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26화 (626/1,307)

# 626

1장 군대는 의무, 출산은 선택

오늘 아침, 기상청에서는 시베리아에서 발달한 기단이 밀고 내려와 최저 ―17℃, 최고 ―12℃를 예고했다.

하루 종일 춥다는 뜻이다.

여기에 초속 20m짜리 강풍이 예상되므로 옷차림에 단단히 유의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전했다.

물론 체감온도에 관한 설명도 있었다.

강민경 기자는 옥상에 올라가면 반쯤 동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니트(knit)로 된 폴라 위에 얇은 봄 점퍼 비슷한 것 하나를 걸쳤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옷을 입으면 춥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은 들었지만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는가!

하여 취재하러 왔다가 얼어 죽게 생겼다며 투덜거렸다.

옥상은 예상대로 찬바람이 쌩쌩 분다.

휘이이이잉∼!

한겨울의 매서운 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마에 느껴지는 냉기로 두통이 생길 지경이다. 그래도 몇 발짝을 내디뎠다. 기자 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처음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갑작스런 온도 변화 때문이다. 당연히 소름이 돋은 후엔 추위 때문에 벌벌 떨어야 한다.

그런데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옷 속으로 손을 넣어보니 소름은 어느새 사라졌고, 따뜻함이 느껴진다.

“어머, 어머! 이건 말도 안 돼요. 어떻게 이런 옷이……. 우와! 이거 완전 대박이에요. 근데 이거 누가 만든 거예요? 어떻게 만들었고, 얼마에 팔아요?”

기자 아니랄까 봐 계속해서 묻기만 한다.

“기왕에 올라온 것이니 조금 더 있어봅시다.”

박근홍 사장의 말에 강 기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입고 온 것은 오리털 파카이다. 부드러운 오리 깃털만 골라서 만들어 매우 비쌌다. 그럼에도 추워서 벌벌 떨었다. 옷깃을 파고드는 매서운 삭풍 때문이다.

대략 5분 정도 서 있었다. 그런데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따뜻한 거실에 앉아 창밖 풍경을 내다보는 듯하다.

얼굴은 본시 냉기에 둔감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충분히 경험하셨을 테니 안으로 드시지요.”

“네. 근데 이거 유효 기간은 얼마나 돼요? 가격은요? 이거 저한테 파시면 안 돼요? 진짜 따뜻해서 좋아요.”

계속해서 쫑알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박 사장은 피식 웃는다.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이 정도 반응은 만성이 된 것이다.

국민배우 김현수 사장! 새로운 사고를 치다.

천지기획 김현수 사장이 인류에 획기적인 도움을 줄 새로운 물건을 발명해냈다.

이것의 이름은 항온의류!

한겨울에도 이 옷만 입으면 추위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찌는 듯한 여름엔 더위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신개념 의류인 이실리프 어패럴의 야심작은 세계 최고의 두뇌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옷의 특징은… <하략>…….

H일보 강민경 기자가 단독으로 보도한 이 기사를 많은 사람이 꼼꼼히 읽었다.

한겨울에도 봄 점퍼처럼 얇은 의복 한 벌만으로 추위를 날려 버릴 수 있다는데 어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현수의 IQ가 세계 최고라는 것을 이미 접한 바 있다. 수학 7대 난제 중 나머지 전부를 풀어냈으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또한 명쾌하게 증명해 냈음을 안다.

여기에 의표를 찌르는 항온의류라는 획기적인 발명품을 내놓았다고 하자 크게 놀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는다.

멕시코의 열 살짜리 천재 소년 루이스 로베르트 라미레스는 IQ가 160이다.

네 살 때 스스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다섯 살 때 독학으로 영어를 배웠으며, 4개월 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하버드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아홉 살 때 지능 검사를 했는데 아인슈타인과 맞먹는 지능임을 알게 되었다. 참고로 영국의 스티븐 호킹 또한 IQ 160이다.

