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5
지나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라는 뜻으로 만든 기관에 몸담고 있으면서 오히려 그들에게 유리한 엉터리 연구 결과를 쏟아냈던 자들이다.
국안부 3국 자료에는 그들이 어떻게 포섭되었는지가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부인하지 못할 증거들도 있다.
사진, 동영상, 입출금계좌 등등이다.
국정원에 자료를 넘겼으니 그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와 관련된 기사는 없다.
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동북아참역사재단이 최근에 발표한 논문이 있다고 한다.
대강의 내용을 살펴보다가 모니터를 꺼버렸다. 부아가 치솟은 탓이다.
초등학교 사회 시간엔 인류의 4대 문명에 대한 내용이 있다.
티그리스3)와 유프라테스4)강 사이에서 발원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그중 첫 번째인 것으로 가르친다.
이 문명을 일으킨 이들은 바퀴를 발명한 수메르인이다. 이들은 쐐기 모양의 설형문자(楔形文字)를 사용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문자가 만들어지고 문명이 발상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이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만주지역 요령성 조양시 전평현과 능원현의 접경 지역에서 번창했던 유적이 발견되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1∼2천 년 정도 앞선 인류 시원문명이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적석총, 비파형 옥검 등이다.
적석총은 제천문화가 있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비파형 옥검은 단군조선 때 사용한 비파형 청동검의 원형이다.
이로 미루어 짐작컨대 ‘홍산문명’이라 이름 붙여진 이것은 우리 조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동북아참역사재단에서 최근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홍산문명의 주인이 한족(韓族)이 아닌 한족(漢族)인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를 보고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즉시 논문 저술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곤 메모해 두었다. 연옥도에 첫발을 들일 자로 확정된 것이다.
11장 정보가 필요하십니까?
“우리 오랜만이죠?”
현수가 반갑게 웃으며 손을 내밀자 엄규백 팀장이 악수를 하며 흔든다.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요즘 노래 잘 듣고 있습니다.”
“네……? 아, 그거요?”
현수가 싱긋 웃자 엄 팀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걸그룹 다이안이 새 노래를 발표하기 전까지 엄 팀장은 그런 팀이 있는지도 몰랐다.
업무에 바쁘니 음악을 감상할 여유조차 없었던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엄 팀장은 상사의 명을 받고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하도 심심해서 라디오를 틀었는데 MC가 뭐라 뭐라 떠들고 있다.
가만히 들어보니 ‘지현에게’라는 곡의 작사, 작곡가가 천지건설 부사장 김현수라는 것이다. 아울러 새 신부를 위해 쓴 곡이라면서 몹시 부럽다는 내용의 말을 했다.
멘트의 말미엔 요즘 가장 핫한 노래라면서 ‘지현에게’와 ‘첫 만남’을 아직 못 들어본 사람이 있다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걸 자각하라는 농담을 했다.
엄 팀장은 피식 웃었다. MC의 말이 왠지 웃기게 들린 것이다. 엄 팀장이 보기에 현수는 음악과는 별 관계가 없다.
건설회사 직원이 무슨 작사, 작곡인가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노래가 흘러나오는 내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처음 듣는 곡이지만 요즘 말로 꽂혀 버린 것이다.
너무도 감미로운 멜로디였고, 가사는 아내를 얼마나 아끼는지 드러나 있었다.
노래가 마음에 들었기에 음반을 주문하려 웹사이트로 들어가서 또 한 번 놀랐다.
발표된지 15일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12쇄가 되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매 발매되는 날마다 판매 개시 5분 만에 완판되는 진기록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달려 있는 댓글을 보니 선주문한 사람이 워낙 많아 음반을 받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쉬운 대로 유투브에 올려진 MV로 음악을 감상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몸과 마음이 몹시 편안해진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날 이후 엄 팀장은 이어폰을 끼고 산다.
퇴근 후 집에 가면 가는 귀 먹는다고 투덜대던 아내도 노래를 들어보곤 자기도 이어폰을 끼고 산다.
하도 많이 들어서 ‘지현에게’와 ‘첫 만남’은 반주까지 모두 기억할 정도이다. 그런 곡을 작사, 작곡한 장본인을 만나니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자리에 앉죠.”
“네, 그러죠.”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자 신입사원인 듯한 아가씨가 차를 내왔다.
“요즘도 바쁘시죠?”
“네, 하는 일이 잡다하다 보니 조금 그렇습니다.”
“절 보자 하셨는데 특별한 용무가 있으신가 봅니다. 또 북한에 들어가십니까?”
“네. 그럴 계획입니다.”
엄 팀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앞으론 제게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어디 다른 부서로 발령 난 겁니까?”
“아뇨! 김 부사장님의 북한 방문은 저희 손을 떠난 일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직접 챙기십니다.”
