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8
“……!”
“부장님을 부장님이라 부른 겁니다. 곧 익숙해지셔야죠.”
“네, 알겠습니다. 제 개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곽인만 대리나 유민우 사원 둘 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둘 다 데리고 갈 경우 천지건설 업무에 지장이 있을 듯합니다.”
“흐음, 둘 중 하나만 고르라는 거군요.”
“네, 누구를 선택하든 괜찮을 겁니다. 둘 다 유능한 사람들이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본인들에게 직접 물어보죠. 이제 곧 천지기획 사무실이 꾸려질 겁니다. 이 부장님은 그전부터 움직이셔야 할 겁니다.”
“네, 곧바로 회사에 사직서 제출하고 대기하겠습니다.”
인사부를 나선 현수는 자재과로 향했다.
“어! 부사장님!”
유민우 사원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신입사원인 신민아와 차애련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부사장님 오셨어요?”
“아, 네. 다들 안녕하시네요. 근데 우리 사수 곽 대리님은 어디 가셨어요?”
“화장실이요. 어제 과 회식했는데 조금 과음하셨거든요.”
유민우가 웃자 여직원들이 입을 가리며 웃는다.
“나이도 얼마 안 되는데 노인네 다 되셨어요. 크크크!”
이때 문이 열리며 아랫배를 쓰다듬는 곽 대리가 들어선다.
“어! 왔어? 야, 유민우! 뭐라고? 내가 노인네라고? 너, 내 나이가 몇인지 몰라?”
들고 있던 두루마리 휴지로 곽 대리가 유민우의 뒤통수를 갈긴다. 악의 없는 구타이다.
“서른셋이면 노인네죠! 회식 한 번 했다고 빌빌 싸잖아요. 안 그래요?”
그간 많이 친해졌는지 스스럼없이 엉기는 모습이다.
“그건… 내가 과민성대장증후군14)이라……. 에이, 말을 말자.”
“그러게 어제 제가 뭐라 했습니까? 조금 덜 마시랬더니 4차까지……. 어제 집에 가셔서 형수님한테 바가지 긁혔죠?”
유민우의 말에 곽 대리는 대꾸하지 못한다. 또다시 화장실로 직행해야 한다는 신호가 온 때문이다.
꾸륵, 꾸르르륵―!
현수의 예민한 귀에만 들린 소리이다.
“자, 잠시만. 으으! 내가 미친다.”
곽 대리가 허겁지겁 튀어나가자 유민우가 혀를 찬다.
“쯧쯧! 다음날 이러는 거 알면서 매번……. 학습 효과가 없어요. 이게 다 술을 너무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처음엔 혼잣말이었는데 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동의를 구한다는 표정이다.
“민우 씨, 요즘도 접대가 많은가 보지?”
“그럼요. 거의 날마다 여기저기서 저녁때 한잔하자고 해서 미칠 지경이에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천지건설은 요즘 창사 이래 최대의 호황이다. 그러니 자재 납품업체 입장에선 꼭 잡아야 할 거래처 1순위이다.
비슷비슷한 품질을 가진 제품으로 경쟁을 하려니 담당자와 친해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여 자재과 직원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살이 찌는 중이다.
저녁을 거절하면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아침부터 와서 기다리는 통에 다이어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5분쯤 지나자 곽 대리가 해쓱한 얼굴로 들어선다.
“이제 속 좀 괜찮아요?”
“……!”
대답할 기력조차 없는 듯 힘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컴플리트 힐! 바디 리프레쉬!”
샤르르르릉―!
둘 중 어떤 마법을 써야 할지 몰라 둘 다 사용했다. 마나가 체내로 스며들자 곽 대리의 안색이 확연히 달라진다.
계속해서 꾸물거리던 창자가 조용해지는 느낌과 동시에 처졌던 활력이 솟는 듯한 느낌이 든 때문이다.
“휴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그나저나 미안해. 근데 웬일이야, 여기까지?”
“사수하고 상의할 일이 있어서요.”
“상의? 뭔데?”
“잠시 우리끼리 이야기해요.”
“그러지.”
자재과 곁 상담실로 둘만 가자 유민우와 신민아 등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체 뭔 일인가 싶은 것이다.
