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2
첫째는 몽골 지하자원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둘째는 러시아 정부와 푸틴이라는 아주 든든한 우군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라도 몽골이 계약을 파기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
푸틴의 고개가 번쩍 들린다.
러시아의 현재 실업률은 5.4%이다.
400만 명 정도가 직장이 없어 놀고 있다. 45억 달러가 더 투자되면 이 수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대통령으로서 러시아 정부와 본인이 받을 지분율보다는 실업률을 줄일 수 있음에 주목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겠나?”
“네, 그러시죠. 저는 컴퓨터 좀 써도 되죠?”
말을 하며 가방 속의 노트북을 꺼내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금방 돌아오겠네.”
푸틴이 나간 후 현수는 몽골에 관한 자료를 확인해 보았다. 땅은 넓고 인구는 적다. 개발된 곳은 거의 없다.
강수량이 적은 편이지만 케롤렌 강이나 셀렝가 강 등의 인근은 관개농업이 가능한 지역이다.
확인해 보니 밀, 콩, 감자, 호밀 등의 재배가 가능하다.
“흐음, 몽골에도 천지약품과 이실리프 농장을 설치해?”
몽골 지도를 확인해 보니 러시아로부터 흘러드는 실카 강과 케롤렌 강 사이의 황무지가 적당하다.
이곳엔 초이발산(Choybalsan)이라는 도시가 있다. 몽골 동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지나 동북 지방의 침공에 대비한 군사기지도 있다.
마침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된 철도가 있으며, 수력발전소와 석탄 광산이 있다.
그리고 식품 가공, 농산물 가공이 성한 곳이다.
“흐음, 여길 조차해서 밀농사를 지은 뒤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운송하면 밀과 콩, 감자 등은 자급하고도 남겠군.”
현수가 눈여겨본 지역의 넓이는 대략 10만㎢이다. 남한 면적과 거의 같다.
“이 지역의 땅을 조차한다면 얼마나 빌릴 수 있을까?”
인터넷 자료를 뒤져보니 한국의 누군가가 영농을 위해 120만 평을 100년간 조차했다는 내용이 있다.
조차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푸틴이 되돌아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현수가 대꾸하는 사이에 누군가 들어선다.
“이쪽은 우리 경제개발부 장관 알렉세이 울류카예프이네. 이쪽은 한국에서 온 천지건설의 김현수 부사장이네.”
“아! 반갑습니다. 알렉세이 울류카예프입니다. 유튜브에서 본 영상보다 실물이 훨씬 낫네요.”
“그런가요? 처음 뵙습니다. 천지건설의 김현수입니다.”
“자, 둘 다 자리에 앉지.”
“네.”
셋이 자리를 잡고 앉자 푸틴의 시선이 울류카예프에게 먼저 간다. 들은 말이 있으니 해보라는 뜻이다.
12장 금괴 1,000톤 어때요?
“조금 전 대통령님으로부터 김현수 사장님께서 금괴 181.4톤을 우리 정부에 매각하신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계약서는 잠시 후에 쓰지요.”
“네, 그러시죠.”
“그런데 금괴 매각 대금 중 절반을 몽골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러시아에도 도움이 되고 몽골에도 도움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큰돈을 김현수 사장님께서 이렇듯 쉽게 용처 결정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나온 황금이니 그 나라 정부와 미리 협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아! 그 돈은 제 것입니다. 당연히 제 뜻대로 결정됩니다.”
“네?”
방금 한 말이 사실이냐는 표정이다. 개인이 갖기엔 너무나 큰돈이기 때문이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금을 더 사주신다면 그중 절반을 추가로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뭐? 방금 한 말 사실입니까?”
푸틴도 놀랐는지 등받이에 기대 있던 등을 뗀다.
“네, 아직까지는 노천 광맥이라 금방 채취됩니다. 400톤까지는 추가로 가능할 것 같습니다.”
“……!”
러시아에서 금을 더 사준다면 몽골에 투자할 돈은 45억 달러에서 135억 달러로 크게 늘어난다.
한화로 계산하면 16조 2,000억 원이다.
러시아라는 커다란 나라를 운영하는 주체이지만 푸틴과 울류카예프는 놀랍다는 표정이다. 개인이 이만한 돈을 현금으로 가질 수 있다니 놀란 것이다.
