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77화 (677/1,307)

# 677

보아하니 사냥 도구라는 것이 나무의 끝을 뾰족하게 깎은 목창이 전부인 듯하다.

“아공간 오픈!”

현수가 꺼낸 것은 감자이다. 신전 농장에서 종자를 개량한 것이 아니라 백두마트 서초점에서 팔던 것이다.

“받게. 이건 감자라 하는 것이다. 쪄서 먹으면 요기가 될 것이다.”

“네? 아, 네에.”

“그리고 이건 종자이다. 내년에 날이 풀리면 심어라. 이걸 재배하는 방법은…….”

잠시 감자의 재배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아이고, 정말 고맙습니다요. 마법사님 덕분에 저희 마을 식솔들이 굶어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요.”

촌장이 굽실거리는 동안 곁에 있던 사내가 눈물을 훔친다. 사실은 먹을 양식이 다 떨어져서 어제부터 굶던 중이다.

목책 밖에 나가도 먹을 수 있는 나물 같은 것도 없다. 하여 마을의 젊은 층이 목숨을 걸고 사냥에 나선 것이다.

물론 성과가 있을 것이라곤 기대할 수 없다. 젊은 층 역시 굶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감자를 어찌 삶는지 가르쳐 주었다.

그리곤 한동안 먹을 양식을 꺼내주었다. 그냥 놔두면 틀림없이 굶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절대 종자는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마을 사람 전부가 현수 앞에 엎드려 이름을 알려달라고 애원했다. 죽을 때까지 매일 가이아 여신께 가호를 내려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냥 떠날까 하다 이름을 가르쳐 주는 것 정도는 괜찮겠다 싶어 하인스 킴이라고 했다.

그리곤 곧장 플라이 마법으로 이동했다. 물론 로이어 영주성으로 가기 위한 비행이다.

가던 중 늑대 무리의 공격을 받고 있는 마을 청년들을 구해주었다. 40대 초반 사내 셋인데 예상대로 목창 하나씩 들고 있다.

이들을 포위한 늑대는 40여 마리이다.

놔두면 늑대에게 먹힐 것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내려섰다. 그리곤 늑대들을 사냥했다.

늑대 가죽은 겨울을 지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늑대 고기는 양식이 된다.

문제는 너무 굶어서 운반할 기운이 없다는 것이다. 하여 빵을 두어 개씩 먹을 수 있도록 해줬다.

그리곤 리어카 하나를 꺼냈다. 여기에 공간 확장 마법진과 경량화 마법진, 그리고 보존 마법진을 그렸다.

사내들이 늑대를 싣고 갈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사내들이 마을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재차 플라이 마법으로 이동했다.

산지로 가득한 영지인지라 면적이 엄청나게 넓은 듯하다.

세 시간 가까이 비행한 현수는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가도 가도 첩첩산중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하여 좌표집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런, 바보같이……. 하여간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니까.”

한 줄 아래에 있는 좌표를 읽었음을 확인한 현수는 실소를 지었다.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날 이후 현수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마을 사람들은 잠들기 직전과 깨어난 직후 하루에 두 번씩 기도한다.

그 내용은 마을을 위기로부터 구해준 착한 마법사 하인스 킴에게 가이아 여신의 가호가 있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 * *

“지금이다! 중갑보병들은 명을 받으라! 지금부터 공격이다! 단 하나도 살려두지 말고 모두 죽여라!”

“와와와와와! 죽이자! 죽이자!”

“와와와! 로이어를 말살하자! 말살하자!”

쿵, 쿵, 쿵, 쿵, 쿵, 쿵ㅡ!

누군가의 명에 따라 갑옷으로 완전무장한 병사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한다. 완만한 경사로 아래에 있던 로이어 영지의 일반 병사들의 안색이 일제히 창백해진다.

경사로를 내달리는 동안 관성을 얻게 되기에 중갑보병들의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손에 들린 랜스의 파괴력 또한 점점 커진다.

