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3
“으으윽! 사, 살려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제 분수도 모르고 까부는 망나니들에겐 몽둥이가 약이라는데, 지금부터 타작 한번 해줄까?”
찰싹―!
바스타드 소드로 뺨을 때리니 찰진 타격음이 난다.
“으으윽!”
칼로 목을 베려 한다고 느끼는지 나지막한 신음을 토한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아래쪽이 축축하게 젖는다.
겁에 질려 소변을 지린 것이다.
“크으! 이거 순전히 겁쟁이였구먼. 바지에 오줌을 싸다니.”
현수의 느물거리는 말에도 녀석은 화를 내거나 반항하지 못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목숨이 현수의 손에 달려 있기에 꼼짝도 못하는 것이다.
“사, 살려주십시오.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래? 이 녀석은 조금 반성하는 것 같은데, 너는?”
또 다른 녀석의 목에 바스타드 소드의 날을 들이대니 그 순간 바지가 젖는다. 이놈도 겁에 질린 것이다.
“으으, 으으으!”
철썩―!
이번엔 녀석의 엉덩이를 한 대 후려갈겼다.
“으으윽! 사, 살려주십시오. 마, 마법사님인 줄 몰랐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살려줘? 아깐 나더러 있는 거 다 내놓으라고 했잖아.”
“그, 그땐…….”
녀석의 말이 끝나기 전에 곁에 있는 놈에게 시선을 주었다. 들고 있던 대거를 떨구고 싶었는지 그것만 바라보다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호오! 이걸로 날 찌르려 했던 거냐? 날이 제법 시퍼런데? 찔리면 꽤 아프겠어. 안 그래?”
녀석의 대거를 빼앗아 놈의 배를 쿡쿡 찔렀다. 찌르면서 방향을 손잡이로 바꾼 상태이다.
“아아악! 사, 사람 살려!”
진짜로 배를 찌르는 것으로 오인했는지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런데 예상했던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슬며시 눈을 뜬다.
“왜? 너는 나를 찔러도 되고 난 너를 찌르면 안 되는 거였나?”
현수의 무표정한 얼굴에 이놈 또한 겁에 질린 듯 벌벌 떤다. 그러다 소변을 지렸는지 하의가 축축해지고 있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래? 근데 그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안 믿어지는데? 어이, 너는?”
현수의 시선을 받은 놈은 일행 중 가장 덩치가 작은 녀석이다. 나이는 스물이 채 안 된 듯싶다.
“저, 저는… 잘못했습니다, 마법사님!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이런 짓 안 하고 살겠습니다.”
불쌍해 보이려 그러는지 눈물까지 뚝뚝 흘린다.
“흐음, 너희를 데려다 실험 재료로 썼으면 한다. 팔과 다리를 잘라 바꿔 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는 거야. 어때? 지원자 받는다. 그놈만 살려주고 나머진…….”
“끄응!”
한 녀석이 선 채로 졸도한다. 과도한 공포로 인해 의식이 끊긴 것이다. 나머지 녀석들의 안색도 창백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코린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마법사가 아이들을 납치하여 실험 재료로 쓴다는 것이 그것이다.
아이들은 모든 장기가 사라진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다고 한다. 때론 팔다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자신이 그 실험의 재료가 된다는 생각이라도 한 모양이다. 하여 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모두 겁에 질린 표정이다.
“좋아, 한 번의 기회를 주지. 내일 아침이 될 때까지 코린에 나도는 소문 열 개씩을 알아온다. 알았나?”
“네……?”
“도망치고 싶으면 그래도 돼. 근데 어쩌지? 내일 아침에 내 눈에 뜨이지 않으면 너희 목숨은 끊어질 거야. 내가 저주 마법을 걸 거니까.”
말을 마치곤 진짜 저주 마법을 거는 것처럼 뭐라 뭐라 중얼거리며 두 팔을 벌렸다. 녀석들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홀드 퍼슨에 걸렸는데 어찌 그러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내일 아침까지 이 자리로 돌아와 각기 다른 소문 열 가지씩을 내게 말해야 한다. 만일 그러지 못하면 머리가 터져 죽을 것이다. 알겠나?”
