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58화 (658/1,307)

# 658

그러다 우연히 드워프가 만든 곡괭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인간이 만든 것보다 20배는 더 튼튼했다.

당연히 매우 오래 사용하였다. 하여 서거한 전임 황제에게 부탁하여 드워프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라이셔 제국 어디에도 드워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현수가 드워프를 만나러 간다고 하자 떼를 써서 따라온 것이다.

성녀는 지구에서 가져온 종자들을 교배육종 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소원 한 가지 들어주기를 조건으로 걸었다.

이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 바 있다. 그러면서 본인의 능력이 닿는 것만 들어준다는 전제 조건을 붙였다.

물론 성녀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때 성녀가 바라던 소원은 라이셔 제국엔 없는 드워프와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신전 농장에서 쓸 튼튼한 농기구가 절실히 필요한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이 소원인지 말도 하기 전에 이곳에 왔으니 현수는 조건을 만족시킨 것이다.

물론 본인은 모른다.

하지만 속내 앙큼한 성녀는 짐짓 시치미를 뗀다.

“네? 농기구 좀 만들어주시면 안 돼요?”

“안 될 것은 없지만 지금은 이삿짐을 정리해야 하고, 하인스가 의뢰한 일도 해야 하는데.”

나이즐이 난색을 표한다. 말한 대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보다 바실리 성당이나 한옥 같은 멋진 건축물들을 하루라도 빨리 축조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농기구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보람을 느낄 일이다.

나이즐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을 때 현수가 나섰다.

“성녀님, 농기구는 내가 어떻게 해볼게요.”

“치이! 인간 대장장이가 만든 건 튼튼하지 못해서 오래 못 쓴단 말이에요.”

성녀는 드워프가 청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중간에 끼어드는 현수를 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튼튼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인간 대장장이가 만든 건 안 그렇다니까요.”

“아공간 오픈!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현수가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쟁기이다. 이건 소나 말, 기계 등의 힘을 이용해 논밭을 가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이다.

이것으로 땅을 갈아엎으면 잡초가 제거되고 토양을 부드럽게 일궈준다.

현수가 꺼낸 것은 끝 부분이 쇠로 되어 있다. 오로지 나무로만 만들어진 이곳의 그것보다 훨씬 든든하다.

“이건……?”

성녀의 눈이 반짝인다. 내친김에 아공간에 담겨 있는 나머지 농기구들도 꺼냈다. 삽, 곡괭이, 갈퀴, 괭이 등이다.

“우와, 이게 다 뭐예요?”

“우리 리아 제국에서 사용하는 농기구입니다. 이 정도 품질이면 되죠?”

“그, 그럼요. 근데 많이 필요해요.”

“필요한 만큼 구해드리죠.”

현수의 흔쾌한 대답에도 성녀는 뭐라 말하지 않고 이것저것 만져본다. 특히 삽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이곳의 삽은 손잡이가 없다.

그렇기에 직접 흙 파는 시늉을 했다. 발로 밟고 흙을 떠내는 모습을 보더니 눈빛을 반짝인다.

라이셔 제국의 삽보다 훨씬 효율적이란 것을 느낀 것이다.

한편, 나이즐은 곡괭이에 시선을 주고 있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크지만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를 알아본 것이다.

“내게도 하나씩 줄 수 있는가?”

“그러죠.”

각종 농기구를 한 벌 더 꺼내주었다. 기왕에 꺼내는 김이라 혹시 몰라 딱 한 대 남겨주었던 리어카도 한 대 꺼냈다.

작업하는 데 편하게 쓰라는 뜻이다.

성녀의 눈이 대번에 커진다.

“이건… 곡식 운반할 때 쓰는 거예요?”

“맞습니다. 리어카라고 하는 건데 물건 운반할 때 사용하는 겁니다. 이렇게 쓰죠.”

삽, 곡괭이, 호미, 괭이, 낫 등을 잔뜩 얹어놓고 한 손으로 움직여 보였다.

“호오, 이거 정말 쓸 만한 물건이군.”

나이즐이 리어카의 손잡이를 잡고 한 말이다. 분명 물건이 실려 있지만 무게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렇죠? 근데 이걸 사용하려면 반듯하고 탄탄한 도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겠지. 근데 이 시커먼 건 뭔가? 말랑말랑한데.”

