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53화 (653/1,307)

# 653

“아공간 오픈!”

“……!”

성녀와 안토니오 모두 놀란 눈초리이다. 아공간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고위 마법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두마트 매장을 털 때 가져온 운동화를 꺼냈다. 국산 브랜드인 르까프 운동화이다.

밑창은 주홍색, 발등은 흰색인 것이다. 정가를 보니 105,000원이라 쓰여 있다.

눈대중으로 가늠한 성녀의 발 크기는 대략 245정도 된다. 신장이 170㎝ 정도 되니 발이 큰 편은 아니다.

현수가 아공간에서 꺼낸 운동화 끈을 조절하는 동안 성녀와 안토니오는 이건 대체 뭔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대강의 준비를 마치곤 2중 바닥 처리가 된 스포츠 양말을 꺼냈다. 양말 없이 얇은 가죽신만 신었는지라 성녀의 발엔 흙이 묻어 있다.

“워싱! 클린!”

샤르르르릉―!

발톱 밑에 끼어 있는 이물질까지 단숨에 제거되자 갸름하면서도 예쁜 발이 드러난다. 스포츠 양말을 신기고 운동화까지 신겨주었다. 끈을 조절하여 매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까지 성녀는 별다른 반응 없이 지켜만 봤다.

“이제 발이 좀 편할 겁니다.”

“이건… 뭐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는 신발입니다.”

“아! 되게 부드럽고 발이 편해요. 어머, 탄력도 있어요. 허공을 딛는 거 같아요. 어머, 어머!”

성녀는 새로 얻은 신발이 몹시 마음에 든다는 듯 이리저리 걸어본다.

“아, 자네에게도 한 켤레 주지.”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운동화가 아닌 등산화와 등산 양말이다. 농지에서 일하기엔 이게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안토니오의 더러워진 발도 워싱과 크린 마법으로 깨끗해졌다.

“방금 전에 보았으니 어떻게 신는 건지는 알지?”

“그, 그럼요.”

안토니오는 황공하다는 표정으로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양말을 받아든다.

“그럼 얼른 갈아 신게.”

“네, 고맙습니다요.”

안토니오에게 등산화를 주는 것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동안 열심히 일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일꾼들 중 제일 똑똑한 두뇌를 가졌기에 가르쳐 준 것을 잊지 않고 잘했다. 그리고 제 일처럼 열심히 했다.

둘째는 방금 전 성녀를 품에 안았던 것을 소문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스캔들이 나면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성녀가 운동화를 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내에게도 주었으니 부담 갖지 말라는 의미이다.

“와아! 이거 발이 되게 편해요. 발바닥이 아프지도 않구요. 정말 좋은데요. 고맙습니다, 백작님!”

“아, 네. 근데 양말을 매일 갈아 신어야 합니다. 제가 몇 켤레 더 드릴게요. 자, 여기. 자네도.”

성녀에겐 발목까지 오는 스포츠 양말 열 켤레를, 안토니오에겐 목이 긴 등산 양말 열 켤레를 주었다.

소중한 물건 받듯 받아 챙긴다.

“그나저나 아까 왜 그렇게 달려오셨습니까?”

성녀는 깜박 잊었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친다.

“아참! 밀 수확량이 대폭 늘어났어요.”

“네?”

“개량된 종자의 밀의 수확량이 더 늘어났다고요.”

“그래요? 얼마나 늘었지요?”

대체 얼마나 늘었기에 이런 호들갑을 보였느냐는 뜻이다.

“백작님 식으로 계산하면 25%가 늘어난 거예요.”

“우와! 정말요?”

기대치 이상이기에 현수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 정말이에요. 가요. 가서 같이 봐요.”

성녀가 손을 내민다. 손잡고 같이 가자는 의미이다.

“…그래요.”

거절하면 무안해할 듯하기에 얼른 손을 잡았다. 그리곤 밀밭으로 향했다.

“자넨 이만 퇴근해도 좋네. 내일 보세.”

“네, 백작님. 이거 고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현수는 성녀의 손이 보드랍지 못하고 꺼끌꺼끌하다고 느꼈다. 매일 농사만 짓기 때문일 것이다.

‘핸드크림을 선물해야겠군.’

현수가 선물을 주려는 덴 이유가 있다. 종자 개량을 위해 협조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의 주식이 밀이니 밀만 신경 써도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런데 현수가 가져온 벼, 콩, 보리, 옥수수, 감자, 고구마, 깨, 커피 등을 정말 세심히 돌봐주었다.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 정도로 애를 썼던 것이다.

