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55화 (655/1,307)

# 655

모든 도로는 중심부가 약간 올라가고 좌우엔 U자 관이 묻힌다. 이것을 통해 쏟아진 우수가 저수지로 모여든다.

그리고 각 가정마다 상하수도 설비가 갖춰진다.

파이프는 드워프들이 만들어내며 아르센에 없는 고무 재질은 마법으로 대체하면 된다.

생활하수는 별도의 하수관로를 통해 집 수조로 모여든다. 이곳에서 정화된 뒤 저수지로 이동하는 것이다.

하수도의 경우는 만일을 대비해 사람이 들어가서 청소 작업을 할 규모로 조성할 계획이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거나 장마가 질 경우에도 역류하거나 홍수가 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엌엔 가스레인지 역할을 하게 될 마나레인지를 설치할 것이다. 1서클 마법인 파이어를 응용하여 만들면 된다.

이것의 작동을 위해 세심히 설계된 마법진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건 차차 만들 생각이다.

마을 곳곳에 공동 화장실이 만들어지고 그 지하엔 정화조가 묻힌다. 이것에 모인 분변은 타임 패스트 마법으로 빠른 시간 내에 부패시킨 후 유기농 퇴비로 사용될 것이다.

쉐리엔의 지속적인 채취를 위한 공동 작업장도 지어진다.

이곳에서 씻고 다듬어진 것들은 작업장 뒤 야적장에 놓일 컨테이너에 담기게 된다.

작업자들의 동선을 충분히 고려한 설계이며 배치이다.

다음은 대규모 팰릿 제조 공장이다.

영지를 개발하려면 부득이하게 개간을 해야 한다.

이때 얻어진 부산물로 팰릿을 만들어 영지민의 가정을 덥히는 연료로 쓸 계획이다. 규모가 큰 이유는 이곳에서 만들어진 팰릿을 지구로 가져갈 것을 염두에 둔 때문이다.

“아무튼 여러분이 여기까지 해주시면 그 후의 일은 인간들이 맡아서 하게 될 겁니다.”

“알겠네. 근데 이거 정말 대단하네.”

현수가 꺼내놓은 배치도를 보고 놀란 것이다.

드워프들은 작업할 때 머릿속으로만 계산한다.

물론 대강의 스케치는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주먹구구식이다. 그럼에도 매우 아름다운 조형물을 만들어낸다.

공학에 타고난 일가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세밀한 설계도가 들어가면 어찌 되겠는가!

“참, 제가 원하는 건축물의 모양입니다. 잘 보십시오.”

현수는 태블릿PC에 보관해 놓은 각종 건축물을 보여주었다.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종로구 혜화동 한옥 청사이다.

그리고 각종 한옥들을 보여주었다.

이것들 중에는 경주에 있는 한옥 호텔 ‘라궁’과 여수에 있는 한옥 호텔 ‘오동재’도 있다. 영암에 있는 한옥 호텔 ‘영산재’와 북촌 ‘한옥마을’도 소개되었다.

드워프들은 한옥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연발했다.

다음은 창덕궁의 원림(園林)인 비원(秘苑) 등 한국식 정원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또 한 번 탄성을 내지른다. 특히 단청의 아름다움에 황홀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부용지, 부용정, 규장각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보는 건축 양식이라 그런지 다들 눈빛을 반짝인다.

다음엔 모스크바에 있는 성 바실리 대성당(Храм Василия Блаженого)의 사진이다.

야경 사진을 보여주니 눈이 커진다.

이건 성녀도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아름다워서일 것이다.

이어서 여러 장의 내부 사진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인도의 타지마할(Taj―Mahal)이다.

‘빛의 궁전’으로 불리는 이것은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하여 세운 무덤이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이게 무덤인지 모른다.

아름답다고 감탄사를 터뜨리기에도 바쁘다.

다음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에 있는 ‘킹 루드비히의 궁전’이다. 일명 ‘백조의 성’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어서 영국 남부 바닷가 브라이튼에 있는 ‘로열 파빌리온(Royal Pavilion)’도 보여주었다.

현수는 한옥과 바실리 성당, 타지마할, 백조의 성, 로열 파빌리온을 한 화면에 띄워놓고 설명을 이었다.

“이 건축물엔 바실리라는 이름을 붙이겠습니다. 이 모양으로 영주성을 축조해 주십시오.”

나이즐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장 화려하니 영주성으로 합당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이건 루드비히라 이름 붙이겠습니다. 이건 여기에 지어주십시오. 별장으로 쓰겠습니다.”