워낙 힘이 좋기에 탱탱한 타이어가 말랑말랑하다 느껴진 모양이다.

“그건 타이어라는 건데 어스 대륙의 특산품이라 여긴 없는 겁니다.”

“아! 그런가?”

나이즐은 리어카의 요모조모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이거… 신전 농장에도 주실 거죠?”

“…나중에 드리죠.”

성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뜯어내면 싫어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대신 눈빛은 반짝인다.

‘두고 봐라. 내가 너의 모든 것을 쪽쪽 빨아먹고야 말겠다’는 그런 눈빛이다. 이쯤 되면 성녀가 아니다.

지구로 치면 돈 많은 사내를 만난 요염한 꽃뱀이다.

현수는 영지 개발에 필요한 각종 물자의 양을 파악했다. 그리곤 성녀와 함께 신전 농장으로 복귀했다.

남들의 이목이 있기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도착했다. 이동하는 내내 성녀는 말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라세안에게 했던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성녀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말문을 열지 못하고 농장에 다다랐다.

“일단 수확량부터 확인하죠.”

“네, 그래야죠.”

둘은 밀, 보리, 벼, 콩, 팥, 녹두, 옥수수, 고구마, 감자, 커피, 파인애플, 바나나의 수확량을 차례로 조사했다.

페룸 신관과 안토니오는 숙련된 연구원처럼 모든 걸 착실하게 준비해 놓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배를 통한 육종의 결과 모든 종자가 획기적으로 개량되었다. 지구에서 가져온 밀의 종자는 수확량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벼도 1.8배나 늘어났다.

여기에 성녀의 축복이 가해지자 대폭적으로 수확량이 늘어난다. 역시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신성력답다.

그래서 최종 결과는 다음과 같다.

지구에서의 생산량과 비교한 수치이다.

밀 6.25배, 벼 5.8배, 보리 5.7배, 콩과 녹두, 그리고 옥수수 5.5배 증가이다.

팥 4.3배이고 고구마 4.2배, 감자 4.1배이다.

커피는 3.1배이고 파인애플은 3.0배, 바나나는 2.8배 늘어난 것이 최종 결과이다.

계속해서 교배육종을 하면 더 나아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

하여 일단은 이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현수는 최종적으로 얻어진 종자의 일부를 챙겼다. 이것은 성녀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나머지 종자들은 추가 교배육종 작업을 더 해보기로 했다.

계속하다 보면 더 많은 수확량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성녀의 꼬드김이 있었던 때문이다.

이는 현수를 놓치지 않으려는 꼼수의 일환이다.

“성녀님, 필요한 농기구는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생긋 눈웃음을 치는데 너무나 고혹적이다.

현수는 한시바삐 지구로 가야 함을 느꼈다. 이곳에 계속 머물렀다간 사고를 칠 것만 같아서이다.

시간이 갈수록 성녀에게서 풍기는 요염함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나만 그런가 싶어 다른 사람들을 살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다. 그들에게 성녀는 성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관으로 돌아온 현수는 짐을 챙겼다.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백작님, 이제 가시는 건가요?”

그동안 시중을 들어주었던 세렌이 처연한 표정으로 묻는다. 현수가 가고 나면 다른 귀족이 올 것이다.

그와 하룻밤 잠자리를 하고 영지로 따라가면 이제 영영 이별이다. 그래서 매우 섭섭하다. 그동안 정이 든 때문이다.

짐을 다 챙긴 현수는 가방 속에서 코르크로 구멍을 막은 유리 플라스크를 꺼냈다.

“세렌, 이건 포션이라는 거야. 어머니가 아프다면서? 이걸 복용하면 웬만한 병은 나을 거야. 가져가.”

직접 세렌의 모친을 본 것이 아니기에 회복 포션에 마나 포션을 섞은 것이다. 그렇기에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

세렌은 아무런 말 없이 바라만 본다.

라이셔 제국의 마탑에서도 포션은 만든다. 그렇기에 포션이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안다.

눈앞의 것처럼 색깔 짙은 최상급 포션은 100골드이다.

