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7
적당히 시간을 때운 뒤 가스 터빈실을 나왔다.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확인해 본 결과 함 내엔 아무도 없다.
함수 부분엔 그리스 마법진을 설치했다. 물의 저항을 줄여 연비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음파 및 전파 흡수 마법진도 부착시켰다.
얌전히 앉아 있는 링스 헬기를 보니 엔진이 분해되어 있다. 이것 또한 봐달라는 뜻이기에 기꺼이 손봐주었다.
연비 향상 작업을 마친 후엔 전파와 음파 흡수 마법진을 적용시켰다.
이순신함에는 하푼과 홍상어, 그리고 청상어가 탑재되어 있다. 이것들에게 논노이즈와 헤이스트 마법진을 설치했다.
모든 작업을 마치는 데 여덟 시간쯤 걸렸다.
이순신함 다음은 문무대왕함이다. 이것 역시 현수의 손을 거치면서 완전히 다른 함선으로 변모되었다.
손보기 전엔 최고 속도 29노트, 순항 속도 17노트, 순항 거리 8,800㎞였다.
이것이 최고 속도 41.5노트, 순항 속도 23.8노트, 순항 거리 105,600㎞로 탈바꿈되었다.
게다가 추진기 소음은 28.2데시벨로 줄어들었다.
수퍼 링스 두 대도 업그레이드되었다.
프로펠러 소음은 110dB에서 30dB 이하로 확 떨어진다.
1,046㎞에 불과하던 항주 거리는 15,700㎞로 대폭 늘어난다. 작전 반경도 늘고 시간 또한 대폭 늘어난 것이다.
아울러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헬리콥터가 되었다. 음파 및 전파 흡수 마법진 덕분이다.
대한민국의 해군은 이제 모든 작전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아마도 기꺼이 웃으며 그 작업을 할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오늘 좀 많이 바빴네요.”
“여기 이거…….”
고복현 대위가 건넨 것은 달콤한 망고 주스이다.
꿀꺽, 꿀꺽, 꿀꺽!
“꺄아! 시원하네요.”
“네. 내일 또 오실 거죠?”
“그래야죠. 고 대위님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푹 쉬고 내일 뵙죠.”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도요.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는 말씀 안 하셔도 제가 잘 압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 대위는 바다가 좋아 해군에 뼈를 묻겠노라 생각하여 해군사관학교를 지원해 임관했다.
사관학교 재학 시절 해군의 전력에 실망감을 느꼈다. 그런데 현수가 양만춘함을 봐준 이후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대한민국 최초의 스텔스함이기 때문이다.
심 소장은 현수가 손볼 모든 함정의 엔진 및 터빈 분해 작업을 고 대위와 배 상사, 그리고 최 상사 팀에게 맡겼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해군이 보유한 거의 모든 대형 함선에 올라가 볼 기회가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세종대왕함 같은 이지스함에 올라가 보고 싶은 차이다.
게다가 이번 일이 끝나면 특별 진급이 약속되어 있다.
현수가 작업해 주는 대가의 일환으로 고 대위 팀의 진급을 당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 소령이라 불릴 날이 곧 올 것이다.
스피드를 몰아 함대사령부를 빠져나온 현수는 적당한 곳에서 차를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곤 천지건설 본사 옥상으로 텔레포트했다.
“아! 왔는가? 신혼여행은 즐거웠나?”
“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직원이 결혼한다고 회사에서 한 달씩이나 휴가 주는 건 처음이라는 거 알지?”
“네, 그럼요!”
현수가 환히 웃자 신형섭 사장도 웃는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 사장의 말대로 현수는 현재 휴가 기간이다. 그룹 총회장인 이연서 회장이 한 달간 유급 휴가를 준 때문이다.
손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는 의도이다.
“휴간데 회사엔 왜 나왔나? 푹 쉬면서 여행이나 다니지.”
