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0
“보고 수정합니다. 양만춘함은 현재 평택항에 정박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기체의 레이더 고장인 듯합니다. 착륙 즉시 정비창으로 직행하겠습니다. 필승!”
외견상으론 아무런 변화가 없다. 특별한 장치를 추가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양만춘함엔 거의 환골탈태급 변화가 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완전한 스텔스함이 된 것뿐만이 아니다. 추진기 소음이 30㏈ 이하로 떨어졌다.
바로 곁을 지나도 모를 지경이다. 최고 속도는 30노트에서 42노트로 40%나 상향되었다.
선수에 그려진 그리스 마법진 때문에 물살의 저항이 대폭 줄어든 결과이다.
게다가 엄청난 연비 증가가 발생되었다.
양만춘함의 기존 항속 거리는 약 7,200㎞였다. 고복현 대위의 보고에 의하면 이것이 약 87,000㎞로 상향되었다.
1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오 장관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KD―2로 만들어진 양만춘함은 KD―3급에 비해 손색이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나은 성능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다.
해군의 작전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할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한술 더 뜬다.
갑자기 웬 바람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수퍼 링스 두 대가 함상에 내려앉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다. 그런데 헬기가 온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시끄러운 로터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싶다. 하여 조종사를 불러 물어보니 수퍼 링스 또한 엄청난 변신이 있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헬기가 된 건 기본이다.
프로펠러 소음이 30㏈ 이하로 떨어졌다. 항주 거리는 1,046㎞에서 15,700㎞로 대폭 늘어났다.
이것 역시 작전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할 일이다.
현수의 말이 모두 사실인 것이다.
함대사령관실로 이동한 일행은 여성가족부 해체와 호주제 부활을 어찌 성사시킬 건지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3군이 합심하여 이 일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 결과 육, 해, 공군 각각의 명의로 여성가족부 해체 의견을 정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남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공동 기자회견부터 열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여성가족부가 왜 해체되어야 하는지를 소상히 밝힐 것이다. 아울러 호주제 부활의 당위성도 언급된다.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 매체에서 대서특필할 것이다. 정부 부처가 다른 부처를 없애 달라는 사상 초유의 청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길처럼 각종 토론회가 벌어질 것이다. 골빈 꼴통 페미니스트들의 악에 받친 반항과 로비가 있을 것이다.
이에 국방부는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국민투표를 제안한다.
11장 저도 끼겠습니다
청원인명부에는 육, 해, 공군의 모든 병사와 장교, 군무원들의 서명이 들어간다. 서명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음을 분명히 명기하지만 열외 없이 전원 서명한다.
여군들도 마찬가지이다.
총 들고 땀 흘리며 훈련 받을 때 손톱에 매니큐어나 바르던 것들의 복에 겨운 개소리가 눈꼴시었기 때문이다.
그전에 교육이 실시된다.
여성가족부가 왜 해체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적인 내용이다. 그중 첫 번째는 당연히 군 가산점 폐지 문제이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모든 군인과 군무원이 기꺼이 서명하게 된다.
게다가 군인을 ‘집 지키는 개’로 묘사된 내용까지 곁들여지자 가족과 친지들의 서명까지 유도된다.
대한민국 육, 해, 공군의 병력 수는 65만 3,000명이다. 이 밖에 약간의 군무원도 있다.
군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서명 운동을 벌인다.
그 결과 무려 1,000만 명이 참여한다. 전원 투표권이 있는 유권자들로 제한했음에도 이런 숫자이다.
18대 대선의 유권자 수가 약 4,050만 명이었으니 유권자의 24.7%가 여성가족부 해체 및 호주제 부활을 청원하는 것이다.
군에서 요구한 호주제 중 가장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이혼한 여성이 재혼을 해도 자녀의 성은 바꿀 수 없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갈라졌던 친남매 간의 불행한 결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호주 승계는 장남 우선이 아니다.
