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71화 (671/1,307)

# 671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히란야는 육각 별 문양이다.

일반적으로 솔로몬의 인장, 또는 다윗의 별로 불리고 있으며, 불교 사찰에선 단청의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피라미드의 입체 구조는 히란야의 평면을 내포하고 있으며, 히란야의 평면을 입체화하면 피라미드가 된다.

남미에서는 오래전부터 육망성을 조각한 반지나 목걸이를 공예품 시장에서 거래하였다. 이걸 소지하면 액이 오지 않고 행운이 깃든다는 전설 때문이다.

어쨌거나 히란야는 몇 가지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

음식물의 부패가 현저히 늦어진다든지, 면도칼의 날이 무뎌지지 않고 고양이가 채식을 한다는 등이다.

잠시 현수의 설명을 들은 페스코프가 노트북으로 히란야에 관한 검색을 했고, 셋은 잠시 이것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전의 현수의 설명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문양에는 특별하거나 기이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가져온 것은 한국의 도인(道人)이 그린 것으로 중독 증상을 해소시키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현수의 거짓말은 이제 예술의 경지에 접어든 모양이다. 입술에 침 한 방울 묻히지 않고도 아주 능수능란하다.

“그게 정말인가?”

서양인의 사고로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확인해 달라는 표정이다.

“손에 끼고 계신 반지는 독극물을 탐지하면 전기적 신호를 보냅니다. 그런데 그 반지에 배터리가 있던가요?”

“……!”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없다. 확대경으로 보니 아주 작은 보석이 하나 박힌 밋밋한 반지이다. 아무런 무늬도 없다.

그런데 총리 공관에 갔을 때 찌르르 하는 신호가 왔다.

그래서 메드베데프가 먹을 음식에 비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진짜 신기한 일이다. 배터리도 없는데 분명 전기적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세상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그냥 믿으십시오. 참, 총리님은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셔서 진찰을 받아보십시오. 저도 결과가 궁금하니까요.”

“……!”

메드베데프가 푸틴을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다녀오게. 나도 궁금하니.”

“알겠습니다. 그럼…….”

누구보다도 궁금한 것은 장본인이다. 그렇기에 두말 않고 밖으로 나간다.

“고맙네. 자네 덕에 총리를 구했네.”

“제가 도움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푸틴은 특유의 쏘는 듯한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이 청년은 메드베데프를 테러로부터 구해냈다. 그리고 늘 신경 쓰던 정적들의 독살 위험을 사전에 알게 해줬다.

그러고 보니 메드베데프는 이 청년 덕에 두 번이나 목숨을 구했다. 비소 중독이 심각했던 것이다.

메드베데프를 진찰했던 의사 모두 고개를 저었다. 손쓸 수 없을 지경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현수 덕에 죽지 않고 살았다.

덕분에 자신은 후계를 이을 정치적 동반자를 잃지 않았다. 현수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딸이라도 주고 싶다.

“참, 북한에 갔던 일은 어찌 되었나?”

“세부 사항 몇 가지만 해결되면 원만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럼 이제 발표해도 되겠나?”

“아뇨. 제가 북한에 한 번 더 갔다 온 후 확실해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발표는 그때로 미루셔도 될 듯합니다.”

“그런가? 알겠네. 그나저나 우리에게 바라는 건 없나?”

푸틴은 무엇이든 돕겠다는 표정이다.

왜 그런지 짐작하기에 잠시 말을 끊었다. 곧바로 이야기하는 것이 왠지 계면쩍었던 것이다.

“저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최근 개발된 금광에 제 지분이 좀 있습니다.”

“호오, 금광이 개발되었다고?”

“네, 우연히 노천 광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상당량을 채굴했는데 혹시 매입 의사가 있으신지요?”

“금괴? 잠깐만 기다리시게.”

푸틴의 시선을 받은 공보실장은 무슨 뜻인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그래, 얼마나 캐었는가?”

“그보다 이걸 한번 봐주십시오.”

현수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일전에 가에탄 카구지가 써준 금괴 매입요청서이다. 한국은행에 준 건 이걸 퍼펙트 카피로 복제한 후 공문을 받는 대상만 살짝 바꾼 것이다.

