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56화 (656/1,307)

# 656

자리를 옮겨 또 하나의 우물을 만들었다.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곳에 우물 펌프를 설치했다.

“후와, 이제 끝났네요.”

“네, 근데 배 안 고프세요?”

“성녀님은 배고파요?”

쪼르르르륵∼!

대답은 성녀의 배가 한다.

부끄러운 것을 들켰다는 듯 얼굴이 빨개진다. 이런 거 보면 확실히 순진하다.

“그럼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볼래요? 근데 조금 매울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그럼요. 저 매운 거 좋아해요.”

환히 웃는데 너무도 아름답다.

“좋아요. 그럼 잠깐만요. 아공간 오픈! 출고!”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주방 기구가 완벽하게 갖춰진 취사용 컨테이너이다. 현수가 가스레인지를 켜고 냄비에 생수를 넣는 동안 성녀는 이것저것을 들여다본다.

모든 게 신기하기 때문이다. 신전 근처 농지에 머무는 동안엔 한 번도 꺼내지 않아서 처음 보는 것이다.

아무튼 냉장고를 열었더니 불이 켜지면서 싸늘한 냉기가 뿜어진다.

전기가 없음에도 이게 가능한 이유는 문이 열리면 라이트 마법이 구현되도록 한 때문이다.

냉기는 항온 마법 덕분이다.

냉동실은 ―20℃이고 냉장실은 2℃가 유지되도록 했다. LG전자에서 제안한 겨울철 적정 온도를 참고한 것이다.

유리로 만든 락앤락 용기를 꺼내보곤 나직한 탄성을 낸다.

“아! 어쩜…….”

백작가의 여식으로 태어났는지라 유리가 보석의 일종이라는 걸 안다. 그 비싼 유리로 이렇듯 완벽하게 똑같은 것들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놀라웠던 것이다.

“어머! 이건… 그거네요.”

성녀가 좋아하는 사과주스가 유리병에 담겨 있다.

“마시고 싶으면 마개를 옆으로 돌려서 마셔요.”

“네? 어떻게요?”

성녀가 눈을 크게 뜬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현수는 팔팔 끓기 시작한 물에 스프를 털어 넣었다. 그리곤 성녀의 손에 있는 사과주스를 따주었다.

딱―!

“자, 이제 마시면 돼요.”

“고마워요.”

성녀는 사양치 않고 주스를 마신다. 하루 종일 따라다니느라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크으으!”

맛있고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는 사이 면이 투입되었다. 성녀는 신장 170㎝에 체중 50㎏ 정도 된다.

한국으로 쳐도 이만하면 날씬한 몸이다. 그런데 먹는 양이 상당히 많다. 물론 하루에 두 끼만 먹는 식습관 때문이다.

세 끼에 취할 영양분을 두 끼에 얻어야 하니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라면으로 치면 매끼에 두 개 반 정도를 먹는다.

그렇기에 투입된 면은 네 개다. 성녀가 두 개 반, 현수가 한 개 반이다.

“근데 그 꼬불꼬불한 건 뭐예요?”

라면 스프에 벤조피렌이 들어 있을 수 있어서 한 번도 먹이지 않아서 이렇게 묻는 것이다.

“아, 이건 라면이란 건데, 오늘처럼 야외에 나왔을 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죠. 조금 매울 겁니다.”

“어머! 저 매운 거 좋아하잖아요. 하아, 벌써부터 침이 고여요. 얼마나 맛있을지 너무너무 기대돼요.”

“알았어요. 금방 되니까 거기 앉아요.”

컨테이너 내부엔 식탁과 두 개의 의자가 있다.

성녀가 자리에 앉자 포크 두 개를 주었다. 면발 먹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다 되었네요. 하하,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팔팔 끓는 냄비를 들어 식탁 가운데에 놓았다. 그리곤 적당량을 덜어주었다. 그리곤 단무지를 넉넉하게 꺼내놓았다.

성녀가 매운 것을 좋아한다지만 한국사람 식성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먹어요.”

맞은편에 앉아 젓가락으로 면발을 들어 올려 입에 넣자 포크로 따라 하려고 한다. 그런데 들어 올리면 빠져나간다.

“근데 왜 난 먹는 게 달라요? 나도 그거 주세요.”

“이거요? 이건 먹기가 더 어려울 텐데요?”

“그래도 괜찮아요. 나도 하인스님과 같은 거 줘요.”

