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0
현수가 준 전화번호는 유민우 대리의 핸드폰 번호이다. 수시로 사라져야 하니 열쇠를 맡겨놓은 것이다.
“아, 네. 감사합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엄청난 주문을 받은 사장은 허둥지둥한다. 현수는 웃기만 했다.
보도블록 공장 밖으로 나설 때 아공간에서 느낌이 온다.
‘공상은행에 있던 금괴가 온 모양이군. 진짜 이리듐이 섞여 있나 알아봐야겠네. 하여간 지나 놈들이란!’
국립은행에서 가짜 금괴를 판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 * *
“사장님, 오셨어요?”
“그래요. 송금은 다 한 건가요?”
“네, 말씀하신 계좌로 모두 입금했습니다.”
“여기 이거, 오늘 돈 보낸 것에 대한 계산서예요.”
사장실로 들어가 앉자마자 인터컴이 울린다.
띠리리링! 띠리리리링!
“왜요?”
“사장님, 러시아에서 국제전화 와 있어요. 1번 전화입니다.”
은정은 드모비치 상사와의 거래를 위해 러시아어를 따로 공부했다. 그렇기에 러시아어를 알아듣는 것이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말을 마치곤 1번 버튼을 눌렀다.
“привет.”
러시아어로 ‘여보세요’라는 뜻이다.
“안녕하십니까? 러시아 대통령궁 공보실장 드미트리 페스코프입니다. 김현수 사장님이십니까?”
“아, 네, 반갑습니다. 저, 김현수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전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그래요? 말씀하십시오.”
“전에 주셨던 반지를 하나 더 구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라 하십니다.”
“네? 아! 제 결혼식 때 드린 반지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요. 그전에 주셨던 것입니다.”
“그전의 것이라면…….”
현수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동안 제법 많은 반지를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나눠 줬다. 하여 순간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떠올려 본 것이다.
“아! 뭔지 알겠습니다. 근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네, 어제 저녁에 독살 시도 사건이 있었습니다.”
“네에? 대통령님께서는 괜찮으신 거죠?”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공사와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는 아직 공표된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푸틴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데 독살 음모가 있었다니 놀란 것이다.
“네, 다행히……. 그리고 독살 시도는 대통령님을 노린 게 아니라 메드베데프 총리님을 겨냥한 것입니다.”
반지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총리님은 어떠십니까?”
“다행히도 대통령님과 같이 계셔서 화는 면하셨습니다.”
어제저녁 블라디미르 푸틴은 총리 관저를 찾았다.
러시아 신흥 재벌들과의 오찬 회담이 있은 직후 크렘린 궁으로 가던 중의 일이다.
막 저녁 식사를 하려던 메드베데프는 푸틴이 당도했다는 전갈을 받고 잠시 식사를 뒤로 미뤘다.
총리를 만난 푸틴은 자신이 저녁 식사를 방해했음을 알고 식사 먼저 하라고 했다.
이에 총리는 같이 식사하자고 권했다.
점심 먹은 지 오래된 푸틴은 음식을 먹으면서 용무를 이야기할 수 있기에 같이 자리하였다.
이때 손가락으로부터 찌르르한 느낌이 느껴졌다.
인체가 감전되었음을 느끼는 정도는 전압보다 전류의 세기에 좌우된다.
1㎃는 약간 느끼며, 5㎃는 경련을 일으킨다.
10㎃는 불안해지며, 15㎃는 강력한 경련을 일으킨다.
50∼100㎃가 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푸틴이 느낀 정도는 약 5㎃이다. 저도 모르게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강하다면 강한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 순간 독살의 위험을 떠올렸다. 현수가 했던 말이 생각난 것이다. 즉시 식사는 멈춰졌고, 모든 음식은 독극물 탐지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소량의 비소가 검출되었다.
원자번호 33번 원소인 비소(As)는 비상(砒霜)을 구성하는 원소이다. 적어도 메스꺼움, 구토, 설사를 일으킨다.
많이 복용하면 심장 박동 이상, 혈관 손상, 심한 통증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즉각 조사에 들어갔고, 그 결과 정적과 관련 있는 조리사를 색출해냈다.
메드베데프는 곧장 병원으로 가 검사를 받았다.
체내에 비소가 얼마나 축적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만성 비소 중독임이 확인되었다.