“몽골 투자에 끼워주시면 러시아에 지분의 일부를 할양할 의사가 있습니다.”
울루카예프는 현수가 투자할 135억 달러가 실업률을 얼마나 낮출 것이며, 경제 성장률은 얼마나 올릴 것인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네? 방금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제 지분으로 확보되는 지하지원 중 일부를 러시아에 양보하겠다는 겁니다.”
“지하자원을 양보해요? 그, 그럼 얼마나……?”
울류카예프의 물음에 푸틴이 대신 대답했다.
“우리 정부에 15%, 그리고 5%는 내게 주겠다고 하더군.”
“네?”
말이 15%고 5%이지 실제론 엄청난 가치이다. 그렇기에 울류카예프 장관이 또 한 번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때 현수가 입을 연다.
“두 분은 제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이실리프 농장이라는 만들고 있다는 걸 아시죠?”
“그럼, 잘 알고 있네.”
푸틴과 울류카예프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가 이실리프 농장을 만든다는 것은 이곳 모스크바 언론에서도 다뤘던 해외토픽이기 때문이다.
“몽골에도 그런 농장을 개설했으면 합니다. 확인해 보니 시설만 갖추면 밀과, 콩, 감자 등이 잘 재배된다는군요.”
“몽골에 이실리프 농장을 개발한다고?”
“네, 개발에 필요한 재원은 따로 조달하겠습니다.”
“돈을 또?”
어디서 돈 솟아나는 구멍이라도 있느냐는 표정이다.
“네, 그러니 몽골 정부로부터 농지를 100년쯤 조차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잠깐만!”
푸틴이 기기를 조작하자 벽에 커다란 지도가 나타난다. 러시아와 인접국들의 상세 지도이다.
가로 12m, 세로 6m쯤 되는데 지형까지 표시되어 있다.
“자네가 조차 받으려는 곳이 어딘지 짚어주게.”
푸틴이 건넨 레이저 포인터를 받아 든 현수는 몽골 동북부에 해당되는 지역을 가리켰다.
“…저 넓은 지역을 몽땅 농토로 개발하겠다는 겐가? ”
현수가 지목한 곳의 면적은 얼추 남한 면적과 같다. 그렇기에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식량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서요. 쌀은 83%, 보리는 22.5%, 밀은 1.1%가 자급률입니다.”
“……!”
“쌀을 뺀 곡물 자급률을 보면 세계 최하위권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쌀을 재배할 건가?”
“아닙니다. 몽골은 쌀 재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쌀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재배하고 몽골 쪽에선 밀, 보리, 콩, 감자 등을 재배할 생각입니다.”
“대단하군, 대단해! 자넨 개인인데 나라를 생각하는군.”
푸틴의 말에 울류카예프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레이저 포인터로 보르자13)와 네르친스크14) 부근을 가리킨다.
이곳은 러시아 영토로 현수가 조차하려는 땅의 북쪽이다.
실카 강15)과 아르군 강 사이 지역이다.
“눈짐작으로 보면 대략 10만 ㎢가 될 것 같네. 우리가 여길 100년간 조차해 주면 어떻겠나?”
현수가 조차하려는 곳보다 북쪽이라 기온이 조금 낮을 것 같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끄덕인다.
푸틴이 제안한 곳은 북위 50° 인근 지역이다.
같은 위도에 있는 국가로 유럽의 곡창지대라 불리는 우크라이나가 있다. 이 밖에 폴란드와 체코도 비슷한 위도이다.
미국의 시애틀과 캐나다의 밴쿠버 사이쯤 되는 위도이다.
가봐야 확실하겠지만 밀과 보리, 그리고 옥수수는 충분히 재배될 수 있는 곳이다.
“좋군요. 그쪽도 주신다면 개발해 보겠습니다.”
“……!”
푸틴의 말은 몽골에 투자할 돈을 러시아에 해달라는 뜻이다. 그런데 둘 다 하겠다니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돈이 대체 어디에서 나느냐는 뜻이다.
“돈이 부족해서 사업이 중도에 멈추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 개인 재산도 있지만 투자 받을 곳이 꽤 되거든요.”
물론 뻥이다. 아공간에 있는 돈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푸틴은 한국의 재벌인 천지그룹과 백두그룹, 그리고 태백그룹 등을 떠올리고 있다.