상담실은 투명한 거래를 위해 속이 훤히 비치는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그렇기에 대화 내용을 들을 수는 없지만 표정은 읽을 수 있다. 처음엔 곽 대리가 펄쩍 뛰더니 이내 끄덕인다.
10분 후 유민우가 불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날 유민우는 천지건설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천지기획 대리로 스카우트되었다. 다음 날엔 신민아가 사표를 냈다. 유민우를 따라 천지기획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10장 항온 의류 2억 벌
“다 불렀고? 다 왔어?”
“그래, 다들 오긴 했는데 대체 왜?”
민주영이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현수가 왜 대학 동기들을 불러들였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가자.”
역삼동 이실리프 빌딩엔 사원 교육을 위한 강당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다들 왔네. 먼저 내 결혼식에 와준 거 고맙다.”
“그래, 뼈와 살이 불타는 신혼여행은 잘 갔다 왔냐?”
학창 시절 가끔 소주잔을 기울이던 반가운 얼굴이다.
은평구에 소재한 작은 학원 강사로 일한다는 동기이다.
이 친구는 못 올 것이라 예상했다. 지금 이 시간엔 한참 수업을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무리한 듯싶다.
“그래, 니들 덕분에 잘 다녀왔다.”
“좋아, 그건 그렇고, 우리를 왜 불렀냐?”
아직도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하지 못해 아직도 PC방 알바를 한다는 녀석이다.
자리 비운다고 사장한테 싫은 소리 듣고 왔을 것이다.
어쨌거나 강당엔 20명의 동기가 앉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수와 대학 동기라는 것 이외에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취업문이 좁아 삼류대학 수학과 출신은 웬만해선 정규직 채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제안할 게 있어서 불렀다.”
“……!”
모두들 긴장된 표정을 짓는다. 혹시 취직시켜 준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온 때문이다.
“신문에 기사로 나서 이미 알겠지만 나는 천지기획이라는 회사의 대표이사 사장이 되었다. 천지건설은 부사장이고.”
“……!”
잠시 말을 끊자 어서 말을 이으라는 표정들이다.
“그래서 너희에게 일자리 제안을 하려고 불렀다.”
“저, 정말?”
지지리도 말 안 듣고 말썽만 피우는 중2 담당 수학 강사인 친구가 방금 한 말이 진짜냐는 표정이다.
“그래, 천지기획의 신입사원으로 너희를 뽑고 싶다. 나랑 같이 일할래?”
“……!”
“천지기획은 천지그룹의 신생 계열사다. 그래서 다른 계열사만큼의 급여는 약속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웬만한 중소기업보다는 나을 거다. 4대보험 같은 건 당연히 되겠지.”
“현수야, 진짜 우리 뽑아서 쓸 거야?”
이번에 물은 녀석은 졸업 후 한 번도 정규직이 되어본 적이 없는 녀석이다.
“그래. 근데 이거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자. 너희를 직원으로 쓰겠다는 건 내 친구라서가 아니다.”
“……?”
동기들이 그럼 대체 무슨 이유냐는 무언의 질문을 한다.
“미안한 얘기지만 주영이가 너희들을 평가했다.”
“주영이가?”
“그래. 주영이가 너희는 믿고 쓸 수 있는 녀석이라는 평점을 매겼다. 그러니 내게 술 사지 말고 주영이한테 사줘라.”
“주영아!”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민주영은 쑥스럽다는 표정이다.
“현수가 우리 동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회사 업무가 시작되는 순간부터는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잊지 마라.”
“그럼, 당연하지. 근데 우리 언제부터 직원인 거냐?”
“천지기획엔 인사부장이 있어. 그분이 입사에 관한 서류를 요구할 거야. 너희들 폰 번호를 주면 하루나 이틀 내로 구비 서류에 관한 문자를 보낼 거다. 그거 제출하는 순간 천지기획의 직원이 된다.”
“진짜? 농담 아니지? 나중에 무슨 시험 같은 거 봐서 성적 나쁘다고 자르고 그러는 거 아니지?”
재벌 계열사에 입사하고 싶다고 원서조차 내지 않았음에도 취직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셈이다. 그동안 어떤 재벌사도 거들떠보지 않던 삼류대학 수학과 출신들이다.