푸틴에게 있어 메드베데프는 정치적 동지이자 후계자이다.
그런 메드베데프마저 정적들에 의한 독살 위협을 받자 독극물 탐지 마법이 인챈트된 반지가 필요하다 여긴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구해서 크렘린 궁을 방문토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보고 드리겠습니다. 오시기 전에 미리 연락 주십시오.”
“네, 그러지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독극물이 있을 경우 반응하는 반지 하나를 만들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체내에 축적된 비소는 큐어 포이즌 마법을 구현시키면 배설되거나 중화될 것이다.
전화를 끊고 아공간에서 반지 만들 재료를 꺼내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사장님!”
“네, 들어오세요.”
“사장님, 아까 깜박 잊고 말씀 안 드렸는데 제약사 사장님들과의 만남이 나흘 후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요? 언제 어디죠?”
“오후 6시, 시청 앞 플라자 호텔 22층 루비홀이에요.”
“거긴 몇 명이나 수용하며 참석자는 얼마나 되죠?”
“110명까지 연회할 수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제약사 사장님들은 41명이 오실 거예요. 이게 그 명단입니다.”
이 실장은 제약사 명칭과 대표의 성명이 기록된 서류를 건넸다. 은정은 큰 홀을 빌린 이유로 사장님들이 혼자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알았어요. 시간 맞춰 갈게요.”
“네, 그날은 직원들 전부 서빙하러 갑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명 더 뽑는다더니 그건 어떻게 되었죠?”
“입사 서류는 전부 받았고요, 현재는 이실리프 상사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는 중이에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서류에서 눈을 뗐다.
“그날엔 그 직원들도 오라고 하세요. 식사도 하고 제약사 직원들과 인사도 나누게요.”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은정이 나가자 아공간에서 반지를 꺼내 독극물 탐지 마법을 인챈트시켰다.
작은 공간에 복잡한 문양을 새겨 넣어야 하기에 먼저 인라지 마법으로 확대시켰다. 그리곤 정교한 솜씨로 마법진을 그려 넣었다. 마법진의 화룡점정은 마나석을 박는 것이다.
이 작업을 마치고 활성화 마법을 구현시키면 그때부터 제대로 된 아티팩트가 되는 것이다.
“흐으음! 좋아, 잘되었군. 리듀스 하프! 리듀스 하프! 리듀스 하프!”
반지의 폭이 8분지 1로 줄어든다. 원 상태가 된 것이다.
다 해놓고 보니 너무나 밋밋하다. 하여 다시 확대한 후 러시아 국가 문장인 쌍두독수리를 새겨 넣었다.
두 마리 독수리 가운데에 파랑 망토를 두른 백마 탄 기사 그림이 있는 복잡한 문양이다.
반지처럼 작은 공간에 새기기 어렵지만 인라지 마법은 모든 걸 가능케 한다. 32배로 확대해 놓고 러시아 국가 문장을 새기곤 원래대로 축소시켰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다.
6장 KAI를 인수해!
“흐음, 이제 좀 괜찮네.”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이다.
채앵―!
“……!”
느닷없는 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유리창에 금이 가 있다. 유리창엔 눈에 보이지 않는 강화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당연히 평범한 유리창이 아니다. 그럼에도 금이 가 있다. 이건 동네 꼬맹이들의 돌팔매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와이드 센스!”
즉시 마나를 뿜어내며 주변을 살폈다. 500m 내엔 별다른 징후가 없다. 1,000m까지 범위를 넓히자 살기가 느껴진다.
“흑룡이란 놈이겠군. 어라! 근데 이건……?”
흑룡의 주변에서 황급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셋이다.
“뭐지?”
저격자를 추적하려던 현수가 멈칫하는 순간 흑룡으로 추측되는 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한다.
잠시 후 자동차 한 대가 흑룡을 추적한다.
감각을 집중하니 오토바이는 금방 추적자들을 따돌린다. 좁은 골목과 계단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쫓는 자들도 만만하지 않다.
흑룡이 진입하려는 도로로 이동한다. 하지만 속도 차이가 있어 잡지는 못할 것이다.
“대체 누구지?”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정원과 해군인가? 어라? 이건 또 뭐야?”
주변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십 명이 넘는다.