현수는 IQ가 무려 255이다. 천재 소리를 듣는 라미레스조차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대다수 사람은 항온의류에 대한 기대감만 높다. 그게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시중에 유출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기사를 써서 데스크에 올리자 보도국장이 강민경 기자를 불렀다. 그리곤 거짓된 기사가 나가면 신문사의 위상이 흔들린다면서 사실을 제대로 확인해 보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이에 강 기자는 보도국장의 넥타이를 움켜쥔 채 신문사 옥상으로 끌고 갔다. 그리곤 입고 있던 항온의류를 입혔다.

이게 무슨 짓이냐며 호통을 치던 보도국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도 확실한 효과에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것이다.

기사가 나가자 전국 각지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이에 이실리프 어패럴은 자동 응답 장치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업계를 선도할 이실리프 어패럴입니다.

저희가 발매할 것은 여름용과 겨울용 두 가지입니다.

신문에 보도된 대로 추위와 더위를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 현재 직영판매장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 동시에 오픈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울러 저희 매장에서 일하실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점장급 400명과 일반 직원 1,200명입니다.

비정규직, 또는 임시직이 아닌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하는 것이니 많은 지원 바랍니다.

지원 방법은…….

자동 응답 장치가 가동된 이후 새롭게 단장된 이실리프 어패럴의 홈페이지는 트래픽 초과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다음 날도, 그리고 또 다음 날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는 동안 항온의류 판매장 점장 및 직원 지원자가 쇄도했다. 딱 1주일간 지원을 받았는데 점장급 8,217명 지원, 직원은 38,554명이 지원했다.

점장은 약 20:1이고 직원은 약 32:1이다.

점장의 지원 자격은 의류 판매 경험만 있으면 된다. 최종 학력이 고등학교 졸업 이상이다.

일반 직원의 지원 자격 역시 고등학교 졸업 이상이다. 두 직급 모두 다음과 같은 우대 사항이 있다.

1. 독립유공자의 직계존비속에겐 가산점을 부여한다.

2. 군필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한다.

우대 사항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제한 사항도 있다.

1.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직계존비속과 혈족은 뽑지 않는다.

이에 대해 즉각적인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은 뽑되 친일파의 후손은 뽑지 않겠다는 것에 대해선 큰 이견이 없다.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목소리를 내면 사회적으로 매장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필 가산점에 대해선 말들이 많았다.

특히 여성 단체의 항의가 쏟아졌다.

이에 대해 이실리프 어래럴은 다음과 같은 짧은 의견을 홈페이지에 게시하였다.

군대는 의무이지만, 출산은 선택입니다.

이것을 보았는지 여러 여성 단체와 여성가족부가 나섰다. 그리곤 입에 거품을 물고 글자 그대로 개지랄을 떨었다.

그래도 아무런 답변이 없자 명백한 성 차별이므로 고용노동부에 제소하여 벌금을 물게 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또 한 번 짤막한 성명을 낸다.

군필 가산점으로 인한 벌금을 내라면 기꺼이 내겠습니다. 그리고 여성 항온의류는 생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실리프 어패럴의 홈페이지는 이내 시끄러워졌다. 남성들과 페미1)들 간의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이다.

이실리프 어패럴은 페미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사원들은 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걸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실리프 어패럴은 지원자들에 대한 입사 지원을 마감했다. 입사 지원은 회사에서 만든 양식을 다운 받아 내용을 채워 넣은 뒤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다.

내용은 최종 학력, 나이, 주소, 연락처, 업무 경험, 그리고 본인이 취업해야 할 이유를 채워 넣으라는 것이다.

근무처가 100% 국내이다. 따라서 영어와 일본어 같은 외국어 실력을 요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이런 것에 대한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지원자는 엄청나게 많았다. 1주일이 아니라 한 달쯤 시간을 줬다면 백만 단위는 우습게 넘어갔을 것이다.

이실리프 어패럴에서 제시한 근무 요건 및 급여가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다음이 그 내용이다.