영지 오른쪽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암석으로 이루어진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다.

현수가 가리킨 곳은 그 절벽 위쪽이다.

“이건 타지마할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 지어주십시오. 도서관으로 쓸 생각입니다.”

이번에 가리킨 곳은 편평한 농지가 조성될 인근에 위치한 야트막한 언덕 위이다.

“이건 파빌리온이라 이름 붙이겠습니다. 여기에 지어주십시오. 아카데미로 사용할 계획입니다.”

타지마할과 그리 멀지 않은 높은 언던 위이다.

“마지막으로 이건 한옥이라 이름 붙이겠습니다. 이건 바실리 성당 뒤쪽에 지어주십시오. 저와 제 가족이 머물 공간입니다.”

나이즐은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안다는 듯 안색이 침중하다. 일족이 총동원되어도 십수 년은 걸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술 더 뜬다.

“이곳에서 시작하여 여기, 여기를 거쳐 이곳까지 이렇게 외성을 조성해 주십시오. 외성의 높이는 20m, 상부의 폭은 8m 정도면 될 듯합니다. 그리고 이걸 보십시오.”

현수는 고구려 성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특성을 설명했다.

돌은 쐐기 형으로 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그 돌을 쌓을 때 반드시 한 개의 돌이 여섯 개의 돌에 둘러싸이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한 개의 돌이 빠지더라도 다른 돌이 무너지지 않는다.

사방으로 난 문은 ‘옹성(甕城)’으로 보호한다.

옹성이란 성문을 지키기 위해서 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이다. 옹성 안으로 적의 군사들이 들어오면 사방에서 공격할 수 있다. 또한 성문을 깨기 위한 충차의 사용을 어렵게 한다.

성벽엔 ‘치(雉)’도 설치한다.

성벽을 돌출시켜서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전면과 좌우 양 측면, 즉 삼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만드는 시설물이다.

성벽 위에는 ‘여장(女墻)’을 설치한다.

적의 화살 공격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고 아군은 적군을 향해 활을 쏠 수 있는 것이다.

외성이 완성되면 다음은 내성 축조이다. 외성과 같은 형식이다. 이것의 안쪽엔 현수를 비롯한 수뇌부가 머물 곳이다.

“이보게, 하인스. 이건 일이 너무 크네.”

말이야 바른 말이다. 평범한 백작가 정도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야길 들어보니 제국의 황가도 이에 미치지 못할 정도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이 순간 현수와 나이즐은 생각하는 정도가 다르다.

현수는 지구에 실존하는 크기 정도면 적당하다 생각하고 있다. 반면 나이즐은 지구보다 큰 규모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예를 들어, 현수의 가족이 머물 한옥은 전각의 형태로 지어지며 200실 규모로 조성된다.

이것들이 배치될 공간은 약 10만여 평이다. 비원 전체의 규모가 10만 3,000여 평이니 얼추 비슷하다.

부용지와 같은 호수는 세 개가 만들어진다. 이것들은 잔잔하게 흐르는 물인지라 뿌옇지 않고 맑다.

곳곳에 징검다리도 만들어지고 운교와 제법 규모가 큰 인공 섬도 조성된다.

한국의 그것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희대의 한옥 단지가 아르센 대륙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걸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선 골치가 아프다.

아무것도 없는 산속에 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압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지시를 따를 솜씨 좋은 장인들을 데리고 올 겁니다. 그리고 5,000명 이상의 일꾼이 동원되어 도울 겁니다. 이 인원은 나중에 더 늘어날 거구요.”

테리안 왕국이 브론테 왕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 생포한 포로 5,000명을 두고 한 말이다. 전쟁에 동원될 정도로 신체 튼튼하니 웬만한 막노동은 충분히 견뎌낼 것이다.

나중에 더 늘어날 인원은 매지션 로드를 알현하기 위해 왔다가 눌러앉을 마법사들과 그랜드 마스터의 검을 보기 위해 찾아올 기사와 기사 수련생들을 뜻하는 말이다.

이들은 혼자 올 리가 없다. 따라서 이들을 수행하는 사람의 숫자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들까지 영지 건설에 동원할 생각을 품은 것이다.

“아! 그런가? 그렇다면… 알겠네. 우리 빌모아 일족이 이 일을 맡지. 상당히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아 기대되네.”

“고맙습니다. 자, 그럼 이제 가실까요?”

