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21화 (621/1,307)

# 621

북한에선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것들은 이미 다 구했다. 국제 특송으로 발송만 남겨둔 상태이다.

그렇게 물건만 보내는 것보단 한 번이라도 얼굴을 더 보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드미트리의 얼굴이 환해진다.

“참, 까차도 동행합니까?”

“그래야지요. 세부 사항 조율에 미스 까차의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미리 연락해 두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드미트리가 물러간 이후 잠시 상념에 잠겼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 그것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한 것이다.

“이 실장님.”

“네, 사장님.”

“아까 말했던 제약사 사장님들 간담회, 최대한 빨리 준비해 주세요. 오늘은 어렵고 내일이라도 가능하다면 약속 잡으세요.”

“알겠습니다. 장소는 어디로 할까요?”

“모시는 분들 지위가 있느니 특급 호텔 중 적당한 곳으로 하세요. 나는 상관없으니.”

“알겠습니다. 확정되는 대로 보고 드릴게요.”

“네, 그럼 수고 부탁해요.”

사무실을 나선 현수는 곧장 대한의약품으로 향했다.

* * *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입니다. 신혼여행 잘 다녀오셨죠?”

“하하, 네.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구, 무슨 말씀을……. 당연히 가야지요. 그나저나 신부가 정말 아름답더군요. 연예인도 아닌데 어쩜 그렇게 예쁜지 마누라가 엄청 칭찬했습니다.”

결혼식장에 왕년의 톱스타 윤영지도 있었다.

임신 중이라 주의해야 하지만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온 것이다.

그때 윤영지는 지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곤 전혀 성형하지 않은 순수 자연 미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연예계에 오래 있었기에 척 보기만 해도 그 정도는 알아내는 눈썰미를 지닌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길 웬만한 연예인보다 훨씬 예쁘다고 칭찬했던 것이다.

“칭찬해 줬다고 전하겠습니다.”

“하하! 네. 꼭 전하십시오. 왕년의 스타 윤영지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민 사장이 부러 너스레를 떤다. 친밀감의 표시일 것이다.

“네. 그나저나 신제품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말씀하셨던 대로 아프리카에 지사를 낼 생각입니다. 준비 중이니 곧 처리될 겁니다.”

민윤서는 한국에서 발매하기 힘든 의약품을 아프리카에서 내는 것이 하나의 묘안이라 생각했다.

외국에서 먼저 약효를 인정받으면 의사나 약사보다 환자가 먼저 찾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쉐리엔 원료의 재고는 어떻습니까?”

“너무 인기가 좋아 조만간 떨어질 것 같습니다. 어떻게… 준비는 해놓으셨죠?”

너만 믿는다는 표정이다. 하여 환히 웃어주었다.

“그럼요! 이번에 들여오는 물량이 많아서 한동안은 원료 걱정을 덜하게 될 겁니다.”

“아이구, 그거 다행입니다. 한데 물량이 어느 정도이기에…….”

“컨테이너로 500개 이상일 겁니다.”

“정말요? 그 정도면 진짜 한시름 놓겠습니다.”

민윤서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쉐리엔의 수요는 넘쳐나지만 공급량이 달려서 거의 매일 독촉 전화를 받는다.

게다가 거의 매일 외국인들과 면담 중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 일본, 지나,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진짜 극빈국을 뺀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다.

이들의 한결같은 요구는 쉐리엔 공급 계약 체결이다. 그리고 가급적 많은 양을 배정해 달라는 것이다.

수요는 거의 무한정인 상태이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다.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컨테이너 500개에 꽉꽉 눌러 담은 쉐리엔이 온다면 이 모든 일로부터 일거에 해방될 수 있다.

어떻게 담는지 알 수 없지만 컨테이너를 열 때 아주 조심해야 한다. 문이 열리는 순간 어마어마한 양의 쉐리엔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현수가 말한 컨테이너 500대 분량은 실제론 2,000대 이상의 분량이다. 그렇기에 확연히 밝은 표정을 짓는 것이다.