“레드 마피아도 날 경호하나? 근데 숫자가 너무 많잖아.”
현수 주변엔 경호 인력이 있다.
대통령의 명에 따라 국정원 엄규백 팀장이 파견한 세 명의 요원이 있다.
해군참모총장이 파견한 특수요원 네 명도 있다.
공군에서 보낸 인원도 네 명이나 있다. 최 중령이 다녀간 이후 파견된 인원이다. 레드마피아도 세 명의 전직 스페츠나츠 요원을 배치했다.
우호적인 경호 요원만 열네 명이다.
이 밖에 미국 CIA, 일본 내각조사실, 지나 국안부, 영국 MI―6, 프랑스 DGSE, 독일 BND, 이스라엘 Mossad에서 파견한 첩보원들이 주시하고 있다.
현수가 항온 의류 개발자로 알려진 이후에 배치된 자들이다. 하여 늘 30명 이상이 따라다니는 중이다.
흑룡은 이들의 존재를 모른다. 그렇기에 저격에 나섰다가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놈은 내가 잡아서 족쳐야 하는데……. 그나저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날 보고 있으면 앞으로 행동에 조심해야겠네.”
새삼 행동거지에 유의해야 함을 느낀 것이다.
이때 인터컴이 울린다.
삐리리링, 삐리리링∼!
“네에.”
“사장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전화 왔습니다. 2번입니다.”
“알았어요.”
버튼을 누르니 익숙한 음성이 들린다.
“여어, 미스터 킴! 신혼여행은 즐거우셨나?”
“아! 장관님, 안녕하시죠?”
“그럼, 그럼! 나는 잘 지내네. 신부들과 재미 좋지?”
“하하, 그럼요.”
가에탄 카구지가 너스레를 떨며 친분을 드러낸다.
“로스차일드에서 추가로 금괴 200톤 매입 의사를 전해왔네. 물량이 있는가?”
“200톤을 또 산답니까?”
“그래. 또 필요한 모양이네. 은밀히 받기를 원하더군.”
“알겠습니다. 준비해서 영국으로 보내지요.”
“휘유! 대체 금이 얼마나 있기에……. 자네 아나, 자네가 팔아치운 금이 우리나라 보유량보다도 훨씬 많다는 걸?”
“네, 압니다. 아무튼 준비해서 최대할 빨리 보내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그런데 값이 좀 떨어진 거 알지?”
“그럼요.”
“그 값에 계약을 체결하겠네. 이번에도 매각 대금을 한국으로 보내주면 되는가?”
“그래 주시면 저야 좋지요.”
“알겠네. 그렇게 처리하지.”
“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아무리 친해도 이런 일엔 적당한 기름칠이 필요하다. 200톤짜리 거래이니 이번엔 황금 500㎏쯤 주면 될 것이다.
“지나에서 온 걸 손봐야겠군. 그전에 준비할 게 좀 있지.”
금괴를 손보는 것은 빌모아 일족이 할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삿짐 정리를 하고 있을 시기이다.
이들로 하여금 안정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게 하려면 우선적으로 대문부터 만들어 달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량의 철이 필요하다.
사무실을 나선 현수는 곧장 영등포로 향했다. 스테인리스 철판을 절단해 주는 거래처이다.
* * *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그게 또 필요해서 오신 겁니까?”
사장의 얼굴엔 반가움이 배어 있다.
지속된 불황으로 다른 업체들은 픽픽 나자빠지는 상황이다. 다행히 현금으로 결제해 주는 현수를 만나 어렵지만 근근이 버티는 중이기 때문이다.
“네, 오랜만이네요.”
“안에 가서 차나 한 잔 하시죠.”
영등포의 철강 관련 점포들의 공통점은 안쪽에 철골로 2층 사무실을 만들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쇠로 만든 계단을 딛고 올라가니 자그마한 사무실이 나온다. 허리를 숙여야 할 정도로 높이가 낮다.
사장이 손수 커피를 내온다.
“사무실이 이래서…….”
누추해서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아뇨. 저 커피 좋아합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삼키려는데 무슨 일로 왔느냐는 표정이다.
“제가 늘 주문하던 거 있죠?”
“네, 0.35T SUS 304죠? 가로세로 10㎝짜리.”
“네, 그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양이 좀 많습니다. 그리고 빨리 만들어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