“알겠네.”

고개를 끄덕인 나이즐이 아우들에게 뭔가 이야길 하자 드워프들이 일제히 줄을 선다.

“1조 진 안으로!”

“네, 족장님.”

나이즐의 명에 따라 드워프 50명이 불안한 시선으로 마법진 위에 선다.

“마법 구현!”

마법진 전체가 푸르스름한 빛으로 감싸인다. 그 빛이 점점 진해지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사라진다.

진 위에 있던 50명도 사라졌다.

“자, 다음 올라서.”

“네, 족장님!”

나이즐의 명에 따라 또 다른 드워프 50명이 진 위에 올라선다. 이들도 금방 사라졌다. 현수는 계속해서 마법진을 구현시켰다. 그렇게 해서 이동한 인원은 1,483명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족장인 나이즐과 그의 다섯 아우이다.

빌모아 일족의 총수는 1,489명이다.

“자, 이제 우리도 가죠.”

“그러세.”

“네, 그래요.”

모두가 진 위에 올라섰다.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일행의 신형 역시 파란 빛에 감싸이다 사라진다.

“으으음! 으웩! 으웩!”

나이즐과 형제들이 허리를 숙여 헛구역질을 한다.

“처음에만 잠시 어지러울 뿐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곳이 이실리프 영지입니다.”

“아! 그렇군요.”

성녀는 언덕 아래로 보이는 울창한 숲을 보며 감탄사를 터뜨린다. 늘 편평하고 사방이 탁 트인 신전 농지에만 있었기에 이런 광경은 처음인 것이다.

이미 이동한 드워프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쇠로 만든 컨테이너를 보며 감탄하는 중이다.

“일단 가시죠.”

일행을 이끌고 컨테이너를 배치해 둔 곳으로 갔다. 중심부는 너른 광장처럼 비어 있다.

일족을 1,500명으로 예상했기에 주거용 컨테이너 숫자는 300개이다. 이 밖에 창고용으로 100개를 더 두었다.

“아공간 오픈! 출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드워프들의 이삿짐이 튀어나온다. 집어넣을 때의 모양 그대로이다.

“맥주는 저기에 보관하십시오. 음식물은 저기 저걸 이용하시구요. 식사는 저기서 준비하면 될 겁니다.”

드워프들은 공동 취사, 공동 급식 시스템을 쓴다. 일하느라 바쁜데 가정마다 음식 만드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다.

“다른 건 우리가 할 테니 맥주만 움직여 주시게.”

그러고 보니 맥주가 이삿짐의 절반이다. 하긴 어마어마한 양을 가져다주었으니 그럴 것이다.

“그러죠. 아공간 오픈! 입고!”

맥주만 아공간에 담고는 성큼성큼 걸어 4℃짜리 항온마법진을 그려놓은 컨테이너로 들어가 이것을 담았다.

드워프들이 했다면 하루 종일 걸릴 일을 단숨에 해결한 것이다. 성녀가 졸졸 따라다녔지만 귀찮지는 않았다.

보기만 할 뿐 꼬치꼬치 따져 묻지를 않은 때문이다.

컨테이너 문을 닫고 돌아서니 드워프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그사이에 각각의 처소를 정해준 모양이다.

“족장님, 저는 우물을 만들겠습니다.”

“그러시게.”

나이즐은 이삿짐 정리하게에도 바쁘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성녀님은 이쪽으로 오시죠.”

“네? 아, 네.”

성녀를 데리고 간 현수는 위그드라실의 잎사귀를 꺼냈다. 토들레아 남매가 준 것이다.

“그건 뭐예요?”

“세계수인 위그드라실의 잎이에요. 이 잎사귀가 아래로 향하는 곳에 수맥이 있는 겁니다.”

“아! 그래서…….”

성녀는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수맥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아냈는가 하는 것이다. 위그드라실의 잎사귀를 인간이 지니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한 때문이다.

이런 의문을 가진 건 요즘 들어 신전 농장의 물이 시원치 않아서이다. 샘물이 조금씩 줄어들어 걱정되던 차이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현수가 걸음을 멈춘다. 가장 확실히 잎사귀가 아래로 향한 곳이다.

“흠, 여기군! 디그, 디그, 디그!”

마법을 구현시킬 때마다 땅이 푹푹 파인다. 포클레인으로 파내는 것보다도 빠르다. 알베제 마을과 다프네 마을에서 만든 경험이 있기에 실수 없이 우물 하나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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