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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682화 (682/1,307)

# 682

헬 파이어를 썼다면 마을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애꿎은 여자들까지 희생된다. 그렇기에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화염을 뿜어낸 것이다.

“하켄 공작을 불러와라!”

현수의 말이 떨어지자 뒤쪽의 누군가가 후다닥 움직인다.

한시라도 빨리 보고하지 않으면 몰살을 당할 수 있음을 자각한 누군가이다.

잠시 후, 헐레벌떡 뛰어오는 일단의 무리가 있다.

신장 190㎝, 몸무게 120㎏ 정도로 보이는 근육질 장년인이 선두이다. 나이는 40대 후반이다.

좌우로 찢어진 눈, 매부리코, 굳게 다물린 얇은 입술은 그의 성품이 어떨지 짐작하고도 남게 해준다.

라이셔 제국의 세 공작 중 하나인 에드몬드 빈셀 드 하켄 공작일 것이다. 그의 뒤를 따르는 뚱뚱한 청년은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인 베르나르 빈셀 드 하켄이다.

이들 둘의 뒤를 따르는 20여 귀족이 있다. 하켄 공작으로부터 단승 작위를 받은 심복들일 것이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하켄 공작이 버럭 노성을 지른다. 살 타는 냄새와 비명 소리만 듣고 온 것이 분명하다.

공작의 시선을 받은 병사들이 일제히 현수를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현수를 보게 된 하켄이 또 한 번 노성을 지른다.

4장 죄 지었으면 벌 받아야지

“네 이놈! 네놈은 대체 누구냐?”

“하켄 공작인가? 소드 마스터라고 들었다. 검을 뽑아라.”

“…이놈이? 본좌가 공작이라는 걸 알면서도 감히! 오냐, 싸가지 없는 네놈의 목을 베어주마! 내 검을 다오!”

“여기 있습니다, 공작 각하!”

공작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쪽에 있던 귀족 가운데 하나가 보석으로 치장된 검집을 넘긴다.

한눈에 보기에도 간신처럼 생겼다. 얼굴을 보자 현수의 뇌리로 스치는 영상이 있다.

고우영 화백이 그린 ‘임꺽정 전(傳)’의 서림이다.

서림은 본시 임꺽정의 모사였으나 그를 배반했다.

임꺽정의 형인 가도치가 잡혔을 때 신원을 확인해 주었고, 토포사 남치근을 도와 근거지를 토벌하는 데 참여한 자이다.

아울러 임꺽정 일당을 직접 유인하여 죽게 했다. 마지막엔 달아나던 임꺽정을 지목하여 체포되게 하였다.

임꺽정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서림은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개 같은 놈이다.

간신 같은 귀족의 얼굴을 보니 괜스레 화가 솟는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공작은 보는 순간엔 무심한 시선으로 바뀐다. 왜 이랬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진 때문이다.

“남길 유언은?”

“이놈이 감히! 네놈은 누구냐?”

“네 이놈! 아가리 닥치고 검이나 뽑아라!”

분노한 현수의 음성에 하켄 공작은 싸늘한 안광으로 째려본다. 대체 뭐하는 놈인가 궁금한 것이다.

“좋다! 죽겠다니 말리지 않으마!”

스르르르릉―!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뽑아 든 검은 이곳 아르센 대륙의 다른 것과 달리 새파랗게 날이 세워져 있다.

검강으로 감싸지기에 다른 검과 격돌하여도 날이 나가지 않음을 감안한 듯하다.

덕분에 막강함과 더불어 예리함까지 갖춘 셈이다.

“이름 없는 자는 벤 적이 없으나 오늘은 예외로 하지.”

“그래? 아공간 오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커먼 공간이 일렁인다.

그와 동시에 공작의 눈에 놀람의 빛이 가득하다.

아공간 마법까지 쓸 수 있는 마검사일 것이라곤 상상치 못한 때문이다.

현수는 평범한 바스타드 소드 하나를 뽑아 들었다.

스르릉―!

검을 뽑으며 한마디 해줬다.

“네놈이 가진 재간을 다 부려야 할 것이다.”

“이런 건방진……!”

짜르르르릉―!

공작의 검에서 붉은빛 검강이 뿜어진다. 굵기는 오리 알 정도이고 길이는 대략 1.5m 정도 된다.

