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31화 (631/1,307)

# 631

“보아하니 나이가 찼음에도 시집도 못 간 노처녀 같은데, 그렇게 히스테리를 부리면 누가 데리고 가나?”

“뭐라고? 노처녀? 히스테리? 이, 이놈이 진짜!”

“것 봐라. 처음 보는 사내에게 이놈 저놈 하면 어떤 놈이 널 좋아해서 장가갈 마음을 품겠느냐? 그 싸가지 없는 마음부터 고쳐. 안 그러면 늙어 죽을 때까지 시집 못 가니까.”

“으으! 저, 저런 발칙한……! 야! 너, 내가 누군지 진짜 몰라서 이러는 거야?”

또 한 번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째려본다.

“당연히 모르지! 그러는 넌 뭐하는 애냐?”

“뭐? 애? 나더러? 이, 이런! 이놈이 진짜……!”

“아! 옷을 입은 걸 보니 황궁 시녀쯤 되는 모양이구나. 근데 그 꼬락서니가 뭐냐?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옷이나 입고 다니고……. 좀 빨아서 입어라. 옷이 그러니 몸에선 얼마나 냄새가 날까?”

“뭐, 뭐라고? 지금 누구더러……. 이런 발칙한……!”

공주가 발작하기 일보 직전인 모습을 보였지만 현수는 태연하다.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야, 너 목욕도 안 해서 몸에서 냄새나지? 난 예쁜 척하지만 몸에서 시궁창 냄새나는 계집이 제일 싫더라. 으윽! 이 냄새는 뭐야? 훠이∼! 저쪽으로 가라.”

둘 사이의 거리는 약 7m 정도 된다.

바람이 불지 않는 한, 그리고 상대의 몸에서 심한 냄새가 나지 않는 한 체취를 맡을 수 없는 거리이다. 그럼에도 코를 찌르는 악취를 맡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잡았다.

“뭐야? 내게서 진짜 냄새가 나? 에르렌, 나한테서 냄새나? 샤를, 내게서 냄새 나나 맡아봐.”

곁에 있던 두 시녀는 공주의 시선을 받자 움츠러드는 몸짓을 한다. 냄새가 난다고 해도 욕을 먹고 안 난다고 해도 욕을 먹는다. 그야말로 제멋대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대답하지 않겠는가!

“내, 냄새나지 않습니다.”

“네에, 시궁창 냄새라니요? 공주님, 저자의 코가 잘못되었나 봅니다.”

“들었지? 내 몸에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당장 내 앞에 와서 무릎 꿇고 사죄해라!”

잠시 잃었던 오만함을 되찾았는지 씩씩거리며 분노한 표정을 짓는다. 얼굴을 보니 제법 예쁘기는 하다.

하지만 카이로시아나 로잘린에 비하면 조금 부족하다.

미판테 왕국 동쪽 끝 영지에 사는 케이트 에이런 판 포인테스와 아드리안 공국 서쪽 끝에 위치한 피리안 영지의 카트린느 조세핀 반 피리안도 공주보다 예쁘다.

미혹의 숲을 안내해 줬던 다프네도 아름답고, 나후엘 자작가의 엘리사아 나후엘 드 율리안도 더 예쁘다.

B급 용병 줄리앙도 공주보다는 낫다.

그리고, 공국 수도에 있는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의 여섯 여인 역시 공주보다 훨씬 예쁘다.

이러다 보니 현수의 눈은 상당히 높아진 상태이다.

예쁜 편이긴 하지만 절세 미모도 아닌 것이 마치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아름다운 꽃봉오리인 양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꼴사납다. 이런 땐 버릇을 고쳐주는 것이 상책이다.

“내기할까?”

“내기? 무슨 내기?”

현수의 느닷없는 말에 호기심을 드러낸다.

“지금 네가 입고 있는 옷이 얼마나 때가 꼬질꼬질한지 말이야. 그리고 냄새도 난다는 거!”

“무어라? 이놈이 감히……!”

또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현수가 말을 끊었다.

“지금 입고 있는 그 옷을 벗어서 내게 줘라. 얼마나 더러운지 증명할 테니. 그리고 내가 세탁한 옷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확인해라. 더럽지 않으면 100골드를 내놓겠다.”

“뭐라? 지금 감히 내게 옷을 벗으라 하였느냐?”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현수는 완전한 치한이 되는 말을 내뱉은 것이다.

