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1
“박 의원이? 아마… 그렇겠지.”
눈을 크게 뜬 홍 의원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여당인 한심당 소속 국회의원치고 비리와 부정에 관여되지 않은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한심당을 몇 마디로 요약하다면 다음과 같다.
비리, 부패, 부정, 친일, 친미, 무능, 아집, 그리고 거짓말과 후안무치이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온갖 못된 짓을 다 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설마 하는 마음이다.
언론을 교묘히 통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당의 사무총장이라면 당연히 비리와 연루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야당 국회의원 중에도 이런 자들이 상당수 있을 거라는 추측이다.
정치라는 썩은 연못에 같이 발을 담그고 있으니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오염되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당에서 공천해 주겠다는 걸 거절했던 것이다.
“박인재는 세정파라는 조폭 집단의 뒤를 봐주면서 세정캐피탈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습니다.”
의원님이란 호칭은 사라졌다. 그럴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 여긴 때문이다.
“그래? 증거가 있나?”
이런 일은 대부분 증거 잡기가 힘들기에 기대 없이 물은 말이다. 그런데 현수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있죠. 증거를 드리면 공론화시켜 주시겠습니까?”
현수의 대답에 홍 의원이 허리를 편다. 한심당의 못된 작태를 바로잡고자 출마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그런데 이 일은 자네 말고 누가 또 아나?”
정치권에선 저격수가 되치기를 당하는 수가 있다. 상대의 술수, 또는 농간 때문이다.
“현재는 제 장인어른과 저, 그리고 H일보 강민경 기자만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장인어른 주변 수사관 중 일부도 알 수 있습니다.”
권철현 고검장은 이번 일에 눈여겨보아 둔 수사관들을 동원했다. 이들의 선발 기준은 청렴과 강직이다.
고검장은 은밀히 박인재 의원 일당의 수사를 지시했다.
내놓고 수사하면 압력을 가하거나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현수가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세정파 장부에 기록된 일 대부분을 확인한 것이다.
현재 박인재 의원 및 여러 여당 의원들과 검찰, 경찰 쪽 인사들의 결탁 사실이 문서로 꾸며지고 있다.
이경천 검사 등의 행각이 밝혀진 것이다.
“그래?”
“제가 증거를 드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썩은 건 도려내야지!”
뭔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현수는 기대했던 대답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에 대한 증거 자료는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물품보관함에 넣어두겠습니다. 좌측 위에서 네 번째 칸에 넣어놓고 열쇠를 보내드리지요.”
“H일보에서 보도되면 증거로 내밀라는 뜻인가?”
“아뇨. H일보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보도가 이루어질 겁니다. 안 그러면 놈들이 언론 통제를 하려 나설 테니까요. 안 그렇겠습니까?”
“그야 그렇겠지.”
홍 의원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여당인 한마음당은 치졸함의 극에 있는 놈들의 집단이다.
그렇기에 국민들이 한심당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반하면 여론을 제멋대로 호도한다. 언론통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의치 않다 싶으면 권력으로 찍어 누른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크나큰 불이익을 주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국정원을 동원하여 대선 전 여론 몰이까지 한 놈들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고 있는 자들이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악의적인 댓글을 수없이 달았다.
이것이 드러나자 대부분을 삭제하곤 오리발을 내미는 집단이다. 이쯤 되면 국가정보원은 대한민국을 위한 정보 집단이 아니라 특정 정당을 위한 하수인 조직인 것이다.
이들을 이끌던 전임 국정원장 오제훈은 뇌물을 받고 특정 기업이 유리하도록 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놈은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 발의된 SSM 규제 법안(기업형 슈퍼마켓 규제 법안)이 무산되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
물론 이놈은 이 법안과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대형마트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았다.
제 배 채우고자 수많은 골목 상인을 빈곤으로 몰아넣은 개만도 못한 인간이다.
