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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679화 (679/1,307)

# 679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스튜를 먹으며 물었다.

그 결과 메리의 인적 사항을 대강 꿰게 되었다. 아울러 리히스턴 자작이 어떤 위치의 인물인지도 알게 되었다.

하켄 공작령엔 전투마법사들이 여럿 있다. 리히스턴은 그중 서열 3위에 해당하는 마법사이다.

신경질적으로 생기긴 했지만 실제 성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만년 3인자 자리에 있다 보니 아랫사람이 당하는 고초를 실감한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래서 리히스턴 자작을 싫어하는 사람이 적다고 한다.

아무튼 메리는 생각 외로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켄 공작령의 병사들은 이 시각 현재 로이어 영지 곳곳을 누비며 영지민들을 체포하고 있다고 한다.

300명의 기사와 300명의 100인대 대장이 각기 25명의 병사를 이끌고 흩어진 상황이다.

다시 말해 기사와 병사를 600개 조로 나누어 동시다발적으로 영지민 사냥에 나선 것이다.

이들 이외의 14,700명의 병사 중 4,700명은 하켄 공작성에 남아 있다.

공작의 큰아들인 소영주가 이들을 지휘한다. 영지전을 벌이곤 있지만 근거지를 비워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10,000명은 현재 공작과 더불어 공작령에 머물고 있다. 이들의 임무는 베르나르 빈셀 드 하켄의 등에 ‘유부녀 겁탈범’이라는 문신이 새겨지게 한 마을을 찾는 것이다.

조그마한 마을에서 결혼식이 열리던 그날 베르나르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초야권을 행사했다.

그때 동행했던 수행기사 둘과 시종 역시 취해 있었다.

시종과 수행기사 중 하나는 분노한 신랑 가족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베르나르와 함께 귀환했다.

그의 등에도 문신이 새겨져 있다.

‘개만도 못한 인간쓰레기’라는 것이 그것이다.

아무튼 이들 둘은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기에 가끔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다.

사랑하는 둘째아들의 등짝에 지우고 싶어도 쉽게 지울 수 없는 문신이 새겨진 것만으로도 공작을 화나게 했다.

게다가 초기엔 보이지 않던 정신착란 증상까지 나타나자 분기탱천했다. 하찮은 것들이 감히 둘째아들을 건드렸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여 병사들을 동원하여 로이어 영지 근처 하켄 공작령 화전민 마을을 샅샅이 뒤지는 중이다.

발견되면 마을의 모든 것이 말살된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이고 있는 것이다.

메리가 이토록 소상히 알고 있는 건 리히스턴 자작이 그녀를 전혀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벌써 일 년째 사나흘에 한 번씩 심하게 깨물리는 사이인 것이다.

이야길 들으며 스튜를 모두 먹은 현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엇을 먼저 처리해야 할지 가늠한 것이다.

에델만 백작과 로이어 영지군은 중갑보병과 용병들을 감당해 낼 수 없음을 알기에 성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쪽은 이쪽대로 마땅한 공성무기가 없으므로 공격하지 못한다. 당연히 소강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로이어 영지군은 하켄 공작이 파견한 병사들에 의해 심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모두 잡아다 농노로 쓸 생각이니 재산은 약탈당할 것이고, 얼굴 반반한 여자들은 거의 모두 능욕당할 것이다.

이들을 구하려면 동시에 600군데를 장악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로썬 방법이 없다.

이들의 악행을 멈추게 할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하켄 공작령에 머물고 있는 에드몬드 빈셀 드 하켄 공작의 직접적인 명령이다.

현수는 메리에게 더 묻고 싶었지만 그러면 의심할까 싶다. 게다가 공작의 위치를 메리가 어찌 알겠는가!

이곳에서 공작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리히스턴 자작뿐이다. 하여 스튜 그릇을 내려놓고 그의 천막으로 향했다.

“그래, 스튜는 잘 먹었나?”

침상에 누워 휴식을 취하던 리히스턴이 현수를 바라보며 한 말이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남지 않았다는 표정이다. 그를 바라보는 현수의 눈길은 싸늘하다.

“리히스턴 자작이라 했나?”

“뭐? 뭐라고? 이놈의 자식이 어디서 감히……!”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쉬고 있던 자작이 벌떡 일어난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언제 밑의 것들이 치고 올라올지 모르는 불안한 세월을 살아왔다.

하켄 공작령엔 같은 4서클 마법사가 셋이나 더 있다. 이들이 먼저 깨달음을 얻으면 졸지에 서열이 밀리게 된다.

하여 하극상을 지극히 혐오하는 자작이다. 그렇기에 버럭 노성을 지른 것이다.

“네 이놈! 어디서 감히……!”

아직 새파랗게 젊은 초보 마법사가 감히 귀족인 자신을 능멸했다는 기분인지 부르르 떨기까지 한다.

이때 현수가 나직하면서도 단호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리히스턴 자작.”

“……!”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위압감에 리히스턴의 안색이 삽시간에 창백해진다. 1서클 초보 마법사는 결코 보일 수 없는 엄청난 카리스마가 작렬한 때문이다.

“리히스턴 자작, 이실리프 마탑의 탑주이며 매지션 로드로서 네게 명을 내린다.”

“…네에? 누, 누구시라고요?”

현수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지자 리히스턴은 대경실색한다.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라 했다.”

“저, 저, 정말이십니까?”

“그러하다.”

“미, 미천한 리히스턴이 가, 감히 매, 매지션 로드님을 알현하옵니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리히스턴 자작이 마법사의 하늘을 향해 정중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이실리프 마탑주가 세상에 나타났다는 것은 이미 아르센 대륙 전체에 번진 소문이다.

