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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690화 (689/1,307)

# 690

“아! 형님께서 들고 계신 바스타드 소드는 레비프 영감님이 만든 거라 그렇습니다.”

“엥? 고모부지 형님이 아닌데. 그리고 레비프 영감이라니요? 그게 누굽니까?”

“아니, 레비프 영감님도 모르십니까? 코린의 대장장이들이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최고의 장인이지요. 드워프의 기술을 전수 받았다고 합니다.”

“드워프가 인간에게 기술을 전수해 줬다고?”

이번 물음은 현수가 한 것이다.

인간에게 기술 전수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르쳐 줘도 따라 하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인간은 드워프처럼 똑같은 속도로, 똑같은 강도로 똑같은 곳을 꾸준히 망치질할 근력이 없다.

게다가 단조2) 작업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금속의 재질마다, 만들려는 목적물마다, 온도마다 단조 방식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드워프들이 내는 온도까지 열을 올릴 수 없다. 게다가 아주 미묘한 합금 작업이 있다.

경험으로 익힌 것인지라 드워프 본인들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드워프의 제자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레비프 영감이라는 사람이 그렇다 하니 고개 갸웃거렸다. 인간치고는 솜씨가 좋은 편이지만 드워프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점원은 침까지 튀어가며 레비프 영감에 대해 설명한다.

어린 시절 우연히 알게 된 드워프를 따라가 그들만이 사는 곳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30년 세월을 보낸 뒤 인간세상이 그리워 돌아왔으며, 그날 이후 제국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번 떼돈으로 남작의 작위를 사려고 신청했다고 한다. 귀족이 되면 코린의 모든 대장장이를 규합하여 지구로 치면 길드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뭔가 이상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들이 번다는 말이 있다.

레비프라는 영감이 대장장이들을 규합하여 가격을 올려놓고 그 차액을 먹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이보게, 이 검이 드워프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자가 만든 거라는 건가?”

“그렇습니다요, 나리.”

“내가 보기엔 아닌데? 잘 만들기는 했지만 드워프들의 것에 비하면 형편없는 하품이야.”

“네?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점원은 본인이 모욕을 당한 듯 얼굴까지 붉히며 반문한다.

“이건 드워프의 기술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는 거야. 드워프가 만든 건…….”

“그럼 제가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까?”

점원은 의심 받는 것 자체가 분하다는 표정이다.

“아니, 자네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레비프 영감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네.”

“레비프 영감님은 이제 곧 남작이 되실 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셔도 됩니까?”

“드워프가 만든 건 말이지…….”

현수는 말끝을 흐리며 가방 속 아공간에서 대거 한 자루를 꺼냈다. 기가 막히게 균형 잡힌 것으로 나이즐 빌모아가 현수에게 삼겹살 자를 때 쓰라고 선물한 것이다.

“오! 그건……!”

한자어에 당구 삼 년 폐풍월이라는 말이 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분식집 개 삼 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말로 변형되기도 했다.

지난 삼 년간 병기점에 몸담고 있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대거와 같은 명품은 본 적이 없다. 한눈에 척 보기에도 이건 대박이라는 느낌이 온다.

“저어, 제가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점원이 손을 내밀자 볼 테면 보라는 생각으로 대거를 건넸다.

“우와! 이건 진짜… 진짜 말이 안 나옵니다! 이건 대체……? 우리 라이셔 제국엔 드워프가 없다는데……. 이거 파시죠, 손님?”

“그걸 팔아?”

“네. 제가 값을 후하게 쳐드릴 테니 파십시오.”

점원은 무기 구입이 취미이자 특기인 하켄 공작을 떠올렸다. 바스타드 소드가 아닌 대거이지만 엄청난 금액이라도 기꺼이 지불할 것이다.

“그건 선물 받은 거라 그럴 수 없네.”

“아! 그런가요?”

대거의 주인이 상인이나 용병이었다면 어떻게든 팔게 하겠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귀족이다.

