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4
아르센 대륙에선 결코 맛보지 못할 진미 중의 진미인지라 떠드는 이조차 없다. 모두들 먹기에 바쁜 것이다.
여기에 상추와 깻잎, 마늘, 고추, 막장, 잘 익은 김치가 곁들여지자 숨도 안 쉬고 먹는다.
아이들이 마늘을 매워해서 햇반을 꺼냈다. 따끈하게 데워서 주니 어른들도 환장했고 라세안도 엄청 좋아한다.
이 와중에도 유유자적한 존재 둘이 있었으니 라세안과 현수이다.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 상추에 싸서 한입 먹고는 시선을 마주한다. 기분 좋은 순간인지라 둘 다 웃고 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열심히 씹어 삼키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자네가 라수스의 지배자 라이세뮤리안이라며?”
“…누, 누가 그러나?”
잠깐 멈칫했지만 라세안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아까 누군가 그러더군. 자네더러 아버지라고. 드래고니안의 아버지라면 라수스 협곡의 지배자밖에 더 있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현수가 짐짓 찔러보는 소리이다.
“제길, 들켰군. 그래, 내가 라이세뮤리안이네. 전에 자네를 공격한 것은 사과하지.”
이 정도면 순진하다 할 수 있겠다. 하여 피식 웃었다.
“나도 사과하겠네. 나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았는가! 그리고 라수스 협곡을 날려 버려 평지로 만든다는 망발을 하지 않았는가! 내 사과 받아줄 거지?”
“…그럼! 자네와 난 친구니까.”
라이세뮤리안이 반쯤 남은 술잔을 든다. 지난 일은 다 잊고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는 의미이다.
“친구! 좋네. 자넨 내 벗이네. 그런 의미에서 한잔하세.”
“하하하! 그래!”
채앵―!
쭈욱―! 쭈우욱―!
“캬아! 역시 이 맛이야!”
“크으! 정말 끝내주는군. 친구와 우정을 나눈 술이라 그런지 쓰지 않고 다네.”
“친구! 그래, 오랜만이니 오늘 진탕 마셔보세.”
“하하! 그래!”
은근슬쩍 정체를 드러내게 만든 술책은 대성공이다. 현수는 계속해서 술을 따라주었다.
“술이란 말이네,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네. 그리고 여긴 라수스 협곡의 심장부 중 하나인 드래고니안 마을이네. 우리에게 해코지할 존재가 없는 곳이지. 안 그래?”
“그래, 그래!”
현수의 말에 라이세뮤리안이 고개를 끄덕인다.
둘을 제외하고도 소드 마드터만 서른한 명이 있다. 게다가 7서클 마법사가 일곱 명에 6서클이 여섯 명이다.
제국의 기사단이 몽땅 달려들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그러니 마나로 취기를 날리지 마세. 오늘은 모처럼 어질어질할 때까지 한번 마셔보세.”
“그래, 좋네. 그나저나 삼겹살과 소주! 이건 정말 천생연분이네. 안 그런가?”
“하하! 그럼, 그럼!”
현수와 라세안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 비운 소주가 20병을 넘어갔다. 그러는 동안 150여 드래고니안은 흥겨운 파티를 벌렸다. 삼겹살과 소주 등을 충분히 꺼내놓았기 때문이다.
24병이 비워지자 라이세뮤리안이 취한 듯 눈을 깜박인다. 이때 현수가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이보게, 친구.”
“왜 그러나, 친구.”
“자넨 내가 아드리안 공국이랑 어떤 관계인지 알지?”
“그럼, 그럼! 자네 스승이 만든 나라가 아닌가!”
“그래. 그 공국을 왕국으로 바꿔주고 싶은데 말이네.”
“왕국으로? 그럼 바꾸면 되잖나. 무슨 문제 있어?”
왜 이런 고민을 하느냐는 표정이다.
“있지. 카이엔 제국과의 관계가 늘 우호적일 수 없고, 이웃한 미판테 왕국과 쿠르스 왕국, 그리고 바다 건너 제라스 왕국 등이 노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자네가 있지 않은가! 이실리프 마탑 말이네.”
“그래. 하지만 난 자네처럼 수천 년을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스승님께서 내게 부탁하신 건 딱 하나뿐이네. 공국의 안위!”
