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3
자동차 생산에 단 1%도 기여한 바 없는 외국인 투자자와 그걸 나눠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 박 대표님이 하실 일이 많아질 겁니다. 김형윤 선배와 더불어 애 좀 많이 써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엔진은 최대한 많이 구해놓으십시오. 매번 와서 작업하는 것도 힘이 드니 말입니다.”
“그럼요. 앞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수가 광주공장을 떠난 뒤 박 대표는 많은 것을 메모했다. 그리곤 인맥을 총동원하여 인재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실리프 엔진이 태동하고, 이실리프 부품, 이실리프 소재라는 회사가 만들어지기 일보 직전인 것이다.
* * *
“교수님, 저 왔습니다.”
“아! 어서 오게.”
뭔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스승이 안경을 벗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자랑스런 제자 김현수가 온 때문이다.
“많이 피곤하신 것 같습니다.”
“아닐세. 요즘 이것들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 재미있어서 너무 오래 본 모양이네.”
스승이 보고 있던 것은 현수가 풀어낸 수학 난제의 풀이이다. 본인이 말했듯이 진짜 흥미로워서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골몰해 있는 중이다.
“검토가 얼추 끝났다고요?”
“그래, 모두 자네의 풀이가 맞는다고 하네. 최종 점검은 다른 학자들도 달려들어 하겠지만 자네가 제대로 풀어낸 것 같네.”
“다행이네요.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게 이런 기회를 주어 오히려 내가 고맙네. 그나저나 발표해도 되지?”
“네, 언제든 편하실 때 하세요. 그리고 이거…….”
“그건 뭔가?”
“신혼여행 갔다가 교수님 생각나서 하나 샀습니다. 제자를 잊지 말아달라는 뜻입니다.”
“아, 뭐 이런 걸 다……. 고맙네. 여러 가지로.”
“제가 더 고맙습니다. 교수님의 가르침이 없었으면 꿈도 못 꾸었을 일이니까요. 감사합니다.”
현수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방금 한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눈앞의 스승이 없었다면 수학 난제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접근 방법조차 모색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고맙긴, 한 일도 별로 없는데.”
말을 하며 현수가 건넨 반지를 낀다. 본인은 모르지만 스르르 줄어들어 딱 맞게 조절되었다.
그와 동시에 바디 리프레시 마법과 임플로빙 이뮤너티 마법이 구현되었다. 쌓인 피로를 제거하고 새로운 활력을 주는 마법과 면역력 증강 마법이다.
“아닙니다. 정말 많은 도움을 주신 겁니다. 학계 발표는 교수님께 일임하겠습니다. 언제든 편하실 때 편한 방법으로 발표해 주십시오.”
“알겠네. 그리 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다는 미소를 짓는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환히 웃었다.
* * *
“자기야, 이것 마시고 해요. 근데 안 자요?”
“응, 이거 조금만 더 보고.”
얇은 잠옷만 걸친 지현이 주스 한 잔을 들고 있다. 몹시 섹시하다. 당연히 와락 끌어안고 침대로 가야 한다.
아직 피 끓는 청춘이니 그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여 잠시 지현에게 주었던 시선을 다시 모니터로 돌린다.
화면엔 한자어만 가득이다.
“근데 이건 다 뭐예요?”
열두 개의 컴퓨터 본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모니터는 하난데 본체가 많아서이다.
“응, 내가 뭐 좀 알아볼 게 있어서. 먼저 자.”
“알았어요. 너무 늦게까지 있진 마세요.”
“그래, 알았어.”
건네는 주스 잔을 받으며 환히 웃어주었다.
현수는 지하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곤 앱솔루트 배리어와 타임딜레이 마법을 구현시켰다. 2층에서 이 마법을 구현시키면 지현 또한 마법의 범위 안에 들기 때문이다.
천진 무룡빌딩에 있던 국안부 3국에서 가져온 컴퓨터 본체의 수효는 850개이다. 이걸 다 살펴볼 생각인 것이다.
