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9
“예비용 바퀴와 부속은 저쪽에 있습니다.”
사장이 가리킨 곳에도 엄청나게 많은 것이 쌓여 있다.
“휘유! 대단히 많군요.”
“그럼요. 예비용까지 있으니 당연하죠.”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뿌듯하다는 표정이다. 이것들을 납품하기 위해 몇 달간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물건 하나는 정말 최상급으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상주하면서 제작과정에 일일이 간섭했거든요.”
사장의 말은 사실이다. 현수가 너무도 고마웠기에 최상품으로 납품하고자 하루 종일 작업장을 서성였던 것이다.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잔금은 곧바로 넣어드리겠습니다. 계산서를 주십시오.”
“네, 여기 있습니다.”
사장은 현수가 훨씬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알지만 허리를 깊숙이 숙인다. 오랜 생활고를 단숨에 타개해 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이다.
“다음은 농기구지요?”
“네, 저쪽 창고에 넣었습니다. 안에 가시면 김 사장이 있을 겁니다.”
현수로부터 농기구 일체를 조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장님은 그냥 가시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 그럼요. 어차피 김 사장이 몰고 온 트럭을 타고 같이 갈 겁니다. 천천히 일보십시오.”
사장은 곧 들어올 잔금을 떠올리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것만 들어오면 오늘로써 모든 어려움과 아듀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현수는 곁의 창고로 들어섰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네, 김 사장님도 안녕하셨지요?”
“그럼요. 근데 조금 바쁘기는 했습니다. 하하하!”
현수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각종 농기구를 볼 수 있었다. 삽, 곡괭이, 괭이, 쇠스랑, 삼태기, 써레, 고무래, 낫, 지게, 키, 호미, 멍석, 채 등이다.
“품질은 어떻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최상의 것만 골라왔습니다.”
김 사장은 현수가 넉넉하게 셈해준다는 것을 알기에 진짜로 꼼꼼히 따져서 각종 농기구를 구해온 것이다.
“수량은 따로 기록해 두셨지요?”
“그럼요. 집계표 여기 있습니다.”
파일을 열더니 A4 용지를 건넨다. 표를 보니 삽은 2만 자루이다. 곡괭이 1만 개, 낫 2만 개, 호미 2만 개 등이다.
“계산서도 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현수는 합계 금액만 살펴보았다. 자신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거나 사기 칠 사람들은 아니기에 믿는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현수는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전화를 걸어 송금토록 했다.
김 사장의 입이 벌어진다. 그간의 노고가 돈으로 환산되어 통장에 입금된다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자, 이제 나가시죠.”
밖으로 나오니 리어카 사장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얼른 비벼 끈다.
“마저 피우시지 왜……?”
“김 사장님은 흡연 안 하시잖아요. 그럼 예가 아니지요.”
리어카 사장의 말을 받은 건 농기구 김 사장이다.
“이 사장, 방금 리어카 대금도 송금되었네.”
“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사장이 또 한 번 허리를 꺾는다.
“고맙기는요. 물건 팔고 대금 받으신 건데요. 그나저나 추가 주문을 좀 해야겠습니다.”
“네? 추가 주문이요?”
둘의 눈이 번쩍 뜨인다.
“네, 리어카와 일륜차는 2만 대씩 더 만들어주십시오. 삽은 5만 자루, 호미 10만 자루, 낫 5만 자루…….”
현수의 주문이 이어지는 동안 둘은 멍한 시선이다.
방금 전 끝난 거래만으로도 이미 일생일대의 거래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의 두 배가 넘는 거래를 새롭게 제안하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김 사장님, 안 받아 적으실 거예요?”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십시오.”
“네. 삽 5만 자루, 호미 10만 자루, 낫 5만 자루, 식칼 10만 개, 곡괭이 3만 개…….”