길이와 색상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소드 마스터 상급 정도 되는 실력이다.

“크흐흐! 마검사라 본좌를 만만히 본 듯한데 오늘로써 네놈의 명은 끝이다! 와라!”

“좋지. 그런데 누구의 명이 끝장나는 건지는 대봐야 알지 않을까?”

현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끝으로부터 하얗다 못해 시퍼렇게 보이는 검강이 뿜어진다.

촤르르르르르르―!

굵기는 어린아이 팔뚝 정도 된다. 그런데 그 길이가 무지막지하다. 순식간에 20여 m나 뿜어진 것이다.

“헉! 이건……?”

하켄 공작은 대경실색하며 물러선다.

상대가 소드 마스터 따위는 언제든 짓뭉갤 그랜드 마스터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참고로 나는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이기도 하다. 내 친구 라이세뮤리안이라는 드래곤은 내 화후가 10서클 마스터라 했다. 따라서 내 눈앞에서 도주란 생각지도 말아야 할 단어이다.”

“그, 그렇다면 매, 매지션 로, 로드에 그, 그랜드 마스터라는 말씀이십니까?”

하켄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강이 스르르 사라져 버린다. 대적할 의지조차 사라진 때문이다.

“소드 마스터로서 죽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오늘로써 하켄 가는 몰살당하게 될 것이다.”

“그, 그건……!”

현수의 시선은 공작의 둘째아들인 베르나르에게 향해 있다. 공작보다는 뒤쪽에 서 있는 뚱뚱한 귀족과 더 닮았다.

유전이 뭔지를 알기에 베르나르가 공작의 친자가 아니라는 것이 짐작된다. 여태 남의 자식을 제 자식으로 알고 기른 것이다. 안타깝지만 불쌍하진 않다.

저지른 악행이 너무나 큰 까닭이다.

공작은 재차 검에 마나를 주입한다. 본인은 죽더라도 대는 끊기지 않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와라!”

“야아압!”

쉐에에에엑―!

공작의 검이 현수의 목을 향해 섬전의 속도로 쏘아져 갔다. 현수는 이를 바라보다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채엥―!

날카로운 금속음이 번짐과 동시에 공작은 한 발짝 물러났다가 재차 덤벼든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한 사람의 검사로서 최후를 맞이하고 싶은 때문이다.

챙! 채앵! 챙챙챙챙! 채애앵!

여러 차례 격돌하였지만 현수는 제자리이다. 공작의 이마엔 굵은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심력과 더불어 체력까지 심하게 소모된 때문이다.

“이게 전부인가?”

“아니오! 이것도 있소!”

쒜에에에에에엑―!

전력을 다해 휘두른 검이 현수의 목을 노리며 쇄도한다. 이미 상대의 실력을 파악한 현수는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여태까지는 12성 중 채 1성도 쓰지 않았다.

라이셔 제국의 검이라는 하켄 공작의 화후와 검법을 알고 싶었던 때문이다. 모든 것을 파악했으니 이제 끝을 내야 한다. 하여 검에 조금 더 힘을 실었다.

쉬이익―! 서걱! 파악!

“큭!”

공작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현수의 검강은 더 가늘어짐과 동시에 짧아졌다. 그리곤 쇄도하던 공작의 검을 베었다.

무엇이든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진 검강이 베어진 것이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공작의 목이 몸통과 분리되었다.

라이셔 제국의 최고 검사가 죽음에 이른 것이다.

“악! 아버지! 컥!”

뒤쪽에 있던 베르나르의 눈동자가 커진다. 공작을 벤 검강이 갑자기 길어지면서 그의 이마를 꿰뚫은 때문이다.

수많은 여자를 겁탈한 악인의 말로이다.

“……!”

조금 전 현수의 검에서 검강이 뿜어지던 순간 장내의 모든 이는 항전 의지를 잃었다. 너무나 압도적이었던 때문이다.

방금 눈앞에서 자신의 직속상관인 공작과 그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노성을 터뜨리거나 검을 뽑지 않는다. 그러는 순간 시산혈하가 만들어짐을 알기 때문이다.

“꿇어라!”