“정말요? 이거 웬만해선 못 다루는 거예요.”

“그래도 줘요. 나도 그걸로 먹을래요.”

성녀가 이러는 이유는 포크보다 젓가락이 훨씬 먹기 쉬운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이 같은 걸 썼으면 하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다.

종자 개량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모로 하인스를 살펴보았다.

고위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오만하지 않다. 신관들은 물론이고 허드렛일을 하는 일꾼에게까지 모두 상냥하게 대한다.

실수를 저질러도 너그럽게 이해해 준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지식을 다 꿰고 있는 현자이다.

처음엔 마법사라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마법 이외의 부문에도 박식을 넘어 장인 수준이다.

자기 나라의 부강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여자로서 마음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날 이후 면사를 떼어낸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가깝게 지내고 싶은 것이다.

현수가 젓가락을 주고 시범을 보였다.

똑같이 해보려 하는데 될 리가 있겠는가!

수년 전, 영국의 기네스대회를 취재하러 간 방송국 PD는 ‘젓가락으로 콩 옮기기’ 세계기록 보유자를 취재하게 되었다.

녹화되는 동안 세계기록 보유자는 열심히 콩을 옮겼다. 그런데 PD가 보기엔 별것도 아닌 듯하여 도전하였다.

그리고 단숨에 그의 기록을 깨버렸다.

세계기록 보유자는 머쓱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 연습하는 자신보다도 훨씬 더 능숙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금속 젓가락을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나무에 비해 더 무겁기 때문에 손의 근육을 더 정교하게 사용하게 된다. 이것은 두뇌 발달로 이어진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솜씨가 뛰어난 것이다.

일례로 2013년 7월, 독일에서 개최된 기능올림픽에서 한국은 통산 18번째 우승을 했다. 4년 연속 우승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금속 젓가락을 쓴 것이 한 원인이다.

실제로 여러 나라 사람이 근무하는 실험실에서 실험용 쥐의 꼬리 핏줄에 주사를 놓는 사람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아주 가느다란 핏줄에 신속, 정확하게 주사를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녀는 현수가 준 젓가락으로 어떻게든 면발을 집어 들려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오기가 돋는지 아랫입술을 앙다물고 계속해서 시도한다.

현수가 계속해서 시범을 보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잉, 나는 왜 못하는 거죠?”

식탁 위에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하는 말이다. 성녀라도 성질은 있나 보다.

현수는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녀의 뒤로 갔다.

젓가락을 들어 손에 끼워주었다. 그리고 성녀의 손은 현수의 손으로 감싸졌다. 다음엔 천천히 면발을 들어 올렸다.

성녀는 얼른 면을 입으로 빨아들인다. 떨어지기 전에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후루루룩! 쩝쩝―!

“또요.”

대답 대신 면을 들어 올린다. 또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후루루룩! 쩝, 쩝, 쩝―!

“후와, 맛있어요. 또요.”

또 집어 들게 해줬다. 얼른 입에 넣고는 맛있게 먹는다. 그렇게 하는 동안 성녀의 체취가 느껴졌다.

아까와는 다른 냄새가 풍긴다.

이번엔 상당히 괜찮은 냄새이다. 그래서 그 즉시 본인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서이다. 결혼을 한 이후 시도 때도 없이 반응하는 어떤 주책없는 녀석 때문이다

맞은편에 앉아 느긋하게 라면을 먹었다. 성녀의 젓가락질은 여전히 서툴기에 집어 들면 대부분이 밑으로 떨어진다.

그러기 전에 얼른 먹겠다는 듯 계속해서 혀를 날름거린다. 웃겼지만 웃지는 않았다.

먼저 다 먹은 현수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컵에 따라놓았다. 당연히 유리컵이다.

처음엔 맛있다고 하더니 점점 매운 맛을 느끼는지 계속해서 물을 들이켠다. 예쁘고 귀여워 보인다.

그 즉시 밖으로 나왔다. 카이로시아과 로잘린이 있음에도 다른 여자를 탐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현수로서도 불가항력이다.

성녀에겐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고상함과 섹시함같이 대치되는 느낌이 공존한다. 지적인 이미지와 백치미 또한 동시에 느껴진다.

사람들이 좌우 눈동자의 색깔이 다른 오드 아이2)를 보고 신비롭다거나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것과 같다.

아무튼 현수가 사고 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성녀의 스스럼없는 태도 때문이다.

