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4
처형 및 동서들과 인사를 주고받은 뒤 상의를 벗자 기다렸다는 듯 이리냐가 옷을 받는다.
“힘들진 않았어요? 크렘린 궁은 여전하죠?”
“그럼! 근데 연희는?”
이 자리는 이리냐와 그 가족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연희는 저택에 머물기를 원했다.
이리냐는 한마음 한뜻으로 평생을 같이하기로 했으니 같이 오자고 권했다. 그런데 마음이 변했나 싶어 물은 것이다.
“언니는 잠깐 화장실에 갔어요. 아, 저기 오네요.”
“……!”
“오셨어요?”
“그래, 좋아 보이네.”
격식을 갖추느라 드레스를 입어 보기에 좋았다.
“호호! 고마워요.”
“자자, 자리에 앉지. 음식 다 식겠어.”
이바노비치의 말에 모두가 착석했다.
“죄송합니다. 크렘린 궁에서 조금 지체했습니다.”
현수는 정중히 고개 숙여 늦은 것에 대해 사과했다. 여태 자신을 기다리느라 아무도 식사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괜찮아. 늦을 수도 있지. 그리고 이렇게 왔으면 되었지. 자, 다들 식사부터 하자고.”
“네.”
약간 식기는 했지만 음식 맛은 좋았다. 식사하는 동안 동서들이 몇 마디 말을 했다.
나름대로 러시아에선 엘리트이며 권력자들이다.
그런데 판사와 검사인 자신들조차 만날 수 없는 푸틴과 메드베데프를 독대하고 왔으니 궁금한 것이 많은 것이다.
현수는 적당히 웃으며 대꾸해 줬다.
13장 성녀 기절하다!
식사 말미에 이실리프 자치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물론 정식 발표 전까지 함구해 줄 것을 요청한 뒤에 나온 말이다. 이에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소파로 이동했다. 모두가 궁금했던 것이다.
몽골과 러시아에 각각 10만㎢에 달하는 대규모 영농 단지를 만드는 것부터 이야기했다. 100년간 조차하여 농사를 짓겠다는 말에 모두가 입을 벌린다.
너무도 어마어마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인을 대거 고용하겠다고 하자 이바노비치가 반색한다. 나이가 들어 조직을 은퇴한 자들에 대한 처우 때문에 고심하던 차이기 때문이다.
가족 단위로 이주하면 취업을 시켜주고 주거까지 제공하겠다는 말에 그래도 되느냐며 반문한다.
러시아엔 이런 형태의 고용이 없기 때문이다.
판사와 검사인 동서들은 장인보다 논리적으로 물었다.
이에 현수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진행되는 것을 감안해 대답해 줬다.
농장 곳곳에 작은 도시를 만들어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고 운송과 이동을 위한 도로를 만든다는 말에 모두들 입을 떡 벌린다.
국가가 전 국민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이뤄질 일을 너무나 쉽게 말했기 때문이다.
모든 설명을 마친 현수는 장인에게 영농에 필요한 것을 매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실리프 상사의 대표로서 드모비치 상사 대표에게 의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회계 등의 업무는 이리냐가 총괄 지휘하기로 했다.
이바노비치는 계속 파안대소하며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현수와 푸틴의 밀월 관계는 마피아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조만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배자와 결전을 벌여야 한다.
그때 아주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화제는 지나의 몽골 병합작전 실패에 관한 것이다. 모두들 지나의 욕심 사나움을 성토했다.
이바노비치는 스피드와 쉐리엔의 수출량을 대폭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쉐리엔을 전 유럽에 뿌리기엔 오는 게 적다는 것이다.
스피드는 수입되자마자 항구에서 인도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둘 다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다.
현수는 한국에 알아보고 답변해 주겠다고 했다.
환담은 늦은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올가와 나타샤 부부가 돌아간 후 현수와 연희, 그리고 이리냐도 저택을 나섰다.
셋은 팔짱을 낀 채 천천히 걸었다.
“모스크바의 밤공기는 시원하네.”
“호호! 이게 시원한 거예요, 엄청 추운 거죠?”
연희의 대꾸에 이리냐가 까르르 웃는다. 현재 기온은 ―30℃이다. 웬만하면 얼어 죽을 날씨이다.