“보아하니 다 벗어도 몸매가 꽝인 것 같은데… 뭐, 네 옆에 있는 아가씨들도 비슷하니 그중 아무나 벗어도 된다.”

“뭐, 뭐라고? 몸매가 꽝? 이, 이런 미친! 야! 뭐해? 저놈을 당장 잡아들여! 어서 기사들에게 연락하란 말이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모습이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없나 보군. 소리부터 지르는 걸 보니. 그래, 관두자, 관둬. 내가 제 분수도 모르고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하고 말을 섞다니. 에이! 이봐, 로이, 우리 이만 가세.”

“네. 아, 네에.”

로이가 굽실거리며 공주의 눈치를 살핀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든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분노한 공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여봐라,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누구든 어서 와라! 여봐라, 여봐라! 아무도 없느냔 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답하는 이가 없다. 방금 나온 역대 황제 초상화가 있는 구역은 한국으로 치면 종묘에 해당된다.

당연히 입구만 삼엄하다.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고, 역대 황제의 초상화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안에는 아무도 없다. 대답이 없자 곁에 있던 시녀에게 지시를 내린다.

“샤를, 가서 황실근위대 기사들을 불러와.”

“네, 공주 마마!”

현수와는 여전히 거리가 떨어진 상태이고, 샤를의 음성은 크지 않았다. 웬만해선 들리지 않을 거리이다.

“어이, 우리끼리 내기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왜 불러? 옷 벗은 몸매 보여주려고?”

“이, 이놈이……!”

공주는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치욕이란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입술만 깨문 채 발을 동동 구른다.

솟구치는 분노를 더 이상 삭일 수 없었던 것이다.

“어때, 내기 해볼 거야? 내가 지면 100골드를 내지. 네가 지면 뭘 내놓을래?”

“이, 이놈이 정말……!”

“아아! 그런 소린 이제 그만해. 식상하니까. 자, 다시 한 번 정리해 줄게. 나는 네 옷이 더럽다고 생각해. 빨면 구정물이 나올 거야. 그리고 네 몸에서도 냄새가 나. 아니라면 100골드를 주지. 그렇다면 넌 뭘 내놓을 것이냐는 말이야.”

“……!”

공주는 입술을 씹어 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잘근잘근 깨물고 있다. 꼭 쥔 두 손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기세이다.

몸은 부르르 떨리고 있다.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이다.

“그나저나 넌 뭐하는 계집이냐?”

“뭐어? 계집?”

“보아하니 시녀 같은데 어느 궁 소속이냐?”

“이, 이놈이……!”

“흐음, 얼굴은 제법 반반하긴 한데 싸가지가 없어 당분간 시집가긴 틀린 것 같다. 안 그러냐, 로이?”

“네에? 아, 아닙니다. 배, 배, 백작님, 저분은, 저분은…….”

로이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공주를 바라본다. 나중에 어떤 형벌을 받게 될지 심히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 소리를 들은 공주가 눈썹을 치켜뜬다.

“백작? 호오, 백작 따위가 감히 내게 옷을 벗으라 마라 망발을 부렸단 말인가?”

“백작 따위라니? 네년은 누군데 감히 귀족에게……. 라이셔 제국의 공주라도 된다는 말이더냐?”

“오냐! 내가 라이셔 제국의 공주 세피아 폰 라이셔이다.”

“세피아 폰 라이셔……? 진짜 공주라는 말씀이십니까?”

현수는 짐짓 놀라는 척했다. 기다렸다는 듯 공주의 일갈이 터져 나온다.

“오냐! 내가 라이셔 제국의 하나뿐인 공주니라! 오늘 너를 반드시 공주 모욕죄로 처벌하고야 말겠어!”

“아! 그러십니까? 몰라 뵈었군요. 리아 제국에서 온 하인스 백작입니다. 황제 폐하의 부르심을 받고 왔지요.”

“오라버니의……?”

공주의 시선이 로이에게 향한다. 기다렸다는 듯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는 로이를 보곤 아랫입술을 깨문다.

황제의 손님이라면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빠인 황제가 몹시 아껴주기는 하지만 엄할 땐 매우 엄하다. 하여 세상에 딱 하나뿐인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조금 전 공주 마마의 의복이 더럽다고 한 것, 그리고 몸에서 악취가 풍긴다고 한 것은 사과드립니다.”

“……!”