조금 전 젓가락질을 가르쳐 주기 위해 뒤에 있을 때 몸을 밀착시켰다. 그래야 더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럴 때 흠칫거린다. 그런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손을 잡을 때도 거부 반응이 없다.

아무 때나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사내로선 착각하기 쉬운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흐으으음! 아무래도 지구를 다녀와야 할 것 같네.”

넘치는 혈기를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성녀가 라면을 먹는 동안 하늘 높이 올라 영지 전체를 조망했다. 인간이 거주하기 위해 베어내야 할 나무가 엄청나다.

워낙 삼림이 우거진 곳인지라 그렇게 베어내도 괜찮을 듯싶다. 지구의 아마존보다도 울창한 지역이 대륙 전체의 99%이기 때문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 중 97%는 인간이 마실 수 없는 바닷물이다. 2%는 빙하이므로 나머지 1%만 사용 가능한 물이다.

이곳 아르센 대륙에선 인간이 사용하는 땅이 그와 비슷한 비율이라는 느낌이다.

드워프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다. 혹시 몰라서 와이드 센스 마법을 펼쳐보았다.

반경 5㎞ 내엔 움직이는 물체가 없다. 몬스터를 쫓아내랬더니 사슴 같은 동물까지 모조리 쫓아낸 모양이다.

“라세안, 어디에 있나?”

마나를 실어 음파를 보내니 이내 답이 온다.

“아, 하인스, 여긴 테리안 왕국 숲이네. 자넨 어딘가?”

“나는 이실리프 영지에 왔네. 라수스 협곡에 살던 드워프들을 이쪽으로 이주시켰거든.”

“그래? 그 녀석들, 내게 공물을 바쳐야 하는데…….”

“그쪽은 철 광맥이 다되었대. 그리고 내 성도 지어야 해서. 그나저나 잠깐 이쪽으로 와.”

“왜? 나 바빠. 이놈들, 브론테 왕국으로 보내야 하잖아.”

“네가 너무 열심히 일해서 그래. 잠깐만 와봐. 여기 좌표는 36RS―18T6―S327―EEV3이야.”

“오케이. 알았어. 잠깐만.”

라세안과의 통신을 끝낼 때 성녀가 다가온다.

4장 내 여자니 넘보지 말게

“방금 누구랑 말씀하신 거예요?”

“아! 여기서 사귄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랑 잠깐 작업 얘길 한 겁니다.”

“그래요?”

성녀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허공에서 스르르 돋아나듯 나타나는 신형이 있다.

“누구……?”

“제 친굽니다. 라세안이라 하지요.”

“어이, 친구! 응? 못 보던 아가씨가 있네? 친구, 이 아가씨는 또 누구야?”

라세안은 잘빠진 성녀를 다소 음흉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어디서 작업해서 꾄 아가씨냐는 표정이다.

“라세안, 가이아 신전의 성녀님이네.”

“가이아 신전? 그럼 라이셔 제국의?”

“그래.”

“아! 그랬군. 나는 라세안이라 한다. 내가 누군지는 이 친구에게 들었지?”

“……!”

느닷없는 반말에 성녀는 눈만 깜박이고 있다. 이쯤해서 설명해 주지 않으면 실수할 듯싶어 얼른 나섰다.

“라수스 협곡의 지배자 라이세뮤리안입니다, 성녀님.”

“네? 그럼 중간계의 조율자이신…….”

“그래, 레드 드래곤이지. 하인스와는 친구 사이이네.”

“……!”

드래곤이 제 입으로 인간과 친구라 하니 성녀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현수를 바라본다.

“이 친구와는 어떤 관계지? 매일 밤 같은 침상을 쓰나?”

“네?”

성녀가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다.

“이 친구가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인 건 알지? 10서클 대마법사이고 그랜드 마스터라는 것도 아는 거야?”

“네에?”

성녀의 눈이 확연하게 커진다.

마법사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실리프 마탑주이자 매지션 로드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그랜드 마스터라니!

성녀는 순간적으로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중이다. 넋이 나가 버린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세안의 말이 이어진다.

“이런! 또 말 안 했구나. 아무튼 넌 친구의 여자니까 앞으로 편하게 대해도 된다.”

“네에?”

“내 친구의 여자인 걸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 친구에게 잘해라. 아주 괜찮은 녀석이니까.”

“네에?”

성녀가 또 반문할 때 라세안의 시선이 현수에게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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