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85화 (685/1,307)

# 685

“오! 그렇습니까? 어딥니까, 그곳이?”

“이레나 상단주인 퍼거슨 에델만 드 로이어 백작이 제 장인 되실 분입니다.”

“오오! 에델만 백작의 따님과…….”

“그렇습니다. 카이로시아 에델만 드 로이어 영애에게 청혼한 바 있습니다.”

“아! 그런데…….”

황제는 문득 하켄 공작이 보낸 로이어 영지와의 영지전을 벌이겠다는 청원서를 떠올렸다.

최고 권력자인 공작들은 영지전을 거의 벌이지 않는다. 어른이 아이와 싸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지전을 벌이겠다는 청원서를 보낼 때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 하여 공작들이 보낸 영지전 청원서는 반려되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청원서라는 명칭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는 통보서에 가깝다.

얼마 전 아트만 시종장으로부터 그런 서류가 접수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하켄 공작령과 로이어 백작령은 영지전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벌써 끝났을지도 모른다.

백작과 공작은 보유한 기사와 병사의 수가 현저히 차이나기 때문이다. 백작이 용병들을 고용한다 하더라도 그 격차를 줄이기엔 어려울 것이다.

“지금 영지전이…….”

황제는 혹시라도 에델만 백작이 해를 당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일 그랬다면 매지션 로드의 분노를 살 것이다.

아울러 라이셔 제국과의 관계는 우호에서 적대로 바뀔 수 있다. 하여 다급한 표정으로 아트만 시종장을 바라본다.

“페일 자작, 가서 영지전이 어찌 되는지 빨리 확인하라.”

“네, 폐하!”

페일 자작이 얼른 허리를 숙이고 나가려 할 때 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알아보실 필요 없습니다. 영지전은 이미 끝났으니까요.”

“헉! 그럼……!”

에델만 백작이 패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온 것이라면 큰일이다 싶어 황제의 낯빛이 창백해진다.

“이번 영지전은…….”

현수는 영지전이 선포된 이유와 그 후의 일들을 설명했다.

황제는 하켄 공작군이 자기 영지민을 무차별하게 학살할 것에 대해 대노했다. 뿐만 아니라 로이어 영지민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삼으려 했다는 것에 더 크게 노했다.

“하여 제가 하켄 공작과 베르나르의 목을 베었습니다.”

“네? 목을 베어요?”

소드 마스터의 목은 쉽게 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법으로 응징을 했다면 화염, 또는 번개로 불태우거나 지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목을 베었다니 의아한 표정이다.

“말씀 안 드렸습니다만 저는 그랜드 마스터이기도 합니다.”

“네? 네에?”

모두들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특히 수신호위 둘의 눈은 화등잔만큼 커졌다.

아직 소드 마스터는 아니지만 그에 가장 근접한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니 평상시 품은 자부심이 남달랐다.

언젠가는 소드 마스터가 될 것이고, 그러면 승작하여 백작, 또는 후작이 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도 있다 생각하기에 다소 거만한 성품이다.

현수가 매지션 로드라고는 하지만 서로 분야가 다르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애써 폄하하고 있던 중이다.

그런데 소드 마스터 따위는 애들 손목 비트는 것처럼 쉽게 상대해내는 그랜드 마스터라니 대경실색한 것이다.

“아공간 오픈!”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확실하기에 현수는 아공간의 바스타드 소드를 꺼냈다.

어전에서 무기를 꺼내는 것을 일벌백계할 죄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꺼내 들고는 슬쩍 마나를 불어넣었다.

찌잉! 찌이이이이이잉―!

대전을 가로지르며 뿜어지는 시퍼런 검강을 본 넷은 입을 크게 벌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위압감에 압도당한 때문이다.

쿵, 쿵―!

“페일 자작이 위대하신 그랜드 마스터님을 알현하옵니다.”

“린센 자작, 감히 검의 끝에 계신 그랜드 마스터님을 뵙습니다.”

페일 자작과 린센 자작은 무릎이 깨지도록 격하게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린다. 완벽하게 승복함을 의미한다.

“대, 대단하십니다.”

황제의 말이다.

“영지전의 주체인 하켄 공작이 죽었으니 폐하께서 로이어 영지의 승리를 선포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아, 암요! 그렇고말고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로이어 영지가 승리한 게 확실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매지션 로드에 그랜드 마스터가 내뱉은 말이다. 그렇기에 하켄의 시체를 보지 못하였음에도 황제의 고개는 크게 아래위로 끄덕여진다.

그러더니 생각났다는 듯 다시 말을 잇는다.

“이제 우리의 제국에 가족이 생기셨으니 이를 경하드리는 의미로 에델만 백작을 후작으로 승작토록 하겠습니다.”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지요. 그나저나 제가 제국의 검을 베어버렸습니다.”

“아! 그건…….”

소드 마스터는 일인군단이라는 칭호를 듣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전략 무기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카이엔 제국과 전쟁 중이기에 일이 어찌 번질지 심히 우려된다.

하지만 매지션 로드이자 그랜드 마스터에게 어찌 항의한단 말인가! 하여 저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에델만 백작님을 후작으로 승작시킨다 하셨으니 제가 제안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제안이요?”

“그렇습니다. 아직 장인이 되실 에델만 백작님을 뵙지 못하였습니다. 로이어 영지에 갔을 때 장차 소드 마스터가 될 재목이 있다면 그를 키워 드리지요. 그리하여 새로운 소드 마스터가 생겨난다면 후작위를 공작위로 올려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자신의 장인인데 고작 후작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즉흥적으로 한 제안이다.

“아! 그,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그리 하여야지요.”

