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0
BS금융지주는 금융 회사이고, 금융감독원은 금융 기관에 대한 감사와 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감독 기관이다.
금융 기관으로선 감독 기관의 눈 밖에 났을 때 닥쳐올 후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회장이 퇴진하면 소위 ‘모피아’7)로 불리는 옛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 중 누군가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것이라 예측했다.
어쨌거나 BS금융지주의 CEO는 사퇴했다. 그리고 예측대로 모피아의 일원이 새로운 회장이 되었다.
이로써 모피아가 금융 공기업 수장은 물론이고, 금융 관련 협회장 자리로도 모자라 순수 민간 금융 회사의 장 자리까지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IMF 금융 위기 때 대다수 민간 기업 직장인들은 몇 달째 밀린 급여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직장인이 소위 명퇴니 구조 조정이니 하는 허울만 그럴듯한 명분에 밀려 직장을 잃었다.
그 후 수많은 가정이 경제적 문제 때문에 깨졌고, 많은 가장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모피아는 공무원 신분이었기에 월급과 보너스 한 번 밀리지 않는 철밥통을 끼고 살았다.
다른 직장인들은 정년퇴직 후 할 일이 없어 아파트 경비원 자리라도 가려고 눈에 불을 켠다.
그런데 재정경제부 소속 공무원이었던 자들은 퇴임 후 금융 회사의 간부 내지는 수장으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 떵떵거리며 산다. 이를 어찌 고운 눈으로 바라보겠는가!
힘 있는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매우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현수는 이실리프 마탑주라는 신분을 이용하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어찌하면 그러지 않고 신전 농장을 방문할 수 있는 허락을 얻을지에 대해 고심했다.
하지만 여기는 생판 처음인 곳이다. 풍습도 모르고 인맥은 전혀 없다. 그렇기에 몹시 난감한 기분이다.
신전 농지를 떠나면서 다시 의복을 갈아입었다. 귀족 복장보다는 용병 차림이 편해서이다.
“제기랄!”
길가의 굴러다니던 돌멩이를 걷어차니 저만치 날아간다.
휘이익―! 탁!
“으윽! 어떤 놈이야?”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던 풀숲에서 누군가가 뒤통수를 문지르며 일어선다. 50줄에 접어든 덩치 큰 사내이다.
“아! 미안합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자네 용병인가? 몇 등급인데?”
“네? C급인데 왜 그러십니까?”
“그래? 마침 잘되었군. C급 정도면 충분한 일이 있는데 맡아줄 텐가?”
느닷없는 제안이었기에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뭐라고요?”
“나는 론슨이라 하네. 우리 마을에 며칠째 고블린이 내려오네. 퇴치해 주면 5실버 주겠네. 해주겠나?”
“고블린이라면 쉽게 물리칠 수 있는데 왜……?”
현수의 말처럼 고블린은 마비침을 쏘아대기에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뿐 웬만하면 퇴치 가능한 몬스터이다.
“우리 마을엔 남자가 열 명뿐이네. 내려오는 고블린은 50마리쯤 되고.”
“네? 그럼 혼자서 50마리를 상대하라는 겁니까?”
“아니. 나를 포함한 남자 열 명 모두 나설 거네. C급 용병이라면 우리보다는 몬스터 퇴치 경험이 많을 것 아닌가.”
“……!”
“돈이 많으면 더 주고 싶으나 우리에겐 5실버밖에 없네. 대신 고블린의 가죽은 우리가 벗겨서 다 주겠네.”
보아하니 촌장 또는 그에 버금가는 사람인 듯하다.
고블린을 처리하기 위해 수도에 있는 용병 길드로 가던 중 잠깐 낮잠을 자다 현수가 걷어찬 돌에 맞고 깬 것이다.
걸친 의복을 보니 거의 알베제 마을 수준이다. 보나마나 화전민인 듯싶다.
“여기서 멉니까?”
“아니, 가깝네. 그렇게 멀지 않아.”
“좋습니다. 그 일을 맡죠.”
“하하! 좋아, 좋아. 그럼 우리 마을로 가세.”
장년인의 뒤를 따라간 현수는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까 그곳에서 마을까지 거의 40㎞쯤 떨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산 넘고 물 건너서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을 50번쯤 들었을 때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이제 진짜 다 왔네. 저기일세.”
