 내가 그런 데 관심이 없었으니까 모르는 거지.”

들어보니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시선을 돌렸다.

다른 테이블의 대화가 들린다.

“이번엔 진짜 영지전을 선포했다며?”

“그래. 그래서 로이어 영지도 대규모로 용병들을 모집하는 중이라고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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