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87화 (687/1,307)

# 687

그랬다가는 씨 몰살을 당할 것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이는 리히스턴이 과하게 겁을 준 결과이다.

모두가 물러가고 남은 건 젊은 부부와 아이 하나이다. 이전에 맡긴 이들이다.

“저어… 마탑주님, 저흰 어떻게……?”

“자네 가족은 이곳 로이어 영지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겠네. 기다리게.”

“네, 알겠습니다요.”

현수가 어떤 존재인지를 들었는지 찍소리 않고 물러선다.

메리가 사용하던 천막을 남겨놓았기에 그곳에서 기다리도록 하고 영주성으로 이동했다.

쿵, 쿵, 쿵―!

스으윽!

문을 두드리자 위쪽의 자그마한 창이 열리며 병사의 얼굴이 나타난다.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에델만 백작님을 뵈러 왔네. 가서 테세린에서 하인스가 왔다고 전하게.”

“테세린에서 온 하인스라고? 지금은 영지전 중인데 어떻게……? 아무튼 잠시만 기다려라.”

탁―!

현수에 대한 소문은 아직 번지지 않은 모양이다. 퉁명스럽게 대답한 병사가 창을 닫고 사라졌다.

현수는 잠시 정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면서 로이어 영주성을 살펴보았다. 공사 중인 듯 여기저기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정문 앞도 마찬가지이다.

대체 무슨 공사를 하려던 것일까를 살피던 현수는 피식 웃었다. 어설픈 옹성과 치, 그리고 여장을 만드는 중이다.

일전에 카이로시아에게 고구려 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걸 전한 모양이다.

그런데 전달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되어 제대로 된 옹성이나 치가 아닌 이도저도 아닌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웃은 것이다.

어쨌거나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쿵쿵쿵쿵!

누군가 황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챠르르르륵! 챠르르륵!

“잠시만 비켜서십시오!”

현수가 비켜서자 성문이 서서히 내려온다. 해자도 없건만 이런 도개교를 채택한 건 적의 의도를 깨기 위함일 것이다.

쿠우웅―!

육중한 소리는 내며 도개교가 내려지자 또 다른 성문이 보인다. 성문을 이중으로 만든 모양이다.

삐이꺼억―!

성문의 무게 때문인지 마찰음도 무겁게 느껴진다.

쿠우웅―!

활짝 열린 성문이 성벽에 닿자 잔뜩 긴장한 기사들이 예리한 시선으로 사방을 살핀다.

테세린에서 온 하인스는 카이로시아 에델만 드 로이어의 부군 될 사람으로 이실리프 마탑주라고 한다.

영지전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올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그렇기에 지금껏 농성을 하며 기다렸다.

그러면서 소문을 퍼뜨렸다. 이실리프 마탑주가 지원군으로 올 것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현저한 열세 때문에 겁을 먹고 있던 기사와 병사, 그리고 용병들과 영지민의 마음에 희망이 되는 소리이다. 하여 당도만 하면 전세는 단숨에 뒤집어질 것이라 여기고 있다.

하켄 공작군이 제아무리 잘 조련된 기사와 군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더라도 지리멸렬하게 된다.

9서클 마스터는 전장의 지배자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보다도 상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8서클 헬 파이어 한 방으로도 적의 병사 1만 정도는 단숨에 숯덩이로 만들 수 있다. 하여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현수를 맞이한 사람은 이제 막 60세쯤 되려는 사내이다. 사람 좋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오랜 장사로 눈빛은 예리하다.

곁에는 40대 초반을 보이는 사내가 서 있다. 둘의 생김새가 비슷한 걸 보면 부자지간이다.

60대는 퍼거슨 에델만 드 로이어이고, 40대는 에머럴 에델만 드 로이어일 것이다.

“말씀 낮추십시오, 백작님. 그리고 처음 뵙습니다.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입니다. 코리아 제국의 백작이며,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이기도 합니다.”

현수가 먼저 정중히 허리를 숙여 예를 갖췄다. 장인이 될 사람이니 이 정도는 해야 한다. 퍼거슨과 에머럴은 감히 마탑주의 예를 감당할 수 없다는 듯 동시에 허리를 숙인다.

“백작님, 아니, 마탑주님의 방문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코리아 제국의 백작이라는 작위보다 마탑주라는 것을 더 높이 산다는 뜻이다.

아무튼 에머럴이 먼저 안쪽을 손짓으로 가리킨다.

“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기사와 병사, 그리고 영지민들이 도열해 있다. 아르센 대륙의 모든 마법사의 정점인 매지션 로드를 보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퍼거슨 에델만 백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몇 발짝 걸었을 때 누군가 큰 소리를 낸다.

“이실리프 마탑주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만세! 만세!”

영지전을 끝장내 달라는 뜻의 소리이다. 기다렸다는 듯 만세 소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이실리프 마탑주님 만세! 만세! 만세!”

“와와와와! 하인스 마탑주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현수는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치면 환한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환성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러는 동안 외성을 지나 내성으로 들어섰다. 현수가 안내된 곳은 영주 집무실 바로 곁 접견실이다. 공식적인 일을 처리할 때 쓰는 곳이라 한다.

“퍼거슨 에델만 드 로이어라고 합니다.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 백작님의 본성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네, 백작님.”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환히 웃자 곁에 있는 사내를 가리킨다.

“에머럴 에델만 드 로이어입니다. 본가의 장자이지요.”

“마탑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직은 정식 관계가 아니기에 더없이 정중하다.

“이 녀석은 에델만의 아들이자 제 손자입니다.”

에델만 백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17세쯤 된 소년이 깊숙이 허리를 숙인다.

“반갑습니다. 이냐시오 에델만 드 로이어입니다.”

