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1
“얼마나 많기에 그러십니까?”
“일단은 2억 장이 필요합니다.”
“네? 얼마요? 2, 2, 2억 장이나요?”
사장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다.
0.35T SUS 304는 국내에선 생산되지 않는다. 필요한 물량 전부 일본에서 수입한다.
어쨌거나 SUS 304의 비중은 7.9이다.
현수가 주문한 것은 가로세로 10㎝짜리 2억 장이다.
7.9×0.1m×0.1m×0.35T×2억 장=5,530톤이다.
그런데 이것은 철강 수입 업체로부터 도매가로 받는 금액만 ㎏당 3,500원 정도이다. 어음이 아닌 현금일 때 이렇다.
사장은 이 금액에 그냥 납품하는 것이 아니다.
가로세로 10㎝ 규격으로 자르고 타공4)까지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임가공 후 납품이다.
지금까지는 한 장당 계산해서 받았지만 매수가 2억 장이 되면 전체 무게로 계산하는 것이 빠르다.
매입 이득도 있어야 하고 임가공 수수료까지 계산하면 ㎏당 4,000원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싸다고 하면 100∼200원쯤 깎아줘도 된다. 물량 자체가 많기 때문이다.
“2억 장 납품 가능하죠?”
“가능은 한데 비용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장은 계산기를 꺼내 금액 계산을 실시했다.
“사장님, SUS 매입 가격에 임가공 비용을 합치면 총액이 221억 2천만 원이나 됩니다.”
“그래요? 금액이 꽤 많네요. 할 수 없죠. 그 가격에 납품해 주세요.”
“네?”
사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뜬다. 이 큰 금액을 한 푼도 깎지 않으려기에 경악한 것이다.
“선수금으로 얼마나 보내드리면 되나요?”
“그거야…….”
잠시 얼이 빠진 상황이기에 사장은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사장님은 철강 회사로부터 현금 주고 사야 조금이라도 깎을 수 있죠?”
“그, 그렇습니다.”
현금 들이밀고 물건 달라고 하면 지구에서 가장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최우선적으로 내줄 것이다.
“임가공비보다 SUS 값이 대부분일 테니 철강 회사와 가격 협의가 끝나면 전화 주세요. 곧바로 보내드릴 테니.”
“네? 그, 그러면…….”
금액이 결정되었으니 이제부턴 깎는 만큼 본인의 이익이다. 그런데 직접 철강 회사에 돈을 보내주면 곤란하다.
남는 게 얼만지 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현수는 잠시 사장을 살펴보았다.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가늠해 본 것이다. 사업하는 사람이니 돈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인간성 자체는 괜찮아 보인다.
“알겠습니다. 선수금으로 일단 180억 원을 넣어드리죠.”
“네?”
또 말을 잇지 못한다. 선수금으로 80% 이상을 준다는 말은 사업을 시작한 이후 처음이기 때문이다.
“많이 깎으셔야 많이 남잖습니까? 많이 남으면 종업원들 보너스 넉넉하게 주세요. 아셨죠?”
현수의 웃음 띤 얼굴에 사장은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넋이 반쯤 나간 상태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말문을 연다.
“그런데 꼭 0.35짜리여야 합니까?”
“네? 그건 왜요?”
이런 말을 하는 의미를 모르기에 한 반문이다.
“STS 304 0.3T나 0.4T를 써도 된다면 그건 어떨까요?”
“…STS와 SUS가 다른 건 뭐죠?”
“STS는 Stainless Steel의 약자로 한국 공업 규격이고, SUS는 Steel Use Stainless의 약자로 일본 공업 규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STS 0.3으로 바꾸죠. 그럼 금액도 달라지죠?”
0.35짜리가 꼭 필요한 게 아니므로 얼른 바꾼다.
“당연하죠! 잠깐만요. 계산해 볼게요.”
사장이 부지런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7.9×0.1m×0.1m×0.3T×2억=4,740톤이다.
톤당 매입 및 임가공비는 비슷하므로 그대로 적용하면 189억 6천만 원이면 된다. 이것의 약 80%인 150억 원을 선수금으로 지불하기로 했다.
사장은 드러내 놓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사업 개시 이후 가장 장사가 잘되던 해의 수입이 단 한 건의 거래에서 이루어진 때문이다.
