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7
“네,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지현의 조신한 인사를 받은 조 대표가 현수의 눈치를 본다. 앉아도 되느냐는 뜻이다.
“그럼요. 앉으세요.”
“아, 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둘의 오붓한 데이트를 방해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현수는 준비했던 악보를 건넸다.
“이게 곡입니다. 한번 보시죠.”
악보를 받아 든 조 대표가 잠시 내용을 살핀다.
음표를 보고 곧바로 음을 알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멜로디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사는 한눈에 들어온다.
상당히 서정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한 가사이다. 그런데 제목이 비어 있다.
“저어, 이 곡 제목은……?”
“아! 그 곡의 제목은 ‘지현에게’입니다.”
“지현에게요? 아! 사모님 이름이군요.”
“네, 제 첫 곡은 아내인 지현이를 위해 썼습니다.”
실제로 이 노래의 가사는 지현에 대한 감정을 쓴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지현이 부끄러운지 살짝 고개를 숙인다.
조 대표가 환히 웃으며 그런 지현을 바라본다.
“그래서인가요? 가사가 아주 좋습니다. 하하하!”
조 대표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기분이 좋아서이다.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신랑이 신부를 위해서 곡을 썼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멜로디가 조금 후져도 탓할 이는 드물 것이다. 현수는 회사원이지 프로 작곡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 다른 곡은…….”
“나머진 이겁니다.”
악보를 받아 든 조 대표가 눈빛을 빛낸다. 방금 전의 것은 달달한 로맨스를 내용으로 한 4분의 4박자짜리 발라드이다.
두 번째 곡은 4분의 2박자이다.
이것을 보는 순간 명배우 알 파치노의 맹인 연기가 돋보였던 여인의 향기(Scent of woman)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이 영화엔 바이올린 선율이 아름다운 ‘Por Una Cabeza’라는 곡이 쓰인다.
알 파치노가 레스토랑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 가브리엘 앤워(Gabrielle Anwar)와 탱고를 추던 곡이다.
이것은 전에도 유명했지만 이 영화 덕에 더욱 널리 알려져 탱고의 대명사가 된 곡이다.
잠시 악보를 바라보던 조 대표가 중얼거린다.
“으음, 이 곡도 제목이 없네요?”
“그건 ‘첫 만남’이란 곡입니다.”
“아! 사모님과 처음 만났을 때를 노래한 건가 보네요.”
“네? 아, 그럼요.”
사실 이 곡의 가사는 연희를 생각하고 쓴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 할 수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곁에 있던 지현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듯한 현수의 말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미안했다.
같이 있지 못하는 연희와 이리냐를 떠올린 것이다.
그래도 기분 좋은 건 어쩔 수 없는지라 슬며시 팔짱 낀 팔에 힘을 주었다.
이때 조 대표가 세 번째 악보로 시선을 넘긴다.
“이건… 왈츠 곡인가요?”
“네, 4분의 3박자의 빠른 왈츠곡입니다.”
“아! 그래요? 왈츠 좋죠.”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조 대표는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요즘의 대세는 더 빠르고 경쾌한 댄스곡이다. 거기에 비하면 조금 느린 곡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쯤에서 한마디 해야 할 듯싶어 현수의 입이 열린다.
“아시다시피 저는 전문적인 작곡가가 아닙니다. 문득 떠오른 악상이 있어 곡을 만든 것뿐입니다. 다이안 멤버들의 음성에 맞는 부분을 찾아 표시해 놨으니 한번 해보세요.”
“네, 고맙습니다.”
조 대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상대가 성의를 보이는데 마음에 안 든다고 할 수 없기에 웃는 낯이다.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마음에 안 들면 안 하셔도 되니까 부담 갖지는 마시구요.”
“에구, 아닙니다. 곡을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참,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곡을 얼마나 더 써 드려야 하는지요? CD 한 장에 들어가는 곡을 다 써야 하는 겁니까?”
“아이고, 저희로선 다다익선이죠. 많이 써주실 수 있으면 그리 해주십시오.”
현수가 곡을 많이 써주면 조 대표는 그중 괜찮은 것을 고를 생각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수가 써주는 곡은 다이안을 일약 세계적인 걸그룹이 되게 만들어준다. 한류 열풍이 거센 시기이기에 금방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랫동안 전해져 오는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민요의 멜로디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고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내 사랑 클레멘타인’, ‘매기의 추억’, ‘철새는 날아가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올드 랭 자인’보다도 선율이 아름다운 곡들이 현대적으로 편곡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아름다운 선율과 한 편의 시 같은 서정적인 가사, 여기에 뛰어난 가창력이 겸비되었으니 어찌 안 그렇게 되겠는가!
현수는 곡을 쓰면서 연주할 악기도 일부 지정했다.
약간 애조 띤 멜로디에는 바이올린 대신 해금으로 연주토록 했다. 뿐만 아니라 대금, 가야금, 태평소 등 국악기를 적극 사용토록 했다. 하여 처음엔 국악을 현대화한 퓨전 음악의 일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나중의 일이지만 다이안이 발표하는 음악들은 ‘다이안’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분류된다.
이전에 없던 독창적 악곡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이안은 아이돌 걸그룹이라는 명찰을 떼게 된다.
