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3
“부적? 아! 아까 그 종이요.”
“네, 몸도 괜찮아지셨으니 보드카 한잔하시죠.”
“그러세. 자네 건강 회복을 축하하는 의미로 한잔하세.”
“하하, 네. 저도 한잔 주십시오.”
셋의 잔이 채워졌고, 연달아 비워졌다. 셋 모두 불콰한 모습이 되어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러는 동안 이실리프 자치구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현수에게 100년간 조차하려면 콩고민주공화국처럼 외국인 투자자에 관한 특별 법안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걸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의회를 통과시킬지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내용을 들어보니 법안 통과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조차에 대한 대가이다. 의회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해야 한다. 임기 후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견을 주고받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가급적 현수에게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여 애쓰는 모습이다.
“저어, 죄송하지만 제가 끼어들어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푸틴의 허가가 떨어지자 현수가 입을 열었다.
“이실리프 자치구의 면적을 10만㎢라 치고 200㎢당 황금 1톤씩이 어떨까 합니다.”
“…그럼 황금만 500톤이네.”
225억 달러, 한화로 27조 원이다.
별다른 산업 시설도 없고 농지도 없는 황무지이기에 100년간 빌려준다지만 대가가 더 크다는 느낌이다.
푸틴과 메드베데프 모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발언은 이어진다.
“금은 계속해서 캘 거니까요. 일 년에 50톤씩 10년간 제공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현수가 이런 생각을 한 배경엔 조만간 팔리게 될 금괴가 있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에 대한 투자금을 늘리기 위해 자금 여유가 있는 가스프롬 등을 동원할 것이다.
그곳에 팔린 금 중 일부는 미국의 연방준비은행 금고, 또는 포트녹스 금괴 보관소로 갈 것이다.
현수는 그때 같이 갈 생각이다.
이전엔 일정한 조건이 갖춰지면 근처에 있는 것까지 아공간으로 보내게 하는 마법진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일본이나 지나에서 했던 것처럼 직접 처리할 생각이다. 그게 가장 확실하기 때문이다.
금괴가 연방준비은행 금고로 들어갈 때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으로 동행한다.
모든 것이 끝나면 적당한 순간에 금괴를 아공간에 담는다. 그리곤 준비된 지역으로 텔레포트하면 끝이다.
연방준비은행 금고에만 금괴 7,000톤이 있다고 한다. 포트녹스까지 들어갈 수 있다면 8,000톤이 추가된다.
따라서 러시아에 500톤을 줘도 무방하다.
“그 정도면 의회에서 받아들일까요?”
“…아마도!”
“충분할 겁니다.”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진다.
2013년 7월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금 보유량은 104.4톤이다. 세계 34위였다. 따라서 현수가 제공할 금괴 500톤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충분히 가늠될 것이다.
아마도 러시아 의회와 국민은 기꺼이 조차에 동의할 것이다. 현수가 조차하려는 곳은 인구 밀도도 낮고 당분간은 개발 가능성도 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쓸모없는 황무지를 100년간 빌려주는 대신 막대한 금괴를 챙기는 것이니 찬성할 것이라는 뜻이다.
“참, 부탁이 하나 있네.”
“네, 말씀하십시오.”
“그 부적, 얻는 김에 가능하다면 하나 더 부탁하네.”
푸틴은 메드베데프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 추가로 얻을 부적을 누가 사용할 것인지 충분히 짐작된다.
“네? 하하! 네, 알겠습니다.”
푸틴이 말한 건 막강한 정력을 갖게 되는 부적이다.
둘 다 바디 리프레시 마법진으로 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부적을 건네면서 리커버리 마법을 구현시키면 정력이 증강되는 효험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효과가 없다면 마나 포션 한 병씩 먹일 생각이다.
“말 나온 김에 저도 부탁이 있습니다.”
“그런가? 말씀하시게.”
푸틴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듯 미소 짓고 있다.
“이실리프 농장의 수확물을 실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한반도까지 들어가도록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그러지.”
푸틴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실리프 자치구에서 생산된 밀 등의 곡물을 한국으로 운송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열차이기 때문이다.