‘휴우! 정말 다행이야. 그때 그랬으면…….’
처음 현수를 만났을 때 문전박대 안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
“그런데 이걸 어디로 보내드릴까요?”
“천지건설 자재 창고로 보내주세요. 참, 하나당 800장씩 PP박스에 담아서 보내주세요.”
“PP박스요?”
“네, 이삿짐 나를 때 많이 쓰는 단프라 박스라는 거 있죠? 초록색인 거요.”
“아, 네. 뭔지 압니다.”
사장은 무슨 소린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정식 명칭이 PP박스거든요. 그거 주문해서 이쪽으로 배달시킬게요.”
현수가 주문한 STS 304 철판 800장의 무게는 18.96㎏이다. 이것들은 PP박스에 담긴다.
무게는 20㎏에 육박하지만 부피는 얼마 되지 않는다. 가로세로 10㎝에 높이 24㎝면 된다.
이걸 담고도 약간의 여유가 있어야 하니 내부 치수가 가로세로 13.2㎝에 높이 24.2㎝짜리 다단 적재용이 필요하다.
하나당 800장씩 담기게 되니 박스가 최소 250,000개는 있어야 한다. 두께는 4㎜짜리이고 손잡이가 달려야 한다.
한꺼번에 아공간에 담아도 되지만 이걸 사용할 사람들의 체력을 고려해서이다.
이것 하나당 단가는 대략 2,000∼2,500원쯤 할 것이다.
수량이 무지막지하게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걸 준비하려면 5억∼6억 2,500만 원이 든다.
종이 박스를 준비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 그런데 마법진을 새기기 위한 STS 304 철판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다.
그때마다 종이 박스에 담는 것보다는 반복 사용이 가능한 PP박스가 실용적이라 생각한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사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일 끝나면 2억 장을 추가로 준비해 주세요.”
“네에? 또요?”
또 한 번 눈과 입이 커진다.
한 번의 거래만으로도 이득금이 쏠쏠하다. 그런데 또 한 번 그런 기회를 준다니 놀란 것이다.
“네. 그리고 저 대신 철판 매입 좀 해주실래요?”
“네? 철판 매입이요? 제가요?”
“제가 조금 바빠서요.”
“아, 네. 말씀만 하십시오.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두께 6㎜하고 8㎜짜리 각각 3,000톤씩. 10㎜, 20㎜, 30㎜짜리는 각각 2,000톤씩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것도 같이 배달할까요?”
“아뇨. 이건 매입하는 대로 바로 보내주세요. 창고 주소는 제가 조금 있다가 카톡으로 보내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값이 결정되면 사장님께 저도 카톡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철강 회사로 직접 송금하시면 될 겁니다. 매입자는 천지건설이죠?”
“아뇨. 이실리프 상사로 해주세요. 사업자 등록번호는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현수가 영등포를 떠난 것은 오후였다.
“그나저나 국안부에서 가져온 정보를 써먹어야 할 텐데.”
운전대를 잡은 현수의 뇌리로 많은 상념이 스친다. 생각은 많은데 그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드물다.
좁은 인맥 때문이기도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입맛이 쓰다.
“쩝! 인재들을 신문에 광고해서 뽑을 수도 없고.”
이때 전화가 진동을 한다.
부우웅, 부우우우웅―!
“어! 주영, 왜?”
“바쁜 거 알지만 회사로 좀 와라.”
“…알았어. 곧장 가지.”
전화를 끊고 곧장 역삼동으로 향했다. 원래는 엄규백 팀장을 만나볼 생각이었는데 급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서 와라!”
주영이 몹시 반가워한다.
“그래, 웬일이냐? 날 호출하고.”
“야, 통장에 돈이 무지막지하게 들어왔는데 이거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길 해줘야지. 내가 요새 이것 때문에 잠이 안 온다.”
“그래? 들어온 총액이 얼만데?”
“22조 3,200억 원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거 진짜 우리가 맘대로 써도 되는 돈이냐?”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온다는 표정이다.
“당연하지. 그러니까 지금 돈의 용처에 대해 의논하려고 오라고 한 거지?”
주영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진다.