“조만간 이실리프 무역상사와 거래하는 제약사 사장님들 모시고 간담회를 열 계획입니다.”

“네? 무슨 간담회요?”

민윤서가 웬 뜬금없는 간담회냐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는 부러 주위를 둘러보는 척하곤 입을 열었다.

“이건 극비 사항인데, 작년 연말에 북한엘 다녀왔습니다.”

“네에? 어, 어디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앉는다. 남한 사람에게 있어 북한 방문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공사 관계가 있어 갔다 온 겁니다. 나중에 발표될 일이니 아는 척은 하지 마십시오.”

“아, 네. 그, 그럼요.”

그 짧은 사이에 진땀이라도 나는지 손으로 이마를 훔친다.

“간담회에서 말하겠지만 아디스아바바에 천지약품 지사를 설립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실리프 무역상사에 공급해 줘야 할 물량이 현재의 세 배가 되어야 할 겁니다.”

“헐! 세 배라니요. 지금도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는데…….”

“북한에도 상당히 많은 양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민 사장님이 제약사들을 검토해 주십시오.”

“네? 그게 무슨…….”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옥석을 골라달라는 말씀입니다. 괜찮은 제약사와 양심 시커먼 제약사를 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대한의약품의 규모를 늘릴 것도 검토해 봤는데 아무래도 혼자서는 어렵겠지요?”

“네, 아무래도…….”

공장 규모를 단숨에 100배로 늘릴 묘안이 있다면 모를까 불가능한 일이기에 민윤서는 욕심을 버리는 모양이다.

웬만하면 돈 욕심 때문이라도 어떻게든 해보려 할 것이기에 현수는 사람을 잘 골랐다는 생각을 했다.

“참, 기능성 음료는 어떻습니까?”

“어제부터 시제품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며칠 후부터는 발매되기 시작할 겁니다.”

“그래요? 상표명은 뭐라 정하셨습니까?”

“김지우 박사가 ‘건강 3.65%’로 하자고 하더군요.”

“흐음, 건강 3.65%라……. 1년이 365일이니 사람들이 쉽게 기억하겠군요. 좋은 것 같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 김 박사가 전에 만들어주셨던 원료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지구에서 합성할 수 없는 물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박근홍 사장이 환한 얼굴로 맞이한다. 요즘 아주 살맛나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백화점과 마트의 바이어들이 달려들어 계약을 하자고 아우성이다. 물론 매번 거절하고 있는 중이다.

직영 전시 판매장을 암암리에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겉으론 안 그런 척하지만 속으론 통쾌하다. 전에 당했던 홀대와 면박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중이기 때문이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네, 미군에 납품할 전투복 제조가 거의 끝나갑니다. 그걸 주셔야 가능해서요.”

“아! 그렇군요. 헬멧과 군화 임가공도 해야지요?”

“그렇습니다.”

박근홍 사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현수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준비했던 항온마법진을 꺼내오는 척했다.

SUS 304 0.35㎜짜리 철판에 마법진을 새긴 이것은 축소 마법으로 크기와 두께를 많이 줄여놓은 상태이다.

이것을 비닐로 코팅해서 전부복의 깃에 넣도록 만들었다.

미군에 납품할 경우 어떤 원리인지 파악하기 위해 낱낱이 분해할 것이 뻔하다.

마법진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도록 했기에 당장은 왜 그런 효과를 내는지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자들의 끝없는 탐구는 결국엔 뭔가 있다는 것을 알아낼 것이다.

어쩌면 마법진을 똑같이 그려낼 수도 있다.

어찌어찌하여 마나석을 찾아내 박는다 하더라도 마법사의 구동마법이 없으면 성능이 발휘되지 않는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일 없다. 그렇기에 몇 가지 마법을 추가로 적용시켰다. 감응 마법과 자폭 마법이다.