가만히 있으면 앞 병사의 가슴을 뚫은 랜스에 꼬치처럼 꿰뚫릴 수 있다.

뒤에서는 피하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앞에선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하켄 공작의 중갑보병들이 달려들고 있다.

쿵, 쿵, 쿵, 쿵, 쿵, 쿵ㅡ!

이들은 원래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병사들이다.

라이셔 제국의 동북쪽에 위치한 니라스 왕국과의 국경에 배치된 국경수비대 소속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켄 공작의 명을 받는 군사이기는 하지만 영지전엔 동원될 수 없다.

오로지 국경 수비에만 사용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나선 이유는 로이어 영지의 허를 찌르기 위함이다.

로이어 영지는 기사 100에 병사 10,000이다. 이 밖에 고용된 용병 800여 명이 있다. 소드 마스터는 없다.

반면, 하켄 공작령엔 기사 300에 병사 30,000이 있다. 뿐만 아니라 공작 본인과 큰아들이 소드 마스터이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용병 1,200여 명도 있다.

이렇듯 절대적인 병력 우위에 있음에도 국경수비대까지 동원한 것은 로이어의 모든 것을 앗아가기 위함이다.

또한 최소한의 피해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칫 로이어와의 대결에서 큰 피해를 입으면 다른 공작들과의 전력 차가 생기게 된다. 그것은 곧바로 권력 누수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로이어 정도는 가뿐히 말살해야 체면이 선다. 그래서 이들을 동원한 것이다.

어쨌거나 중갑보병들은 육중한 발걸음을 옮겨 로이어 영지군에게 쇄도해 간다.

둘 사이의 거리가 약 50여 보쯤 되었을 때 로이어 영지 쪽의 누군가가 소리친다.

“전원 후퇴하라! 후퇴하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이 모두 물러난다. 그리곤 곧장 영주성 쪽으로 달려간다. 누가 봐도 오합지졸이다.

한편, 중갑보병들은 가속도를 얻었다. 하지만 맨몸으로 뛰는 병사들을 따라잡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쳇! 명예도 모르는 천박한 놈들!”

누군가 코웃음을 친다. 그리곤 소리친다.

“중갑보병 제자리에!”

“중갑보병 멈추라신다.”

“중갑보병 모두 멈추라신다.”

뿌앙, 뿌앙, 뿌아앙―!

쿵, 쿵, 쿵, 쿵, 쿵, 쿵ㅡ!

“선두 제자리에!”

우렁찬 뿔 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자 달려가던 중갑보병들이 멈춘다.

이때, 로이어 영지 쪽의 누군가가 이맛살을 찌푸린다.

“이런 빌어먹을! 그냥 계속해서 달려오지. 쳇!”

로이어 영지 쪽은 하켄 공작이 국경수비대 중갑보병 1,000명을 동원했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바 있다.

이들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팠다. 그렇기에 일부러 경사로 아래쪽에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중갑보병들이 지형의 이점을 얻기 위해 달려오면 적당히 겁먹은 척하다 후퇴하는 게 첫 번째 작전이다.

도주하는 병사들은 미리 표시된 곳으로만 피해간다.

그 외의 곳은 깊은 도랑이 파져 있다. 밑에는 나무 끝을 뾰쪽하게 깎은 창들이 박혀 있다.

두툼한 갑옷을 입고 있을 것이기에 생명을 잃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중상은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게 중갑보병을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생포하게 되면 황궁에서 파견한 참관인에게 증거로 제시할 속셈이었다.

참관인들은 절대 권력자인 하켄 공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작만의 명령을 듣는 국경수비대 소속 중갑보병들을 증거로 제시하면 문제가 된다.

제국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켄 공작 쪽도 사전에 입수한 정보가 있다. 로이어 영지군이 중갑보병을 생포하여 증거로 쓰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로이어 쪽 병사들이 오합지졸처럼 무질서하게 도주하고 있지만 추격을 명하지 않은 것이다.