보안 때문인지 파일마다 비번이 걸려 있다. 하지만 비약적으로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기에 이런 것들은 금방 풀었다.
암호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우회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안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렇게 자료들을 살펴보던 중 흥미로운 것을 보았다.
“흐음, 이렇게 깊숙이 감춰두었으니 못 찾지.”
지나는 240∼400기의 핵무기가 실전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자는 2,350∼3,500기라 주장하기도 한다.
국안부 3국 컴퓨터에 있는 파일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지나는 2,512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부 실전 배치하고 있다.
대외적으론 이것의 10분지 1 정도만 배치된 것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 대부분이 지하미궁이라 불리는 길이 5,000㎞짜리 지하 만리장성 요새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파일엔 이것들이 어디에 얼마나 배치되어 있는지, 어떤 병력들이 주변에 있는지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핵미사일 2,400여 기의 위치를 알아낸 것이다.
현수는 파일을 USB로 옮겼다.
검색을 계속하는 동안 상당히 많은 정보를 습득했다. 비밀스런 군부 배치는 물론이고 동북공정에 관한 것도 많았다.
그래서 고조선 유물들이 은닉된 장소도 알 수 있었다.
주변 국가에 대한 향후 전략을 담은 파일도 있다. 정보를 다루는 사람에게 본체가 가면 보물 대접을 받을 것이다.
“흐음, 이걸 어떻게 넘겨주지?”
현수는 엄규백 팀장에게 이것을 넘겨줄 생각을 품었다. 그러던 중 국정원 자체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근데 국정원을 믿을 수 있을까?”
국정원은 지난 대선에 개입하여 알바까지 동원한 여론 조작을 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법으로 엄히 금한 국내 정치에 개입하기도 했다.
특히 4대강 사업이나 정권을 비판하고 의사에 반하는 단체와 세력은 종북 단체나 좌파로 낙인찍었다.
이것이 불거지자 경찰은 의도적으로 축소 수사, 은폐 수사, 부실 수사로 일관했다.
검찰이라 하여 크게 다를 바 없다.
공소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구속 수사를 하지 않아 증거 조작 내지는 은닉을 위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국가기관에 의해 국민의 보편적 가치가 붕괴된 것이다. 또한 권력을 위탁한 국민과의 사회 계약을 부정한 것이다.
이는 국가기관 스스로에 의한 헌정 질서 파괴를 의미한다.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검찰은 국민이 결코 믿을 수 없는 국가기관이 된 것이다.
본체를 넘겼는데 국정원이 현재의 정권 유지와 자신들의 안위에 반하거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방해가 된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보 습득 자체를 은닉하거나 정보를 파악하고도 이용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국정원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수는 장고를 거듭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국정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상층부에 있는 인사들을 더더욱 믿을 수 없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곤 엄규백 팀장이 전부인데 어쩌지? 흐음, 결국 그 방법밖에 없나? 그런데 어떻게 만나지?”
현수는 국정원 수뇌부들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 세뇌 마법을 쓸 것인지의 여부를 고심한 것이다.
“좋아, 일단 하나를 보내보자.”
현수는 연결되어 있는 본체의 파일들을 살폈다. 그중 ‘동북아참역사재단’이라는 단체에 관한 것을 USB로 옮겼다.
이 재단은 지난 2006년 지나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그런데 이 기관은 지난 2012년에 ‘경기교육청 발행 역사 교육 자료집’의 내용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지적을 했다.
이곳은 동북공정에 대응하라는 뜻으로 만든 기관이다. 그리고 일 년에 수백억씩 국민이 낸 세금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지적해 놓은 내용을 살펴보면 동북공정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도와주고 있다. 지나에서 설립한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기관이라 해도 믿을 정도이다.
그런데 국안부 제3국 컴퓨터 파일에 이들에 관한 내용이 있다. 이 기관의 연구진 중 상당수가 지나에 포섭된 인사들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초기에는 그런대로 다양한 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도층과 연구진 모두 식민사관 및 사대사관 학파 학자들로 바뀌었다.
누군가의 입김 내지는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현수는 동북공정 자체를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포섭되어 이런 짓거리를 한다는 것에 분노했다.