“네.”
“목소리가 작다! 알겠나?”
“네!”
“좋아! 그래도 겁도 없이 내게 시비 건 건 처벌 받아야지? 모두 엎드려!”
“네?”
“벽을 짚고 서란 말이야. 매직 캔슬!”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렬로 선다.
퍼억! 퍽! 퍼억! 퍼억! 퍽!
“악! 으악! 켁! 아악! 큭!”
다섯 마디 비명이 터져 나온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때문이다. 녀석들은 얼른 엉덩이를 비비고 있다.
“내일 오전 이곳에서 다시 보자.”
“……!”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뭐라 하지 않았다.
코린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소문을 수집했다. 황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기에 주로 황실 관련 소문만 들었다.
물론 로이어 영지에 관한 소문도 새겨들었다.
가이아 신전에도 가봤다. 크고 화려했으며 엄숙한 분위기이다. 입구에서 근무하는 병사에게 물으니 농장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였다.
마탑에도 갔다. 혹시나 해서이다. 그런데 소득이 없다.
전쟁 때문에 모든 마법사들이 전장에 파견되어 마탑엔 평범한 인물들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다. 여관으로 갈까 하다 말았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여러 상점을 돌아다녔다. 로시아와 로잘린을 처로 맞아야 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녀들 또한 바디체인지 되게 하려면 원료가 필요한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테세린에선 좀처럼 구할 수 없던 재료가 이곳에선 쉽게 구해진다는 것이다.
덕분에 쉽게 재료들을 모았다.
“흐음, 아침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지구에 갔다 와야겠군.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코린의 외곽에서 현수의 신형이 스르르 사라진다.
* * *
“후우, 덥군!”
라이셔 제국은 대륙의 북쪽에 위치한다. 그렇기에 그곳의 10월 말은 한국으로 치면 12월 초의 기온 정도 된다.
그런 곳에 있다 열대로 오니 새벽인데도 덥게 느껴진다.
얼른 옷부터 갈아입었다. 그리곤 2층 침실로 올라갔다.
세 신부 모두 곤히 잠들어 있다.
하긴 딥 슬립 마법에 걸려 있는데 어찌 깨겠는가!
시계를 보니 아직 일어날 시각은 안 되었다. 하여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셨다. 아르센에선 경험할 수 없는 맛이다.
저택 뒤쪽 호수로 가보았다. 전과 달리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물 위를 떠다니던 지저분한 것들도 모두 치워졌다.
기왕 나온 김에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어 인공 섬으로 들어가 보았다.
벤치는 묵은 칠을 벗겨내고 새로 칠한 듯 보인다. 왕골로 짠 의자엔 푹신한 쿠션이 올려 있다.
앉아보니 풍경이 그럴듯하다.
저택을 중심으로 좌우에 비슷한 형식의 건물이 보인다.
“흐음, 한가로운 풍경이군. 좋네.”
자연은 다투지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사방은 고요하다. 새들도 돌아다니지 않는 이른 시각이라 그렇다.
긴 소파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보았다. 하늘이 파랗다.
“참, 그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잘 깎인 잔디밭이 보인다.
“앱솔루트 배리어! 타임 딜레이!”
마법을 구현시켜 놓고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곤 준비된 각종 재료들을 끄집어냈다.
생각난 김에 카이로시아와 로잘린을 위한 수퍼 포션을 만들 생각이다.
사실 수퍼 포션이란 말은 없다. 현수가 작명한 것이다.
회복 포션은 트롤의 정제된 피가 주된 재료이다. 손상된 부분을 원상으로 회복시켜 주는 효능이 있다.
주로 상처 치료에 사용되는 포션이다.
마나 포션은 주재료가 만드라고라이다. 한국으로 치면 100년짜리 천종산삼과 비슷한 효능을 가진 것이다. 하나의 마나 포션을 제조하는 데 만드라고라 두 뿌리가 소요된다.
수퍼 포션을 제조하려면 이런 만드라고라가 열 뿌리가 필요하다. 트롤의 선혈도 열 마리 분이 필요하다.
만드라고라 하나당 100골드이니 한국 돈으로 치면 뿌리당 1억이다. 트롤의 선혈은 값을 매길 수 없다.