“제가 알기로 이번 영지전에서 승리하면 하켄 공작령을 매각한 값의 3분지 1에 해당하는 금액을 로이어 영지에 지불해야 합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백작이 공작보다 하위 귀족이니 마탑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대답을 한 이는 제국법에 정통한 아트만 시종장이다.

“돈보다는 영지를 더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아! 그건…….”

황제라지만 귀족이 보유한 영지를 얼마만큼 떼어서 누구에게 주라는 말은 하기 어렵다. 차라리 작위를 폐하고 영지를 몰수한 뒤 그것을 나눠 주는 편이 쉽다.

하켄 공작은 권위적이고 독선적이긴 하지만 그간 나라를 위해 일한 바가 많다. 카이엔 제국과의 전투에서 전략 무기로서 일익을 담당해 왔던 것이다.

그렇기에 영지전에 패했다 하여 작위를 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하여 잠시 말을 잇지 못한 것이다.

“공작의 기사 300과 병사 20,000은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켄 공작가를 백작가로 낮추고 기사 200과 병사 10,000은 국경수비대에 배속시키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

황제가 알기로 하켄 공작의 병사는 30,000이다. 그렇기에 늘 국경 걱정은 하지 말라고 호언장담하곤 했다.

그런데 현수의 말은 20,000만 멀쩡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켄 공작과 그의 둘째아들인 베르나르가 죽을 때 병사 10,000도 같이 죽었다는 뜻이다.

매지션 로드에 그랜드 마스터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사람과는 척지어 좋을 일은 없다. 게다가 사라진 소드 마스터를 다시 만들어준다고 한다.

그렇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켄 백작가로 바꾸지요. 아울러 영지의 3분지 1을 떼어 로이어 영지에 배속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장인을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아이구, 무슨 말씀을! 앞으로도 우리 제국과 좋은 관계를 맺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폐하께서 이처럼 잘 대해주시는데 당연히 우호적이어야 하지요. 하하하! 오늘 같은 날 술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아공간 오픈!”

현수는 아공간에 담겨 있던 소주를 꺼냈다. 참이슬과 처음처럼 500병씩 1,000병이다.

“이건 우리 제국에서 마시는 술입니다. 오늘의 만남을 기념하여 폐하께 선물하지요.”

“오오! 이건……! 폐하, 이, 이건 에, 에메랄드로 만들어진 병입니다.”

어느새 다가온 아트만 시종장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똑같은 것 500병씩 있는데 한 치도 다르지 않고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건 장인의 종족인 드워프도 만들 수 없다.

게다가 아주 비싼 보석을 깎아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높고 긴 감탄사를 터뜨린 것이다.

놀라거나 말거나 현수가 입을 연다.

“이 술의 안주는 고기 종류가 좋습니다. 고기를 생으로 구운 뒤 이것과 소금을 섞어서 찍어 드십시오.”

이번에 꺼낸 것은 후춧가루이다. 아울러 신안산 천일염도 꺼냈다. 마지막은 참기름이다.

6장 황제와 마시는 소주 한잔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아공간 오픈!”

생각난 김에 취사용 컨테이너를 꺼내 한우 등심을 구워냈다. 그리곤 참기름, 후춧가루, 소금을 섞은 것도 내왔다. 물론 상추와 깻잎, 그리고 잘 익은 김치와 막장도 있다.

먼저 소주 한 잔을 건넸다.

“드셔보시지요. 단숨에 잔을 비우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쭈우욱―!

“캬아∼!”

현수는 피식 웃었다. 한국이나 아르센 대륙이나 술 마시고 내는 소리는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이걸 드십시오.”

쇠고기 한 점을 기름장에 찍어 쌈을 싸서 건넸다.

“헙! 이건… 으으음, 으으으음!”

황제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서둘러 씹어 삼켰다.

“우와! 세상에 이런 맛이! 역시 마탑주님이십니다.”

현수는 계속해서 쌈을 싸서 아트만 시종장과 페일 자작, 그리고 린센 자작에게 건넸다.

모두들 환상적인 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열심히 씹고 있기에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졸지에 시작된 술판은 한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중간에 황실 주방장이 불려와 고기 굽는 법과 기름장 만드는 법, 그리고 쌈 싸는 법 등을 배웠다.

이로써 라이셔 제국과 황실은 막역한 사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한창 술판이 벌어지는데 예식용 스태프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쿵, 쿵, 쿵―!

“도널드 공작과 돌첸 공작, 그리고 혈운의 마탑주 아렌드 후작 드십니다.”

“들라 하라!”

술을 마셔서 그런지 황제의 음성은 매우 컸다.

잠시 후 세 사람이 들어선다.

“도널드 공작,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돌첸 공작, 부르심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아렌드 후작, 폐하를 뵈옵니다.”

“오오! 어서들 오시게. 오늘 경들에게 아주 귀한 손님을 소개하겠네.”

황제의 손짓에 준비된 의자에 앉던 셋은 벌어진 술판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전은 제국의 국사를 의논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늘 근엄해야 한다. 그런데 황제는 물론이고 수신호위 둘과 아트만 시종장까지 얼굴이 벌겋다.

더없이 엄숙해야 할 공간에서 술을 마셨음을 의미한다.

“페일 자작, 린센 자작,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노기 띤 하프만 공작의 일갈에 둘은 들고 있던 쌈과 술잔을 내려놓았다. 수신호위로서의 임무를 잠시 잊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죄송합니다. 공작 각하!”

“이게 죄송하다고 될 일인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폐하와 대작을 한단 말인가?”

“……!”

“자자, 두 분 공작, 그 이야긴 나중에 합니다. 그보다 먼저 여기 계신 이분께 인사하십시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