“흐음, 금괴 100톤이라……. 양은 꽤 되는구먼. 매장량이 풍부한가 보네.”

“네, 1차분은 그렇습니다.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지는 개발사업의 재원으로 쓰일 예정입니다.”

“그런가?”

푸틴은 5,138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떠올렸다.

세계 경제가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러시아는 웅크렸던 곰이 기지개를 켜듯 점진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최근 들어 성장률이 조금 둔화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아무튼 외환위기를 겪을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한 국가가 외환을 과도하게 보유할 경우 사회 후생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국채 발행을 통해 확보된 외환보유고는 운용 수익률과 조달 금리의 격차 때문에 보유 비용을 발생시킨다.

하여 투자수익률과 외화자산 운용수익률 간의 괴리에 따른 기회비용이 증가하면서 경제 비효율성이 누적될 수 있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런 사실을 아는 이유는 경제개발부 장관 알렉세이 울류카예프의 브리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울류카예프는 외환고를 적정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으로 금괴 매입을 언급했다.

현재 러시아가 보유한 금괴는 약 907톤이다.

장관은 이를 20%쯤 늘릴 필요가 있다고 보고한 것이다. 금은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흐음, 907톤의 20%면 181.4톤이군.’

푸틴이 현수에게 시선을 줄 때 공보실장 페스코프가 들어서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새 나가서 알렉세이 울류카예프와 통화를 마치고 온 것이다.

“매입하겠네. 기왕이면 180톤쯤 되면 좋겠군.”

“네?”

“정확히는 181.4톤이네. 그 정도는 있지?”

“아, 네. 물론입니다. 200톤도 가능합니다.”

러시아 정부가 살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기에 현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계산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원래의 신색을 되찾는다.

“휘유! 엄청 많이 캤군.”

“네, 노천 광맥이니까요. 가급적 빨리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계약서는…….”

“아! 경제개발부 장관이 곧 들어올 것이네. 계약서는 그때 작성하면 되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때 푸틴의 비서가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푸틴은 양해를 구하곤 자리를 비웠다.

혼자 있게 된 현수는 왠지 뻘쭘한 기분이다.

남의 집무실이니 일어서서 돌아 나기기도 그렇고 가만히 앉아 있기도 그렇다.

“에라, 모르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엔 다급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듯하다.

엿듣기 마법을 써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내용을 알 수 없을 것이기에 고개만 갸웃거렸다.

잠시 후 돌아온 푸틴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지나가 몽골을 통째로 먹으려고 공작을 벌이다 발각되었네. 몽골 정부에서 긴급 지원 요청을 해서…….”

“네? 그게 무슨……? 몽골과 지나는 사이가 좋잖아요?”

현수의 이 말은 몇 년 전에 있었던 지나와 몽골 총리가 회담 후 발표한 내용에 기인한다.

양국은 고위층 소통을 강화하고 전략적 상호 신뢰를 증진시키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국가 간 범죄 활동을 타격하고 변경의 안녕을 수호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교육, 관광, 청년, 매체 간 교류를 더 한층 확대하여 양국 친선의 사회적 기반을 돈독히 하자고 했다.

아울러 경제 무역, 교통 운수, 금융, 에너지, 환경 보호 등 여러 영역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쯤 되면 아주 다정한 이웃이 된 셈이다.

그런데 지나가 몽골을 먹으려 했다는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몽골은 자원 강국이네. 매장량으로만 따지면 세계 10위지.”

잠시 푸틴의 설명이 이어졌다.

몽골은 현재 미네랄 러시를 맞는 중이다.

석유, 석탄, 금, 은, 동, 철은 물론이고 희귀 금속까지 다양한 종류가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아직 초기 단계임에도 형석 공급량은 세계 4위, 몰리브덴은 9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럼에도 쉽게 개발되지 못한 것은 미비한 사회 인프라 때문이다.

몽골의 영토는 약 156만 7,000㎢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10만 266.89㎢이니 몽골이 약 15.6배 넓다.

인구는 몽골이 300만이고, 대한민국은 5,095만 명이다.