“곡물 수송 전용 열차는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장거리 수송 열차는 디젤 엔진을 사용한다. 현수는 이 엔진을 손볼 생각이다. 연비 12배 향상은 당연한 일이다.
곡물을 싣는 화물 열차에는 경량화 마법진이 그려질 것이다. 무게를 10분지 1로 줄이면 연료 소모가 확 줄어든다.
연비는 좋아지고 중량은 줄었으니 연료 소모는 120분지 1로 줄어들 것이다.
아니라면 선도 열차에 더 많은 화물칸을 다는 수도 있다.
경량화 마법 덕에 이전보다 열 배나 많은 화물을 한 번에 수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수송비용이 대폭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 이건 곡물을 싸게 공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몽골 영토와 러시아 영토에 걸쳐 조성될 총면적 20만㎢짜리 이실리프 자치구는 한반도 영토와 맞먹는다.
이곳에서 생산될 각종 곡물은 남한은 물론이고 북한까지 공급하고도 남는다.
남는 것은 러시아와 몽골에서 소화시키고 그래도 남는다면 제3국으로 수출할 생각이다. 농약으로 범벅된 지나 산과 비교했을 때 우위에 있기에 판로는 널널할 것이다.
현수가 느닷없는 몽골 농장을 이야기한 것은 아르센 대륙에서 가져온 종자 때문이다.
북한에 제공할 경우 일부는 지나로 흘러들 것이다.
대한민국에 친일파가 있다면 북한엔 친 지나파가 득실거린다. 게다가 지나의 첩보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안부 3국 컴퓨터에는 미국, 러시아 등 선진국 군사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다.
한국이 도입하려는 차세대 전투기 F―35, F―15SE, 유로파이터는 물론이고 프랑스의 미라주, 스웨덴의 그리펜(Gripen) 등 주요 설계 도면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개발에 필요한 도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레이더 개발 도면도 있고 핵잠수함 설계도도 있으며, 항모와 위성 발사에 관한 것도 있다.
거의 모든 방면의 군사 자료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KAI를 인수한 뒤 연구원들에게 줄 자료이다.
양심상 버릴 이유는 없다. 보물을 지키지 못한 건 저쪽이다. 지나는 이걸로 전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신형 스텔스 무인 공격기 리젠, 스텔스 전투기 J―20 등은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나인들의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외부에서 훔쳐온 걸 참조해서 군비 증강을 하고 있다.
이 자료를 보면서 놀란 것은 대체 지나의 첩보원들이 없는 곳은 어디일까 하는 것이다.
한국군의 병력 배치 상황이 있으며, 부대의 장은 누구이고 그가 누구와 친분이 있는지 아주 상세하다.
아울러 불륜 상대가 있다면 누구인지도 파악되어 있다.
상상하기 힘든 자료까지 입수한 걸 보면 자료 조사와 훔치는 능력이 대단한 듯싶다.
따라서 북한에서 곡물 재배를 시작하면 분명 그 종자까지 훔쳐갈 것이다. 그런데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지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을 택해 농장을 만들 생각을 한 것이다.
지나와 몽골의 분쟁은 러시아가 개입되었으니 곧 끝날 것이다. 지나는 흘레16) 붙으려다 뜨거운 물벼락을 맞은 개처럼 꼬리를 말고 물러나게 된다.
그동안 나름대로 전력을 키웠다지만 아직은 러시아를 상대할 힘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나라를 집어삼키려다 발각된 것이니 명분도 없다. 결국 국제적인 망신으로 끝날 것이다.
그 결과는 몽골에서 얻은 광산에 대한 지배권 상실이다.
지나가 썰물처럼 물러가면 그 광산들은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된다.
강제로 빼앗아도 되지만 그러면 뒷말이 무성해진다.
따라서 적절한 투자를 하는 모양새를 갖추면 자원 부국인 몽골의 지하자원은 러시아가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여 몽골과 러시아의 관계가 좋아지면 지나는 몽골에 첩보원 등을 보내기 어려워진다.
