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0
“맞아. 음반 내기가 이렇게 쉬우면 가수하기 쉽겠다.”
“노래가 좋아서 그래, 노래가!”
“하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곡 중 최고야. 이건 나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대박일 거야. 안 그래?”
“당근이지. 안 되면 내 손목을 건다.”
“야야, 손목 말고 소주 100병 어때?”
“콜! 대신 잘되면 니들이 사는 거야.”
홍 반장과 세션맨들이 환히 웃는다.
모두들 아주 활기찬 모습이다. 밤을 꼬박 새웠지만 아무도 피곤을 느끼지 못한 때문이다.
“자자, 녹음한 거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회식하자.”
“회식이요? 대표님, 그럼 한우 등심 사시는 거예요?”
유난히도 육식을 좋아하는 정민의 농담에 조 대표가 빙그레 웃는다.
“등심? 그거 갖고 되겠니? 아롱사태, 설치, 치마살 등등 뭐든 먹고 싶은 만큼 먹게 해줄게.”
“어머, 정말이요? 그럼 돈 많이 나갈 텐데요?”
“후후! 이제부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조 대표가 한결 여유로운 웃음을 짓자 예린이 묻는다.
“대표님, 혹시 로또에 당첨되셨어요?”
“로또? 그래, 로또라면 로또겠다.”
“우와! 진짜 그래서 한턱내시는 거예요?”
세란이 진실을 말하라는 눈빛이다. 이에 조 대표는 또 한 번 빙그레 웃음 짓는다.
“아니, 김현수 사장님이 우리 케이원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하셨어.”
“네에? 김 사장님이요? 얼마나요?”
곁에 있던 조환의 물음에 조연 대표는 핸드폰을 꺼낸다. 은행에서 온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문자의 내용은 이실리프 상사로부터 현금 50억 원이 계좌 이체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본 조환의 눈이 커진다.
“헐! 50억 원이나? 세상에!”
곁에 있던 연진이 얼른 머리를 들이밀어 문자를 확인한다.
“어머, 정말 김현수 사장님이 우리 회사에 50억 원을 투자하신 거예요? 정말요?”
“그래, 50억 원을 현금으로 투자하셨다. 그래서 우리 회사 이름 바꿔야겠다.”
“어머, 왜요?”
예린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케이원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을 알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케이원 엔터테인먼트보다 이실리프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이 더 낫지 않겠냐?”
“아! 이실리프…….”
대한민국에서 이실리프라는 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실리프 상사가 콩고민주공화국에 어마어마하게 큰 농장을 개설하는 중이라는 기사가 대서특필된 때문이다.
또한 이실리프 어패럴의 항온의류는 이미 만천하에 소문이 난 상태이다.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아주 가뿐하게 보낼 수 있는 기적의 의류라는 기사가 이미 뜬 때문이다.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생긴 지 1년도 안 되었지만 매월 1억 달러에 이르는 수출을 한다고 소문나 있다.
이 모든 회사의 수장이 샐러리맨의 신화인 김현수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래서 이실리프라는 이름의 이미지는 최고이다. 조금의 부정적인 느낌도 없다. 다시 말해 안티가 없다.
“이실리프 엔터테인먼트! 그럼 김현수 사장님이 우리 회사 회장님이 되시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기꺼이 주도권을 내놓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바쁜 현수가 언제 엔터테인먼트 사업까지 신경 쓰겠는가!
결국은 본인이 운영하는 것은 여전할 것이다. 그렇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와아! 그럼 이제 우리 뜨는 일만 남았네요. 그렇죠?”
“하하, 내 생각도 그렇다.”
조 대표가 또 한 번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어서요. 어서 확인하고 등심 먹으러 가요. 네?”
정민이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떼쓰는 몸짓을 한다.
“하하! 그래, 그래!”
조 대표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도 기분이 좋은 때문이다.
* * *
다이안이 녹음할 때 현수는 통일부 청사에 있다.
“방북 신청 서류가 접수되었음을 확인합니다.”
통일부에 들러 다시 한 번 방북 신청을 하자 담당 공무원이 서류에 접수 도장을 찍어준다.
