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43화 (643/1,307)

# 643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 역무원들만 사용하는 통로로 들어갔다. 물론 은신 마법이 구현되는 중이다.

‘관계자 외 절대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문을 여니 이곳 역시 5톤 트럭이 드나들 만큼 커다란 통로가 있다.

‘짜식들, 땅속 엄청 좋아하는 모양이네.’

문이 열리자 경비원 둘이 흠칫하며 노려본다. 문은 열렸지만 아무도 들어서지 않기 때문이다.

“개자식들! 또 장난이야.”

“그러게. 역장을 잡아다 족치던지 해야지.”

역무원들이 간혹 장난을 치는 모양이다. 투덜거리던 둘은 현수가 곁을 스치고 지났지만 인식하지 못했다.

통로의 길이는 500m가 넘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플라이 마법으로 날아가는 중인지라 아무런 흔적도 없다.

‘흐음, 역시!’

통로의 끝에는 네 명의 무장경비원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콘크리트로 만든 구조물 안에 있는지라 침입자는 공격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하지만 그건 보편적인 경우일 때이다.

“슬립!”

현수의 한마디에 넷이 곯아떨어진다.

털썩! 털썩! 와당탕! 털썩! 철퍼덕! 털썩! 와장창!

QBZ95 돌격소총이 바닥에 나뒹군다.

삐잉, 삐잉! 삐잉, 삐잉!

또 경보음이 들린다.

“언 록!”

촤르르륵! 촤르르르륵! 촤륵! 촤르르륵!

안쪽에서 다이얼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현수는 한쪽 구석에 팔짱을 낀 채 보고만 있다. 이 금고는 언 록 마법만으론 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잠시 후 30여 명이 우르르 달려온다.

쓰러진 경비원들의 뺨을 때려 깨우는 동안에도 금고 안쪽에서 다이얼 도는 소리가 난다.

촤르르륵! 촤르르르륵! 촤륵! 촤르르륵!

“헉! 금고가 이상합니다.”

“뭐야? 허, 그러고 보니……. 어서 금고를 열어라! 경비원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네, 알겠습니다.”

지휘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양복을 입은 행원 둘이 금고 앞에 선다. 양쪽에서 고개로 신호를 하곤 동시에 열쇠를 꽂고 돌린다. 그리곤 둘 다 홍채인식기에 눈을 댄다.

어느 것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경보음이 울리도록 설계된 듯하다.

잠시 후, 금고 문이 열렸다. 잔뜩 긴장한 채 총구를 겨누고 있던 경비원들은 아무런 반응도 없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긴장을 늦춘 것은 아니다.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활짝 열린 금고 안으로 경비병들이 들어간다.

당연히 아무런 이상도 없다.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올 때 스며드는 그림자 하나가 있다. 물론 현수이다.

잠시 후 금고가 닫히면서 어둠만이 남았다.

“라이트! 아공간 오픈! 입고!”

팔레트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자 경보음이 터져 나온다.

“에이, 또야? 쩝, 할 수 없지. 출고!”

아공간에 팔레트를 넣었다 빼기를 열세 번 반복하자 더 이상 경보음이 울리지 않는다.

마지막 열세 번째엔 모두들 투덜거린다.

며칠 전 이곳엔 많은 비가 왔고, 땅속으로 스며든 물기가 오작동 원인이라는 그럴듯한 의견이 있었다.

다시 금고 문이 닫힌 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아공간에 담았다. 이번에 담은 것은 1조 5,000억 달러이다.

한화로 1,800조 원이다. 두 곳에서 무려 3,000조 원 가치의 외화 등을 담은 것이다.

잠시 후, 곳곳에 C4 플라스틱 폭탄을 설치했다.

“텔레포트!”

루쉰공원 외곽에 나타난 현수는 시계를 보며 숫자를 카운트했다.

10, 9, 8, 7, 6, 5, 4, 3, 2, 1 파이어!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들썩이는가 싶더니 풀썩 주저앉는다. 지하에 높이 20m, 넓이 1,500평짜리 대형 공간이 있으니 무너져 내린 것이다.