함정이 있다는 걸 안 것이다. 이는 로이어 쪽에 심어둔 세작으로부터 온 첩보였다.

이런 걸 뻔히 알면서 중갑보병들을 내놓은 것엔 다른 이유가 있다.

이제부터는 수성전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하켄 군은 별다른 공성병기를 가져오지 않았다.

직접적인 공성전이 아닌 고립전을 펼치려 하기 때문이다.

중갑보병 1,000명과 용병 1,200여 명은 로이어 영지군 전체와의 대결에서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임무는 로이어 군이 영주성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하켄 공작의 기사 300명과 병사 30,000명은 로이어 영지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약탈과 납치를 한다.

로이어 영지민 전부를 잡아가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켄 공작령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는 생각이다.

영지민을 모두 체포하려면 많은 시간이 흐를 것이다.

어쨌든 그 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터 공성전이다.

이때쯤이면 로이어 영주성 내의 양식은 모두 떨어진 후일 것이다. 그때 천천히 공성무기를 동원한 공격을 가한다.

상대보다 병력 수가 세 배 이상 많으니 당연히 승리한다.

그렇게 하여 영지전이 끝나면 포로는 노예가 된다.

카이로시아의 부친인 퍼거슨 에델만 드 로이어 백작과 큰오빠인 에머럴은 혼전 중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영지전이 벌어지는 동안 의도적으로 목숨을 앗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카이엔 제국으로 어쌔신들이 파견된다.

둘째오빠인 일루신을 암살하기 위한 자들이다. 테세린에 있는 카이로시아에게도 이미 어쌔신이 파견되었다.

에델만 가문의 식솔 전원을 죽여야 합법적으로 이레나 상단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까지는 짐작하지 못하기에 로이어 영지군은 일제히 영주성 내로 들어갔다.

그리곤 정문을 닫고 하켄 군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같은 시각, 중갑보병 1,000명은 화살의 사정거리 바로 바깥에 자리를 잡는다. 200명씩 다섯으로 나뉘어 반달형으로 성문 밖을 포위한 형상이다.

이들 사이사이엔 용병들이 자리한다. 300명씩 무리 지어 있다. 로이어 영주성은 후문이 없다.

절벽 앞에 지은 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딱 하나뿐인 출구를 완벽하게 포위당한 형국이다.

기사 100명이 있지만 200명에 달하는 중갑보병 두 무리와 혼전이 벌어지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일반 병사 10,000은 나가봤자 죽임만 당할 상황이다. 용병들이 있지만 현 상황에선 큰 도움이 못 된다.

중갑보병들에 대한 공격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으으음!”

에델만 백작이 눈썹을 찌푸리며 하켄 군을 바라본다.

“아버지, 공성무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공격하지 않을 모양입니다.”

“그래, 그렇게 보이는구나. 하지만 언제 공성무기를 가져와 공격할지 모르니 대비를 단단히 하거라.”

“네, 아버지!”

“기사들에게 일러 병사들 단속을 잘 하도록 하고, 수성전에 대비한 돌멩이나 기름 등을 다시 점검토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에머럴 에델만 드 로이어가 물러가자 백작은 멀리 떨어진 숲 속을 주시했다. 그 속에 300여 기사와 30,000여 병사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주님, 속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래? 보고하라.”

보고하겠다고 온 자는 영지 수석 기사인 라르센 남작이다.

“적의 대대적인 공격이 임박했다는 첩보입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병사들을 재워선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렇겠지.”

에델만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하켄 공작이라도 영지전 첫날을 이처럼 밋밋하게 보내진 않을 것이다.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영지전을 승리로 이끄느냐에 따라 무력을 측정하는 이웃 영지 영주들 때문이다.

현수가 당도하지 않았다면 라르센 남작은 매일 이런 보고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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