그럼에도 셋은 여유롭다. 항온의류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장갑과 구두, 그리고 모자에도 마법진을 끼워 넣었기에 얼굴만 차갑게 느껴진다.
“그런가? 항온마법진이 좋긴 좋지?”
“그럼요. 이거 없었으면 덜덜 떨고 있었을 거예요.”
이리냐의 말에 연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덕에 이렇게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거잖아요.”
“하하! 그래.”
셋은 천천히 걸어 저택으로 들어갔다.
집사장 안톤과 하녀장 타찌아나, 요리장 타날리야 등이 정중히 고개 숙여 주인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하하, 네. 모두들 오랜만입니다.”
“네. 그런데 차도 없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밖이 엄청 추울 텐데요.”
“별로요. 이리냐, 그거 아직 지급 안 했어?”
“아아, 깜박 잊었어요. 이제 할게요.”
이리냐가 폴짝폴짝 뛰어 2층으로 뛰어올라가자 안톤 등은 어떤 영문인지 몰라 고개만 갸웃거린다.
잠시 후 이리냐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안에는 안톤을 비롯한 모스크바 저택 식구들의 항온의류가 있다.
미리 사이즈를 통보 받아 제작한 것이다.
집사 및 하녀와 요리사의 근무복 형태도 있고, 일반적인 아웃도어도 있다. 구두와 장갑, 그리고 모자까지 모두 항온마법진이 들어 있다.
이리냐가 설명하자 모두들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에 안톤을 실내에서 입는 근무복만 입힌 채 현관 밖으로 내보냈다. 워낙 추운 날씨인지라 타찌아나와 타날리야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뀐다.
안톤이 곧 동태가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때 안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얼굴로는 추위가 느껴지는데 신체의 다른 부위는 전혀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때문이다.
잠시 후, 항온의류의 효과를 확인한 안톤은 크게 감탄하며 들어왔다.
타찌아나와 타날리야 등은 못 믿겠다며 밖으로 나간다.
그러는 동안 현수와 연희, 그리고 이리냐는 2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했다.
“피곤하지?”
“아뇨. 괜찮아요. 그러는 현수 씨는요?”
“나? 나는 늘 괜찮잖아.”
“다행이에요. 현수 씨가 마법사인 게.”
연희가 현수의 품에 안겨 한 말이다.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된 게 다행이에요.”
반대편에 안긴 이리냐의 사랑 고백이다.
“나는 당신들의 남편이 된 게 다행이야. 둘 다 사랑해!”
“저도요.”
“저도요.”
둘의 나직한 속삭임에 현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아침, 이바노비치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쉐리엔을 원하는 만큼 수출해 줄 수 있다고 말해준 것이다.
스피드는 생산 라인이 증설되는 대로 최대한 많이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현수는 이리냐만 남겨놓고 연희와 함께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이동했다. 이리냐는 새롭게 조성될 이실리프 농장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 * *
“어때? 집 좋지?”
“그럼요.”
킨샤사 공항에서 곧장 저택으로 온 연희는 서둘러 샤워실로 들어간다. 모스크바에 있다 와서 그런지 더 더운 듯 느껴진 때문이다.
“보스, 오랜만입니다.”
피터스 가가바와 엘린 가가바가 정중히 고개 숙이자 뒤에 있던 두 쌍의 남녀가 따라서 허리를 숙인다.
빈관과 경호동의 남녀 집사장들이다.
“주인님! 오셨어요?”
알리사와 다른 시녀들, 그리고 젊은 사내들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다. 집사와 시녀들이다.
저택 밖의 경호초소에 배치되어 있는 경호원들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태이다.
“미스터 가가바, 낯선 인물들이 있네. 소개해 주게.”
“네, 보스. 이쪽은 빈관의…….”
피터스 가가바는 빈관과 경호동의 남녀 집사장들을 차례로 소개했다. 결혼 전 연희와 이리냐가 뽑은 사람들이다.
다음은 집사장의 지휘를 받는 집사와 시녀장의 지휘를 받는 시녀들이다.
저택 본관은 여섯 명의 집사와 여섯 명의 시녀가 배치되어 있다. 이 중 현수 부부가 머무는 2층을 오르내릴 수 있는 건 알리사와 마리나, 그리고 세레나뿐이다.
지현, 연희, 이리냐의 개인 비서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 부부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다.
