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3
하지만 반항을 하거나 도주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히 없다.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력이 너무도 겁난 때문이다.
“나서는 자가 없으니 모두 내 말의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겠다. 너, 그리고 너, 너, 너!”
“네! 네! 네! 네!”
현수의 지목을 받은 넷은 사색이 되며 부동자세를 취한다. 시범 케이스로 목이라도 잘릴까 두려운 것이다.
“후발대 전원 이곳으로 불러들여라.”
“네?”
“내가 명했다 하고 모두 불러들이란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좋아, 실시!”
“실시!”
사내 넷이 튀어가자 마을 한복판에 커다란 마법진을 그렸다. 텔레포트 마법진이다.
“아공간 오픈!”
컨테이너들을 꺼냈다. 그리곤 공간 확장 마법을 거듭해서 구현시켰다.
현장에 모여 있는 하켄 공작의 군사 수는 4,500명쯤 된다.
후발대 인원은 5,000여 명이다. 총원은 9,600여 명이다. 남작, 준남작 등 하켄 공작의 졸개들도 다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컨테이너 하나당 300명씩 넣는다면 32개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들고 있던 병장기 및 각종 보급품, 그리고 식량 등을 담으려면 18개쯤 더 필요하다.
일련의 작업이 마쳐질 즈음 명을 받았던 넷이 후발대 전원을 데리고 왔다. 잔뜩 겁먹은 표정들이다.
현수는 냉랭한 표정으로 이들을 둘러보곤 입을 열었다.
“오면서 들었나?”
“네, 들었습니다.”
“너희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대가로 30년간 노역형에 처한다. 불만 있나?”
“어, 없습니다.”
무기한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좋아, 300명씩 컨테이너로 들어가도록!”
현수가 손짓하자 우르르 들어간다.
“매스 텔레포트!”
말 한마디 떨어지자 두 개의 컨테이너가 사라진다.
수백 ㎞나 떨어져 있기에 무지막지한 마나가 소모되지만 켈라모라니의 비늘만으로도 충분히 감당이 된다.
매스 텔레포트는 한 번에 100명 정도가 안전한 수치이다. 그런데 한 번에 600명을 보낸 것은 컨테이너 덕분이다.
이번에 보내진 인원은 도착 즉시 컨테이너를 치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때문이다.
하여 약간의 시차를 두고 30여 번이나 텔레포트 마법을 구현시켰다. 그러는 동안 여인들은 방한복으로 갈아입었다.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아르센 대륙엔 없는 방한복을 입은 여인들은 서로를 신기한 듯 바라본다.
패딩 점퍼를 걸친 여인도 있고 덕다운 재킷을 입은 여인도 있다. 개중엔 모피코트도 보인다. 이것저것 막 꺼내놓다 보니 여러 종류가 된 때문이다.
현수가 나타나자 모두가 모여든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는 표정이다.
“나는 이곳을 떠나 이실리프 마탑의 영지로 갈 것이다. 나를 따라 그곳으로 갈 사람 있나?”
이곳에 여인들만 남겨놓으면 몬스터의 먹이가 될 것이다. 지켜줄 사내들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고향이기는 하지만 정 떨어지는 곳이다.
그렇기에 여인들 대부분이 손을 든다.
“좋다, 이실리프 영지로 갈 사람은 저기 보이는 쇠 상자 속으로 들어가라.”
“저 안에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한번 가면 다시 이곳으로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꼭 가져가야 할 물건이 있으면 지금 가져오도록.”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르르 흩어진다. 잠시 후 여인들은 보퉁이 하나씩을 안고 나타났다.
소중히 보듬어 안고 있지만 넝마가 다 된 옷가지나 닳아빠진 그릇이 들어 있을 것이다.
“좋아,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라.”
이번에도 말 잘 듣는 양처럼 순순히 들어간다.
“와이드 센스!”
출발하기 전 감각의 지평을 열어 주변을 살폈다. 남겨놓고 가는 인원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좋아, 매스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마법이 구현되자 두 개의 컨테이너와 현수의 신형이 사라진다. 남은 것은 목이 잘린 하켄 공작과 둘째아들이라 굳게 믿었던 베르나르의 시신뿐이다.
“아! 하인스님 오셨는가?”
나이즐 빌모아는 반공대로 현수를 맞이한다. 상전으로 인정하면서도 예전의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네, 일꾼들 데려왔습니다. 죽지 않을 만큼 다뤄 주십시오.”
“알겠네.”
고개를 끄덕인 나이즐 빌모아는 9,600여 명의 노예를 둘러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일손이 부족하여 미칠 지경이었다.
멋진 건물을 지으려면 터부터 닦아야 한다.
그런데 드워프들이 모두 바쁘다.
지금은 겨울이다. 노천에서 잘 수는 없다. 따라서 자신들이 기거할 집부터 지어야 한다.
다음은 광산과 채석장 개발이다.
재료가 있어야 무엇을 하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터 닦는 일은 드워프 전부가 나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공사 현장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규모가 엄청나다.
현수의 가족이 머물 한옥은 10만여 평이다.
여기엔 뱃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인공 호수 세 개가 조성되어야 한다. 중심부엔 인공 섬도 만들어진다.
다음은 그 앞에 서게 될 영지 관리청 바실리이다. 건물 바닥 면적만 1만 5천여 평으로 계획 잡고 있다.
그 앞에 조성될 정원이랄지 광장은 뺀 면적이다.
도서관이 될 연면적 2만 평짜리 타지마할 역시 넓은 초지로 둘러싸이게 된다.
