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3
그런데 두 나라 사이에 국경 분쟁이 발생되었다.
에리트리아가 1998년에 에티오피아의 북동부 티그레주에 위치한 4백㎢의 이르가(Yirga) 삼각지를 무력 점령함으로써 본격적인 분쟁이 개시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여 상대방을 폭격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에티오피아는 소말리아 북부의 자치정부인 소말리랜드와 협정을 체결하여 베르베라를 항구로 사용하는 중이다.
이런 내용을 알기에 항구에 관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좋네. 그렇게 하지.”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자 농무장관의 얼굴에 희열의 빛이 떠오른다. 주무부처의 장으로서 너무도 기쁜 것이다.
“철도 기술은 있으십니까?”
“터키 건설업체인 야피 메르케지와 지나의 통신건설회사에서 총연장 5,000㎞짜리 철도 공사가 진행되는 중이네.”
대통령의 말처럼 에티오피아는 커피를 비롯해 금, 동, 아연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그런데 이를 운반할 운송수단이 마땅치 않아 경제개발에 걸림돌이 돼왔다. 이에 2020년까지 국가 전역에 5,000㎞에 이르는 철도망을 구축할 계획을 짰다.
그 결과 터키는 17억 달러, 지나는 15억 달러짜리 공사를 수주한 것이다.
10장 대신 공사는 절 주십시오
“대통령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지나의 철도기술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
“지나는 한국과 이웃한 국가입니다. 그들로부터 수입된 각종 식품이나 물품을 한국에선 쓰레기라 부릅니다.”
“……?”
“이익만 쫓기에 상품의 질도 엉망이고, 기술력도 아직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뭔가?”
“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그랬지만 수도로부터 이곳까지의 도로건설과 이곳으로부터 항구까지의 철도 공사는 한국 기업에 맡겨주십시오.”
“… 좋아! 그렇게 하지. 그 공사는 자네가 추천하는 회사와 계약을 하겠네.”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현수는 믿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한 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런 이득도 없건만 코리안 빌리지의 병자들을 치료해주었다. 하여 성자라는 칭호까지 들었다.
천지약품을 개설해 달라는 요청에도 한참을 고려한 뒤 대답했다. 그리곤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일이 진행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요구한 특혜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였으며, 반듯한 거처를 마련해 주고, 실업률을 낮춰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백신을 무상으로 지원했다.
오늘의 일도 먼저 제안한 쪽은 에티오피아이다. 현수는 지도를 잠시 보고는 모든 것을 결정했다.
그러고 보니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공사하던 지나의 업체들이 하나둘 떠난다는 보고가 있었다.
거의 모든 공사를 한국 기업들이 수주한 때문이다.
그로 인한 잡음은 없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끼어들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때문이다. 이는 예산 절감은 물론이고 낭비까지 막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후진국인 에티오피아 역시 공무원 및 군인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하여 천지약품을 끌어들여 이를 쇄신하려던 것이다.
주무부처 장관들과 회의를 해봐야 알겠지만 에티오피아 역시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오르기스 대통령은 잠시 현수를 바라보았다.
“우리도 콩고민주공화국과 같은 여건을 제공하겠네.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지. 한국의 첨단기술이 이곳에도 적용되도록 협의해 보세.”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잠시 후, 난상토론이 시작되었다.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진행시켜야 할지에 대한 의견이 오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각부 장관이 속속 당도한다. 그중엔 국방장관도 포함되어 있다.
진행되려는 일과는 동떨어진 부서이기에 꿔다놓은 자루처럼 구석에 있던 장관이 현수에게 시간을 달라고 한다.
하여 자리를 옮겨 앉았다.
“미스터 킴은 한국 사람인지라 우리 에티오피아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할까 싶어 설명하는 겁니다.”
국방장관 시라즈 페게싸 셰레파(Siraj Fegessa Shereffa)의 설명이 이어졌다.
에티오피아는 2013년에 나일강 주요 지류인 청나일강에서 나흐다 댐 건설을 위한 물길 변경 공사를 시작했다.
세계에서 11번째로 큰 규모인 이 댐은 4년 공사비만 48억 달러이다. 여기서 발전되는 전기 용량은 6,000㎿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아프리카 최대 규모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기는 주변국인 수단, 케냐, 지부티 등으로 수출해 소득증대를 꾀할 계획인 것이다. 국민의 기대도 커서 댐 건설을 위한 국채매입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프리카 11개국을 관통하는 나일강은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하는 백나일과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시작되는 청나일, 이렇게 2개의 주요 지류로 나뉜다.
이 중 청나일강은 나일강 전체 수량의 85%를 차지하고 있어 나흐다 댐이 완공되면 이집트는 식수원을 에티오피아에 통제받는 심각한 수자원주권 공백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나일강의 수자원을 독점하던 이집트로서는 나흐다 댐 건설이 그동안 북아프리카 아랍계가 갖고 있던 아프리카의 맹주 자리를 사하라사막 이남의 동아프리카가 차지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인지 이집트의 반응이 격렬하다.