그렇기에 아쉽다는 표정으로 대거를 건넨다.

“조금 전 이걸 레비프 영감이 만들었다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레비프 영감님이 만든 거 확실합니다.”

“레비프의 철자가 혹시 Rebbif 아닌가?”

“어라?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검의 손잡이 아래쪽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런가?”

점원의 말대로 손잡이 아래쪽을 보니 Rebbif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흐음! 레비프 영감은 본인이 한 말이 거짓말이라는 고백을 한 셈이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레비프 영감님이 거짓말쟁이라니요? 거기 그런 것도 쓰여 있습니까?”

“Rebbif의 철자를 뒤집어 읽어보게. Fibber! 거짓말쟁이라는 뜻이네.”

“헐! 그러고 보니…….”

점원은 할 말을 잃었다는 듯 멍한 표정이다.

“이거 12골드라고 했지? 내가 보기엔 10골드면 충분하네. 그거면 되지?”

“네? 아, 네에. 그, 그러세요.”

점원은 현수가 내민 10골드짜리 금화를 받으며 말을 더듬는다. 사실 레비프 영감이 이 검에 매긴 가격은 10골드이다.

바가지를 씌우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겉보기에 돈 많은 귀족인데 조금 어수룩해 보였다. 하여 2골드쯤 얹어 받아도 된다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10골드 중 8골드는 레비프 영감에게 갈 돈이다. 병기점은 전시 판매 수당으로 2골드를 받기로 한 것이다.

“이냐시오, 네 손에 있는 검도 그냥 쓰기엔 괜찮은 거야. 그러니 그걸 사거라.”

“네? 아, 네. 그, 그럴게요.”

현수는 그랜드 마스터이다. 그러니 틀린 말을 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두말 않고 4골드를 치렀다.

“자, 이젠 이레나 상단으로 가자.”

“네, 고모부.”

이냐시오는 새로 산 검의 요모조모를 살피며 현수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아카데미까지 걸어갔다.

대로를 따라 다른 귀족의 자제와 보호자들이 걸었지만 이냐시오는 눈엔 아무도 뜨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누군가 이냐시오의 어깨를 툭 친다.

“어이, 찌질이! 방학 동안 좋았어?”

“누구……? 아!”

이냐시오는 저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늘 괴롭히던 녀석이기에 트라우마가 조성되어 있는 때문이다.

“찌질이,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집에서 부리는 졸개 상인? 와우! 옷은 그럴듯한데?”

“그런 분 아냐.”

“아니긴, 딱 보니까 그런데. 어이, 뭐하는 친구야?”

건들거리면서 현수를 바라보는 녀석은 이제 18살쯤 된 놈이다. 현수가 시선으로 누구냐고 물으니 슬쩍 중지를 편다.

코리아 제국에서는 다른 손가락은 다 접고 중지만 펴는 것이 욕이라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자신을 괴롭히는 녀석들 중 두목 격인 판테온 후작가의 장남 카엘이 그거라 하였다.

“지금 방금 내게 뭐하는 친구냐고 물었나?”

“했나? 어쭈? 평민 주제에 어디서……. 옷만 번지르르하게 입으면 귀족인 거 같은가? 넌 내가 누군지 몰라?”

싸가지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귀족가 자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말을 하면서도 오만한 시선으로 현수를 째려본다.

귀족들이 걸칠 만한 의복을 입고는 있다. 그런데 최고급은 아니다. 이런 것 정도는 가늠할 안목이 있다.

따라서 현수는 귀족의 옷만 걸친 평민이다. 그렇기에 이처럼 오만하게 구는 것이다.

“나? 나는 이냐시오의 고모부이다. 넌 누구냐?”

“너? 지금 내게 너라고 했나? 내가 누군지 진짜 몰라?”

“당연히 모르지. 이냐시오의 친구인가 본데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

“뭐? 지내라? 이게 정말……!”

카엘은 슬슬 짜증난다는 표정이다.