“…그렇군요.”
어떤 용병이 겨우 5실버를 받고 멀고 먼 여기까지 오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기왕에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에겐 나름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을 어귀에 당도하자 목재로 만든 울타리의 문이 열린다.
삐거덕―!
“론슨, 옆의 그 친구가 용병인가?”
“그래. 간신히 모셔왔네.”
“아이고, 어서 오시게. 먼 길 오셨네.”
나이가 훨씬 어려 보이는데도 말을 완전히 놓지 않는다. 팩하고 토라져 가버릴까 싶어서일 것이다.
“네, 진짜 먼 길이더군요.”
현수는 자신을 속여서 데리고 온 사내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그나저나 고블린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놈들은 이따 해가 저물 때쯤 내려오네.”
말을 하던 장년인이 울타리 밖에 있던 소년에게 소리친다.
“헨리야, 이제 들어와! 조금 있으면 해지니까!”
“네, 아저씨! 금방 가요!”
열두 살쯤 된 헨리라는 소년의 곁에는 열한 살쯤 된 소녀가 있다.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라도 고르는지 쭈그리고 앉아 있다.
장년인들의 시선이 소년, 소녀에게 향해 있을 때 해는 뉘엿뉘엿 서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와이드 센스!”
샤르르르릉―!
마나가 뿜어지면서 주변 상황이 속속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500m, 1,000m, 1,500m, 2,000m로 범위를 넓히며 살폈다.
전에는 2,000m까지가 한계였다.
그런데 훨씬 더 멀리까지 감지되고 있다. 어디까지 가능한지 확인해 보기 위해 최대한 마나를 개방했다.
2,500m, 3,000m, 4,000m, 5,000m까지 가더니 멈춘다.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탐색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이전엔 최대치가 12.56㎢였다. 이것이 78.50㎢로 확장된 것이다. 탐색 범위가 6.25배나 늘어난 것이다.
그러다 한 무리의 생명체가 이동하는 것을 포착했다.
마을로부터 2㎞쯤 떨어진 곳에서 곧장 접근 중이다. 그런데 상당히 속도가 빠르다.
‘어라! 고블린이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몬스터였나?’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런 생각만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아이들을 빨리 불러들이세요. 어서요.”
“왜? 아직 해 떨어지려면 시간이 남았는데.”
의아하다는 눈빛이다.
“저쪽에서 고블린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뭐? 그, 그걸 어찌 아나?”
이 마을 사람이 아님에도 고블린이 접근하는 방향을 정확이 짚어내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어서요. 조금 더 늦으면 아이들이 희생될 수 있어요.”
“뭐라고?”
“저쪽에서 고블린이 엄청난 속도로 오고 있다고요. 어서요! 어서 아이들을 부르란 말입니다.”
웬만해선 계속 말만 걸 것 같아 소리를 질러 버렸다.
“아, 알았네! 헨리, 헨리야, 어서 세실리아 데리고 돌아오너라. 어서!”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세실리아가 지금 네잎 클로버 찾고 있단 말이에요. 두 개만 더 찾고요.”
헨리라는 소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친다.
“세실리아! 어서 돌아오너라! 어서!”
다른 장년인이 소리쳤지만 둘은 들은 척도 않는다.
계속해서 돌아오라 소리쳤지만 아이들은 대꾸도 않는다. 그렇게 2분쯤 지났다.
“헨리 너 이놈의 새끼! 빨리 안 돌아와? 어서 세실리아 데리고 돌아오란 말이야!”
아버지의 성난 음성을 듣고야 반응을 보인다.
“에이, 알았다니까요. 이제 하나만 더 찾으면 가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헨리! 고블린이 오고 있어! 어서 와!”
“에이, 피터 아저씨, 뻥치지 마세요. 고블린은 해가 완전히 떨어져야 오잖아요. 근데 아직 해 떠 있잖아요. 저거 안 보여요?”
헨리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가리키는 순간 현수는 눈을 크게 뜬다.
혹시나 해서 와이드 센스 마법을 계속 구현시키고 있던 중이다. 그런데 조금 전엔 없던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땅속 동굴 같은 데 있던 놈들이 나온 모양이다.
거리는 약 1㎞이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 3∼4분이면 당도할 거리이다.