누군가 비닐 코팅을 벗겨 외기와 접촉하게 되면 마법진이 파괴되도록 만든 것이다.

전투복은 깃 속에 마법진을 감출 수 있지만 군화와 헬멧은 그러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여 마법진뿐만 아니라 둘러싸고 있는 비닐 코팅까지도 보이지 않는 마법을 적용시켰다.

“이건 군복과 전투화가 체온을 37.5℃를 유지하도록 하는 겁니다. 삼각형은 군복용이고 사각형은 군화용입니다.”

박근홍 사장은 현수가 내민 마법진 다발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전투복용은 깃에 삽입하시고 군화용은 깔창 아래에 넣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건 헬멧용입니다. 두뇌의 온도를 36℃가 되도록 하는 겁니다. 군화용과 절대 헷갈리면 안 됩니다.”

두뇌는 수천 개의 생체 시스템을 관장하고 있다.

이곳의 온도가 높아지면 안 된다. 하여 평균 체온보다 낮게 유지되도록 따로 만든 것이다.

“삽입이 끝나면 제게 다시 보여주십시오. 이 장치들이 작동되도록 손을 써야 하니까요.”

“이것만 끼우면 작동되는 게 아닙니까?”

박근홍 사장이 의아하다는 눈빛이다.

“그렇습니다. 최종적으로 제가 손을 봐야 정상 작동이 되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생활보호대상자용 내복에 끼우는 건 어떻게 하죠? 깃이 없는데……. 이만한 걸 끼울 자리가 없습니다.”

“그건 상표 표시하는 레이블(Label)을 이용하지요.”

“네? 그건 왜?”

“이 기술은 특허를 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완전히 분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겠습니까? 한 가지 방법으로 고정해 놓으면 금방 알아차립니다. 따라서 다양한 방법을 써야지요.”

현수가 싱긋 웃자 박 사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제게 필요 물량을 미리 알려주십시오. 이메일로 어떤 의복이 얼마만 한 수량을 제작할 건지를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런데 이걸 다 끼우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끝내겠습니다.”

“그러세요. 참, 헬멧엔 본드를 이용하여 부착시키세요.”

“알겠습니다. 다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사옥 이전도 빨리 신경 쓰세요. 이실리프 무역상사도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적당한 걸 찾아보지요.”

“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하청업체들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해보세요. 몰려 있으면 그만큼 효율이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이실리프 어패럴을 나선 현수는 울림네트워크로 향했다. 통화를 해보니 광주 공장에 준비해 놓았다 하여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 *

“어서 오십시오. 신혼여행은 잘 다녀오셨지요?”

“네, 그럼요! 제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에구, 감사라니요. 당연한 일이지요.”

박동현 대표가 무슨 말이냐는 듯 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그나저나 손봐야 할 엔진은 어디에 있죠?”

“저쪽에 있습니다. 저 엔진들은…….”

잠시 박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가 가리킨 곳엔 엔진 200여 개가 분해된 채 정렬되어 있다. 현수가 요구한 정도로 분해된 상태이다.

지난번 드모비치 상사로 보내진 스피드는 러시아 FC 안지 마하치칼라의 축구선수 중 하나에게 보내졌다.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도자 연수를 받던 곳이다. 참고로 이 팀의 감독은 2002 월드컵 때 대표팀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이다.

어쨌거나 차를 구매한 고객은 2군 소속 선수이다.

1군 선수들처럼 주급을 많이 받으면 포르쉐나 람보르니기 같은 고급 스포츠카를 사겠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된다.

그럼에도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며 폼을 잡고 싶다. 그래야 늘씬한 러시아 미녀들을 후릴 수 있다 생각한 것이다.

중고 시장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스피드를 알게 되어 구매 계약을 한 것이다.

한 달쯤 기다려 차를 받게 되자 연료를 가득 채우고 새로 꾄 애인과 함께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런데 연료 게이지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하여 고장 났다면서 A/S를 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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