위기에 처한 아드리안 공국을 건드리는 세력은 패망을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소문도 돌았다.

초대 이실리프 마탑주는 9서클 마스터였다. 그리고 이번에 나타난 마탑주 역시 그럴 것이란 소문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가운데 미판테 왕국 케발로 영지에서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 있었다.

광범위 초고온 헬 파이어 흔적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이실리프 마탑주는 9서클 마스터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라이셔 제국 수도 외곽에는 혈운의 마탑이란 곳이 있다.

현수가 등장하기 전까지 대륙엔 일곱 개의 마탑이 존재했다. 이 중 다섯 개의 마탑주가 7서클이고 나머지 둘은 6서클에 불과하다.

7서클 마탑주 중에서 최강자는 혈운의 마탑주 홀리오 아렌드 판 유세이다. 그의 화후는 7서클 유저이다.

리히스턴 자작은 공작령에 의탁한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마탑에서 매년 개최하는 신년 하례식에 꼭 참석한다.

왕복 경비는 전액 자력부담이다.

왕궁에서 벌어지는 파티와는 격과 내용이 다른 것이다.

마법사들끼리 모여서 그간 얻은 깨달음의 실마리를 주고받는 자리이다. 새로운 마법을 검증 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당연히 술과 여자, 그리고 음악과 춤은 없다.

올해에도 리히스턴 자작은 신년 하례식에 참석했다. 하루라도 빨리 5서클이 되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이 자리엔 마탑주가 참석한다. 그리고 마나를 개방하여 마법사들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감히 자신에게 도전할 마음을 품지 말라는 의도이며 존경받기 위함이다.

이럴 때마나 ‘아! 대단하구나. 인간의 몸에 저처럼 많은 마나를 담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방금 전 그때의 느낌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렇기에 현수가 이실리프 마탑주라는 말에 조금의 토도 달지 않고 매지션 로드임을 인정한 것이다.

“리히스턴 자작, 고개를 들어라.”

“네, 로드시여!”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개를 든다.

이때 리히스턴의 눈은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다. 하늘같은 매지션 로드를 알현했다는 기쁨 때문이다.

“하켄 공작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네?”

“하켄 공작이 영지민을 추살하러 갔다는 걸 안다. 현재의 위치를 보고하라.”

“공작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정말인가?”

“네, 어디서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공작은 베르나르 빈셀에게 폭행을 가한 마을을 찾는 중입니다.”

“그래서?”

“나흘 전 오전의 통신이 마지막인지라 소인은 공작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리히스턴 자작의 말은 사실이다. 공작을 칭하는 호칭 자체가 바뀐 것이 그 증거이다.

마법사들에게 있어 매지션 로드는 제국의 황제보다도 존귀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공작님이라는 존칭이 공작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통신을 시도해 보라.”

“네, 로드시여!”

리히스턴은 피곤한 몸을 일으켜 수정구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리곤 나지막이 통신 마법의 룬어를 영창했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

매지션 로드가 기다리는 것을 알기에 급한 마음으로 여러 번 반복해 신호를 보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로드시여, 반복해서 시도해 보았지만 통신이 연결되지 않아 공작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나이다.”

“…나흘 전의 위치는 어디였지?”

“네, 나흘 전 공작은 하켄 영지 서쪽…….”

잠시 설명이 이어졌다.

말하는 동안 곳곳의 지명이 튀어나왔지만 상세한 지도가 없기에 구체적으로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하켄 공작령 끄트머리 어딘가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중 하나였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때 통신한 좌표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리히스턴 자작은 얼른 몸을 돌려 탁자 위의 서류들을 뒤적였다. 뒤죽박죽되어 별의별 서류가 다 섞여 있지만 찾는 것은 순식간이다.

4서클 마스터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로 치면 IQ가 최소 150은 되어야 하고, 끊임없는 탐구를 지속시킬 인내력이 겸비되어야 한다.

한국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비교하면 이과와 문과의 모든 과목에서 최소가 3년 내내 전교 1등이어야 한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적어도 20개 인문계 고등학교 전체에서 1등을 해야 한다.

마법의 수식 때문에 수학은 당연하다.

수Ⅰ, 수Ⅱ는 구구단 같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하와 벡터는 자다가도 물으면 정답을 말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 밖에 선형대수, 해석학, 위상수학, 미분기하학, 이산수학 등도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지구에 없는 수학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하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나를 순식간에 형상을 가진 물, 불, 번개, 얼음, 바람 등으로 바뀌게 하는 것이 어찌 평범한 수학으로 가능하겠는가!

현수가 7대 난제 중 여섯 개 문제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어낸 것도 사실 아르센의 수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수학이 마스터되면 다음은 난해하기로 이름난 룬어에 정통해야 한다.

글자마다 뜻이 있고 조합될 때마다 무궁한 변화를 보이기에 웬만한 사람은 가르쳐 줘도 배울 수 없는 언어이다.

게다가 룬어는 마법사들만의 언어이다.

다시 말해 극히 소수에게만 전해지기에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물리학이다. 지구에서의 물리보다 훨씬 어려운 마나 배열식 수백 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암기해야 한다.

각종 시약에 관해 도사가 되어야 하므로 화학은 기본이다. 대인 마법에 관한 공부를 하려면 생물도 필수이다.

이렇게 하여 마법사가 된 이후엔 정치와 경제를 알아야 한다. 능수능란한 대인관계를 맺어야 마탑, 혹은 귀족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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