▶급여 : 대기업 평균에 준함

▶근무 시간 : 오전 10시∼오후 5시

▶휴무일 : 토, 일요일과 모든 공휴일. 공휴일이 토요일, 또는 일요일과 겹치는 경우 차주 월요일 휴무

▶계절별 휴가 : 3∼6월 춘계휴가 4일, 7∼9월 하계휴가 7일, 9∼11월 추계휴가 4일, 12∼2월 동계휴가 7일(유급 휴가)

▶특기사항 : 휴가 기간 동안 숙박업소 이용 비용의 3분의 2를 회사에서 부담

▶장기근속 휴가 : 근무 기간이 5년이 될 때마다 추가로 15일간 휴가. 항공비 전액, 숙박비 전액 지원

▶학비 지원 : 근속 기간 3년 초과 시 자녀수와 관계없이 대학 졸업까지 모든 입학금과 등록금 지급

▶차량 지원 : 근속 기간 10년 초과 시 직급에 관계없이 차량 지원

▶점심 식사(1시∼2시) : 회사에서 제공(뷔페식)

참고로 2013년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3,695만 원이다. 중소기업은 2,331만 원이다.

근무 시간은 짧고 복리후생은 대기업보다도 좋다.

게다가 지원 자격이 고졸 이상이라니 소식을 접한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 지원 서류를 이메일로 보냈다.

서류 접수를 끝낸 박 사장은 취업해야 할 이유 부분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그리곤 직원들을 뽑았다.

군필 가산점 때문인지 남성이 확연히 많았다.

전체 직원 수가 29명뿐이던 이실리프 어패럴이 졸지에 1,629명으로 인원이 늘어난 것이다.

나중에 확인된 일이지만 이번에 선택된 점장 및 직원들은 오랜 실업자, 또는 백수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이다.

거의 대부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서를 접수시켰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늘 그랬듯이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최종 합격 통보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박 사장은 일하겠다는 의지가 크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우선으로 뽑았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교육은 이실리프 상사의 협조를 얻었다. 그리곤 이들을 파견하여 전국 각지에 매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현수와 이야기된 것은 다음과 같다.

매장은 임대가 아닌 매입이다. 규모는 4∼5층 빌딩이다.

이실리프 어패럴, 대한의약품 쉐리엔 및 건강 3.65% 직판장, 울림모터스 스피드 판매장, 이실리프 농산 및 축산 매장 등이 들어설 규모여야 한다.

다시 말해 이실리프 계열사들의 복합매장을 고려하라는 것이다.

1층은 당분간 울림모터스가 사용한다. 추후 이실리프 뱅크와 이실리프 농산 및 축산 매장이 들어설 것이다.

2층엔 이실리프 어패럴의 항온의류 매장이 있다. 그리고 이실리프 커피를 사용하는 이실리프 카페가 자리한다.

3층엔 대한의약품의 쉐리엔과 건강 3.65%, 그리고 청향 판매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나머지 면적엔 지역 주민을 위한 도서관이 개설된다.

4층과 5층은 생계 곤란한 점장 및 직원 숙소로 사용된다. 그러다 품목이 늘어나면 4층도 매장으로 바꿀 생각이다.

지하층이 있다면 이곳은 창고로 사용될 것이다.

상품 특성상 굳이 행인 많은 목 좋은 곳에 위치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적절한 규모이기만 하면 뒷골목도 좋다고 했다.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5층 건물의 평균 매입 가격은 대략 20억으로 잡았다. 이런 것 400채이니 부동산 매입 가격만 8,000억 원이다. 엄청난 금액이다.

그럼에도 밀어붙일 수 있는 이유는 지르코프로부터 온 막대한 선수금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에 대목을 보기 위해 지르코프는 본인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을 만들어서 보냈다.

드모비치 상사의 도움이 컸지만 개인적인 인맥도 작용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의과대학 동기들 대부분이 너도 나도 투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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