“에구, 제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사장님 도와서 브라질 건 성사시키려면 이것저것 알아볼 것도 많은데.”
“아, 정말? 이제 본격적으로 나서보려고?”
“네, 한번 해볼게요. 다만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그럼, 그럼! 걱정 말게. 하하! 하하하!”
현수가 돕기로 했다는 말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듯하다.
“참, 요즘 직원 많이 뽑죠?”
“그래, 벌여놓은 일이 많으니 인원이 많이 필요하지. 해서 계속해서 사람들 뽑고 있네. 그런데 왜?”
“아시다시피 천기기획이 만들어졌는데 직원이 하나도 없잖습니까? 그래서 건설에서 인재들을 스카우트하려고요.”
“건설에서?”
“네. 안 되나요?”
“…그러게. 단 조인경 대리는 안 되네. 왜 그런지 알지?”
“네, 알겠습니다.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고 인선 작업 좀 할게요.”
“그래, 그러게.”
사장실을 나선 현수는 34층 부사장실로 옮겨갔다.
“어서 오십시오, 부사장님!”
한참 수집된 자료에 관한 보고서 작성을 하던 박진영 과장이 얼른 고개를 숙인다.
“아! 박 과장님.”
“안녕하세요, 부사장님?”
김지윤 대리와 황만규 주임, 그리고 구본홍 사원이 환히 웃고 있다.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결혼식에 와줘서. 그날 너무 바빠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네요.”
“아이고, 괜찮습니다. 쟁쟁하신 분들이 너무 많이 오셨는데 저희 같은 직원들이야…….”
박진영 과장이 황송하다는 표정이다. 한때 현수를 견제 대상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큼 큰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는 까마득한 상전이라 여기는 것이다.
“아무튼 와줘서 고맙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래간만에 회의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다들 모여주세요.”
현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들 다이어리를 들고 모인다.
“말씀하십시오.”
박 과장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리우데자네이루 건에 대한 자료 수집은 어찌 진행되고 있습니까?”
“저희 나름대로 수집한 것도 있고 해외영업부와 업무지원팀에서 수집한 것도 있습니다. 상당히 양이 많아 간추리는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모쪼록 그 안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 기획영업팀도 본격적으로 가세할 거니까요.”
“……!”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빛낸다. 그렇지 않아도 해외영업부에서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컨셉 설계 도면을 접수한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 당국이 천지건설보다는 다른 회사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여 조만간 기획영업단이 움직일 것이란 기대감이 팽배하다. 또 한 번 기적을 일으켜 달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천지기획이 새로 발족되고 내가 대표이사 사장이라는 건 다들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회사로 여러분을 스카우트하려 합니다.”
“네?”
“자리를 옮겨서 나를 도와달라는 겁니다. 물론 건설에 계속 남고 싶으시면 그래도 됩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옮기지 않아도 불이익은 하나도 없으며 기획영업단에서 내쳐지는 일도 없습니다.”
“아, 네에.”
모두들 망설이는 표정이다.
천지건설은 요즘 나날이 사세가 커지는 중이다.
당연히 급여 수준도 나아질 것이다. 반면, 천지기획은 직원이 하나도 없는 신규 법인이다. 아직은 볼 게 하나도 없다.
당연히 저울질을 할 것이다. 이런 마음을 충분히 짐작하기에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다 문득 김지윤 대리와 시선이 마주쳤다.
“참! 김 대리나 박 과장 두 분 중 한 명은 자리를 옮겨줬으면 합니다.”
“네? 왜요?”
“그냥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둘을 위해서이다. 둘이 사내 커플이 될 경우 나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둘 중 하나더러 나가라는 요구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참, 강연희 대리는 기획으로 옮기겠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고 의견을 말해주십시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리를 옮기지 않아도 불이익은 전혀 없습니다.”
말을 마친 현수는 자재과로 내려가기 전에 인사부에 들렀다. 이준섭 차장이 얼른 일어나 인사를 한다.