한화로 1억 원 정도 되는 것이다. 이런 걸 한낱 잠자리 시녀 따위에게 건네주니 무어라 대꾸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전 농장으로 가서 성녀님을 만나봐. 내가 말해놨으니까 가기만 하면 적당한 일자리를 주실 거야.”

“……!”

세렌은 여전히 대꾸가 없다.

포션만으로도 감지덕지한데 신전에 일자리까지 알아봐 주었다니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아주 가는 건 아니야. 가끔 올 거야.”

“…진짜 또 오시는 거죠?”

“그래. 매년 최소 한 번 이상은 올 거야.”

“정말이죠?”

세렌은 현수와 시선을 마주치며 눈물을 글썽인다.

같이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얼마나 많은 걸 베풀어줬는지 알기 때문이다.

“오실 때마다 백작님 시중은 제가 들어드릴게요.”

“그래. 그럼 나야 좋지. 참, 안토니오네 아들 참 싹싹하고 괜찮더라. 이름이… 그래, 스테파노라고 했어.”

“네?”

“안토니오 알지? 신전 밖 농장에서 일하는.”

“네, 알아요.”

“그 사람한테 아들이 하나 있는데 올해 스물셋이래. 아주 건강하고 싹싹해. 성실하고. 그러니 잘해봐.”

“……!”

세렌의 마음엔 현수가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자신과의 신분 차이가 너무나 크기에 맺어지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다른 사내를 소개하니 마음이 아리다. 그렇기에 대답 대신 눈빛으로 물었다.

‘저를 거둬주시면 안 되나요? 제가 백작님 모시기에 미흡하다는 건 알지만…….’

세렌이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언감생심3)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5장 지나 놈들이란!

‘아니에요. 알았어요. 안토니오 아저씨의 아들과 잘해볼게요. 그럼 평생 백작님 곁에 머물 수 있는 거죠?’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겠다는 뜻이다.

현수는 이런 세렌의 속내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여자로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수가 떠난 이후 세렌은 성녀가 신전 밖으로 나갈 때 수행하며 시중드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하루에 한 번 현수가 조성해 놓은 농지를 둘러보는 것 이외엔 외출이 잦지 않기에 하나도 힘들지 않은 일이다.

안토니오와 스테파노는 이 농지에서 계속된 교배육종을 실시하기로 했다. 작업반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생활의 안정을 위해 각기 10년 치 삯을 미리 지불했다. 그렇기에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농지만 돌볼 것이다.

이것은 타임 패스트 마법진 속에서 행해지는 일이다.

하여 지구에서 1년에 한 번 할 수 있는 일이 이곳에선 고작 하루 만에 끝난다. 아침 일찍 심고 저녁 때 수확한다.

하루에 한 번 교배육종의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1년이 지나면 365번의 교배육종 테스트를 한 것과 같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 같은 종자를 다양한 다른 종자와 동시에 시험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최소 12종 이상과 교배육종이 실시된다. 따라서 일 년이면 총 4,380번의 교배 시험을 하는 셈이다.

지구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안토니오 부자는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벼와 밀의 수확량이 열 배로 늘어난 것이다.

물론 성녀가 축복했을 때의 일이다. 그냥 심어도 현재 수확량의 4배는 되니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이다.

세렌은 성녀를 수행하여 이곳을 자주 방문한다. 당연히 스테파노와 부딪치는 시간이 많다.

현수의 말처럼 성실한데다가 건강하고 잘생겼다. 게다가 친절하기도 하다. 하여 스무 살 꽃다운 방심이 열리게 된다.

여기엔 결정적인 사유가 있다. 안토니오 부자가 세렌 모녀가 살 집을 지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현수가 당부한 것이다.

* * *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하하! 네, 그동안 안녕하셨죠?”

“그럼요. 김 사장님 덕분에 아주 잘 지냈습니다.”

“하하! 네. 그럼 물건부터 확인할까요?”

“네, 그러시죠.”

이곳은 천지건설 자재 창고이다. 그리고 현수와 인사를 주고받은 사람은 황학동에서 리어카를 판매하던 사람이다.

전에 주문했던 일륜차와 리어카가 모두 입고되었다기에 보러 온 것이다.

“우와, 많군요.”

건설 자재 또는 공구들을 보관하는 창고인지라 엄청나게 넓다. 그런데 그 넓은 창고 가득 리어카와 일륜차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올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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