지금은 정정이 불안정하여 별문제 없지만 자리 잡히고 나면 에티오피아와의 본격적인 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셰레파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튼튼한 국방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 무기 수입이 어렵다.
이집트와 미국의 관계 때문이다.
얼마 전, 이집트에선 국민투표로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가 새 대통령이 됐다. 그로부터 1년 후 대통령 선거 조기실시 운동과 하야 운동이 펼쳐졌다.
그리고 무르시는 이집트 군부에 의해 축출당했다. 그 결과 현재의 이집트는 혼돈을 넘어 아비규환으로 치닫는 중이다.
미국은 현재 이집트 군부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 버릴 수는 없다. 그 이유는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집트 군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중동을 급진적 이슬람 테러리즘에서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1981년에 대통령이 된 무바라크는 재임 기간 동안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전쟁을 벌였다. 그래서 미국이 무바라크의 독재를 암묵적으로 승인해 준 것이다.
이 순간에도 시나이반도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부족이 무차별적인 테러를 벌이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이 이집트 군부와 결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는 수에즈운하 때문이다.
수에즈운하는 단순한 운송 통로가 아니다. 홍해와 지중해 안보에 중요한 관문이다.
이 운하가 다른 세력에게 넘어갈 경우 미국의 대(對) 중동 영향력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셋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분쟁에도 이집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중동전쟁을 겪으며 아랍 세력과 이스라엘 사이의 골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젊은 무슬림, 심지어는 아랍 기독교 신자들조차 이스라엘에 대해 잠재적 적개심을 갖고 있다.
아랍인들의 마음은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같은 팔레스타인 정치 세력에게 큰 지원군 구실을 하고 있다.
반면, 이것은 미국에게는 커다란 근심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 같은 존재다.
특히 무슬림형제단은 하마스와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기에 군부가 무르시를 축출했지만 군부에 대한 지지마저 철회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아랍권에서 이집트 군부가 맡을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미국은 이집트와 분쟁이 발생될 수 있는 에티오피아에 무기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시라즈 페게싸 셰레파 국방장관은 은밀히 러시아와 지나를 방문한 바 있다.
그런데 바가지를 옴팡 씌우려 한다.
사실, 러시아는 무기를 팔지 않을 속셈으로 높은 값을 불렀다. 미국과 이집트의 관계가 악화되면 이집트와 밀월 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과 미국을 견제하며 중동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최고의 전략적 요새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러시아는 이집트와의 향후 관계를 고려하여 무기 수출을 자제한 것이다.
지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셰레파 국방장관을 접견한 지나의 국방장관 상만전(常萬全)은 무기 수출을 빌미로 다른 것을 요구했다.
현수가 콩고민주공화국 개발의 주도권을 가진 것처럼 지나에도 에티오피아 개발에 관한 전권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주무부처 장관인 셰레파는 지난해에 체결된 철도 공사 중 일부를 지나의 통신건설회사가 수주한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보였다.
건설품질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부실시공을 하며, 이를 감추기 위해 대대적인 뇌물 공세를 펼친다는 걸 알고 있다.
만일 에티오피아 국토 개발을 지나의 업체들에게 위탁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짐작된다.
그렇기에 상만전 국방장관의 말을 외교적인 수사로 무마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불쾌했으나 내색하진 않았다. 부하들 가운데 친 지나 인사가 상당수 포진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향응과 뇌물로 매수된 상태일 것이다.
어쨌거나 에티오피아는 무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 러시아, 지나에선 도입할 수 없게 되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무기를 수출하지만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들 국가에서도 도입은 어렵다.
하여 별도로 조사를 해본 결과 한국에서도 무기를 수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최근 들어 방위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보고였다.
KT―1 웅비는 페루 20대, 인도네시아 17대, 터키에 40대를 수출했다. T―50i는 인도네시아에 16대 팔렸다.
이밖에 많은 재래식 무기가 수출되는 중이다.
“그래서 말입니다. 미스터 킴이 귀국하면 한국산 무기가 수출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합니다.”
“네……?”
“언론의 보도와 인터넷을 통해 미스터 킴이 한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를 압니다. 도와주십시오.”
“그건…….”
어쩌면 이집트 사람들의 목숨을 앗을지도 모를 무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에 현수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상념이 있다.
한국이 팔지 않아도 에티오피아는 어디선가 무기를 도입할 것이다. 국제무기밀매업자에 선을 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수출하는 편이 국익이다.
“알겠습니다. 귀국하는 대로 알아보고 연락드리지요.”
“아! 고맙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품목은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꼭 성사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셰레파 국방장관이 환히 웃으며 손을 내민다. 악수를 함으로써 지금의 마음을 기억하라는 뜻일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주시면 됩니다. 우리 에티오피아 군부는 이 시간부터 미스터 킴을 지지한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현수는 장관의 깊은 눈빛을 보았다. 간절한 염원의 빛이 어려 있다. 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장관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애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