이 나라의 모양은 길쭉한 타원형이며, 동서 길이는 2,392km, 남북 길이는 가장 긴 곳이 1,259km이다

땅은 어마어마하게 넓은데 인구는 적다.

그런데 1인당 GDP까지 적으니 국토를 개발할 돈이 없다. 그렇기에 나라는 크지만 동서 횡단 도로와 남북 횡단 철도가 고작이다.

게다가 지나와 러시아로 둘러싸여 있어 자원을 실어내려면 이들 나라를 거쳐야 한다.

양국 이외의 다른 나라는 나서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러시아는 제 앞가림하기에도 바빴지만 지나는 여유가 있었다. 하여 투자 명목으로 야금야금 자원 싹쓸이에 나섰다.

그 결과 몽골의 광산 개발권 4,300개 중 절반 이상이 지나의 수중에 떨어져 있다.

한국에서도 대한광업진흥공사와 삼탄, LG, 중소기업 등 59개 업체가 나서서 탐사권이나 개발권을 따내 활동 중이지만 그 결과는 미미하다.

지나가 몽골의 단물만 쪽쪽 빨아먹는 상황이다. 그런데 욕심 많은 지나 놈들의 양에는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나는 스파이를 잠입시켜 몽골 수뇌부를 뇌물로 잠식했다. 그리곤 전격적인 병합작전을 펴려 했다.

몽골이라는 국가를 통째로 지나에 편입시키려 한 것이다.

다행히 사전에 발각되어 현재 국경을 중심으로 대치 중이라 한다. 그러는 한편 몽골 대통령 차히야 엘벡도르지(Цахиагийн Элбэгдорж)가 러시아에 긴급 구호 요청을 했다.

현 상황에서 지나를 저지해 줄 유일한 국가가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그간 석유를 팔아 착실히 경제 성장을 유도해 이제는 약간의 여유가 생긴 러시아이다.

마침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던 참이다.

그러니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원 부국 몽골의 도움 요청은 불감청 고소원이다.

도와주고 적절한 대가를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여 긴급히 병력 출동을 지시하느라 상기된 표정이었던 것이다.

“이제 러시아가 몽골 자원에 투자하게 되는 건가요?”

사태의 본질을 꿰고 있기에 한 질문이다.

“…아무래도 그렇게 되지 않겠나?”

상당히 부드러운 표정이다.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이번에 처분되는 금괴의 절반은 제 것입니다. 저도 끼워주시겠습니까?”

“……!”

현수는 처분될 금괴의 양을 200톤으로 짐작했다. 181.4톤은 러시아 정부가, 18.6톤은 가스프롬이 소화해 줄 것이다.

메드베데프는 가스프롬 회장을 역임했다. 두 번씩이나 목숨을 구해줬으니 이 정도는 해결해 줄 것이다.

금괴 200톤의 가치는 10조 800억 원이다.

이 중 절반인 5조 400억이 현수의 재산이라는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은 것이다.

매장량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아마도 이게 시작일 것이다. 푸틴은 세계적인 재벌을 눈앞에 두고 있음을 자각했다.

아무튼 대답이 없자 현수는 기억 속의 숫자를 끄집어냈다.

“1990년부터 2010년 사이에 지나가 몽골에 투자한 금액은 약 25억 달러입니다. 제 돈은 45억 달러지요.”

“……!”

“금은 계속해서 채굴될 겁니다. 이를 러시아 정부에서 매입해 주신다면 기꺼이 몽골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

러시아가 여력이 생겼다지만 미래를 위한 비축이 필요한 때이다. 한때 비참할 만큼 어려웠던 시절을 겪지 않았던가!

사태가 해결되면 몽골에 투자는 하겠지만 지나보다 투자 금액이 적으면 얻는 것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현수의 돈이 얹어지면 마음 편하게 나설 수 있다.

“돈은 제가 대겠습니다. 러시아엔 자원 개발 지분을 나눠 드리지요. 제 것의 15%는 러시아 정부에, 그리고 5%는 대통령님께 드리죠.”

현수가 이런 말을 한 배경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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