빈관은 손님이 많을 때도 있기에 열두 명의 집사와 열두 명의 시녀가 배치되어 있다.
경호동은 집사 열두 명, 시녀 스물네 명이다. 평상시 머무는 인원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이 맡은 임무는 청소, 요리, 빨래, 정돈, 정비 등이다.
별도로 정원만 관리하는 인원이 따로 있다.
현재 저택 뒤쪽 인공 호수 부근에서 작업 중이라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두 분 장모인 강진숙 여사와 안나 여사는 경호원들과 함께 백화점에 쇼핑하러 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저택엔 집사장 세 명, 시녀장 세 명, 집사 서른 명, 시녀 마흔두 명, 정원사 여섯 명이 머물고 있다.
이 밖에 대통령궁에서 보낸 경호원 스물네 명과 레드마피아에서 파견한 경호원 스물네 명이 더 있다.
이들에겐 매월 급여가 지불된다. 콩고민주공화국 평균 급여의 다섯 배나 된다.
그리고 이들 가족을 위한 집이 지어지는 중이다. 그렇기에 충성심은 중세 왕국의 기사 못지않다. 현수 부부의 명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속을 뛰어들 정도이다.
너무도 친절하고 자상하며 가난으로부터 완벽하게 탈출시켜 준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수, 지현, 연희, 이리냐, 강진숙 여사, 안나 여사까지 포함하면 138명이다. 어느새 대식구가 된 것이다.
인사를 받고 모두 물러가게 했다.
“미스터 가가바!”
“네, 보스!”
“저택 보호에 만전을 기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한 듯싶다. 무장 강화 방안을 모색하여 보고하도록.”
“네, 보스!”
“오가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헬기를 도입할 것이니 유능한 조종사를 알아보도록.”
“알겠습니다. 그런데 들여올 헬기의 기종이 뭔지요?”
“한국에서 개발한 수리온이라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으로 찾아보도록.”
“알겠습니다.”
“들여올 헬기는 세 대이다. 조종사는 여섯 명을 뽑게. 아울러 착륙장 및 정비창 등도 조성하도록.”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가가바는 충직한 신하의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2층에 오르니 샤워를 마친 연희가 시원한 주스를 만들고 있다. 쉐리엔 열매의 즙이다.
아주 달콤하고 향긋한 이 주스는 노화를 억제해 주고 피부 주름을 펴주는 효능까지 있다.
“이거 마셔요.”
“그래, 좋지.”
현수가 자리에 앉자 바싹 다가앉으며 품에 안긴다.
아직 신혼이라 틈만 나면 이런다. 쉐리엔 한 모금을 들이켠 현수는 사랑하는 신부를 열락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열기는 뜨거웠지만 실내 온도엔 변화가 없다. 항온마법진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오오오―!
오랜 비행과 격렬한 사랑 때문에 피곤했는지 연희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꼭 보듬어 안아줬다.
그래도 여전히 꿈나라 여행 중이다.
피식 웃음 짓고는 서재로 향했다.
한국에서 보내온 각종 전문 서적들로 꽉 채워진 공간이다. 인터넷 특별 회선도 설치되어 있다.
정보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두루 섭렵했다.
저녁 식사는 촛불 켜놓고 연희와 함께 했다.
오늘의 메뉴는 안심 스테이크이다. 현수는 브랜디를, 연희는 샴페인을 마셨다.
로맨틱한 식사를 마치곤 저택 주변을 산책했다. 불빛을 보고 모여든 벌레가 많았지만 둘의 주위엔 범접하지 못한다.
배리어 마법이 구현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마치곤 수영을 했다. 당연히 수영복 차림이다.
샤워를 하곤 나란히 침실로 들었다. 연희의 육감적인 몸매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잠시 책을 읽는 듯하더니 이내 열풍이 분다.
역시 신혼부부이다.
연희는 이내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후후, 피곤하겠지. 푹 자. 딥 슬립!”
연희를 재운 현수는 옥상으로 올라가 의복을 갈아입었다.
밤사이 아르센 대륙을 다녀올 생각이다.
“마나여, 나를 아르센으로!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져 버린다.
* * *
“흐음! 공기 한번 시원하네.”
맑고 청정하며 시원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켠 현수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주 상쾌한 기분이 든 때문이다. 현수는 신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