“페룸 신관님, 백작님 모시고 왔어요. 결과가 어떻다고요? 다시 한 번 말해 줘요.”

“네에, 성녀님, 어제 것보다 수확량이 4분의 1 정도 늘었습니다.”

“병충해나 이런 건 어때요?”

“아시잖아요. 성녀님이 신성력으로 축복해 준 종자는 병충해를 입지 않는다는 걸요.”

분명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데 페룸 신관은 웃지도 않고 대꾸한다.

“보셨죠? 보셨죠? 25%나 늘었대요.”

“대단하네요. 어떤 방법을 쓴 겁니까?”

“백작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이화수분을 해봤어요.”

이화수분(Cross Pollination)이란 다른 말로 타가수분이라고도 한다. 같은 종의 식물에서 한 식물 개체의 꽃가루를 다른 식물 개체의 암술머리에 붙이는 것이다.

“아! 그랬군요. 잘하셨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칭찬은 당연한 것이다.

“밀의 품종이 더 개량되었어요. 이 정도면 만족해요. 사실은 10%만 더 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성녀의 말은 사실이다. 전대 신관으로부터 시작된 이 일을 물려받을 때 10% 증산이 목표였다. 그런데 단숨에 그것의 2.5배를 달성하였으니 만족한 것이다.

“바라던 대로 돼서 좋군요.”

“내일부터는 백작님과 같이 교배할게요. 우리가 교배육종을 하면 더 나은 후손이 나올 거예요.”

“네? 아, 네에.”

현수가 잠깐 말을 끊은 것은 묘한 뉘앙스 때문이다.

성녀의 말은 벼나 옥수수 같은 작물의 교배육종을 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둘이 결합하여 아이를 낳으면 아주 괜찮은 자식이 나올 것이라는 뜻으로 들렸던 것이다.

착각은 자유이니 현수를 욕할 일은 아니다.

다음 날부터 둘은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각종 작물의 수확량 늘리기에 힘썼다. 많은 의견을 주고받는 동안 성녀는 교배 전문가가 되었다.

지구의 지식이 많이 전수된 결과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흐음, 오늘이 이곳 날짜로 11월 23일인가? 여기 온 지도 꽤 되었네. 그나저나 빌모아 일족은 준비를 마쳤는지 모르겠군. 한번 가 볼까?”

지난 며칠 동안 현수는 알베제 마을을 다녀왔다.

현수가 이실리프 마탑주라는 소리에도 놀라지 않았다. 테리안 왕국의 귀족이 와서 이미 말을 전한 까닭이다.

이곳이 이실리프 령이 되었다는 말에 몹시 좋아한다. 현수를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동안 쉐리엔을 많이 채집해 놓았다.

하여 컨테이너를 거둬들였다. 날씨가 점점 추워질 것이기에 이곳에서의 채취는 이제 끝이다.

내친김에 올테른에도 들렀다. 예상대로 케이상단 서기 알론은 착실하게 쉐리엔 채집을 끝내놓은 상태이다.

현수는 알베제 마을 인근이 이실리프 령이 되었음을 알렸다. 이에 알론은 즉각 상단 지부를 설치하겠다고 화답했다.

환영할 일이기에 그러라 하곤 컨테이너를 회수했다.

다시 알베제 인근으로 귀환한 현수는 플라이 마법으로 영지 곳곳을 살피며 적당한 입지를 찾아냈다. 지형이 편평하여 큰힘 들이지 않고 성을 조성할 만한 곳이다.

뒤쪽엔 절벽이 있는데 석재를 얻기 쉽다. 좌우로 제법 큰 개울이 흐른다. 용수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홍수나 가뭄을 고려해 봤을 때 상당히 괜찮은 곳이다.

문제는 몬스터이다. 코볼트, 오크, 고블린은 물론이고 트롤과 오우거 등이 그 지역을 중심으로 서식하고 있었다.

그 녀석들을 멀리 내쫓는 건 라세안에게 맡겼다.

라세안의 임무는 내쫓은 몬스터들이 다시 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라세안은 큰소리 탕탕 쳤다.

몬스터들을 아예 산맥 너머로 보내 버린다는 것이다. 기왕에 그럴 거면 브론테 왕국으로 보내라고 했다.

이 나라는 일전에 테리안 왕국을 공격했다가 현수에게 작살난 흑마법사들이 판을 치는 곳이기도 하다.

라세안은 골드 드래곤 제니스를 불러 일을 하겠다고 했다. 혼자보다는 둘이 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제니스가 오겠느냐는 물음에 하인스라는 이름을 팔겠다고 한다.

