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8
투자금이 22억 3,200만 원이라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현수가 가진 돈은 이것의 10,000배이다.
국내의 어떤 재벌도 투자할 수 없는 거금이 일시에 증시로 몰리면 주가는 당연히 올라야 한다.
떨어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증시는 하루에 15%까지 오를 수 있다.
따라서 상한가 한 번은 정기예금 이자율을 3%라고 봤을 때 같은 금액을 5년간 예치했을 때와 같다.
단순 수치 계산을 해보면 1,825배나 이익이다. 이러니 당연히 증시에 투자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아니라고 말을 하니 당혹스런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국내에 설립하려던 은행도 재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이 자꾸 자국에 설립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네요. 그쪽은 신청만 하면 뭐든 오케이한다네요.”
“네? 으, 은행까지요?”
한국은행장은 말을 더듬는다. 이 정도면 보유한 자금 전부가 빠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그런데 왜요? 누가 뭐라고 하는 건가요?”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매월 1억 5천만 달러어치를 러시아와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수출합니다.”
“네, 알죠!”
국가 경제를 생각해 보면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이런 적은 금액이 모여서 전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외환 보유고를 높여주는 아주 착실한 기업이다. 수출만 하고 수입은 없다. 따라서 위법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원만히 협조해 줘야 한다.
“그런데 그 수출을 못하게 하려고 마음먹은 것 같습니다.”
“네? 누가요?”
“국세청, 관세청 뭐 이런 뎁니다. 그동안 아무 탈 없이 수출하던 물건 전체를 전수 조사하겠다며 선적한 컨테이너까지 모두 열어젖힌답니다. 사무실의 장부와 컴퓨터 본체 모두 가져갔고요.”
“네?”
“울림모터스에서 만든 자동차는 금괴 밀반출 협의가 있다면서 전부 분해하겠다는군요.”
“수출용 자동차를 분해해요?”
“네, 아무래도 권력자 중 누군가 저희를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진 않을 테니까요.”
“네? 대체 누가?”
“이 밖에 저희가 수출하는 모든 의약품도 전수 조사하겠답니다. 마약 및 금괴 밀반출 등의 사유로요.”
“설마요.”
“설마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무역을 하겠습니까? 누군가 권력을 쥔 사람이 저희를 미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럴 바엔 외국으로 회사를 옮기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증시에 투자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기, 김 사장님!”
스피드를 생산하는 울림모터스, 듀 닥터를 만들어내는 태을제약, 항온의류를 만드는 이실리프 어패럴, 쉐리엔의 대한의약품 등이 일제히 국내 공장을 철수하고 외국으로 나가면 언론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청년 실업률이 높아 문제가 되는데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힘없는 제가 어떻게 권력자의 미움을 견뎌내겠습니까? 하여 전부 인출하여 해외로 나갈 생각입니다. 모처럼 좋은 제안 해주셨는데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김 사장님! 여보세요! 김 사장님!”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김 사장님!”
“죄송합니다. 이만 전화 끊습니다.”
“……!”
10장 여성가족부를 해체해 주십시오
현수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한국은행장은 여전히 전화기를 들고 있다. 여러 상념이 스치는 때문이다.
통화를 마친 현수가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 전화가 진동한다. 한국은행장이면 안 받으려 했는데 아니다.
오정섭 국방장관의 번호이다.
“응? 이 양반이 왜?”
고개를 갸우뚱하곤 받았다.
“아!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네, 반갑습니다, 김현수 사장님. 지금 어디 있습니까?”
“네?”
“지금 서울에 있으면 나 좀 만나주십시오.”
“……?”
“여기 한남동 공관입니다. 문자로 주소 찍어드릴 테니 꼭 좀 와주십시오.”
“……!”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오 장관이 먼저 입을 연다.
“김 사장님 바쁜 건 아는데 오늘은 나도 몹시 바쁜데다 지금은 일행까지 있어서 그럽니다.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곧 찾아뵙지요.”
통화를 마치자마자 국방장관 공관의 주소가 문자로 온다. 본래는 아내들과 양평에 가볼 예정이었다.
살 집이 지어지는데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지어졌는지, 어떤 모양인지 등등 아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약속 취소를 해야 하기에 아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갑자기 보자는 분이 계셔서 오늘은 양평에 가기 힘들 거 같아. 미안!… 내일은 꼭 갈게.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에게 똑같은 문자를 보내곤 곧장 한남동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문자가 온다.
네, 다녀오세요. 우린 내일 가도 돼요. ―지현
여봉, 운전 조심하세욤. ―연희
치잇! 기대했는데. 대신 맛있는 거 사줄 거죠? ―이리냐
문자만 봐도 각자의 성품이 엿보인다.
지현은 맏며느리처럼 현숙하고 배려심이 깊다. 연희는 세심하면서도 다정다감하며 애교스럽고, 이리냐는 막내답다.
거의 동시에 온 문자를 확인한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지었다. 이런 여자들과 같이 살게 돼서 행복하다.
* * *
“충성!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까?”
“네, 수고가 많네요. 장관님 뵈러 왔습니다.”
“아! 잠시 내리셔서 방명록에 기재해 주시겠습니까?”
위병의 안내를 받아 신분증을 내놓자 위병조장이 얼른 고개를 든다. 김현수라는 이름 석 자를 본 직후이다.
“아! 어서 오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지시가 있어 기다리는 중입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위병조장의 안내는 정중했다.
“충성! 김현수 사장님 모시고 왔습니다.”
“알았다. 수고했다.”
“네, 용무 마치고 돌아갑니다. 충성!”
“그래, 충성!”
손을 내린 위병조장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전에 뵙고 또 뵙습니다.”