지구엔 이런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값을 매긴다면 이것 역시 마리당 1억 정도 된다. 이 두 재료의 값만 따져도 수퍼 포션은 1인분당 20억 원이나 된다.
어쨌든 간에 필요한 각종 재료를 모두 꺼냈다. 그리곤 정밀 계량 기구를 이용하여 이것들을 배합했다.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다. 배합비가 달라지면 엉뚱한 효과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2인분의 수퍼 포션 제조가 완료되었다.
포션(Potion)이란 마법 물약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현수가 만든 것은 물약 형태가 아니라 환단이다.
그럼에도 수퍼 포션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것을 입안에 넣으면 물처럼 녹아버리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2인분의 수퍼 포션 제조가 완료된 시각은 오전 6시 경이다.
결계를 해제하고 나와 다시 저택으로 되돌아갔다.
“자기야, 어디 갔었어요?”
“응, 산책. 일찍 일어났네?”
“네, 조금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어서요.”
지현이 환히 웃는다.
“피곤할 텐데 조금 더 쉬지.”
“아니에요. 커피 좀 드려요?”
“그래, 줄래?”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현수는 문득 기분이 좋아졌다.
아름답고 상냥하며, 우아하고 이지적이며, 섹시하고 나긋나긋한 여자가 아내라는 것이 마음에 든 것이다.
“아침 먹고 곧장 출발할 거야. 괜찮지?”
“그럼요. 준비는 다 되어 있어요. 근데 여기 너무 마음에 들어요. 경치도 정말 좋구요.”
“그래? 그럼 아침 먹기 전에 산책이나 할까?”
“네, 좋아요.”
지현이 얼른 다가와 팔짱을 낀다. 현수가 팔을 빼자 왜 이러느냐는 표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다. 현수가 어깨를 보듬어 안자 찰싹 달라붙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우린 이제 부부잖아.”
“네에.”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저택의 뒤편으로 나갔다. 크고 작은 두 개의 수영장이 있다. 하나는 어린이용이다.
수영장을 돌아 탁 트인 초원으로 나갔다. 새벽에 스프링클러가 물을 준 듯 촉촉하다.
“여기 정말 좋아요. 조금 덥기는 하지만요. 저도 여기 와서 살까요?”
“왜? 집이 넓어서?”
“그런 것도 있고요. 여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잖아요.”
“그럼 법원 그만두려고?”
“그건…….”
지현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했던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보면 아직 본전도 못 뽑았다.
그리고 매일 출근하다 어느 날부터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지현이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그래요? 그게 뭔데요?”
“지금 양평에 우리가 살 집을 짓고 있는 중이야.”
“집이요? 양평에? 거기서 출퇴근하려면…….”
며칠을 더 근무하든 양평에서 서초동까지는 꽤 멀다. 더구나 출퇴근 시간에 이동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기에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끝을 흐린다.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조치를 취해줄 거니까.”
“그래요? 근데 왜 하필 양평이에요?”
“집을 짓는다니까 연희 할아버지께서 땅을 주셨어.”
“거기… 넓어요?”
“응. 2만 평이 조금 넘어. 정확히는 21,079평이야.”
“네? 그렇게 넓은 데다 집을 지어요?”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래, 두물머리9)가 잘 보이는 곳에 짓고 있어.”
“얼마나 넓은데요? 그래도 여기보단 작죠?”
지현에게 있어 킨샤사의 저택은 여태껏 보았던 어떤 집보다도 넓고 크다. 그렇기에 물은 말이다.
“아니. 여기랑 거의 크기가 같을 거야. 우리가 살 집은 3층짜린데 바닥 면적은 750평이고 연면적은 2,000평쯤 될 거야. 그 정도면 괜찮지?”
“네에? 그 넓은 걸 우리 둘이 써요?”
“나중에 아이들도 태어나잖아. 그리고 연희와 이리냐가 와서 있을 때도 있을 거고.”
“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께서 사실 집도 그 땅에 짓고 있어. 바닥 면적 100평에 연면적 150평짜리 2층 주택이야. 너무 넓으면 관리하시기 힘들 거 같아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