다시 말해 현수가 불렀으니 오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처절하게 깨진 바 있기에 부르면 올 것이라는 것이 라세안의 의견이다. 하여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라세안이 몬스터 몰이를 하는 동안 현수는 적당한 곳을 찾아 드워프들을 위한 임시 거처를 마련해 놓았다. 컨테이너를 꺼내놓은 것이다.

그리곤 플라이 마법과 메탈 디텍션 마법으로 금, 은, 동, 철 광맥 등을 찾아냈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여러 광맥을 찾을 수 있었다.

이실리프 영지엔 매장량이 풍부한 철광이 세 개, 은광 한 개, 동광 두 개가 있다. 그리고 미스릴 광맥도 하나 찾았다.

뿐만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광맥을 둘 더 찾았다.

다행히도 드워프들의 거처는 그것들의 중심에 있는 석산이다. 바위를 깨고 들어가 아늑한 집을 만들 것이다.

이러는 동안에도 매일 성녀와 이마를 맞대고 종자 개량 작업을 진행했다. 성녀는 현수가 최소 7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이 사실은 같이 작업하는 페룸 신관과 성녀, 그리고 안토니오만이 아는 일이다.

셋은 현수가 만들어주는 음식에 환장을 한다.

페룸 신관은 닭 가슴살 샐러드에 푹 빠져 있고, 안토니오는 삼겹살과 소주라면 환장한다.

성녀는 불고기와 잡채, 그리고 비빔밥을 좋아한다.

특히 비빔밥은 고추장이 들어 있어 매울 텐데 아주 맛있게 먹는다.

하여 하루에 한 번은 비빔밥을 대령해야 했다.

“이러다 여기 음식 못 먹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비빔밥 등을 먹을 때마다 성녀가 하는 말이다. 음식의 맛이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리아 제국은 정말 멋진 곳인가 봐요. 이런 맛난 음식도 많으니까요. 언제고 한 번은 가보고 싶어요.”

이 말은 일이 바빠 샌드위치를 만들어줬을 때 한 말이다.

“아! 어쩜 이런 맛이 있죠? 정말 맛있어요. 매일 이런 것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약과와 사과주스를 먹고 한 말이다.

‘이러다 내가 가고 나면 이곳 음식을 못 먹을지도 몰라.’

성녀가 요즘 매일 아침을 굶는다는 이야길 들은 이후의 생각이다.

성녀의 거처인 성녀전 시녀들의 말에 의하면 요즘은 그곳에서 만드는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다 음식을 앞에 둬도 빵만 조금 떼어 먹고는 물린다. 현수가 주는 부드럽고 맛난 음식 때문일 것이다.

‘흐음, 대책을 세워야 해.’

종자 개량작업이 끝나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 그리곤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쯤 오게 될 것이다.

확인해 보니 신성력 축복을 받지 못한 쪽은 수확량이 확연히 떨어진다. 병충해에도 훨씬 약하다.

따라서 매년 성녀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일 년에 두어 번 오는 걸로 만족하지 못할 텐데 어쩌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아! 그렇지.’

아공간엔 이곳 사람들도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온갖 음식이 있다. 3분 짜장, 3분 카레부터 시작하여 햇반도 있고 컵라면과 일반 라면도 다양하다.

통조림도 있다.

‘그래, 보존 마법진을 그려놓고 음식을 좀 주면 되겠군.’

라면의 경우는 성녀가 늙어 죽을 때까지 삼시 세 끼 배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다. 몇 개의 냄비와 가스버너, 그리고 부탄가스를 주고 끓여 먹는 방법을 알려주면 될 것이다.

‘근데 그거 몸에 안 좋다고 하던데.’

한국의 엄마들은 자식에게 라면을 먹이려 하지 않는다.

모 라면 회사에서 만든 스프에 1급 발암 물질인 벤조피렌이 함유된 것으로 판명되어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었다.

스프의 원료로 사용된 지나산 고추씨 기름 때문이다.

벤조피렌은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일으켜 폐암, 위암, 피부암, 췌장암, 유방암 등 각종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 물질이다.

이런 것이 들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성녀에게 줄 수는 없다. 온통 선의로만 대해주는데 어찌 그러겠는가.

“라면이 제일 만만한데 그건 안 되니… 쩝! 아쉽군.”

현수는 무엇을 얼마만큼 꺼내줄까 고심했다.

“성녀님, 제게 개인적 용무가 있어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습니다.”

“어디 멀리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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