“야! 너……!”

말을 하며 강하게 다리를 걷어찬다. 하지만 이에 맞을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슬쩍 피하며 입을 열었다.

“이냐시오, 이 친구가 네가 말했던 카엘이라는 애냐?”

말을 하며 너무도 자연스럽게 피했기에 카엘은 현수가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분노가 치솟는다. ‘애’라는 말 때문이다.

집에서도 아버지인 판테온 후작으로부터 ‘아직 철이 안 든 애’라는 말을 듣는다. 야단맞을 때 듣는 말이다.

그렇기에 ‘애’라는 말에 유독 민감하다.

다시 한 번 더 실수하면 후계자를 동생으로 바꾸겠다는 말이 꼭 뒤따랐기 때문이다.

“야, 이 개자식아! 네가 어디서 감히 내게……. 죽엇!”

화가 난 카엘은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너무도 화가 났는지 이성을 잃고 눈을 감은 채 휘두르는 주먹이다.

그런데 그런 것에 누가 맞겠는가!

현수와 이냐시오는 두 발짝 뒤로 물러선 채 혼자 춤추는 카엘을 바라보았다.

아카데미로 들어가던 다른 생도와 보호자들도 이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다들 시선을 돌리곤 걸음을 빨리한다.

라이셔 제국엔 세 명의 공작과 세 명의 후작이 있다. 이 중 판테온 후작은 공작에 버금가는 권력자이다.

그리고 카엘은 후작가의 소영주이다. 그렇기에 보면서도 못 본 척하려 걸음을 빨리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발이 꼬인 카엘이 엎어진다. 현수와 이냐시오는 피식 웃고는 아카데미 정문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모두들 총총걸음이다.

“이냐시오, 카엘 저러는 거 보니 어때?”

“이상해요. 저하고 있을 땐 안 저러는데 고모부랑 있어서 그런가 봐요. 평상시엔 저런 모습 안 보이거든요.”

“후후, 그래? 알았다. 들어가자.”

아카데미 정문엔 백발성성한 노교수가 서 있다.

그는 들어서는 생도 하나하나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새 학기엔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다독인다.

이냐시오도 마찬가지이다. 시선이 마주치자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하여 부른다.

“오! 이냐시오, 방학 동안 잘 쉬었지? 새 학기엔 더 열심히 공부하거라. 알았지?”

“네, 원장님!”

아카데미의 원장 토리나 백작인 모양이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시냐?”

“저희 고모부세요.”

“고모부? 아! 그렇구나. 환영합니다, 아카데미에 오신걸.”

“아,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카데미를 다닌 분 같지는 않군요. 이레나 상단에서 일하십니까?”

상당히 생도 수가 많음에도 거의 모두 기억하는 모양이다.

“네? 아, 아닙니다. 상단에서 일하는 건 아닙니다.”

“아! 그래요? 아무튼 환영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네, 그럼.”

원장을 뒤로하고 캠퍼스를 거닐었다.

“기숙사가 저렇게 먼 데 있어?”

“네. 그래서 뭐 하나 사려면 진짜 시간이 오래 걸려요. 몸도 피곤하구요.”

기사 생도 기숙사는 아카데미 정문으로부터 적어도 2㎞ 정도 떨어진 곳에 지어져 있다. 그 뒤쪽에 승마 연습장이 있어 그렇다고 한다.

“흐음!”

이냐시오는 빵셔틀 비슷한 걸 당하는 내내 왕복 4㎞나 되는 거리를 걸었다는 뜻이다.

“네가 발가벗고 열 바퀴나 돌았다는 운동장은 어디냐?”

“네? 아, 네에. 그건 저쪽이에요.”

이냐시오가 손짓하는 곳엔 울창한 숲이 보인다. 그 너머에 한 바퀴가 약 500m짜리 운동장이 있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걷는 동안 이냐시오는 주변을 살핀다. 고모부를 자랑하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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