“그래. 돈이 웬만해야 알아서 쓰는데, 이건 뭐 이자율이라곤 쥐뿔보다도 작은 계좌에 넣어놔서.”
“이실리프 뱅크 설립은 어떻게 되어가니?”
“별 무리가 없는 한 허가는 날 거래. 다만 내부 절차가 필요해서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하더라.”
“그래? 그럼 잠시 자금 좀 운용해 볼까?”
주영의 눈썹이 위로 올라간다. 무슨 소리가 나올지 겁난다는 표정이다.
“우리 회사에 증권회사 출신 좀 있냐?”
“당연히 있지. 거기 그만두고 나온 사람들 좀 뽑았다.”
“좋았어. 그럼 그 사람들만 모아서 따로 부서 하나를 만들어. 흐음, 자금운용팀, 뭐 이 정도 명칭이면 되겠다.”
“자금운용팀? 그걸로 뭐 할 건데?”
자금 운용이란 있는 돈을 굴려 이익을 창출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렇기에 주영이 관심 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우리나라에 전투기랑 헬기 만드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이라는 회사가 있는 거 아냐?”
“KAI? 그거 작년에 정부에서 보유한 지분 매각하려다 실패한 회사 아냐?”
이번엔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실패했지. 3∼4조 원을 투자해 놓고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해서 인수하려는 기업이 없었지.”
“그래? 근데 그 회사는 왜?”
주영은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회사 이야긴 갑자기 왜 하느냐는 표정이다.
“오늘 주가가 29,000원이더라. 그래서 주가 총액이 2조 8,767억 원야. 외국인 지분은 8.65%이고.”
“그래, 근데 그 회사는 왜?”
“자금운용팀 동원해서 시중에 깔려 있는 주식 매집해. 그리고 정책금융공사 관계자를 만나서 지분 전부 인수해.”
“뭐라고?”
주영은 대경실색한다.
“KAI를 내 개인 회사로 갖고 싶어. 내친김에 퍼스텍하고 쎄트렉아이라는 회사도 인수해.”
“퍼스텍은 뭐고 쎄트렉아이는 뭐하는 회산데?”
점입가경이라는 표정으로 바뀐다.
“둘 다 항공우주산업과 관련 있는 기업들이야. 그리고 방위산업과도 아주 밀접하지.”
“왜? 우리가 왜 그런 회사들을 매입해야 하는데?”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이실리프 상사는 농사와 축산 관련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준비된 말을 했다.
“퍼스텍은 주가가 1,900원이야. 시가 총액은 888억 원이고 외국인 지분율은 1.55%야.”
“……!”
“쎄트렉아이 주가는 21,150원이야. 시가 총액은 774억 원이고 외국인 지분율은 1.20%다.”
“넌 그런 거까지 외우고 다니냐? 하긴 IQ가 255나 되는 놈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진짜 이 회사들을 매입해?”
주영은 방금 한 말이 사실이냐는 표정을 짓는다. 이에 현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살 수만 있으면 주식의 100%를 매집해. 공개 매수로 진행해도 된다. 현재 CEO와도 접촉해 봐.”
“그 사람들은 왜?”
“KAI 같은 경우는 노조가 매각을 반대하는 입장이야. 민영화가 될 경우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건 그렇겠지.”
정부가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각종 세제 혜택은 물론이고 지원금까지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민간 소유가 되어버리면 구조조정부터 하자고 나설 것이 뻔하다.
노조 입장에선 당연히 반대일 것이다.
“CEO들을 만나면 이렇게 전해. 지금까지 하던 일을 계속하시라고. 그리고 자금 걱정하지 말고 연구와 개발에 더욱 몰두해 달라고. 노조를 만나면 구조조정 이런 거 하지 않을 테니 열심히 근무해 달라고 하고.”
“……?”
주영이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기업을 인수해 놓고 자기 사람을 심지 않으면서 지원하겠다는 의도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현수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한국은행장을 만난 이후 인터넷 서핑을 한 때문이다.
그때 우연히 FA―50에 관한 짧은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미국의 F―16을 기본으로 해서 일본은 F―2라는 확장형 전투기를 개발했다. 자료를 조사해 보니 성능이 나쁘지 않다.
한국도 F―16을 기본으로 해서 전투기 개발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FA―50은 축소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