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0
1차적으로 50만 달러 상당 의류를 수입코자 합니다.
품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뒷장을 넘기니 남녀와 아동용 의류 주문서가 첨부되어 있다. 시장 조사를 했는지 상당히 꼼꼼하다는 느낌이다.
“이실리프 어패럴에도 연락했지요?”
“네, 주문 받은 물량을 제작하고 있을 겁니다.”
말을 하며 또 하나의 결재판을 보여준다.
이번 것은 지르코프가 러시아 전역의 판매권을 갖는다는 계약서와 주문서이다. 애초엔 주문자 상표 방식이었다.
바뀐 것은 이실리프 어패럴의 상표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실리프라는 명칭이 러시아에서 꽤 유명한 상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쉐리엔의 폭발적인 인기 덕분이다.
주문 물량을 보곤 이맛살을 찌푸렸다.
남성용 2,500만 벌, 여성용 2,500만 벌, 아동용 3,000만 벌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그리고 금액도 어마어마하다.
이실리프 무역상사에서 지르코프 상사로 보낼 때 벌당 단가는 8만 원이다.
8,000만 벌×8만 원=6조 4,000억 원이다.
물론 이걸 한 번에 보내달라는 건 아니다. 만들어지는 대로 계속해서 보내달라는 뜻이다. 기간을 살펴보니 3개월이다.
한편, 이실리프 어패럴에서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넘기는 가격은 벌당 74,000원이다. 한 벌에 6천 원이 이득이다.
7.5% 이익을 계산해 보면 4,800억 원이다.
이실리프 어패럴도 당연히 이득을 취한다.
여기선 10%의 이득을 취해 6,400억 원이 순이익이다.
의복이란 수십 년씩 입지 않으니 아마도 거의 매년 이만큼씩 보내지게 될 것이다.
“헐!”
현수가 나직한 탄성을 냈다. 은정도 고개를 끄덕인다.
“주문 물량 표기에 착오가 있나 해서 확인을 한 게 그겁니다. 조금 많죠?”
“조금 많은 정도가 아니군요. 이실리프 어패럴 직원들이 몸살을 앓겠군요. 8,000만 벌이라니.”
“그게 1차 주문이랍니다. 2차는 그것보다 많을 것이니 미리 준비해 달랍니다.”
“하긴… 러시아 인구를 생각하면 그럴 겁니다.”
러시아 인구는 1억 4,0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한 벌씩만 구입해도 1억 4,000만 벌이다. 매일 같은 옷만 입고 살 수는 없기에 항온 의류는 최소 2억 벌 이상 팔릴 것이다.
지르코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품에 안은 셈이다.
‘허어! 2억이라니…….’
이실리프 어패럴이야 인원만 늘리면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항온마법진은 오로지 혼자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걸 다 만들 생각을 하니 아찔한 것이다. 사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르코프가 주문할 물량만 2억 벌이다. 마법진 2억 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주 숙달되어 1초에 마나석 하나를 박을 경우 2,315일쯤 걸린다. 6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다.
실제론 마나석 하나를 박을 때 최소 10초는 걸린다. 그렇다면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법진이나 만들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흐음, 알바라도 뽑아야 하나? 근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마법진은 정확한 위치에 마나석이 박혀야 작동된다. 마법을 모르는 알바들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흐으음, 킨샤사 사람들은 어떨까? 아냐. 그들보다는 마탑의 마법사들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모두가 마땅하지 않다.
‘불량품이 없어야 하는데…….’
순간 번뜩이는 상념이 있다.
11장 간담회 준비하세요
“이 실장님, 제약사에서 납품한 물건에 하자가 있을 경우 어떤 페널티가 부과되도록 되어 있습니까?”
돈을 벌다 보면 더 벌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러면 더 저렴한 원료를 찾게 된다.
이게 심해지면 결국 지나산 엉터리 의약품 같은 것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계약서 상엔 납품가의 열 배를 배상금으로 내는 보험에 가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흐음! 열 배라…….”
사람의 생명이 달린 것이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람 마음은 믿을 수 없으니… 할 수 없군.’
현수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 실장님, 빠른 시일 내에 우리와 거래하는 제약사 사장님들과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네? 전부요?”
“그래요. 간담회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거래량도 늘고 할 테니 말입니다. 생산력 증대에 관한 이야기도 해야 하고 품질에 관한 것도 의논해야지요.”
“아,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자리를 마련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 안 드린 게 있습니다.”
“그래요? 뭐죠?”
“드모비치 상사로부터 쉐리엔 수출량을 늘려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또한 스피드도 더 많이 보내달라고 합니다.”
쉐리엔은 러시아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당연히 더 많이 보내달라는 요청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스피드는 연비 때문에 그럴 것이다.
리터당 112㎞를 달리는 스포츠카는 세상에 없다. 연비가 이처럼 좋다는 것은 유지비가 훨씬 적게 든다는 뜻이다.
당연히 수요가 폭발적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신경 쓰죠. 다른 건요?”
“이제 특별한 건 없습니다. 나머지 서류는 직접 보시면서 결재해 주세요. 직원 더 뽑고 이러는 것뿐이니까요.”
“이실리프 무역상사도 규모가 커졌으니 이사해야 하죠?”
“직원을 더 뽑아야 하는데 그러면 좁을 것 같습니다.”
“알았습니다. 쓸 만한 건물을 물색해 보죠.”
“네, 사장님.”
현수는 결재서류들을 일일이 읽고 사인했다.
은정이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현수더러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라는 뜻인 듯싶다.
결재를 마칠 때쯤 드미트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고할 내용이 있다 하여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오라고 한다.