“그래, 그랬다고 했지.”
라이세뮤리안도 익히 아는 이야기인지라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없더라도 자네가 도와줄 수 있지?”
“내가 도와줘? 아드리안 공국을?”
“그래, 자네가 수호해 주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이웃 나라들이 잠잠해지지 않겠나?”
“그야 당연하지! 내가 이래 봬도 중간계의 조율자이며 위대한 존재이네. 내가 아드리안 공국을 돌본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모두들 깨갱 하지. 하하! 하하하!”
스스로 말해놓고도 기분이 좋은 듯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지켜주겠는가?”
“아드리안을? 내 친구가 돌봐주는 나라를? 그래, 그러지! 자네가 없더라도 내가 지켜봐 주겠네.”
“고맙네. 자, 그런 의미에서 한잔하게.”
“좋지. 대신 나중에 내 조그만 부탁 하나 들어줘야 하네.”
“조그만 부탁?”
“그래 아주 조그만 부탁이네.”
“좋아, 그러지.”
아마도 아이스크림을 더 달라고 할 것이라 생각하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곤 술을 따라줬다.
라세안은 결국 30병을 넘기지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현수의 말처럼 마나로 취기를 날리지 않은 결과이다. 주변의 드래고니안들도 모두 취해서 해롱거린다.
“후훗! 후후후후!”
마나로 취기를 날린 현수는 나직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곧장 차원이동을 실시했다.
“마나여, 나를 지구로!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르릉―!
또 한 번의 차원이동이 실시되었다.
* * *
현수는 대한의약품 인근 공터를 찾아 컨테이너 1,000개를 꺼내놓았다. 그리곤 민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경쾌한 연결음이 잠시 이어진다.
“아이고, 늦게 전화 받았네요. 손님이 오셔서…….”
“괜찮습니다. 그보다 민 사장님, 쉐리엔 원료를 보냈는데 운송하는 사람들이 장소를 착각했다네요.”
“아! 쉐리엔 원료요? 어디로 보냈답니까? 혹시 엉뚱한 데로 간 겁니까?”
아주 반색하는 음성이다. 수요는 엄청난데 원료가 달랑달랑하던 차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회사 근처에 커다란 공터 있죠?”
“근처 공터요? 아! 네, 어딘지 압니다.”
대한의약품 인근엔 건물이 오래되어 철거한 공장 터가 있다. 대한약품에서 매입하려는 토지 중 하나이다.
“거기 쉐리엔이 담긴 컨테이너 1,000개가 쌓여 있을 겁니다. 얼른 회수하십시오.”
“네에? 컨테이너로 1,000개나요?”
깜짝 놀라는 듯하다.
말이 1,000개지 실제론 5,000대 분량이다. 이 정도면 당분간 원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네, 조만간 한 번 더 수확할 수 있다니 출고량은 알아서 조절하세요.”
“아이고, 그럼요! 알겠습니다. 일단 컨테이너 확인부터 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마음이 급했는지 현수의 대꾸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는다. 그리곤 곧장 인근 공터로 차를 몰고 나갔다.
현장에 당도한 민 사장은 입을 딱 벌린다. 쉐리엔이 담긴 컨테이너 1,000개가 쌓여 있는 장관을 목격한 때문이다.
“세상에! 하하,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이실리프 무역상사로부터 닦달을 당하던 중이다. 드모비치 상사로 보낼 쉐리엔을 빨리, 그리고 많이 보내달라는 요청 전화가 매일 걸려온다.
드모비치 상사는 대한의약품의 여타 약품을 수출하는 주요 거래처이다. 당연히 최우선적으로 상품을 공급하여야 하는데 원료가 부족하여 절절매던 차이다.
그게 일시에 해소되었기에 앙천광소를 터뜨린 것이다.
잠시 후, 수십 대의 지게차와 트럭 등이 동원되었다.
컨테이너 하나당 약 100톤씩 실려 있기에 지게차만으론 운반이 불가능한 때문이다. 아무튼 원료가 운반되자 대한의약품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산에 몰두한다.
전화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전신을 흔들며 진동음을 낸다.
부우우우웅―! 부우우웅―!