이것들은 이실리프 영지 개발에 필요한 것과 신전 농지, 그리고 신전 밖 개인 농지에서 쓸 것이다. 기계 없이 오로지 인력으로만 승부를 보는 곳이기에 많은 수량이 필요하다.
특히 호미와 식칼, 그리고 작두가 많은 이유는 쉐리엔 채집을 위해서이다. 이것들이 있으면 훨씬 일이 빠를 것 같아서 제공하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모두 받아 적자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참, 이번에 주문할 때는 불광동에 있는 불광대장간, 천호동 동명대장간, 수색의 형제대장간, 그리고……. 어! 왜 안 받아 적어요?”
“아, 아닙니다. 적습니다. 근데 대장간들은 왜……?”
“아! 제가 지금 불러드리는 곳들은 모두 전통 방법으로 낫이나 곡괭이 등을 만드는 대장간이에요. 제품의 질이 아주 훌륭하다고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창녕시의 창녕대장간, 곡성대장간, 퉁영항 충무공작소, 제주시 오라동 제주전통대장간, 보은대장간, 증평대장간, 송정 5일장의 송정대장간. 다 적으셨어요?”
“네, 다 적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곳의 제품을 전부 구매해 주세요.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개의치 마시구요.”
“네, 알겠습니다.”
“이 밖에 전통 방법을 고수하는 대장간들이 있다면 거기 물건도 전부 구매해 주세요. 아셨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현수의 말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대장간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임을 느꼈다.
“주문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대장간의 규모를 약간 키워도 될 거라고 말해주세요.”
“……?”
“앞으로 제가 운영하려는 두 농장의 농기구는 거기 것들로 쓰려고 합니다.”
“아!”
현수와 거래를 하는 동안 둘은 대체 얼마만한 농장을 운영하는지를 찾아보았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살펴보면 비날리아 지역 3,000㎢, 반둔두 지역 1,500㎢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넓이이다. 이곳 전체는 200년간 치외법권 지역으로 조차되었다.
다시 말해 향후 200년간 현수는 두 지역의 왕과 같은 사람이다. 그곳을 개발하려면 많은 농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전국을 돌며 질 좋은 농기구들을 구입했다. 물론 방금 현수가 말한 곳들의 제품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서 쇠락해 가는 대장간들을 보았고, 마음이 짠해졌다. 그런데 그런 곳들만 골라서 주문을 넣어달라니 현수가 달라 보인다.
정부에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조금 전 완료된 거래로 리어카 사장은 14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얻었다.
납품업체에 충분한 값을 지불하고도 그런 것이다.
추가로 2만 대씩 더 만들어 달라고 했으니 몇 달 이내에 30억쯤 이득을 볼 상황이다. 그래서 로또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들어 상기된 표정이다.
열심히 받아 적은 농기구 김 사장도 그러하다. 영세한 사업장에 묶인 채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차에 현수를 만났다.
덕분에 모든 채무를 갚을 수 있게 되었으며, 조금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의 두 배가 넘는 이득을 또 보게 생겼다.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이번엔 상품가의 절반을 선수금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품질에 각별히 신경 써주십시오.”
“아이고, 당연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 사장님이 쓰신다는데 최상의 품질로 보답하겠습니다.”
“네,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말씀하셨던 우물 펌프는 지급으로 구해놓겠습니다. 사나흘이면 될 겁니다.”
“네, 그래 주십시오.”
우물 펌프를 3,000대나 구해달라고 한 것이다. 물론 우물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일체의 부속품을 포함한 것이다.
김 사장과 이 사장이 트럭을 타고 떠난 후 리어카와 각종 농기구를 아공간에 담았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이지만 몇 마디 말에 창고는 텅 비어버린다.
* * *
“어서 오십시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업무를 보던 아가씨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아, 네. 아까 전화 드렸던 김현수입니다.”
“네,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사장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 어서 오십시오. 근데 혹시… 천지건설 김현수 부사장님이신 겁니까?”