차남이나 삼남도 호주가 될 수 있다. 선택은 가족이 한다. 따라서 장남도 호적을 파서 일가를 창립할 수 있다.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와 그 후손의 호적엔 10대까지 기록이 남는다. 구체적인 표현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본인’, 또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대 직계’이다.
이것은 취직하거나 공무원이나 교사로 임용될 때 치명적인 불이익으로 작용된다.
이런 조치를 취하는 이유는 친일파의 후손들이 권력에 접근하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런 상황이니 친일파 후손들은 결혼도 어려워진다.
일각에선 연좌제와 인권 운운하며 격렬히 반발한다. 당연히 친일파와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국민투표에서 통과된 사항이므로 법으로 제정된다. 이에 위헌법률심사 청구와 헌법소원 청구가 빗발친다.
위헌법률심사 청구는 법원이 가지는 권한이고, 헌법소원 청구는 민간인이 가지는 권리이다.
헌법재판소는 둘 다 기각한다.
발 빠른 기자들은 누가 심사를 청구했는지 확인해 낸다.
그 결과 법관 다수가 법복을 벗는다. 추적해 보니 모두 친일파의 후손인 것으로 밝혀져서 욕만 먹는다.
헌법소원 청구를 한 사람들도 친일파의 후손임이 밝혀져 사회적인 매장을 당하게 된다.
앞으로는 친일이라는 두 글자만으로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여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임진왜란에 운명을 달리하신 선조들과 일본 식민지 시절 돌아가신 독립운동가들께서 웃는 날이 오는 것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애쓰셨습니다.”
“네, 또 뵙습니다. 건강해 보이셔서 좋네요.”
현수는 크렘린 궁 공보실장 드미트리 페스코프와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대통령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안쪽으로 가시지요.”
“네, 그럼.”
페스코프의 안내를 받아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니 블라디미르 푸틴과 메드베데프가 환히 웃으며 일어선다.
“오오! 어서 오시게.”
“어서 오십시오.”
“하하, 네. 반갑습니다. 건강하시죠?”
“나는 그런데 이 친구는 조금…….”
푸틴의 말에 시선을 돌려 메드베데프를 바라보니 피부가 거칠고 건조해 보인다.
“잠깐만요.”
양해를 구하곤 메드베데프의 머리카락을 당겨봤다. 쉽게 끊어진다. 전형적인 만성 비소 중독 증상이다.
“손 좀 줘보시겠습니까?”
메드베데프의 손을 보니 피부가 두껍고 각화가 심하다. 자세히 살피니 미세 피부 궤양도 진단된다.
“만성 비소중독이군요.”
“…의사도 아닌데 어찌 아나?”
푸틴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병원에서 만성 비소 중독 진단을 내릴 때도 이처럼 간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흥미가 있어 의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 그런가? 일단 자리에 앉게.”
계속 서서 말할 수 없어 일단 앉자고 한 것이다.
“네, 그러죠.”
푸틴이 상석에 앉고 메드베데프와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좌측에, 현수는 우측에 앉았다.
비서가 차를 내오는 동안 유심히 메드베데프를 살폈다. 몸이 불편한지 계속해서 인상을 찌푸린다.
“몸이 많이 불편하세요?”
“조금. 으윽!”
압통이라도 느끼는지 또 인상을 찌푸린다. 시간 끌 일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준비해 온 반지를 먼저 꺼냈다.
“총리님, 일단 이걸 끼워보십시오. 독극물이 가까이 있으면 전기적 반응이 일어날 겁니다.”
“으으, 고맙습니다.”
힘없는 표정으로 반지를 끼운다.
“으으윽!”
메드베데프 총리가 나직한 신음을 낸다. 반지를 끼자마자 찌르르 하는 느낌을 받은 때문이다. 하여 얼른 반지를 뺀다.
그제야 괜찮은지 놀랍다는 표정이다. 새삼 반지의 효능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가방을 뒤지는 척하며 부적 비슷하게 생긴 종이 하나를 꺼냈다.
마트에서 어린이 장난감으로 팔던 강시 인형의 이마에 붙어 있던 가짜 부적이다.
