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2
“네, 그렇겠지요.”
천지약품 아디스아바바 현장은 한창호 건축사사무소에서 총괄하고 있다. 설계에서 시공 및 감리까지 턴키베이스로 준 것이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공사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공사는 착착 진행되는 중이고, 직원들도 다 뽑은 모양이네. 지금은 교육 중이라고 하더군.”
“그런가요?”
현수에게 설명해 준 이는 로마우 바이할 의무장관이다. 본인의 업무 관할이기에 거의 매일 점검하는 모양이다.
“천지약품에 대한 기대가 크네.”
“열심히 해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현수의 대답에 대통령은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 짓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연다.
“참! 혹시 여력이 있으신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얼마 전 케냐에서 정상회담을 했네. 그때…….”
기오르기스 대통령은 며칠 전 케냐, 우간다, 소말리아, 지부티 정상들과 회담을 한 바 있다.
창궐하고 있는 전염병 때문이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 천지약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현수가 신혼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아디스아바바엔 홍역과 말라리아 예방 백신 500만 명분이 도착했다.
천지약품에 관한 좋은 이미지를 심기 위한 사전 포석의 일환이다. 이것들은 즉시 접종되었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아프리카 각국에서도 알게 된 것이다.
기오르기스 대통령은 아프리카 각국에서 벌어지는 부정부패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여 에티오피아의 의약품 정책을 어찌할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알렸다. 이에 케냐와 우간다 대통령이 관심을 보였다.
귀국 후 두 나라 정상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천지약품이 두 나라에도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모든 내용을 들은 현수는 기억을 더듬었다.
케냐는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쓰는 국가로 580,367㎢이고, 인구는 약 4,400만 명이다.
이 중 1,700만 명이 안전한 식수를 공급 받지 못한다. 극빈층은 55% 정도이며, 상류층은 15%인 것으로 추산된다.
우간다 역시 공용어로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쓴다. 국토 면적은 241,038㎢이며, 인구는 약 3,500만 명이다.
이 나라도 상류층이 약 15% 정도 된다. 그리고 국토의 4분의 1이 호수인 국가이다.
물가 상승률은 7.3%이고, 중앙은행의 기준 금리는 12%인 국가이다. 다시 말해 국민들이 살기 힘든 나라이다.
두 나라의 면적과 인구를 합산하면 821,405㎢이고, 7,900만 명이다. 면적은 8.2배, 인구수는 1.5배 정도 된다.
“어떤가? 두 나라에도 진출해 줄 수 있는가?”
대통령은 기대에 찬 표정이다. 보나마나 두 나라 정상에게 힘써 보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진출은… 가능하죠. 조만간 시간 내서 한번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경 써주셔서.”
“아! 그런가? 하하, 하하하! 모처럼 두 나라 정상에게 큰소리 한번 치게 되었네. 고맙네.”
“……!”
현수는 빙그레 웃음만 지어줬다.
“참, 보내준 백신 잘 받았네. 그런데 지출이 꽤 컸을 것 같은데 괜찮은가?”
“에티오피아는 6.25때 군대를 보내준 우방입니다. 고마움에 대한 작은 보답 정도로 여겨주십시오.”
“아! 자네는 정말…….”
기오르기스 대통령과 바이할 의무장관이 경탄의 눈빛을 낸다. 국가기관도 아닌 일개 개인이 하기엔 너무도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바이할 장관이 시선을 준다.
“우리 의무부 차원에서 천지약품에 첫 번째 주문을 하려고 하네.”
“그런가요? 말씀하십시오.”
“홍역, 콜레라, 말라리아 백신 3,000만 명분이 필요하네.”
“네. 알겠습니다. 준비하죠.”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이할 장관이 다시 입을 연다.
“대금은 금으로 지불하겠네.”
“네?”
현수의 반문에 바이할 장관이 웃음 짓는다.
“젬파크 E&M이란 한국 기업이 Metico 광산에서 금을 채굴하는 중이네. 거기서 나는 걸로 지불하겠네.”
금괴는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다. 그런데 또 황금이 들어오게 생겼다. 하여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금괴의 출처로 안성맞춤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하여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통령이 입을 연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대단위 농장을 조성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그걸 해줄 수 있는가?”
“네?”
“우리도 콩고민주공화국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겠네. 알다시피 인구는 많은데 식량은 부족하네.”
“그건…….”
현수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상념이 스친다.
“우선은 적당한 입지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런가? 그럼 잠깐만 기다리시게.”
삐이잉―!
인터컴을 누르자 대통령 비서실의 누군가가 받는다.
“네, 대통령님!”
“농무장관 들라 하게.”
“알겠습니다.”
잠시 후 대통령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50살쯤 된 장년인이 들어선다.
“우리나라 농무장관이네.”
“아,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천지약품의 김현수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쥬네이디 샤또입니다.”
“지형도 준비되었지?”
“네, 각하.”
“그럼 보세.”
대통령 비서가 버튼을 누르자 벽에서 스크린이 내려왔고, 에티오피아의 지형도가 나타난다.
적도 인근이라 열대우림지대가 많지만 아열대도 있고 온대도 있고 초원 지대도 있다. 고도 차이 때문이다.
경작 가능한 면적은 국토의 58%인 8,500만㏊지만 19% 정도 되는 1,600만㏊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식량 자급률은 10%인데 커피를 수출하여 나머지를 충당하고 있다. 문제는 커피의 가격이 작황에 따라 들쭉날쭉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격 변동률이 매우 높다.