일개 걸그룹으로 출발하여 고만고만한 다른 아이돌 그룹과 치열한 경쟁을 했지만 비틀즈보다도, 아바14)보다도, 마이클 잭슨보다도 훨씬 더 유명해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내에선 독보적인 대접을 받는다. 모든 음악 프로에서 항상 피날레를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현수는 다이안에게 총 224곡을 준다. 이 곡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다이안의 첫 번째 음반은 딱 두 곡만 수록되어 발매되는 싱글 음반이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시도이다. 값은 일반 음반과 비슷하지만 수록된 곡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그 두 곡은 오늘 조 대표에게 건넨 ‘지현에게’와 ‘첫 만남’이다.
처음엔 시장의 외면을 받는다.
다이안이 내리막길에 있는 걸그룹으로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음반이 비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주는 흙 속에 묻혀 있어도 진주이다.
누군가 우연히 들어본 사람에 의한 입소문이 들불처럼 번지더니 이내 강력한 태풍이 되어버린다.
그것도 평범한 태풍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불지 않았던 엄청난 태풍이다.
기상 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태풍은 1979년 10월 4일 발생한 ‘팁(Tip)’이다.
이것의 중심 기압은 870헥토파스칼이었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위력이 큰 것이다.
참고로 지난 100년 중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태풍이었다고 하는 ‘매미’가 910hpa이었다.
팁의 최대 풍속은 초속 85m, 직경은 1,850km로 둘 다 사상 최고 기록이다.
매미의 최대 풍속이 초당 55m, 직경이 1,000km이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강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매미는 역대 태풍 순위 100위 권 밖에 있다.
다이안 열풍은 팁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5대양 6대주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끊임없이 노래가 불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튜브에 공개된 타이틀 곡 ‘지현에게’의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400억 뷰가 넘게 된다. 수없이 반복 감상을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튜브의 모든 기록을 깬다. 물론 훨씬 세월이 흐른 뒤의 결과이다.
기네스북을 살펴보면 1983년에 발표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가 1억 400만 장 팔린 것이 세계 기록이다.
다이안의 첫 싱글 최종 기록은 4억 8,000만 장이다.
이전까지 세계 기록을 단숨에 깨는 것은 물론이고 네 배 이상 더 많이 팔린 것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음악이니 너도나도 사서 소장한 결과이다.
이후로도 두 곡씩 실린 싱글 음반이 발매된다. 최종 112집 음반까지 전부 3억 장을 가볍게 넘겨 판매된다.
이를 합산해 보면 430억 장이 넘는다. 마이클 잭슨의 기록인 7억 5,000만 장의 57배를 가뿐히 뛰어넘는 숫자이다.
이는 다운로드보다 앨범을 소장하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발생된 결과이다.
다이안의 거의 모든 곡은 CF에 사용되거나 영화의 OST로 사용된다. 이 중 ‘지현에게’는 전 세계 음악 교과서에 실리는 영광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과 서정적인 가사로 모든 전문가의 극찬을 받는다.
당연히 다이안의 멤버 다섯 모두 거부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 새 앨범이 발표될 때마다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다.
하여 발매 사흘 전부터 매장 앞에 줄 서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최초 판매 5,000장에 멤버들의 사인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나중에 수집가들 사이에서 아주 비싼 값에 팔린다.
싱글 앨범의 정가는 7,500원이다.
CD와 브로마이드가 포함된 값이다.
멤버들의 사인이 들어간 것의 가격은 10년 후 1억 원에 거래된다. 소장자들이 웬만해선 내놓지 않으려 하기에 희귀성이 인정된 것이다. 또한 하도 많이 재생해서 상태 멀쩡한 것이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20년 후의 가격은 4억 8,000만 원이다. 30년 후엔 12억 원으로 값이 오르고, 40년 후엔 30억 원에도 살 수가 없다.
아주 나중의 일인데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요즘 진행되는 진품명품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이때 멤버들의 사인이 들어간 첫 번째 앨범이 나오는데 그 가격이 무려 100억 원이다.
7장 불후의 명곡
처음엔 회사원이자 IQ 255짜리 천재가 쓴 곡이라는 관심에서 시작된 일이다. 여기에 뛰어난 가창력과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현란한 춤 솜씨가 가미되어 일으킨 결과이다.
역대 빌보드 기록을 살펴보면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멘이 함께한 ‘One sweet day’가 16주 연속 1위를 했다.
빌보드 차트 1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는 영국의 비틀즈로 20곡이 올라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이안의 빌보드 1위는 224곡이다. 발표된 곡 전부 최소한 한 번 이상은 1위를 한다는 뜻이다.
빌보드 1위 최장 기간 기록은 ‘지현에게’가 차지한다.
무려 25주나 1위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불린다. 이 기록은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깨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보죠.”
현수는 아직 손보지 않은 마탑주 찬가를 비롯하여 아공간에 담긴 악보를 차례로 손볼 생각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에구, 제 결혼식에 와서 축가까지 불러줬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요. 참! 제작비나 이런 건 부족하지 않습니까?”
“네? 그, 그게…….”
조 대표가 얼른 대답하지 못한다. 무방비 상태에서 아픈 곳을 찔린 때문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케이원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해도 되겠습니까?”
“네? 투자요?”
“일하려면 자금이 넉넉해야 마음이 편하잖습니까? 어려우시다면서요. 그러니 제가 20억쯤 투자할게요.”
현수의 말에 조 대표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렇지 않아도 자금이 부족해서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번 음반에 관한 활동은 접었고, 새 음반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간간이 행사를 뛰고는 있지만 늘 자금이 부족하다.
20억이란 돈이 들어오면 빡빡하던 기계에 윤활유를 친 것처럼 부드럽게 돌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눈빛을 빛낸 것이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야 좋지만…….”
조 대표는 염치가 있기에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현수는 이를 다른 뜻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그 돈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으로 생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