이들 셋이 배후에서 밀어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쪽 지역에서 사용할 농기구는 가급적 러시아 산을 쓰겠습니다. 일꾼도 러시아인을 고용하지요. 몽골 쪽은 몽골 현지인과 북한 주민을 고용할 생각입니다.”
“…적극적으로 돕겠네. 이보게, 장관.”
“네, 대통령님.”
“내각회의를 하겠네. 앞으로 저 지역을 이실리프 자치구라 부르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울류카예프 장관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가 푸틴이 특유의 미소를 짓는다.
“결혼만 안 했으면 까차를 주고 싶군.”
푸틴이 말한 까차는 그의 막내딸 예카테리나 푸티나를 뜻한다. 한국인 제독의 아들과 결혼설이 있던 그 아가씨이다.
“에구,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자네를 알게 되어 기분이 좋네. 보드카 한잔 어떤가?”
“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하하, 그래!”
자리에서 일어난 푸틴이 장을 열고 술을 가져온다.
“자, 받게.”
“이건 보드카이고 이건 맥주인 겁니까?”
“그렇다네. 맥주는 안주이네. 보드카의 강한 맛을 중화시켜 주고 술도 빨리 취하게 도와주지.”
술안주가 술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역시 불곰의 나라답다.
이때 푸틴이 잔을 든다.
“자!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한잔하세!”
“네, 감사합니다.”
쭈욱!
“캬아아!”
40도짜리 보드카의 맛은 마실 땐 얼음처럼 차가운데 삼키면 불꽃처럼 뜨겁다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19.5도짜리 소주만 마시던 현수에겐 상당히 강한 맛이다. 하여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반면 푸틴은 아무렇지도 않다.
“맥주를 마시면 좀 나아질 걸세.”
“아, 네. 그럼.”
얼른 조끼를 들어 맥주를 마셨다.
꿀꺽, 꿀꺽, 꿀꺽―!
“크으음!”
“어떤가? 조금 낫지?”
“하하, 네. 훨씬 낫네요.”
“자, 그럼 그런 의미에서 한잔 더 하세.”
보드카 잔이 다시 채워졌다.
여덟 잔의 보드카를 마셨지만 둘 다 멀쩡하다.
푸틴은 술이 약해 보이는 현수가 까딱없는 모습을 보이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네 신혼 아닌가?”
“맞습니다. 제 결혼식에 오셨던 거 잊으셨습니까?”
“아내가 셋이나 되는데 어떻게 그리 멀쩡하지?”
신혼이면 거의 매일 뼈와 살이 타는 밤을 보낸다. 아내가 하나뿐인 사람도 그렇다.
그런데 현수는 아름다운 아내가 셋이나 있다.
당연히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매일 밤 고생 아닌 고생을 할 것이다. 그런데 체력적으로 전혀 부담이 없는 듯하다.
“아!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반지 만든 사람 있잖습니까.”
“내 반지? 아, 이거!”
푸틴은 독극물 탐지 마법이 인챈트되어 있는 반지를 만진다. 전에는 가끔 빼놓기도 했다. 그러다 메드베데프가 중독되어 있음을 알게 된 이후엔 샤워를 할 때도 빼지 않는다.
“그 반지를 만든 분이 저를 걱정하여 부적 하나를 주었습니다. 정력이 세지는 거라더군요. 그래서…….”
현수는 하려던 말을 끝맺지 못했다. 푸틴이 먼저 입을 연 때문이다.
“그거 나도 하나 얻어주게.”
“네?”
“나도 부적 하나 얻어달라는 말이네.”
짐짓 윙크까지 한다. 사내끼리 뭘 그리 꼬치꼬치 따지냐는 뜻이다. 푸틴은 1952년생이다. 한국식 나이는 63세이다.
정력이 전과 같지 않을 나이임에 분명하기에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분이 더 만들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하하, 고맙네. 자, 그런 뜻에서 한잔 더 하세.”
푸틴이 아홉 번째 잔을 채울 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
누군가 싶어 시선을 돌려보니 메드베데프 총리이다.
“아! 어떻게 되었는가?”
“대통령님, 그리고 김 사장님, 완전히 해독되었답니다.”
“오오, 그래? 그거 다행이네.”
“……!”
현수는 고개만 끄덕였지만 푸틴은 환한 미소를 짓는다.
“고맙습니다. 김현수 사장님 덕입니다.”
“아유, 아닙니다. 그나저나 부적이 효험이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