“고블린 무리가 하나 더 있나 봅니다. 3∼4분이면 당도합니다. 아이들을 어서 불러들이세요.”
“뭐라고? 아, 알았네. 헨리 이 쌍놈의 새끼야! 빨리 안 돌아와? 지금 안 오면 앞으로 열흘 동안 밥 안 준다!”
“에이, 치사하게 먹을 거 가지고.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가면 되잖아요. 이제 한 개만 더 찾으면 된다구요.”
“헨리! 헨리! 저기를 봐! 빨리 보란 말이야!”
론슨이 고함을 지르며 손가락질을 한다. 이에 시선을 돌리던 헨리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거의 같은 순간 세실리아도 고개를 든다.
저쪽에서 몬스터 두 마리가 맹렬히 달려오고 있다.
“아악!”
세실리아가 비명과 함께 털썩 주저앉는다. 겁에 질려 오금이 펴지지 않는 모양이다.
“헨리! 어서 세실리아 데리고 뛰어! 어서!”
“아, 알았어요. 세실리아, 어서 일어나! 어서!”
“안 돼. 다리가 안 펴져. 히이잉! 나 어떻게 해.”
참 지지리도 말도 안 듣더니 몬스터의 식사거리가 되게 생겼다. 어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오라고 소리쳤다.
가서 데리고 오기엔 시간이 늦을 것이기 때문이다.
헨리가 세실리아를 잡아끈다. 하지만 힘이 약한 소년이 어찌 소녀를 끌고 올 수 있겠는가!
“안 되겠습니다. 제가…….”
훌쩍 목책을 뛰어넘은 현수가 아이들 쪽으로 달려간다. 몬스터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는 중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세실리아 때문이다.
“아, 아저씨!”
현수가 당도하자 헨리라는 녀석이 안절부절못한다.
6장 말 안 들으면 맞아야지
쾅―!
말도 지지리도 안 듣는 녀석이기에 감정을 실어 머리통을 아주 세게 쥐어박았다.
“아야! 아파요! 그리고 누군데 날 때려요?”
“시끄러 인마! 빨리 뛰기나 해! 어서 마을로 돌아가!”
“세, 세실리아는요?”
“이 계집애는 내가 데리고 갈 테니 어서!”
현수가 세실리아를 덥석 들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긴다. 그래도 뛰기 시작했다.
현수가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헨리라는 녀석은 지독한 개구쟁이에다 말도 안 듣는 최고의 말썽꾼이다. 하루라도 사고를 안 치면 이상하다 여길 정도로 개차반인 녀석이라 한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들은 이야기다.
어른들이 좋은 말로 타일러 봤지만 소용이 없다고 했다.
이런 녀석은 된통 혼나봐야 정신을 차린다.
그렇기에 세실리아를 안은 채 녀석을 추월해 버렸다.
“아, 아저씨! 같이 가요.”
“시끄러! 난 저놈들에게 먹히기 싫어! 걸음이 느리면 너만 먹히는 거니까 알아서 해! 먼저 간다!”
현수가 부러 걸음을 빨리하여 거리를 확 벌리자 헨리라는 녀석도 죽기 살기로 뛰는 모양이다.
그러다 뒤를 돌아본 헨리의 얼굴이 더 창백해진다. 고블린이 아니라 성체 트롤 두 마리가 쫓아오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아! 사람 살려요!”
우다다다다다―!
죽어라고 달린다. 그런데 보폭이 작으니 똑같이 발을 놀려도 현수와의 거리가 점점 더 벌어진다.
반면 트롤과의 간격은 계속 좁혀지고 있다.
먼저 목책에 당도한 현수는 세실리아를 들여보냈다.
“세실리아, 너 이놈의 기집애, 앞으로 마을 밖 외출은 영원히 안 되는 줄 알아. 그리고 그거 내놔.”
성난 세실리아의 아빠 피터가 손에 쥐고 있는 네 잎 클로버를 빼앗아 발로 짓뭉개 버린다.
그래도 세실리아는 찍소리 못하고 있다. 부를 때 달려오지 않아 헨리가 죽게 생겼기 때문이다.
마을 남자 열 명 모두 칼을 들고 있지만 긴장된 표정이다. 농사나 짓는 장정들이기에 트롤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