50대 초반인 사장이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전화를 받았을 때 이름을 들었지만 현수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재벌의 그룹사인 천지건설 부사장이 이런 보도블록 생산업체에 직접 올 일은 없기 때문이다.
“네.”
“아! 이거 영광입니다. 저는 동명이인인 줄 알았습니다. 앉으시죠. 미스 김, 주스 두 잔 부탁해.”
“네, 사장님.”
잠시 후, 현수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서 보도블록 카탈로그를 살피고 있다.
“종류가 다양하군요. 블록의 단가는 어떻죠?”
“두께에 따라 다릅니다. 회색의 경우 60T는 ㎡당 6,000원이고, 80T는 ㎡당 6,800원입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단가는 낮아지죠?”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웬만큼 많아 가지고는…….”
사장의 말은 현수에 의해 끊겼다.
“블록으로 포장할 면적이 조금 넓습니다. 우선은 100만㎡ 정도 될 듯합니다.”
“네? 바,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100만㎡ 맞습니까?”
사장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다. 100만㎡이면 폭 8m짜리 도로 125㎞나 덮을 수 있는 면적이다.
80T짜리로 납품한다면 68억 원어치이다. 한 번도 이런 규모의 거래를 해본 적이 없으니 몹시 당황한 표정이다.
그런데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추가로 주문할 것은 약 500만㎡쯤 될 것 같습니다.”
“헐!”
68억짜리 거래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그것의 다섯 배인 340억 원짜리가 또 있다고 한다.
하여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다소 흥분한 것이다.
“가능하죠?”
“그, 그럼요. 가, 가, 가능은 하죠. 근데 진심이십니까? 국내에 그렇게 넒은 델 덮을 수 있는 현장이…….”
“국내가 아닙니다. 아시죠? 제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사업하는 거. 거기에 쓸 겁니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반둔두와 비날리아 지역에 깔 보도는 아직 계산도 안 해보았다.
각종 농, 축산물을 운반하기 위한 차도와 주택가 차도의 곁에 조성될 인도의 길이만 1,000㎞가 넘을 것이다. 인도의 폭을 4.5m로 산정하면 좌우 양쪽이니 약 900만㎡가 된다.
이 경우 블록 값만 612억 원어치이다.
현수가 주문하려는 것은 경기도 면적 정도 되는 이실리프 영지와 신전 농장, 그리고 신전 밖 농장을 위한 것이다.
물론 1차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영지가 개발되면 1,000만㎡ 이상을 덮을 보도블록이 더 필요할 것이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이니 차도 겸 인도로 쓸 생각이다. 처음엔 지구의 것을 가져가지만 다음부터는 드워프, 또는 그곳 사람들이 만들어야 한다.
아무튼 시공은 그곳 사람들의 일이다. 방법이야 가르치면 되니 문제될 것은 없다.
시멘트로 만든 것이니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이건 나중에 회수하면 될 일이다.
“100만㎡를 주문하신다면 65억에 드리겠습니다.”
㎡당 6,500원이니 원래 가격에서 4.4%쯤 할인된 것이다.
“현장까지 운송비 포함된 거죠?”
“그, 그렇습니다.”
사장은 몹시 긴장했는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블록 납품은 우리 회사 자재 창고로 해주세요.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아! 그럼 63억에 드리지요.”
애초의 가격에서 7.3% 정도 할인된 금액이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더 깎아서 무엇 하겠는가.
일본과 지나에서 가져온 무지막지한 외환에 비하면 푼돈도 안 되는 금액이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납품해 주시면 곧바로 현금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현금입니까?”
“이실리프 상사는 어음이나 당좌수표를 쓰지 않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언제까지 넣어드려야 합니까?”
“일단 재고는 다 넣어주시고 가급적 빨리 주십시오. 배에 실어서 보내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리거든요.”
“아,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넣어드리겠습니다.”
사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안 팔려서 못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주문을 받았으니 공장을 풀로 가동하면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납품하실 때 사전에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창고를 열어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