시간이 비기에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현재의 사옥은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다. 1층은 편의점이고 2층과 3층은 사무실로 쓰고 있다. 4층과 5층은 주택으로 사용 중이다.
바닥 면적 72평이니 연면적 360평이다.
4층과 5층을 올려다보았다. 4층의 절반은 이은정의 가족이 사용하고 나머지는 민주영이 살고 있다.
5층은 현재 비어 있다.
‘흐음! 사무실이 좁으니 4층과 5층을 틀까?’
엘리베이터도 있으니 그 정도면 당장은 좁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은정과 주영이 살 집이 필요하다.
현수는 인근 부동산을 찾았다. 둘이 결혼을 하게 되면 은정의 할머니와 어머니도 함께 살아야 할 것이다. 맞벌이 부부이니 가사를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 편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서로가 불편할 것이다. 하여 단독주택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눈에 차는 집이 없다.
이는 현수의 눈높이가 매우 높아진 때문이다.
몇 군데를 보았는데 가격이 상당하다. 대지 100평에 연면적 70평짜리 2층 주택이 32억 원이라고 한다.
널찍한 마당도 있고 하니 괜찮을 싶다. 그런데 내키지 않는다. 받을 사람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흐음…….”
현수는 생각을 다시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직원들이 일할 공간이다.
현재의 사옥은 2측과 3층을 합쳐 144평이다.
은정이 올린 기안서를 참고하면 200평 이상의 사무 공간이 추가로 필요하다. 4층과 5층을 모두 터도 부족하다.
물론 1층 편의점까지 내보내면 된다.
그런데 이 경우엔 문제가 있다. 많은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였기에 적지 않은 돈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딩 위주로 찾아보았다. 이건 생각보다 매물이 많았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공실률이 높아진 때문이다.
대지 300평, 연면적 900평짜리 5층 건물이 매물로 나와 있다. 가격은 100억 원이다.
당장은 괜찮겠지만 회사 규모가 커지면 이것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 문득 이실리프 어패럴도 사무실을 이전하려 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사장님, 저 김현수입니다.”
“네 회장님.”
이실리프 어패럴의 박근홍 사장이다.
“사무실 옮길 곳 정했습니까?”
“아직이요. 알아보는 중입니다. 요즘 워낙 일이 많아서 자재 수급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잘되었네요. 알아보시는 김에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옮겨갈 곳도 알아봐 주세요.”
“네?”
“지금 쓰는 사무실로는 직원들을 다 수용할 수 없어서 옮겨야 합니다.”
“그럼 큰 빌딩을 매입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실리프 어패럴과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같이 들어갈 만한 것으로요.”
“아, 그렇죠. 그럼 조금 큰 것으로 알아보세요. 이실리프 계열사 몇이 더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사무실로 돌아오니 드미트리가 당도해 있다.
“많이 기다렸어요? 도착했으면 전화를 하지요.”
왜 연락하지 않고 기다렸느냐는 뜻이다.
“오실 때 되면 오시겠지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세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늘 지루한 일이니까요.”
“알겠습니다. 보스, 그리고 이거…….”
드미트리가 내미는 파일은 두 개였다.
첫 번째 파일의 표지를 넘기니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한국에 진출한 삼합회 현황.
서류를 넘겨보니 제법 상세히 조사한 흔적이 엿보인다.
화이트베어라는 대부업체가 삼합회 자본으로 조성된 회사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캐쉬모아는 야쿠자 자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
삼합회의 세부 조직인 죽련방, 14K파, 신이안파, 흑룡방의 조직도가 그려져 있으며, 인적 사항도 표기되어 있다.
이 중 흑룡방은 전엔 언급되지 않았던 조직이다. 세정파 유진기에게 마약을 공급하던 녀석들이다.
파일엔 놈들의 아지트가 어디이며 평상시에 어느 정도 인원이 배치되어 있는지 나와 있다.
“흐음! 수고했네요. 이만한 조사를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네, 밑에 아이들이 고생 좀 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국내 암흑가를 이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파일을 넘겼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가 파견한 스페츠나츠 출신 경호원들에 관한 서류이다.
개개인의 이력과 인적 사항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흐음, 이들은 언제 들어오죠?”
“어제 도착했습니다. 36명 전원이요.”
“하면 머물 곳은 있나요?”
“아직은 없습니다. 보스를 경호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보스의 동선을 알아야 하는데 그걸 알지 못해서…….”
“그럼 일단 두 팀으로 나누세요. 한 팀은 우미내 부모님과 지현일 보호하고, 나머지 한 팀은 권철현 고검장 부부와 안준환 변호사님 경호를 맡기세요.”
“그럼 보스는……?”
“나는 근일 내로 출국합니다. 그리고 국정원에서 경호하고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드미트리는 같이 북한을 갔다 왔다. 왜 국정원이 현수를 보호하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적당한 여관을 찾아 장기 투숙 계약을 하세요. 월 단위로 계약하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드미트리는 삼합회 조직도를 손으로 가리킨다. 명령만 내리면 직접 손을 볼 의향이 있다는 표정이다.
“그냥 놔두세요. 조만간 한국의 공권력이 해결할 겁니다. 그러니 섣불리 손쓸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셨지요?”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드미트리를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은 이방인이다. 다시 말해 레드마피아의 영향력이 러시아에 크게 못 미친다.
따라서 부하가 체포될 경우 돕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니 가급적이면 범죄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근일 내에 재입북할 겁니다. 같이 가야지요?”
드미트리가 동행하지 않아도 북한에서의 일은 해결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동생 표도르를 만나게 해주려는 것이다.
“저야 고맙지요.”
그렇지 않아도 표도르로부터 부탁 받은 물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