이제 이걸 들고 담당자를 만나야 한다. 그리곤 방북 일정 및 그곳에서 만날 사람들과 목적 등을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현수는 신청만 하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뒷일은 총리실에서 처리해 줄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언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일부를 나선 현수는 곧장 일산에 위치한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곳에서 이리냐와 테리나를 만나기로 한 때문이다.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841번지에 당도해 보니 ‘김희수 Photo 스튜디오’란 깔끔한 간판이 보인다.
이곳은 대한의약품 민윤서 사장의 부인인 윤영지 여사가 현역에 있을 때부터 사진 찍으러 종종 왔던 곳이라고 한다.
이 스튜디오의 대표 김희수는 대한민국에서 피사체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잡아내는 작가로 소문나 있다고 한다.
“어서 오십시오. 스튜디오 대표 김희수입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사내이다.
“아! 반갑습니다. 김현수입니다.”
“네, 언론에서 여러 번 봬서 잘 압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에구, 영광은요. 제가 더 영광입니다. 김 작가님 작품이 대단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그거 다 과찬입니다. 자, 이쪽으로……. 같이 촬영할 모델들은 아까 도착했습니다.”
어제 유례없는 폭설이 내렸다. 그리고 오늘은 연중 최저 기온이라고 한다. 덕분에 모든 도로가 빙판이 되어버렸다.
현수가 약간 늦게 당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자유로 여기저기에서 빙판길 접촉 사고가 나는 바람에 교통량이 많지도 않았는데 도로가 막혀 있었던 것이다.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늦어서.”
“아이고, 아닙니다. 오늘 교통 상황 때문인데요.”
현수가 안으로 들어서자 이리냐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같이 올 수도 있었지만 괜한 스캔들이 번질까 싶어 테리나를 데리고 오라고 해서 먼저 와 있는 것이다.
“김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그리고 결혼 축하해요.”
테리나가 먼저 환히 웃으며 손을 내민다.
그러고 보니 테리나는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청첩장 주는 것을 깜박 잊어서라 생각한 현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그래요. 그동안 잘 있었죠?”
“그럼요. 그리고 저를 모델로 추천해 주셔서 고마워요.”
“아이고, 별말씀을…….”
현수가 쑥스럽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일 때 이리냐가 천연덕스럽게 손을 내민다.
“여기서 또 뵙네요.”
“아, 네. 이리냐 양도 오랜만입니다.”
이번엔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살을 섞은 아내이건만 마치 오랜만에 만나는 타인처럼 굴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이 악수할 때 민 사장이 들어선다.
“에구,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네요. 눈길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시느라 애쓰셨겠습니다.”
오늘은 직장마다 지각 사태가 속출했다. 그만큼 도로 사정이 엉망인 것이다.
“자, 오실 분은 다 오셨으니 이제 촬영 시작하죠.”
“네.”
“김현수 사장님은 이쪽으로 가셔서 옷을 갈아입으시고, 두 분 모델은 저쪽 탈의실을 쓰십시오.”
김희수 작가의 말을 현수가 통역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Да, сэр.”
러시아어로 알아들었다는 뜻이다.
각자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곧바로 촬영이 시작된다.
김희수 작가는 셋의 포즈뿐만 아니라 표정까지 아주 깐깐하게 교정한다. 이 모든 과정의 통역은 현수가 도맡았다.
셋은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촬영에 임했다.
디자인이 수십 가지이기에 수십 번 갈아입어야 했다. 작업이 길어지자 민 사장이 도시락을 사왔다.
식사를 하곤 곧바로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러시아에 판매할 항온의류 사진을 모두 찍은 후엔 두바이로 갈 아랍 계열 의복을 입고 찍었다.
현수는 남성복인 디슈다샤(Dishdasha)와 칸두라(Kandura)를 입었고, 이리냐와 테리나는 여성 평상복이라 할 수 있는 아바야(Abaya)를 걸쳤다.
아바야는 검은색 계열이 많았는데 자수가 놓아진 것도 많다. 이것은 어찌 보면 마법사들의 로브와 유사하다.
모자 때문이다. 아바야를 입으니 몸매는 가려졌지만 색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얼굴이 부각된 때문이다.
일련의 작업이 끝날 즈음 손님들이 왔다.
톱 탤런트 민채린과 이수연이다.