정중히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하기에 공주는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화를 낼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우리 리아 제국에선 더러운 의복을 깨끗하게 세탁하는 기물이 있어 늘 색깔 선명한 옷만 보다 공주님을 보았기에 한 말이었습니다. 아울러 본국 여인들은 겨울에도 매일 목욕을 하여 몸에선 향기로운 냄새가 납니다.”

“세탁? 향기?”

이곳은 황궁이다. 그리고 본인은 공주이다. 겨울이지만 매일 목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려면 몹시 번거롭다.

물을 길어 와야 하고, 그 물을 데우기 위해 몇 시간씩 불을 지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물이 뜨거워져도 목욕하려면 몇 가지 준비를 더 해야 한다.

몸을 씻으려면 옷을 다 벗어야 하는데 공기가 싸늘하다. 따라서 목욕할 방의 온도를 올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물도 금방 식거니와 씻고 나왔을 때 한기를 느껴 감기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공주지만 거의 5∼7일에 한 번 씻을 뿐이다. 비누나 샴푸가 없기에 더운 물에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아도 때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이러니 당연히 몸에서 냄새가 난다.

다만 인간의 후각을 주관하는 코가 다른 감각 기관에 비해 쉽게 피로해지기에 서로가 못 맡을 뿐이다.

“공주님 곁에 있는 시녀를 이쪽으로 보내주십시오.”

“샤를을? 왜죠?”

황제의 손님이라니 할 수 없이 말을 올려주는 듯하다.

“보내보시면 압니다.”

“좋아요. 샤를, 하인스 백작님에게 갔다 와.”

“네, 공주 마마.”

샤를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현수에게 다가섰다.

공주가 무엇을 시키든 곧바로 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수는 가방 속에서 동성제약에서 만든 정수리 냄새 제거제 데오스칼프(Deoscalp)라는 것을 꺼냈다.

겨드랑이와 발 냄새까지 제거 가능한 것이다.

“샤를, 잠깐 머리를 숙여봐.”

“네, 백작님!”

두말이 필요 없다. 복종이 최고의 미덕이라 배웠기에 즉시 머리를 숙인다. 당연히 정수리에서 악취가 풍긴다.

칙! 치익! 치이익―!

스프레이식으로 만들어진 데오스칼프의 용기엔 ‘키스를 부르는 향’이란 글귀가 쓰여 있다.

뿌린 직후는 향이 진하기에 현수는 잠시 냄새가 흩어지길 기다렸다.

“자, 이제 공주님께 가도록.”

“네, 백작님!”

샤를이 다가오자 공주는 그녀의 머리를 밑으로 숙이게 하고는 대체 무슨 짓을 했나 찾아본다.

이때 현수가 입을 열었다.

“공주님, 곁에 있는 에르렌의 정수리 냄새를 맡아보고 샤를의 냄새를 맡아보시지요.”

“에르렌, 이쪽으로.”

말 떨어지기 무섭게 에르렌이 고개를 숙인 채 들이민다.

킁, 킁―!

“샤를 너도 머리를 숙여.”

킁, 킁―!

“…에르렌, 다시!”

킁, 킁―!

“크으으……!”

공주는 에르렌의 정수에서 나는 악취에 코를 찡그린다.

“공주님에게서도 그런 냄새가 날 것입니다. 별로 상쾌한 냄새는 아니지요?”

“……!”

아무런 대답이 없다.

자신의 정수리에서도 에르렌 같은 냄새가 날 것이다. 오늘로써 머리 감은 지 닷새가 지난 때문이다.

“냄새는 그쯤 하고, 이번엔 의복을 한번 볼까요?”

말을 마친 현수는 양복의 상의를 벗었다. 맨몸에 흰 와이셔츠 차림이다. 매고 있던 넥타이를 풀었다.

“보아하니 공주님이 걸친 의상의 처음 색도 이것과 같은 흰색이었던 것 같은데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

현수의 말처럼 입고 있는 옷은 흰색이다. 그런데 지금은 베이지색에 가까워져 있다.

대답이 없기에 현수가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 샤를이 입은 것도 본시 흰색이었던 같습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라 하고 그 옷을 세탁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샤를, 가서 옷 갈아입고 와. 빨리!”

“네, 공주님.”

샤를은 공주의 분위기가 싸하다 느꼈기에 후다닥 뛰어갔다. 그리고 채 5분도 되지 않아 입고 있던 옷을 들고 왔다.

아랫자락이 많이 오염되어 있고 냄새도 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