현수가 먼저 아는 척하자 얼른 고개를 숙인다.
“하하, 네. 반갑습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장관 비서가 안으로 들어간 사이 현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군인들이 많이 드나들어 그런지 다소 황량하다.
“안으로 드시지요.”
“네.”
“하하, 어서 오십시오.”
안으로 들어서자 오정섭 장관이 환히 웃으며 손을 내민다.
“네, 반갑습니다. 참, 제 결혼식에 와주셨는데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당연히 갔어야죠. 자자, 앉읍시다.”
“네.”
자리에 앉자 비서가 커피를 내온다.
“절 왜 부르셨는지요? 항온의류는…….”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참모총장님들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우리 군을 위해 정말 큰일을 해주신다고.”
“……!”
“강병훈 해군참모총장과 김성률 공군참모총장, 그리고 송지호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몰라 바라보았다.
“여성가족부 해체를 조건으로 거셨더군요. 우리가 그 사유를 알아도 되겠습니까?”
“…장관님, 여성가족부가 지난 8월에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란 명목으로 베트남 북부 타이빈 지역에 여성 직업능력개발센터를 추가로 구축한 거 혹시 아십니까?”
“네? 무슨 센터요? 그게 뭡니까?”
“글자 그대로 우리나라 국민이 낸 세금으로 베트남 여성들을 지원하겠다는 겁니다.”
“……!”
오 장관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는 듯 멍한 표정이다.
“이게 하나가 아닙니다. 남부 지역에 하나 더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지난 8월, 날이 더워 전력난이 벌어졌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럼요. 지난여름은 진짜 더웠지요.”
장관의 말대로 2013년 8월은 긴 장마에 이어 폭염이 계속되었다. 일사병으로 숨지는 사람이 속출할 정도였다.
“그때 누군가 여성가족부가 있는 건물을 다녀왔더군요. 15층부터 10층까지 한 층씩 내려가며 확인해 보니 텅 빈 건물인데 에어컨이 팡팡 돌고 있더랍니다.”
“……!”
국방부는 지난여름 정부 시책에 따라 실내 온도가 28℃를 넘지 않으면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다. 안행부가 요구한 15% 전력 감축 기준을 맞추기 위함이다.
2013년 8월 12일,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33℃였다. 그런데 이날 예비 전력율이 5%로 이하로 떨어졌었다.
이에 안행부는 모든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낮 시간대 조명 소등과 냉방 중단, 그리고 승강기 사용 최소화 협조 요청을 했다. 이에 공공기관은 사용하지 않은 사무기기, 냉온수기, 자판기 전원까지 차단했다.
그리고 이 일은 3일간 지속되었다.
블랙아웃!
다시 말해 대정전이 우려된 때문이다.
하여 공무원들은 찜통더위 속에서 업무를 보아야 했다. 민원인들 역시 찌는 듯한 더위를 느껴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 에어컨을 팡팡 틀어댔다는 말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국방부와 육·해·공군이 나서서 백해무익한 여성가족부 해체를 주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 사장님, 뜻은 알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국방부나 여성가족부는 정부 부서라는 같은 위치에 있기에 나서기 어렵다는 말을 하려던 차이다.
“그거 아십니까? 여성가족부가 없어지고 그 예산을 국방부가 받으면 F―15K 30대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잠시 현수 혼자 말을 이었다.
여성가족부의 예산은 평균 2,267억 원이다. 2002년엔 427억 원이었는데 2007년엔 1조 1,378억 원까지 치솟았다.
2013년은 3,002억 5,700만 원이다.
이렇게 해서 쓴 돈이 3조 원 이상이다.
그 돈을 국방비로 썼다면 K―2 흑표를 400대나 살 수 있으며, 세종대왕함급 이지스 구축함 세 척을 더 건조할 수 있는 돈이다.
214급 잠수함은 27척이나 해군에 인도할 수 있다.
그런데 여성가족부는 이 돈으로 화분을 사들였고, 회식을 했으며, 베트남 여성들을 지원했다.
남성들이 보기에 잘한 일은 단언컨대 하나도 없다.
현수의 모든 설명을 들은 오 장관이 침음을 낸다.
“으으음!”
무어라 반박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가족부를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국방부가 나서주시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곧 동참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어쩌면 경제인연합회도 나설 겁니다.”
천지그룹, 백두그룹, 태백그룹 등 굵직한 재벌사들은 거의 모두 현수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여성가족부 해체에 동참해 달라고 하면 기꺼이 들어줄 것이다.
현수의 뜻은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H일보에서도 같은 논조의 기사와 사설이 나갈 겁니다.”
강민경 기자는 같은 여자이면서도 여성가족부를 몹시 싫어한다.
일부 몰지각한 페미니스트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까지 욕 먹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들의 꼴통 짓을 열렬히 성토했다.
부족한 것들이 나서서 더 나대는 바람에 여성에 대한 인식만 나빠진다는 것이다. 꼴통 페미니스트가 군인들을 ‘집 지키는 개’로 묘사한 것이 결정적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이 오로지 자신만 위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성인권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서 분명히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때 말하길 H일보에 근무하는 여기자 중 여성가족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따라서 H일보는 당연히 여성가족부 해체에 찬성 의견을 내놓을 것이다.
현수는 여당인 한심당의 전매특허인 인터넷 알바를 고려한 바 있다. 여론 몰이라도 해서 없애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따라 하진 않을 것이다. 나중에라도 트집 잡히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홍진표 의원이 있다. 썩어빠진 여당과 무능력한 제1 야당 사이에서 존재감이 빛나는 인물이다.
청렴한데다 박식하고 올곧은 성품이기에 차기 대선 후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그래서 정치 혐오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식자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기에 테러를 당해 입원해 있으면서도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