현수는 이들 둘과 더불어 국내용 팸플릿 사진을 찍었다.
김희수 작가는 그림이 정말 좋다면서 이리냐와 테리나까지 나서게 했다.
촬영이 끝난 것은 늦은 오후이다.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민채린과 이수연은 스케줄 때문에 먼저 가야 한다면서 몹시 아쉬워했다.
일행은 푸짐한 한우갈비를 먹었다. 돈은 민 사장이 냈다.
“오늘 수고했어요.”
“네, 김 사장님도 고생하셨어요.”
테리나가 환히 웃는다. 거의 하루 종일 현수와 있었던 것이 기분 좋은 것이다.
“이리냐 양도 수고 많았습니다.”
민 사장의 말에 이리냐 또한 환히 웃는다. 이제 민 사장과 테리나가 가면 둘은 우미내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엔 연희도 와 있다. 자가용 비행기가 있으니 올 때 같이 온 것이다.
“김 작가님도 수고하셨습니다.”
“하하, 네. 모두 선남선녀들이신지라 찍기가 쉬웠습니다. 좋은 작품이 나올 겁니다. 기대하십시오.”
“네, 다음에 또 뵙지요.”
스튜디오를 나오면서 민 사장에게 테리나를 배웅해 달라고 했다. 가는 길에 테리나가 머무는 레지던스16)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둘을 떼어낸 현수는 이리냐를 데리고 곧장 우미내로 향했다.
“자기야!”
“어서 와요!”
연희가 먼저 품에 안긴다. 지현은 환히 웃기만 한다. 가족이 다 모였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저녁 준비했는데 드셨죠?”
“조금밖에 안 먹어서 또 먹어야 해. 근데 뭐 맛있는 거 해놨어?”
“네, 둘째가 자기 온다고 솜씨 부렸어요. 가요.”
식탁으로 가보니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다. 지현과 연희의 합작품이다. 이것을 만드느라 낑낑댔을 것이다.
현수는 피식 웃으며 차려진 음식들을 살폈다. 갈비찜, 잡채, 불고기, 해파리냉채, 안동찜닭, 해물탕 등이 있다.
“근데 이걸 누가 다 먹어?”
너무 양이 많아서 한 말이다.
“누구긴요, 자기죠!”
“헐! 이걸 나 혼자 다 먹으라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족히 10인분은 되기에 한 말이다.
“우리 셋이 도와줄게요. 조금 많기는 하지만 다 먹어요. 알았죠? 저녁 안 먹고 와서 배고플까 봐 많이 한 거란 말이에요.”
“그래요. 이거 연희 동생이 만드느라 애쓴 거예요. 그러니 다 드세요.”
“끄으응! 이 많은 걸…….”
자리에 앉자마자 연희가 갈비찜을 입에 넣어준다.
다 씹어서 삼키자 이리냐가 잡채 한 젓가락을 넣어준다.
다음엔 지현이 해물탕 속의 새우 껍질을 벗겨서 입에 넣는다.
결국 현수는 음식의 대부분을 먹었다
“후와아! 이제 그만. 배가 불러서 터질 것 같아.”
“호호, 많이 드시긴 했어요. 자, 커피요.”
지현이 환히 웃으며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현수의 좌우엔 연희와 이리냐가 있다. 며칠 만에 보는 건지라 꼭 보듬고 있다.
넷은 단란한 한때를 보냈다. 그리곤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밤새도록 연희와 이리냐를 괴롭혔다. 뭔 일인지는 어른들만 안다. 아무튼 또 눈 오는 밤에 일어난 일이다.
* * *
“어서 오시게. 신혼여행은 잘 다녀왔지?”
“그럼요. 결혼식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긴, 당연한 일을. 그나저나 엄청 바쁠 텐데 예까지 웬일로 왔는가?”
이곳은 국회에 있는 홍진표 의원 집무실이다.
현수는 대답하지 않고 정홍상 보좌관이 가져온 주스 잔을 만지작거렸다. 보좌관이 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둘만 남게 되자 보이스 인슈레이션 마법을 구현시켰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외부로 나가선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의원님, 박인재 의원 아시죠?”
“당연히 알지. 여당 사무총장 아닌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이다.
“그 사람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도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