이런 자가 수장으로 있던 집단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일찍이 국정원은 탈북자들에 관한 정보를 미국에 넘겨준 바 있다. 1997년부터 2007년에 이르는 동안 탈북한 인사 전부의 자료를 넘긴 것이다. 거를 것을 거른 2차 자료가 아닌 심문 조서 원본 등을 그대로 제공했다.
우방이니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정보를 공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료 전체를 가감없이 통째로 건네주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이쯤 되면 국정원은 미국의 하수인밖에 되지 않는다.
하여 지나 국안부 3국에서 가져온 엄청난 정보를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신뢰도 0%인 기관에 어찌 그 중요한 것을 넘기겠는가!
현재로썬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경찰은 믿을 수 없는 기관이다. 그렇기에 홍 의원을 찾았다.
한 사람뿐이지만 국가기관이다. 그리고 믿을 수 있다 판단된 사람이기도 하다.
“최종 증거 자료를 보관함에 넣으면 의원님께 전화 드리겠습니다. 각별히 주의해 주실 거죠?”
“당연하지. 그런데 양이 많은가?”
“족히 1,000페이지는 넘을 겁니다.”
“……!”
증거 자료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치밀하고 옭아맬 요소가 많다는 뜻이다. 홍 의원은 모처럼 전의가 솟는지 눈빛을 빛낸다.
“참, 미얀마 반군들이 탈북자들을 노예로 부린다면서요?”
“그래, 작년 여름에 그런 기사가 있었지.”
2013년 7월 미얀마 따찌렉17) 인근 반군 관할 지역에 탈북 남녀 64명이 1∼9년 동안 억류돼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자들은 족쇄를 찬 채 마약 밭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되고, 여자는 식당과 무허가 술 공장에서 일한다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현지인과 지나인들을 상대로 강제 윤락까지 당하는 처참한 생활을 한다고 보도되었다.
얼마 전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이 기사를 접했기에 물어본 것이다.
“그 후 외교부에선 어떤 일을 했나요?”
“무대응했네. 아무 일도 안 했지.”
“왜지요?”
“미얀마 정부가 아닌 반군들이 벌인 일이기 때문일 것이고, 탈북자들은 아직 우리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홍 의원의 자조 섞인 추측을 들은 현수는 화가 났다.
그보다 먼저 라오스에서 발생한 탈북 청소년 강제 북송 사건이 있었다.
외교부의 무능과 정보력 부재로 인한 사건이다.
재외공관 외교관들은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보호할 생각이 없을뿐더러 그럴 능력도 없는 듯하다.
이쯤 되면 외교부 전체에 대한 숙정18)이 이루어져야 한다. 재외공관에 근무하는 자들 전체에 대한 강력한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태하고 해이한 자들은 모두 솎아내고 소명의식 투철한 인사들로 바꿔야 제대로 될 것이다.
“그럼 앞으로도 그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구조 계획은 없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마도… 그럴 것이네. 나 혼자 떠들어봐야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쩝, 미안하네.”
홍 의원의 사과에 현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의원님이 사과하실 일은 아니지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그래도 미안하네. 국회의원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으니 이해하게.”
“그럼 세력을 키워서 대선에 출마해 보세요.”
“대선에?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네, 제가 밀어드리겠습니다. 저 아시죠? 이미지 아주 좋습니다. 필요하다면 찬조 유세를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준비하세요.”
“으으음!”
홍 의원이 나직한 침음을 낸다.
현수의 제안을 듣고 보니 안 될 일은 아니다. 날 때부터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원님같이 올곧은 가치관을 지닌 분이 나라를 이끌어야 합니다. 모리배19) 같은 놈들이 계속해서 국정을 농단20)하는 이 꼴을 계속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나서서 싹 쓸어버리고 새 판을 짜시겠습니까?”
“……!”
홍 의원은 아무런 대꾸도 없다. 하지만 눈빛은 점점 더 결연해지고 있었다.