웨에에엥! 웨에에에엥!

공안들 출동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동했다.

“텔레포트!”

두 곳이 털렸지만 지나 정부는 이를 발표하지 못할 것이다. 2조 5천억 달러가 사라진 사실이 알려지면 외환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2013년 현재 지나의 대외채무액은 7,500억 달러이다. 홍콩, 마카오의 대외 채무를 제외한 금액이다.

나머지 한 곳에 1조 달러의 외화가 보관되어 있으니 이를 해결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극심한 외환 유동성 부족에 당면하게 된다. 지나에서 IMF 사태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룡빌딩 붕괴 사고처럼 대외적으론 비밀이 될 것이다.

현수로선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 * *

이실리프 무역상사 옥상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자마자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사장님, 손님 오셨는데요.”

“누가 온 거죠?”

“얼마 전 보궐선거에서 이 동네 국회의원이 된 홍신표 의원의 보좌관이라고 합니다.”

“홍신표 의원?”

“네, 검사 출신인데 지난번에 구청장 하셨던 분입니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오시라 하세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 실장이 밖으로 나간다.

그러는 사이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홍신표는 검사 출신으로 조직폭력배들을 많이 검거한 것으로 유명했다. 이후 두 번 연속 구청장을 역임했다. 그러다 독직22) 사건이 의심되어 구청장 직을 사퇴해야만 했다.

마저 검색을 해보니 관내 종합복지관에 있던 구립 보건의료센터를 없앤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적은 비용으로 주민들이 이용했는데 손실 발생 이유로 없앤 것이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끝끝내 밀어붙여 구립 보건의료센터는 폐쇄되었다.

그 후 네티즌들이 나섰고, 인근 대형 병원 세 곳의 병원장과 잦은 회동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뇌물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심이 당연하다. 하여 주민들이 항의가 거세지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증거는 없다.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다.

주민들은 경찰까지 싸잡아 욕을 했다.

그러자 지은 죄는 없지만 사태를 책임지겠다면서 구청장 직을 내놓고 물러났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이번 보권선거에 여당 공천을 받아 출마해 당선되었다. 야당 후보와의 격차가 불과 156표이니 간신히 당선된 것이다.

“처음 뵙습니다, 김현수 사장님.”

“아, 네. 어서 오십시오.”

사장실로 들어선 자는 40을 갓 넘긴 듯한 사내이다.

“홍신표 의원 보좌관 나성범입니다.”

사내가 건넨 명함을 받은 현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책상 위의 명함을 건넸다.

이실리프 무역상사 사장이라는 직함이 찍힌 것이다.

“아직 젊으신데 참으로 큰 기업을 일으키셨습니다.”

“…네.”

뭐라 대꾸할 말이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홍 의원님께서 지역구에 김현수 사장님 같은 분이 계셔서 아주 든든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요? 전 그분을 잘 모르는데…….”

“하하, 이제부터 슬슬 알아가시면 되지요.”

“……!”

밥맛없는 여당 국회의원 따위를 알아야 할 이유가 없기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10장 취직시켜 주세요

“이번 보궐에서 우리 의원님께서 당선된 건 아시죠?”

“네, 뉴스에서 봤습니다.”

현수의 짧은 대답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말을 잇는다.

“이번에 우리 홍 의원님께서 지역의 유지 분들을 모시고 간담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김 사장님도 그런 분 중 하나이시죠. 이걸 받으십시오.”

청첩장 같은 것을 꺼내 건네기에 받아서 펼쳤다.

며칠 후 호텔 리셉션장에서 이 지역 상공인들을 모시고 향후 국정 방향에 대한 설명과 친분을 쌓기 위한 조촐한 연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오시면 좋을 겁니다. 우리 의원님께서 특별히 김 사장님을 뵙고 싶어 하시니까요.”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문득 침이 뱉고 싶다. 이 모임은 보나마나 후원금을 내라는 의도일 것이다.

당일에 가면 제법 힘 있다는 자들을 데려다 앉혀 놓았을 것이다. 경찰서장, 세무서장 등이다. 검사 출신이니 그쪽 인사들을 불러다 놓을 수도 있겠다. 그래놓고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노골적으로 후원금 요구가 있을 것이다.