그렇기에 믿겨지지 않는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천지기획은 입사한 직원에게 시험 같은 거 보게 안 한다. 그러니 그런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고맙다, 현수야! 정말 고맙다!”
“자, 오늘 취직해서 다들 기분 좋지? 그럼 의미에서 내가 한잔 살게. 가자.”
“와아아! 만세, 만세! 와아아아아!”
* * *
“어서 오시게. 오늘도 먼 길 오신 건가?”
“네. 회사 일을 놓을 수 없어서요.”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못해서 미안하네.”
“아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심흥수 소장이기에 환히 웃어주었다.
“아무튼 오늘도 고생할 텐데 차나 한잔하고 시작하시게.”
“네, 감사합니다.”
현수는 심 소장과 달달한 군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곤 대조영함 엔진실로 들어갔다. 다음 순서는 왕건함이다.
한국형 구축함 사업[Korea Destroyer Experimental] 2단계로 건조된 KD―2는 해군 최초의 함대방공 구축함이다.
이는 기동전단의 주력 전투함 역할을 수행하며, 구역 대공방어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단히 우수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그런데 현수의 손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추진기 소음이 확실하게 줄고, 음파 및 전파 흡수 마법진으로 스텔스화 되면서 대잠 및 대공 능력이 확실히 나아졌다.
장착되어 있는 어뢰들은 적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정숙해졌다. 적의 소나병이 감지하지 못할 만큼 조용해진 것이다.
대잠 초계기 수퍼링스는 정숙함과 스텔스화뿐만 아니라 체공 시간의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다.
이만하면 일본과 지나의 최신형 구축함과 비교하였을 때 절대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저쪽은 우릴 볼 수 없지만 우린 볼 수 있고, 저쪽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며, 아주 조용해서 있는지를 알 수 없다.
게다가 무지막지하게 오래 운항할 수 있다.
적의 예상을 완전히 파괴하는 진짜 구축함이 된 것이다.
일본이 보유한 이지스함은 공고급 네 척과 아타고급 두 척이다.
현수의 손을 거친 KD―2만으로도 이들을 충분히 작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강감찬함과 최영함도 내일이면 탈바꿈될 것이다.
어쨌든 현수는 내리 사흘간 해군 제2함대 사령부를 찾아가 KD―2의 산물인 이순신함급 여섯 척 모두 업그레이드시켰다.
해군에선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다.
물론 현수가 전에 말했던 그 금액이다. 결과를 보면 진짜 푼돈에 불과한 비용이지만 계산은 계산이다.
이렇게 받은 돈은 전액 예금통장에 넣어두었다. 나중에 쓸 데가 있기 때문이다.
* * *
“아, 어서 오십시오.”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현수를 반겨준 이는 한국은행장이다.
“늦었지만 결혼 축하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자리하자 서류 한 장을 내놓는다.
“이건 뭡니까?”
“전에 말씀하셨던 금괴 100톤 매입 요청서입니다.”
“아, 그래요? 콩고민주공화국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님께서 제게 전권을 주셨으니 대리인 자격으로 사인하겠습니다.”
“그러시죠. 저희는 물건만 받으면 되니까요.”
한국은행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사인을 마쳤다.
“금괴는 영국 중앙은행으로 보내실 거죠?”
“그렇습니다. 안전을 위해 그쪽 금고에 보관합니다.”
“그럼 거기서 금을 인수받는 것으로 하죠. 금괴에 대한 대가는 그쪽에서 확인하는 대로 송금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게 하죠. 그리고 이거…….”
한국은행장이 또 다른 서류 한 장을 내놓는다.
“이건 뭐죠?”
“은행 설립 신청 시 필요한 요건들입니다. 금융위원회의 허가부터 얻어야 하므로 표시된 대로 서류를 준비하십시오.”
“아……!”
현수가 서류를 들여다보자 한국은행장이 말을 잇는다.
“최초 자본금은 얼마로 하실 생각입니까? 진짜 5조 400억 원입니까? 그리고 전에 말하셨던 그 금리로 대출합니까?”
“네. 현재로선 그럴 생각입니다. 대출금리는 더 내릴 수도 있고요.”
“거기서 더 내려요? 신용대출인데요?”
“네.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돈이 필요할 때 도와주기 위해서 만드는 은행입니다. 나중에 여건이 좋아지면 금리를 더 내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