“기존의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은 가급적 품지 마십시오. 썩은 물에서 놀던 물고기는 스스로가 원하지 않아도 썩은 내가 나니까요.”
“참신한 인재들이 있을까?”
“찾아보세요. 많이 있을 겁니다. 다만 정치권이나 학계는 썩은 자들이 많으니 가급적 다른 곳을 둘러보십시오.”
“알겠네. 자네 뜻대로 천천히 알아보지. 다음 대선이 치러지려면 시간이 좀 있으니.”
“네, 꼭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비용이 들면 말씀하십시오. 제가 만들어보겠습니다.”
9장 작전명, 2조 5000억 달러!
국회 복도를 따라 걸으며 현수는 이브즈드랍 마법을 구현시켰다. 국회에선 대체 어떤 대화들이 오가나 싶었던 것이다.
―아, 전 마담. 잘 있지? 그럼, 그럼! 오늘 저녁에 셋이 갈 거야. 그래, 걱정 마. 그런 일 없어. 어허! 내가 없다면 없는 거야. 그땐 술에 취해서 실수한 거야. 그래, 그래! 이따 봐.
―겨우 그 돈 받고 그 일을 하라고? 이봐, 지금 장난해? 나 여당 국회의원이야. 뭐라고? 그럼 관두라고 해. 그래, 그래! 그래, 최소한 다섯 장은 준비해야지. 그럼. 오케이. 알았네. 내가 힘 좀 써보지. 그래, 어허! 나 못 믿어? 그래, 그럼 그냥 있어. 다 잘되게 해줄 테니까.”
―자리 하나 만들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내가 보기에 꽤 괜찮은 인재니까 추천하는 겁니다. 그럼요, 그럼! 과장급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럽시다. 고맙소.
룸살롱 마담과의 통화, 누군가의 이권 청탁을 받고 큰소리치는 내용, 취직 압력 등 그야말로 다양했다.
그때마다 의원실 앞에 붙은 명패를 봤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었다.
“썩어빠진 새끼들, 진짜 물갈이해야 해.”
현수는 나직이 투덜거리며 국회를 빠져나왔다.
* * *
“흐음, 이거 재미있네.”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온 현수는 국안부 3국이 보관하고 있던 자료를 검색하던 중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지나엔 국유은행인 공상은행(ICBC)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을 제친 세계 최대 은행이다.
이 은행에서 1㎏짜리 골드바를 팔았는데 이리듐(Iridium), 또는 텅스텐(Tungsten)이 섞인 가짜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리듐과 텅스텐의 밀도는 순금과 유사하다. 하여 일반적인 측정법으로는 금괴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
텅스텐의 밀도는 19.25g/㎤로 황금의 밀도 19.30g/㎤와 불과 0.05g/㎤의 차이가 있다.
일반 계측기로는 이렇게 세밀한 차이를 측정하기 힘들다.
이리듐의 경우는 22.42g/㎤이지만 이것 역시 질량의 차이를 알아내기 힘들다.
참고 내용을 보니 지나에서 거래되는 금괴의 40%가 가짜라고 한다. 400온스짜리 금괴의 경우는 2㎜ 두께로 금을 둘렀을 뿐 안은 텅스텐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역시 가짜의 나라답다는 생각이다.
멜리민 섞은 가짜 분유, 쥐 고기를 가공해서 만든 가짜 양고기, 맹독성 농약으로 재배된 독 생강, 석고를 섞어 만든 가짜 두유가 판을 친다.
이 밖에 시멘트를 넣어 만든 가짜 호두, 가짜 화폐, 가짜 계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짜가 판치는 나라가 지나이다.
따라서 국유은행이지만 이리듐, 또는 텅스텐 섞은 가짜 골드바를 파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아무튼 국제 시장에서 금값은 나날이 하락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현수로부터 금괴 300톤을 매입한 한국은행이 자칫하면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큰 걱정은 않는다. 옆 나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뻘짓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