“혹시 몰라 준비해 왔습니다. 잠시만 가만히 계십시오.”
“……?”
셋 다 대체 뭔가 하는 표정이다.
“공보관님, 라이터 좀 빌려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두말 않고 내놓은 라이터를 켠 현수는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반지를 만든 분으로부터 얻은 부적입니다. 혹시 몰라 준비해왔는데 진짜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
묻고 싶은 건 많은데 현수의 표정이 심각하여 입을 열지 못하겠는지 모두들 그게 무엇이냐는 눈빛만 보낸다.
이때 라이터를 켜 부적에 불을 붙였다. 그와 동시에 현수의 입술이 달싹였다. 마치 주문을 외우는 듯한 모습이다.
“큐어 포이즌! 톡시서티 크리어랜스(Toxicity Clearance)!”
샤르릉, 샤르르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메드베데프의 체내로 스며든다.
큐어 포이즌은 비소중독 현상을 빠르게 해소시켰다.
곧이어 독성 제거 마법이 체내에 축적되어 있는 비소 성분을 순식간에 분해시켜 버렸다.
그러자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했을 때 현수로부터 선물 받은 반지의 안쪽에서 바디 리프레쉬 마법이 구현된다.
지금껏 강한 독성 때문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제거되자 이제야 힘을 낸 것이다.
사실 메드베데프의 증상은 더 악화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반지의 바디 리프레쉬 마법이 그러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하여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헐! 이건……!”
메드베데프는 그동안 몸을 괴롭게 했던 증상이 일시에 사라지는 현상을 느끼며 눈을 크게 뜬다.
비소에 중독되어 있음이 확인되자 병원에선 BAL(British Anti―Lewisite, Dimercaprol)을 처방했다.
이것은 중금속인 비소, 수은, 납, 금 등의 중독 치료에 사용되는 디티올(Dithiol) 킬레이트제제이다.
하지만 이걸 복용하진 않았다.
이건 셀레늄, 철, 카드뮴 등의 중독 치료엔 효과가 없다. 중금속 자체보다도 더한 독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전신 감각이 무뎌지고 쑤시듯이 아픈 증상을 오로지 의지와 진통제로 견뎌왔다. 그런데 현수의 손에서 부적이 불타오른 뒤 그런 증상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건…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제 몸이, 몸이……?”
자기 몸을 처음 본다는 듯 여기저기를 훑어보면서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휴우! 효과가 있을 거라는 말을 반신반의했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나 보네요.”
현수가 짐짓 환한 웃음을 짓자 푸틴이 나선다.
“자, 이제 다시 반지를 끼워보게.”
“……!”
메드베데프는 또다시 감전되는 것이 두렵다는 듯 주저하다 반지를 낀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도 없다.
모든 독이 분해되어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때? 괜찮은가?”
메드베데프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대통령님, 제 몸이, 제 몸이 모두 나은 것 같습니다.”
“뭐? 그럼 만성 비소중독 증상이 사라진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아프던 게 싹 사라졌습니다.”
“…만성 비소중독인데?”
“그러게요.”
푸틴과 페스코프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쉽게 치료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현수를 바라본다. 어서 설명해 달라는 표정이다.
“조금 전에 불태운 건 한국에서 부적이라 하는 거예요.”
“부적? 그게 뭔가?”
“종이에 특별한 문양을 그린 건데 오래전부터 아주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겁니다.”
“……?”
종이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만으로 특별한 힘이 있다니 서양적 사고로는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다.
설명을 해야겠는데 마땅하지 않던 중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혹시 히란야(Hiranya)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히란야? 금시초문이네.”
푸틴이 고개를 젓자 페스코프 역시 동의한다는 표정이다.
“히란야는 산스크리트어 ‘황금의 빛’을 뜻하는 말에서 연유된 겁니다. 좀 더 자세한 의미는 ‘사랑과 자비의 생명 에너지’, 또는 ‘성자들에게 나오는 라티한(氣 에너지)’ 등 고차원의 신(神)적 에너지를 뜻한다고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