“부사장님, 여긴 어떻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전화를 주시지. 참,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네, 우리 오랜만이죠? 잠깐 시간 좀 내주실래요?”
“아이고, 그럼요! 저, 저쪽으로 가시죠.”
인사부 귀퉁이에 마련된 면담실로 안내한 이 차장이 손수 차를 내온다. 자리에 앉자 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직원들 인사 기록 카드를 좀 봤으면 합니다.”
“네? 혹시 무슨 일로…….”
누굴 자르려는 것이냐는 질문은 하려다 만다. 윗사람이 까라면 까는 것이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파일을 USB에 담아드리겠습니다.”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랍 속의 USB를 꺼내 본체에 끼운다. 그리곤 인사 기록 파일을 찾아 복사시켰다.
문득 예전의 일이 떠오른다.
실세의 아들이자 승승장구하고 있던 박진영 기획3팀장의 압력을 받아 현수를 해외영업부로 발령 내던 때이다.
그때 이 차장은 몹시 미안해하면서 무엇이든 도울 수 있으면 돕겠다고 했다.
자재과 사수였던 곽인만 대리와 업무지원팀 강연희 대리를 빼고 나면 거의 왕따이던 시절이다.
그리고 인사부 차장이면 꽤 요직이다.
그런 자리에 앉은 사람이 진짜 별 볼일 없는 신입사원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선량한 심성이 바탕에 있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마음이다.
나중엔 연희가 영국 어디에 머무는지를 알려주었다. 덕분에 해후를 할 수 있었고,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 때고 감사의 뜻을 표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동안엔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 차장님, 혹시 자리 옮겨 보실 생각 없어요?”
“네? 그게 무슨……?”
“천지기획이 새로 발족되는 거 아시죠?”
“그럼요. 부사장님께서 대표이사이잖습니까. 그룹 총괄 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향후 천지그룹을 먹여 살릴 아주 중요한 회사라고 하셨습니다.”
“네. 인사부 부장으로 와주셨으면 합니다.”
“네? 제가요?”
“오셔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인재들을 뽑아줬으면 합니다. 의향이 어떠신지요?”
“그건…….”
이 차장은 금방 입을 열지 않는다. 순식간에 머릿속을 오가는 수많은 상념 때문이다.
이때 모든 생각을 정리케 해줄 한마디가 있다.
“천지기획의 인사부 부장은 대표이사 직속이 될 겁니다.”
“…가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준섭 차장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절을 한다.
“환영합니다. 그리고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앞으로 잘해보죠.”
“네, 사장님!”
이젠 천지건설 소속이 아니라 천기기획 소속이기에 현수를 부르는 호칭부터 달라진다.
이 차장이 마누라와 상의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천지건설 인사부 부장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임 인사부장의 인맥이 너무나 빵빵하여 그 자리는 좀처럼 비워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천지건설 이창진 회장과 사돈 관계라는 것이 최근에 밝혀진 것이다.
둘째는 상부에서 수시로 내려오는 압력이 부당하다 느낀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차장은 이사들의 지시나 협조 요청을 뿌리치기 힘들다.
현수를 킨샤사로 보낼 땐 과장급 팀장의 은근한 압력이 있었다. 그래서 현수가 해외영업부 소속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는 며칠 동안 술만 마셨다. 미안해서이다.
셋째는 현수에 대한 호감이 작용한 때문이다.
젊은 나이지만 초고속 승진을 하여 거의 끝에 올라 있다.
그럼에도 거들먹거린다는 소문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라면 나이가 어리더라도 믿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기에 마누라의 잔소리가 심히 우려되지만 화끈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자재과 곽인만 대리, 또는 유민우 사원을 데려가려 합니다. 이 부장님 의견은 어떤지요?”
현수 또한 이준섭에 대한 호칭을 바꿨다. 이게 조금 쑥스러웠는지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