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84화 (684/1,307)

# 684

식사 후엔 다시 목재를 베어내고 타임 패스트 마법진 속에 넣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목재를 베어내는 일은 현수 혼자 했다. 그럼에도 9,500여 병사가 모두 달려들어야 했다.

목재를 베어낸 곳엔 컨테이너를 꺼내놓았다. 노예들이 머물 임시 숙소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추운 겨울이기에 모든 컨테이너엔 항온마법진이 부착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안에 있어도 동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작업을 마치곤 나이즐 빌모아를 찾았다. 젊지 않은 나이이건만 여전히 정력적으로 작업 지시를 내리고 있다.

“족장님, 저 잠깐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그러시게. 여긴 걱정 말고 다녀오시게.”

나이즐은 푸근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럼 족장님만 믿고 다녀오겠습니다.”

“허허! 걱정 말라니까. 어여 다녀오시게.”

“네, 그럼.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나이즐 빌모아는 눈앞에서 인간이 안개처럼 스러지는 것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며 눈을 깜박인다.

같은 순간, 현수의 신형은 라이셔 제국의 수도 코린 외곽에 나타나고 있다. 신전 농장 인근으로 가려다 이곳으로 온 이유는 왠지 성녀를 보기 껄끄러워서이다.

바삐 걸음을 옮겨 황성으로 향했다.

“누구냐? 여긴 지엄하신 황제 폐하께서 머무시는 황성이다. 신분을 밝혀……. 아! 하인스 백작님이시군요. 어서 오십시오.”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자는 죠지아 레인스 남작 휘하의 기사이다. 현수의 호위를 맡고 있는 자들과 동료이기에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폐하를 뵈러 왔네. 안에 기별을 해주게.”

“알겠습니다. 예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인스는 리아 제국의 백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황제와 아주 각별하다고 인식되어 있다.

들리는 소문엔 세피아 폰 라이셔 공주의 부군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와 동시에 황제의 허락 하에 장미궁에서 공주와 밀회를 즐겼다는 말도 번지고 있다.

세피아는 황제의 하나뿐인 누이동생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황태자는 태어나지 않았다. 만일 현수가 부마가 되고 황제에게 일이 생기면 황위 서열 2위가 된다.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사의 태도는 더없이 정중하고 공손했다.

잠시 서성이는데 조금 전의 기사가 달려 나온다.

“헉헉! 헉헉! 아, 안으로 드시랍니다. 헉헉!”

“고맙군. 수고했네.”

“핫! 감사합니다.”

기사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인다.

현수가 알현을 청한다는 보고를 하자 황궁 시종장 아트만 자작이 튀어나왔다. 대부분 로이라는 시종이 나오는데 시종장이 나오자 기사는 화들짝 놀란다. 게다가 즉시 안으로 모시라는 지시를 내리니 헐레벌떡 뛰어온 것이다.

“제,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지.”

“아, 안으로 드십시오.”

기사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서니 모두들 가던 걸음을 멈추고 현수를 향해 목례를 한다.

곧 부마가 될 사람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에 현수는 일일이 답례를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어전 밖에서 현수를 맞이한 사람은 황궁 시종장 아트만 자작이다.

“아! 어서 오십시오, 백작님!”

“네, 아트만 자작님!”

마주 보며 환히 웃어 주었더니 빙그레 미소 지으며 안으로 들라는 손짓을 한다.

“폐하께서는 여전하시지요?”

“그럼요. 밤을 낮처럼 지내신답니다.”

정력적이라는 뜻이다. 무슨 뜻인지 어찌 모르겠는가!

하여 마주 보며 또 한 번 환히 웃었다.

둘이 웃으며 다가서자 예식용 스태프를 든 시종이 눈짓으로 다른 시종에게 문을 열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바닥을 두 번 두들긴다.

삐이이익―!

쿵, 쿵―!

“리아제국 하인스 킴 백작님 드십니다.”

문이 열리며 나지막한 마찰음을 낸다. 마음 같아선 재봉틀 기름이라도 쳐주고 싶다.

어쨌거나 현수는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오오! 어서 오시게.”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환히 웃는다.

요즘 몸과 마음에 활력이 넘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인스 킴 백작 때문이라 여기기에 이러는 것이다.

황제의 수신호위인 페일 자작과 린센 자작도 눈짓으로 예를 갖춘다. 황제의 최측근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몇 알의 팔팔정을 하사받아 요즘 집에서 왕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폐하, 또 뵙습니다.”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전 같으면 페일 자작이나 린센 자작 둘 다 무엄하다며 버럭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무릇 황제를 알현할 때는 최소 90° 이상 허리 숙이는 게 법도이다. 이는 공작위를 가진 고위 귀족도 마찬가지이다.

공작보다 더 높은 대공의 경우에도 60°는 숙여야 한다.

백작의 경우는 120°를 적당하다 여기고 있다. 그런데 방금 전 현수는 불과 30° 정도 숙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수신호위들은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핫핫! 어서 오시게. 신전 농장에서의 일은 바라던 대로 잘 성사되었는가?”

“폐하의 배려 덕분에 원하던 바를 이루었습니다.”

“허면 작별을 고하려 오셨는가?”

“겸사겸사해서 왔습니다.”

“호오, 겸사겸사라? 그래, 무슨 일로 오셨는가?”

황제는 만면 가득한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있다.

현수 역시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우선 그간 황제 폐하를 속인 점을 사과드립니다.”

“……?”

현수의 발언에 수신호위 둘과 아트만 자작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는다. 황제를 속인다는 것은 큰 죄이기 때문이다.

“허어! 나를 속였다고? 좋네, 무엇을 어찌 속였는지 소상히 말해보시게.”

현수는 자신에게 이득만 주었을 뿐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황제는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이다.