국경 감시 체제가 보다 엄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푸틴이 네르친스크 인근에 농장 설치를 권유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는 그곳이 지나와 국경이 맞닿은 곳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러시아 군인들이 주둔해 있으면 지나가 도발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조차 협정서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쓰도록 하세.”
“네, 저도 그러면 좋습니다.”
“이 밖에 또 원하는 건 없나?”
“네?”
“사할린 가스전 개발은 어떤가? 사할린―3와 사할린―4 가스전 개발공사의 임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네.”
“제가 원하면 주실 겁니까?”
현수는 웬 농담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사할린―3는 인도의 가스 회사 ONGC가 지분 49%를 사들이려고 공을 들이는 중이다.
“아직 임자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가격만 적절하면 지분을 넘기겠네. 사할린―4도 마찬가지이네.”
푸틴은 짐짓 개구진 웃음을 짓는다. 이 정도면 만족하겠느냐는 뜻이다.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좋네. 역시 통이 커. 어쨌거나 자네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테니 담당자들과 협의 후 다시 이야기하세.”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배려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오히려 우리가 고맙지. 자네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푸틴의 이 말은 사실이다. 현수가 자기 나라를 위해 곡물 농사를 짓겠다는 말을 했을 때 신뢰도 100%를 채웠다.
어펜시프 참 마법을 걸지도 않았건만 그에 걸맞은 호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국영 기업인 가스프롬이 고심하고 있던 바를 단숨에 결정했던 것이다.
이제 사할린―3와 사할린―4 프로젝트는 한국인 김현수의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물론 누가 봐도 합당한 가격을 치러야 하지만 적어도 치열한 경쟁은 없다. 이것만으로도 굉장한 것이다.
잠시 후, 경제개발부 장관 알렉세이 울류카예프가 준비해 온 서류에 사인을 했다.
러시아 정부에 금괴 400톤을 매각하는 협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곧이어 메드베데프가 데리고 온 가스프롬 경영진과 금괴 200톤을 매각하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러시아 정부 물량은 러시아로 반입하지만 가스프롬의 것은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에 보관하기로 했다.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추가로 금괴를 매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매각 대금의 절반을 러시아에 투자한다고 하니 아예 발 벗고 나설 모양이다.
현수는 피식 웃었다.
러시아의 석유 재벌 유코스의 회장은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이다.
그와 그의 동업자 플라톤 레베데프는 부정부패와 사기 혐의, 그리고 자금 세탁과 횡령 협의로 기소되어 복역 중이다.
푸틴은 이런 재벌들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 금괴 매입을 강요할 것이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러시아 재벌들이 가진 자금을 보다 투명하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매입한 금의 양을 정확히 알게 된다.
둘째, 현수가 매각 대금의 절반을 투자하게 된다.
셋째, 불편한 관계였던 재벌들과 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
넷째, 적의를 가진 사람들이 줄어들수록 독살 내지 암살의 위험이 줄어든다.
늦은 오후, 크렘린 궁을 나선 현수는 대통령이 내준 방탄차를 타고 이바노비치의 저택으로 갔다.
그곳에 만찬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희와 이리냐가 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하하! 어서 오시게, 사위!”
모스크바의 밤을 지배하는 알렉세이 이바노비치가 환히 웃으며 두 팔을 벌린다. 현수도 마주 포옹했다.
“네, 장인어른! 그간 안녕하셨지요?”
“어서 와요, 사위!”
“네, 장모님! 더 예뻐지신 거 같습니다.”
“어머! 그래요? 호호, 호호호호!”
베르세네바 마리아 이바노비치가 환히 웃으며 좋아한다.
쉐리엔을 먹으면서 살이 쏙 빠졌다. 예전의 미모를 되찾게 되자 쾌활한 성품으로 변했다더니 사실인 듯싶다.
“어서 와요, 제부!”
“반가워요, 제부!”
올가와 나타샤가 환히 웃는다. 그녀들의 곁에는 연방재판소 판사인 올가의 남편과 검사인 나타샤의 남편이 있다.
“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형님들!”
현수의 너스레에 둘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