“그래, 반갑다.”

현수가 눈빛을 반짝였다. 이냐시오라는 녀석의 허리춤에 바스타드 소드가 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검을 수련하는가?”

“네. 황립 아카데미 소속 기사생도입니다.”

라이셔 제국의 수도엔 다른 제국과 마찬가지로 황립 아카데미가 있다. 기사, 마법사, 행정가 등을 양성해 낸다.

기사의 경우는 10살에 입교하여 25살쯤에 서품된다. 마법사는 이보다 어린 8살에 입교하고 2서클이 되어야 졸업이다.

평균적으로 30살쯤에 졸업이다.

행정 파트는 14세 입교, 22세 졸업으로 정해져 있다.

“호오, 그래?”

현수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자 에머럴이 나선다.

7장 따님을 주십시오

“이냐시오는 장사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아카데미로 보낸 겁니다.”

이냐시오는 갓 운동하여 가슴 근육이 약간 나왔을 때 우쭐하는 녀석처럼 바스타드 소드를 강조하려는 몸짓을 한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가 이냐시오를 데려다 검술을 가르쳐도 되겠습니까?”

“네? 마법사이신데… 아! 검도 익히셨군요. 그런데 어찌……?”

카이로시아로부터 현수가 마탑주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리고 그랜드 마스터라는 말도 전해 들었다.

그런데 매지션 로드라는 말에 너무 놀라 뒤에 들은 이야긴 건성이었다.

그렇기에 그랜드 마스터라는 것은 아직 모른다.

아무튼 마검사는 매우 희귀한 존재이다. 그리고 두 분야 모두 정점에 이른 사람은 존재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그랜드 마스터라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다른 것과 혼동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황제와 약속한 게 있어서요.”

“네? 황제 폐하와 무엇을 약속하셨는데요?”

“이냐시오를 소드 마스터로 만들면 어떨까 합니다.”

현수의 말에 대꾸한 것은 이냐시오이다. 물론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마법사가 어떻게 검법을 가르치십니까? 마탑주라면서요.”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지었다. 그리곤 이냐시오가 패용하고 있는 바스타드 소드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네 검을 줘보겠니?”

“…그러죠.”

기사와 마법사는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 여기고 산다.

그렇기에 기사는 마법사를, 마법사는 기사를 소가 닭 보듯 한다. 서로를 잘 모른다는 뜻이다.

이냐시오는 고모부가 될 하인스가 마법사라는 이야긴 들었다. 이실리프 마탑주라는 것도 안다.

이것은 영지전이 벌어진다 하여 황급히 귀가한 이후에 들은 말이다. 그렇기에 이실리프 마탑이 어떤 곳인지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마탑이 라이셔 제국의 혈운의 마탑이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냐시오는 이실리프 마탑을 시골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마탑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견문이 좁아서이다.

현수는 이냐시오가 건넨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 보았다. 체중에 맞추느라 그랬는지 약간 가볍다는 느낌이다.

“이냐시오라고 했지? 현재 어느 정도지?”

“소드 유저 초급입니다. 지난달에 승급했죠.”

소드 유저의 위 단계는 중급, 상급, 최상급이 있다. 소드 유저 최상급을 극복하면 소드 익스퍼트 초급이 된다.

다음이 중급, 상급, 최상급이다.

이후의 단계는 소드 마스터 초급, 중급, 상급, 최상급, 그리고 그랜드 마스터 초급, 중급, 상급, 최상급이다.

현수의 현재 화후는 그랜드 마스터 최상급이다. 이냐시오는 평생을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이다.

그런데 겨우 소드 유저 초급이라면서 우쭐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후후, 그래? 그럼 이거 한번 봐줄래?”

말을 마치고 마나를 주입했다. 이냐시오는 대체 뭘 보여주려고 이러느냐는 표정이다. 이때였다. 검끝으로부터 하얗다 못해 시퍼렇게 보이는 빛이 뿜어진다.

찌잉―! 찌이이이이이이잉―!

평범했던 바스타드 소드에서 검강이 뻗어 나온 것이다.

길이 20m짜리 초대형 검강을 본 이냐시오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뜬다. 경악을 넘어 혼이 몸을 떠나는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현재 나의 경지는 그랜드 마스터 최상급이란다.”

“……!”

“널 가르쳐 소드 마스터로 만들고 싶은데, 어때?”

“네? 저, 정말요? 정말 제게 검법을 가르쳐 주실 거예요? 고, 고모부, 배울게요! 아무리 힘들어도 배울게요! 가르쳐 주십시오, 고모부!”

이냐시오는 털썩 무릎까지 꿇는다.

곁에 있던 백작과 에머럴도 멘붕 상태이긴 마찬가지이다.

마탑주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거기에 그랜드 마스터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백작의 뇌리를 스치는 상념이 있다.

“저어, 혹시 올해 연세가……?”

이 정도를 이루려면 최소 200살은 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물은 말이다. 하지만 말을 끝맺지 못했다.

현수가 먼저 대답한 까닭이다.

“내년이면 딱 서른입니다.”

이곳 날짜로 오늘은 12월 7일이다. 아직 해가 바뀌지 않았으니 여기선 아직 29세이기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서른?”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겨우 서른에 어찌 9서클 마스터면서 그랜드 마스터까지 이룰 수 있느냐는 뜻이다.

아르센 대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 인간은 물론이고 엘프나 드래곤조차 이 나이엔 둘 중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 모두들 입을 딱 벌리고 있다. 물론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도 크게 뜨여져 있다.

“제 스승님이 워낙 뛰어나신 분인지라……. 아시죠? 아드리안 멀린 반 나이젤님이요. 아무튼 내년에 딱 서른인 거 맞습니다. 130살, 230살 뭐 이런 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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