“미안합니다. 이날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요.”

현수가 초청장을 밀어내자 나성범 보좌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진다.

“이러시면 안 되는데……. 모처럼 초청하신 거니 웬만하면 그 약속 깨고 오십시오.”

또 초청장을 들이민다. 받아줄 이유가 없기에 다시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건 깰 수 없는 약속입니다. 홍 의원님께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리셉션에 참석하지 못하니 양해해 달라고 전해주십시오.”

“……!”

나성범 보좌관의 얼굴이 뻘게진다. 이런 냉대는 처음이다.

“안 오시면 후회할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갈 수 없는 겁니다.”

현수의 이 말은 사실이다.

리셉션이 열리는 시기에 북한의 김정은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낱 지역구 의원이 후원금을 뜯어내기 위해 벌이는 쇼에 어찌 나갈 수 있겠는가!

현수가 고개를 좌우로 젓자 초청장을 회수한다.

“알겠습니다. 의원님께 그렇게 전해드리지요. 그럼 이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몹시 불쾌하다는 뜻이다. 그러거나 말거나이다.

이때 문이 열리며 이 실장이 차를 들여온다.

“어머, 벌써 가시는 거예요?”

“차는 마신 셈 치지요.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나성범 보좌관이 찬바람을 일으키며 나가자 이 실장이 어리둥절해한다.

“이 실장님, 그 차 우리 둘이 마십시다.”

“네? 아, 네에.”

“어! 이건 두향차23)네요?”

“네, 문득 생각이 나서 만들어봤어요. 어릴 때 할머니가 많이 해주셨거든요.”

“아, 그래요? 나도 이건 오랜만이에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맛보았다. 예전의 그 맛이다.

“근데 조금 전에 그분 왜 그렇게 빨리 가셨어요?”

몹시 궁금했나 보다.

“홍신표 의원 보좌관인데 후원금을 내라고 해서요.”

“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는 다른 동네 사람이지만 은정은 이 지역 주민이다.

은정은 보궐선거 때 야당 후보를 찍어주었다. 홍신표에 대해 알아보니 몹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후원금을 달라고 하면 당연히 거절이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여 전후 사정을 알았다는 뜻을 표한 것이다.

“앞으로는 못 오게 할게요. 죄송해요. 바쁘신데 괜한 사람을 들여서.”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3월 1일이 지나면 친구의 아내가 될 여자이기에 현수는 환히 웃어주었다.

“그나저나 회사 일은 어때요? 인원 빨리 뽑아야 해요?”

“네, 요즘 과부하가 걸리는 거 같아요.”

“알았습니다. 최대한 빨리 충원토록 하지요. 혹시 추천할 사람 있으면 추천하세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다렸다는 듯 환히 웃는다.

“…정말 그래도 되요?”

“그럼요. 나보다는 이 실장님하고 뜻이 더 잘 맞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마음에 둔 사람 있으면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추천할 사람 명단을 드릴게요.”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인다.

요즘 취업이 얼마나 힘든가!

번듯한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취직이 되지 않아 백수로 지내야 하는 세상이다.

부모 눈치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인지라 용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알바 자리를 찾지만 그마저도 경쟁률이 엄청나다.

이은정 실장이 추천하려는 인재들은 곧 졸업할 천지대학 무역학과 동기들이다.

서울에 소재한 대학이기는 하지만 일류대학 범주에는 들지 못한다.

하여 졸업과 동시에 거의 대부분 백수로 지내야 한다.

남자들은 궁여지책으로 군대라도 가지만 여자들은 그마저 없어 PC방이나 편의점 알바로 일한다.

얼마 전 이은정 실장은 천지대학 무역학과 학과장의 방문을 받았다. 졸업 전 취업을 사유로 2학기 내내 출석하지 않아도 학점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분이다.

학과장은 이실리프 무역상사에 혹시 빈자리가 있느냐, 있다면 몇 자리나 있으며 언제 충원 계획이 있는지를 물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