“응? 이 양반이 왜?”
핸드폰에 찍힌 번호는 한국은행장의 것이다.
“여보세요? 김현수입니다.”
“아, 김 사장님! 잠시 통화 가능할까요?”
“네, 말씀하십시오.”
“계약했던 금괴는 잘 받았습니다. 오늘 중으로 계좌 송금해 드리지요.”
“아! 그런가요?”
“그리고 방금 확인된 바에 의하면 영국에 있는 로스차일드 뱅크에서 이실리프 상사 계좌로 돈이 송금되었습니다.”
“그래요?”
“네,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가 보낸 겁니다.”
피터 로스차일드에게 매각한 황금 196.5톤의 대금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면 잠시 뵈었으면 하는데 가능한지요?”
특별한 일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은행으로 가지요.”
“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곤 곧장 한국은행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대체 왜 불렀는지 생각해 보았으나 알 수가 없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지나치게 공대한다는 느낌이었지만 정중히 예를 갖췄다.
“또 뵙습니다.”
“하하, 네에. 자, 이쪽으로……. 윤 비서, 차 좀 부탁해.”
“네, 행장님.”
문을 열어주었던 행장비서가 공손히 고개 숙이고 나간다. 준비된 듯 금방 쌍화차를 내온다.
“몸에 좋은 거랍니다. 드십시오.”
“네, 쌍화차군요. 감사합니다.”
후루룩―!
“흐으음!”
한 모금 입에 넣으니 쌍화차 특유의 향이 느껴진다.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심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피로하여 기혈이 상한 상태, 성관계 전후로 힘든 일을 할 때, 중병을 앓고 난 후 피로가 극심하여 식은땀이 흐를 때 쌍화탕을 복용하면 좋다.
한 줄로 요약하면 기(氣)와 혈(血)을 보하고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는 뜻이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는데 분위기에 걸맞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라는 곡이다.
국악연주가 정수년 교수가 해금9)으로 연주한 것이다.
들을 때마다 심신이 이완되고 고즈넉한 기분이 들게 하는 아름다운 곡이기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아차! 그걸 깜박 잊었군. 흐음, 나가는 대로 손봐야겠군.’
걸그룹 다이안에 주기로 한 곡의 악보를 그려줘야 함을 잊은 것이다.
현수가 빈 찻잔을 내려놓자 한국은행장이 입을 연다.
“상당히 많은 돈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실리프 뱅크를 내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승인 절차라는 것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겠지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획재정부에서 허가가 떨어져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저어, 그때까지 국내 기업의 주식 매입을 해주실 수 있는지요?”
“네?”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6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벤 버냉키…….”
한국은행장의 설명이 잠시 이어졌다.
벤 버냉키 의장은 양적완화10)축소 가능성을 골자로 한 출구 전략 발표를 한 바 있다.
그 결과 외국인들은 약 23조 원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팔고 떠난 것이다.
이보다 먼저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인 미국의 ‘뱅가드 그룹’은 한국 주식을 내다파는 방향으로 벤치마크 과정을 변경하였다.
참고로, 뱅가드 그룹은 뮤추얼 펀드11) 운용사이다.
하여 연초부터 외국인 자본의 탈출이 시작되었다.
이 돈 중 일부는 일본으로 흘러갔다. 아베노믹스로 인해 일본 시장의 매력도가 높아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 인해 코스피 지수는 연중 최저치로 급락했다. 그 결과 한국의 주식형 펀드들은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여기에 지나 크런치(China Crunch)까지 겹쳤다. 지나의 실물경제가 주춤한 상황에서 돈 가뭄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이는 지나의 경제 정책 사령탑인 이극강(李克强) 총리와 주소천(周小川) 지나 인민은행총재의 공동 작품이다.
다른 말로는 ‘시진핑 리스크’라고도 한다.
이것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충격요법으로 인민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가는 돈줄을 차단한 것이다.
이처럼 돈줄을 죄는 까닭은 신용 거품을 잡기 위해서이다.
지나의 기업과 가계, 그리고 지나 정부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2.3배 정도다.
약 120조 위안(약 2경 1,960조 원) 정도 된다. 이런 상태에서도 부채는 나날이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