아무튼 해발 고도가 1,600∼1,800m인 지역은 기후가 서늘하고 광도가 높아 채소가 자라기 좋은 기후 조건이다.
뇌리로 스치는 작물은 토마토, 고추, 양배추, 오이, 감자, 배추, 옥수수, 밀 등이다. 연간 강수량은 1,000∼3,000㎜로 분포되어 있다. 이 정도면 농사짓기에 딱 좋다.
이런저런 상념이 이어지는 동안 농무장관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현재의 상황을 감추지 않고 이야기한다.
대놓고 도와달라는 뜻이다.
“제게 조차해 줄 면적은 어느 정도입니까?”
“원하는 면적이 있으신가?”
순식간에 현수의 뇌리로 각종 계산이 이루어진다.
에티오피아 인구와 부족한 식량의 양 등이다.
“으음, 일단 20,000㎢는 있어야 합니다.”
계획하고 있는 러시아와 몽골의 이실리프 자치구는 온대보다는 냉대에 가까운 기후대 지역이다.
이곳 에티오피아는 열대우림 지역도 있지만 온대 지역도 넓다. 각각의 기후대엔 그에 적합한 작물이 따로 있다.
아무튼 온대 지역에 농토가 있었으면 했는데 잘되었다. 그렇기에 상당히 넓은 면적을 요구한 것이다.
20,000㎢는 경상북도 전체보다 넓다. 서울과 경기도를 합친 것의 약 두 배이며, 제주도보다 열 배 이상 넓다.
현수는 벽에 걸린 지도 가운데 당길라(Dangila) 인근 지역을 눈여겨보았다. 큰 강이 휘감고 지나는 지역이다.
강을 눈여겨본 이유는 심각한 기근 현상이 빚어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강수량이 적은 국가인 것이다.
어쨌거나 또 다른 한 곳은 아와사(Awasa) 지역이다. 커다란 호수가 줄지어 늘어선 곳의 중심부쯤 되는 곳이다.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두 곳 모두 농업용수를 얻기에 유리할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당길라보다는 아와사 지역이 조금 더 나은 듯싶다. 대부분이 온대기후대지만 남쪽은 아열대기후를 보이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지역엔 커피 농장이 별로 없다. 고도가 인근 지역보다 낮기 때문이다. 고도가 낮음은 인근 호수로부터 용수 확보가 쉬움을 의미한다. 관개농업을 고려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근엔 여러 도시가 포진해 있다. 노동력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눈대중으로 확인해 보니 전체 면적은 40,000㎢ 정도로 보인다. 우선은 20,000㎢로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 범위를 넓힐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수가 말없이 지도만 보고 있자 기오르기스 대통령 등은 이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다. 대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침묵을 깬 것은 쥬네이디 샤또 농무장관이다.
“20,000㎢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지역은 어디로……?”
“일단은요. 그리고 아와사 인근 지역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나중을 위해 이곳 전체를 조차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현수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에티오피아 전체 면적의 약 30분지 1정도 된다.
“그 정도면 말씀하신 20,000㎢가 넘겠는데요?”
“네. 자금 때문에 우선은 절반 정도만 개발하려는 겁니다. 여력이 생기면 이 지역 전체를 농지로 전환시켜 보면 어떨까 합니다.”
40,000㎢는 남한의 40% 정도 되는 넓이이다.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서울특별시,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의 넓이를 모두 합쳐도 이보다 적다.
이 지역 전체를 농토로 만들어 작물을 생산해 낸다면 에티오피아 인구 전체가 기근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출도 가능하다. 넓이는 40,000㎢이지만 생산량은 세계 평균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밀의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평균 2.3톤/ha이다.
1ha는 0.01㎢이다. 따라서 지구를 기준으로 산술적인 계산을 해보면 매년 920만 톤의 밀이 생산된다.
그런데 성녀의 축복을 받은 개량된 씨앗을 심는다면 이보다 6.25배나 많은 5,750만 톤을 수확하게 된다.
미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전 세계 밀 수확량은 6억 5,140만 톤이다.
이 중 11.32%를 생산할 수 있음이다.
한편,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곡물 소비량은 연간 174㎏이다.
북한을 기준으로 삼은 건 에티오피아가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걸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약 3억 3천만 명을 먹여 살릴 양이다.
에티오피아 정도는 가뿐히 자급시키고도 남는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2011년 1인당 연간 곡물 소비량은 126.7Kg이었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연간 곡물 수요량은 1,988만 톤이다. 이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사료 제조에 필요한 것이 포함된 양이다.
“이 지역을 100년간 치외법권 지역으로 조차해 준다면 생산된 작물의 절반은 에티오피아 정부에 납품하지요.”
“……!”
셋 다 아무런 말도 없다. 규모에 놀란 것이다.
“물론 적정 이윤이 붙겠지만 국제 곡물가보다는 낮을 겁니다. 곡물의 질도 괜찮을 것이구요.”
“정말이십니까?”
엄청난 돈이 들어가야 함을 알기에 묻는 말이다.
“그렇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뭔가?”
지금껏 입 다물고 있던 기오르기스 대통령의 물음이다.
“이곳까지 이르는 도로를 개설해 주십시오. 아울러 베르베라(Berbera)로부터 이 지역까지 철도를 만들어주시고 항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에티오피아는 바다에 면해 있지 않은 내륙 국가이다.
이전엔 북부에 위치한 에리트리아의 항구인 아사브(Assab)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