“백작님, 폐하께 무엇을 속이셨는지요?”

아트만 자작이 나서서 물은 말이다. 현수를 데려다 놓은 장본인이기에 지극히 조심스런 표정이다.

신분을 감춘 적국의 암살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페일 자작과 린센 자작은 검을 뽑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아트만의 생각처럼 카이엔 제국에서 파견한 어쌔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수의 화후가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들보다 윗줄이거나 아주 맹탕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황제를 속이는 자가 어찌 맹탕이겠는가!

하여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삼키며 주시한다.

“먼저 제 신분은 리아 제국이 아니라 코리아 제국의 백작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아드리안 공국 남단에서 배를 타고 아주 오래가야 나오는 어스 대륙에 있는 제국이지요.”

“흐음, 코리아 제국이라…….”

황제가 한 번쯤 들어본 듯한 국가 명이라는 생각을 할 때 현수의 입이 또 열린다.

“그리고 저의 다른 신분은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라는 겁니다. 풀 네임은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입니다.”

“…네에?”

“헉! 뭐라고요?”

“이,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시라고요?”

“이, 이실리프?”

넷의 입에서 동시에 소리가 튀어나온다. 모두들 대단히 놀란 표정이다.

“맞습니다. 매지션 로드이기도 하지요.”

“끄응!”

벌떡 일어났던 황제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는다. 페일 자작과 린센 자작은 무릎에서 힘이 풀렸는지 휘청거린다.

동시에 아트만 자작은 곁의 기둥에 몸을 기댔다. 하마터면 주저앉는 모습을 보일 뻔했기 때문이다.

“마탑주님을 뵙습니다.”

“마탑주님을 뵈옵니다.”

“이실리프 마탑의 주인을 뵙습니다.”

린센 자작과 페일 자작, 그리고 아트만 자작이 차례로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춘다. 자신들이 모시는 황제와 대등한 신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라이셔 제국의 알버튼 폰 라이셔입니다.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를 환영하는 바입니다.”

황제까지 어좌에서 일어나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조금 전의 현수처럼 약 30° 정도이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시종장을 바라본다.

“아트만, 가서 마탑주님의 의자를 내오게.”

“네, 폐하!”

아트만 자작이 조심스레 뒷걸음질로 물러난다. 잠시 후, 아트만의 지휘 하에 시종 넷이 의자 하나를 내온다.

황제가 앉아 있는 것과 비슷한 디자인과 크기의 것이다. 이는 국빈을 맞이할 때 쓰려 준비해 둔 것이다.

“아, 앉으시지요.”

아트만의 권유에 마다하지 않고 앉았다.

앉아보니 황제와 같은 눈높이이다. 그리고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도록 나란히 의자를 놓았다.

마주 봄은 대적함을 뜻하고, 같은 곳을 바라봄은 동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랬을 것이다.

아트만 자작은 이실리프 마탑이 아드리안 공국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안다. 아울러 아드리안 공국이 적국인 카이엔 제국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다.

적으로서 왔다면 중차대한 일이다.

린센과 페일 자작이 강하다고는 하나 9서클 마스터로 소문나 있는 이실리프 마탑주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대륙의 7대 마탑주 중 가장 강한 것으로 평가받는 혈운의 마탑주 아렌드 후작이 있다 해도 감당 불가이다.

7서클 유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라이셔 제국의 검이라는 하켄 공작과 나머지 두 공작이 함께 있어도 마탑주의 상대론 부족하다.

소드 마스터 셋이 있어도 드래곤 하나를 상대하지 못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9서클 마스터인 아드리안 멀린 반 나이젤은 혼자서 중간계의 조율자라는 드래곤을 죽였다.

현수가 적으로 온 것이라면 오늘 황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아트만의 태도는 몹시 정중했다.

“일찌감치 신분을 밝히지 그랬습니까?”

황제의 어투 또한 달라졌다. 반 하대에서 정중한 반 공대로 바뀐 것이다.

“폐하께 누를 끼치기 싫어 그랬습니다.”

“어쩐지 이상타 했습니다. 아렌드 후작도 내 상태를 호전시키지 못했는데 마탑주께선 단번에 바꾸셨으니 말입니다.”

약했던 정력에 관한 말이다.

“하하, 그게 그렇게 된 건가요?”

“어쨌든 마탑주님의 덕분입니다.”

“저도 신전 농장에서 종자를 얻었으니 비긴 셈 치지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지요. 그나저나 이런 자리에 아무것도 없어서 되겠습니까? 아트만, 가서 주안을 가져오도록 하라.”

“네, 폐하!”

“나가거든 아국에 마탑주께서 오셨음을 공포하고 공작들이 가까이 있거든 들라 하라.”

“네, 폐하! 한데 하켄 공작님은 지금 영지에…….”

“으음, 하켄 공작… 그럼 도널드 공작과 돌첸 공작은 있나?”

“예! 두 분은 내일 오전에 있을 어전회의에 참석하셔야 하니 지금쯤 근처에 있을 겁니다.”

“그래, 그렇다면 들라 하라. 참, 아렌드 후작도.”

“네, 알겠사옵니다, 폐하!”

아트만 시종장이 멋들어지게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곤 물어났다.

어차피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이니 아예 포기한 것이다.

아트만이 물러나자 황제는 현수에게 시선을 준다.

“그래, 신분을 밝힌 이유는 뭡니까?”

지금까지 서로 좋은 관계였다. 그럼에도 마탑주라는 것을 밝혔을 때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나저나 이실리프 마탑과 우리 라이셔가 서로 좋은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입니다.”

“물론입니다. 라이셔 제국엔 제 가족도 있으니까요.”

“가족이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다. 현수는 코리아 제국의 백작이라고 했다.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도 했다.

그렇기에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이곳에 제 처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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