당장 잡아들여 아공간에 담고 싶은 마음을 품었다. 이건 웬만한 살인사건보다 더 흉악한 범죄 행위이기 때문이다.
매국노 이완용보다도 더 나쁘다 판단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것을 받았을 때 국정원이 과연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반응을 살피려는 의도로 USB에 옮긴 것이다.
현수가 옮긴 것은 동북공정과 관계된 내용뿐이다.
다른 것은 시험 삼아서라도 국정원에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컴퓨터의 파일을 검색하는 일은 지겨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국정원을 믿지 못한다면 혼자서라도 해야 할 일이다.
그렇기에 밤새워서 파일 검색을 했다.
현수가 결계 안에 있는 것은 외부 시간으로 8시간이다.
그 안에서는 시간이 180배 느리게 흐르므로 무려 60일 동안 검색만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휴우∼!”
기지개를 켜며 시계를 보았다. 오전 5시를 약간 넘었다. 서둘러 샤워를 하곤 슬그머니 침대로 스며들었다.
지현이 안겨온다. 호흡을 보니 잠결에 하는 행동이다.
품에 안고 잠시 눈을 감았다. 두 달 동안 한잠도 못 자고 모니터만 들여다봐서 그런지 눈이 조금 침침한 듯하다.
짹, 짹, 짹!
“잠꾸러기, 일어나세요. 여덟 시도 넘었단 말이에요.”
“하아암! 알았어. 끄으응!”
기지개를 켜며 눈을 뜨니 지현이 흰색 앞치마를 앞에 두른 채 내려다보고 있다.
팔을 벌려 목을 끌어안고 잡아당겼다.
“어머! 어머머!”
와락 품에 안긴 지현이 발버둥 친다. 한 손엔 뒤집개를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엔 부침개 반죽이 묻어 있는 탓이다.
쪼오옥―!
“잘 잤어?”
“네, 잘 잤어요. 그, 근데 이 손 좀 놔줘요.”
“왜? 내가 싫어?”
“아뇨! 프라이팬에 올려놓은 동그랑땡 다 탄단 말이에요.”
“그래? 그럼 안 되지.”
얼른 놓아주자 벌떡 일어난다. 볼이 붉게 달아 있다. 괜스레 부끄러운 마음이 든 때문이다.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가는 뒷모습을 본 현수는 피식 웃지 않을 수 없다. 속옷 위에 앞치마만 걸친 때문이다.
샤워와 양치를 마치고 나오니 푸짐한 식탁이 차려져 있다. 신혼부부의 밥상답다.
“우와! 이게 웬 진수성찬! 근데 오늘 누구 생일이야?”
미역국을 보고 한 말이다.
“치이, 이게 생일날만 먹는 건가요? 얼마나 영양가가 많은데요. 앞으로 많이 드실 거예요. 저 이거 좋아하거든요.”
“…그, 그래?”
현수는 문득 지현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까지 한 부부임에도 너무나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참! 늦지 않았어? 내가 태워다 줄까, 아님 그걸로 갈래?”
“시간이 이러니 오늘은 그걸로 가야겠어요. 내일은 태워다 주세요.”
지현과 현수가 말한 그것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의미한다.
우미내 집과 서초동 처갓집에 각기 하나씩 설치된 이것을 이용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된다. 몹시 편리하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 텔레포트를 하고 나면 잠시 어지럽다는 것이다.
시험 삼아 두어 번 왕복하고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어지럽고 메스껍다면서 싫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늦으면 어쩔 수 없다.
“항온 유지 장치 그거 몇 개 주시면 안 돼요?”
“그건 왜?”
“날씨 춥잖아요.”
“알았어. 근데 다른 사람 주면 안 되는 거 알지?”
“네, 걱정 마세요.”
지현이 출근한 후 퀵서비스를 불러 USB를 국정원으로 보냈다. 신분을 감추기 위해 컨퓨징 마법으로 얼굴을 바꿨다.
“흐음, 이제 어쩌는지 두고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