향후 영지의 인재를 길러낼 아카데미인 파빌리온은 수많은 기숙사까지 필요하기에 최소가 5만여 평이다. 이 밖에 검사들을 위한 수련장과 마법 연습장까지 조성되어야 한다.
기마 연습장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절벽 위에 우뚝 서게 될 별장 루드비히이다. 정원 면적까지 합치면 5만여 평 정도 된다.
당연히 모든 건축물은 각종 조형물로 장식될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멋진 작품을 만드는 것이 현재 빌모아 일족의 야망이다.
이렇듯 큰 규모를 계획하고 있는데 일손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차이다. 한시라도 빨리 멋진 조형물을 완성시키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그런데 9,600여 명이나 나타나자 기분이 매우 좋다.
“이 밖에 5,000여 명이 더 올 것입니다.”
“그런가? 좋네, 좋아! 핫핫! 핫핫핫핫!”
나이즐 빌모아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생각만으로도 몹시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오늘 데리고 온 여인들은 당분간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이들은 노예가 아니니 잘 대해주십시오.”
“그런가? 알겠네. 유념하지.”
현수는 잔뜩 겁먹은 채 도열해 있는 하켄 공작의 군사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은 테리안 왕국과 바세른 산맥이 인접한 이실리프 령이다. 이실리프 마탑의 직할 영지이다.”
“……!”
소문이 자자한 이실리프 마탑이 근처에 있는 모양이다.
하여 모두들 겁먹은 표정이다. 마법사들이 얼마나 괴팍한지 알기 때문이다.
“탈출하려다간 몬스터의 먹이가 됨을 경고한다.”
“……!”
바세른 산맥에 몬스터가 많은 건 아르센 대륙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가장 산세가 깊고 긴 산맥이기에 각종 몬스터들이 그야말로 널려 있기 때문이다.
병사들 가운데 일부는 언젠가 탈출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계획은 접었다.
영지를 벗어나 고향인 라이셔 제국까지 가려면 테리안 왕국의 영토뿐만 아니라 미판테 왕국과 아드리안 왕국, 그리고 전쟁 중인 카이엔 제국까지 거쳐야 한다.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라이셔 제국에 당도해도 고향까지 가려면 국경으로부터 약 1,000㎞쯤 더 이동해야 한다.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서 죽을 판이다.
그리고 걸어서 가기엔 너무도 먼 거리이다.
특히 미판테 왕국의 경우는 라수스 협곡을 피해 남하했다 북상해야 하기에 더하다. 이 거리만 족히 2,000㎞는 된다.
어쨌거나 어느 곳에서든 잡히기만 하면 노예 생활을 면치 못한다. 신분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곳에 있으나 탈출하나 마찬가지이다.
여기 있으면 노역에 동원되기는 하겠지만 목숨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반면 탈출하면 온갖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기에 탈출의 꿈을 버린 것이다.
30년 후에도 고향에 가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어쩌면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모두들 낙심천만한 표정이다.
실제로 30년 후에 모두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현수가 모질지 못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라이셔 제국으로 돌아가는 이는 전체의 0.1%에 불과하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자들만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전원 되돌아온다. 아르센 대륙 어디를 둘러봐도 이실리프 영지 같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너무도 편리하고 깔끔하며 살기 좋고 인심 넉넉한 곳이다.
이런 곳을 놔두고 일부러 불편한 곳에서 살고 싶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천신만고 끝에 하켄 공작령까지 갔지만 가족 전원을 데리고 귀환한다. 물론 엄청나게 힘들고 고된 행로지만 충분히 감내해 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엔 중간중간 텔레포트 마법진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돌아올 때 자기 가족만 데리고 오는 것은 아니다.
가고는 싶지만 의지가 약하거나 너무 늙은 사람들의 부탁을 받아 그들의 가족까지 데리고 온다. 후손들이라도 살기 좋은 이실리프 영지에서 살라는 뜻이다.
아무튼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하루에 식사는 두 끼 제공된다. 열심히 일을 해라. 여기 있는 나이즐 빌모아님의 마음에 들 정도로. 노력하는 자는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상!”
모두들 멍한 표정이다.
이제부턴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때문이다.
“자자, 다들 주목! 일단 너희가 머물 거처부터 만들자! 하인스님, 목재가 많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어디를 벌목해 드리면 됩니까?”
“그야 당연히 바실리가 들어설 곳과 그 앞이지요.”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윈드 커터 마법으로 낙락장송들을 베어냈다. 굵은 건 바실리와 한옥을 짓는 데 사용되고, 잔가지들은 병사들의 오두막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윈드 커터 마법으로 목재를 베어내곤 디그 마법으로 뿌리까지 걷어냈다. 그러는 사이에 나이즐의 지시를 받은 병사들이 벌목된 나무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1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달려드니 금방 정리된다.
5장 매지션 로드라구요?
현수는 아공간에 담아온 리어카와 각종 공구를 꺼내주었다. 망치, 톱, 도끼, 낫 등이다.
모두 사람의 생명을 앗을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병사들은 감히 반항할 마음조차 품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마법사들이 은신해 있다는 나이즐 빌모아의 뻥에 속은 때문이다.
베어낸 목재들은 대규모 타임 패스트 마법진 속으로 들어갔다. 제재 작업에 앞서 건조시키려는 것이다.
이때 날이 저물었기에 컨테이너 임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새벽 작업자들에겐 평생 먹어보지 못한 빵이 제공되었다. 백두마트를 털어내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라면 공장을 털 때 가져온 밀가루로 만들어진 것이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귀족이나 먹을 너무도 부드러운 빵인 때문이다.
이를 위해 현수와 여자들은 밤샘 작업을 했다.
워낙 많은 인원이기에 반죽하고 숙성시키는 양이 어마어마했던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