쿵, 쿠쿵, 쿠쿠쿠쿠쿠쿠쿵―!

챙그랑, 챙! 챙그랑! 채챙!

모두 무릎을 꿇음과 동시에 온갖 병장기 또한 버려졌다.

그걸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오두막의 여인들을 한곳으로 모아라.”

“네!”

“정중히!”

왜 그러느냐고 묻는 자도 없다.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몇몇이 후다닥 오두막 안으로 들어간다.

나머지는 처분에 맡긴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워낙 압도적인지라 어느 누구도 도주할 생각조차 품지 못하고 있다.

잠시 후 일단의 무리가 차렷 자세로 선다. 여인들을 모두 모아놓았다는 무언의 표시이다.

“도주하는 자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을에서 가장 큰 집 부근에 많은 여인이 모여 있다.

모두들 몸과 마음 모두 지쳤다는 표정이다.

“이 근처에 개울이 있나?”

현수는 의도적으로 하대를 했다. 아무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곳을 바라본다. 마을 뒤쪽이다.

“모두들 따라와라.”

여인들은 또 무슨 짓을 하려는지 겁난다는 표정이지만 순순히 현수의 뒤를 따랐다. 약 500여 명이다. 극심하게 저항하던 여인 50여 명이 이미 목숨을 잃은 때문이다.

마침 마을 뒤쪽 개울엔 용수를 얻기 위한 작은 웅덩이가 조성되어 있다. 깊이는 성인 허리춤이며, 한꺼번에 100여 명은 너끈히 들어갈 정도이다.

“히팅! 히팅! 히팅!”

마법을 구현시키자 물에서 김이 솟는다. 손을 넣어보니 제법 따뜻하다.

“이곳엔 마땅히 목욕할 만한 곳이 없으니 일단 들어가서 씻어라. 나는 상류 쪽에서 물을 덥히겠다.”

말을 마친 현수는 대꾸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비누를 꺼냈다. 그리곤 시범을 보였다.

“이건 이렇게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몸에 묻은 더러운 것들이 씻겨 나간다. 이걸로 머리카락도 씻어라.”

여인들은 거품이 발생되고 물로 씻는 과정을 보았다.

이 와중에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마치자마자 아공간을 열어 비누를 꺼내놓았다.

그리곤 상류로 올라가 히팅 마법을 난사하였다. 일종의 순간온수기 노릇을 한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여인들은 하나둘 옷을 벗는다. 그리곤 따뜻해진 물속에 들어가 사내들의 흔적을 지웠다.

한참 동안이나 히팅 마법을 난사한 현수는 개울 근처에 빈 컨테이너들을 꺼내놓았다. 공간 확장 마법진을 그려 넣자 하나당 약 30평짜리 공간이 된다.

각각의 컨테이너엔 항온마법진이 부착되었다. 즉시 싸늘한 냉기가 사라지고 온기가 감돈다.

현수가 백두마트 서초점을 턴 것은 12월 3일이다. 당연히 겨울 의류가 많던 때이다.

하여 안에 겨울용 의류를 넣어두었다. 백두마트에서 방한용품 세일 행사를 하던 중이었는지라 물량은 넉넉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저 안으로 들어가라. 옷이 있을 것이다. 지금 걸친 것들은 다 벗어놓고 몸에 맞는 걸 골라서 입고 대기하라.”

“……!”

목욕을 한 것은 좋은데 대체 무엇을 하라는 뜻인지 몰라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다.

“치마는 없다. 아랫도리는 이렇게 입는 것이다.”

자신의 바지를 보여주고는 자리를 떴다. 벌거벗은 여인들이 많은 때문이다.

“모두 들어라!”

현수의 말이 떨어지자 웅성거리던 하켄 공작군들이 일제히 시선을 든다.

“이 시간부로 너희는 나의 포로이다. 아울러 그간 저지른 만행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

병사들은 이제 죽었구나 하는 표정이다. 이 자리에서 헬 파이어 한 방이면 완전 몰살이다.

“너희 모두 내 영지의 노예가 될 것이다. 30년간 노역을 하면 그때 풀어줄 것이다. 그게 싫다면 지금 나서라.”

“……!”

현수의 말이 떨어지자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해진다. 하루아침에 영지 병사에서 노예로 전락하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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