“아……! 그렇군요.”
일전에 양쪽 정상의 친서를 전달한 바 있다. 그 내용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 때문인가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엄 팀장과 시선을 마주쳤다.
“팀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이제 본격적인 용무라 싶은지 표정이 약간 굳어진다.
“지난번 방북 때 북한으로부터 모종의 정보를 전달받은 바 있습니다.”
“……?”
긴장되는지 침을 꿀꺽 삼키는 듯하다.
“그 내용은 동북아참역사재단 연구원 대다수가 지나에 포섭되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동북아…….”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걸 국정원으로 보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
엄 팀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하여 말을 이었다.
“국정원 내부에도 공모자가 있는 거 아닌가 의심되서 물어보는 겁니다. 혹시 이에 대해 아는 바 있으십니까?”
“으으음!”
대꾸 대신 나지막한 침음만 낸다.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에 다시 물었다.
“국정원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는 거 압니다. 제가 보기에 엄 팀장님은 그 일과는 무관한 듯싶은데 맞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팀은 그 일과는 관련 없습니다.”
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천지건설 부사장 이외에 천지기획 대표이사라는 직책이 또 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천지그룹의 차세대를 책임질 동력원이 되는 핵심기업이라는 걸요.”
“아시니 터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겐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그걸 분류해서 분석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
“그 정보들 가운데엔 국가에 필요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국정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실무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상층부는 아니라고 봅니다.”
“……!”
자신이 속한 조직을 까는 말이라 그런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입술만 굳게 다문다.
“국정원에서 나오십시오. 걸맞은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건……!”
엄 팀장은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국정원에 들어간 이유 때문이다. 엄 팀장은 현장요원이 아니다.
현장에서 취득한 정보를 취합, 분석하는 게 일이다.
전에는 그런 일을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바뀌고, 국정원장이 바뀌면서 현장까지 나서게 되었다.
국정원도 조직인 이상 상관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궂은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해야 한다.
그런데 아니다 싶은 일은 못하겠다고 뻗대기도 했고,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반대 의견도 내놓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본연의 임무를 하지 못한 이유는 상부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결과인 듯하다.
하여 많은 고민을 하는 중이다.
정권이 바뀔 때까지 숨죽이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당당하게 항의할 것인가를 고심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국정원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항의는 꿈도 못 꿀 일이다. 후진국에서 있을 법한 공포정치의 배후가 되려는 움직임이 보였던 것이다.
권력자들의 눈에 차지 않으면 가차없이 쳐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차기는 물론이고 차차기 정권까지 한심당이 가지려는 음모의 일환이다.
조직이 변질되는 것을 지켜보는 입장은 매우 괴롭다. 하여 요즘은 입에 대지 않던 술까지 마시는 날이 잦아졌다.
차라리 사직하는 것은 어떨까를 고심해 보았다.
문제는 국정원을 나서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니 대책 없이 그만두는 것은 못할 짓이다.
하여 고민만 깊어지고 있는데 현수가 제안했다. 차라리 잘되었다는 심정이긴 하지만 덥석 물 수는 없다.
어떤 의도인지를 가늠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재벌가엔 별도의 정보 조직이 가동되고 있다. 그 조직은 금력을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노조 설립을 억압하는 일이 그중 하나이다. 때론 폭력조직까지 움직여 자신들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혹시라도 그런 걸 만들 생각이라면 가고 싶지 않다.
적어도 국정원은 나랏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주고 있다.
그런데 사기업에 가서 그런 일을 하게 된다면 하수인 역할만 하는 것이다. 그러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고, 생각하는 삶을 산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잠시 현수와 시선을 마주쳐 보았다. 의도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정보는 제가 제공합니다. 엄 팀장님은 팀원들과 함께 그 정보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만 하시면 됩니다.”
“…정보를 어디서 얻죠? 별도의 조직이 있습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전에 보지 못하던 정보를 보시게 될 겁니다.”
현수는 부러 호기심을 자극했다.
“……!”
엄 팀장은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천지그룹에 전략기획실이라는 것이 있다. 이곳에서 여러 정보를 다룬다.
하지만 현수가 말하는 것 같은 정보엔 접근하지 않는다. 업무와 관련된 정보만 수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치 엄청난 정보가 있는 것 같은 표정이다. 하여 눈빛을 빛내며 더 털어놓으라는 표정을 지었다.
“예를 들자면…….”
현수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상대의 조바심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다.
“JAS―39 그리펜(Gripen)의 개발도면이 제게 있습니다.”
“네? 그리펜이라면……. 설마!”
“생각하신 것이 맞습니다. 스웨덴 사브(Saab)에서 만든 4.5세대 전투기죠.”
“…그, 그것의 개발도면을 가지고 있다고요?”
엄 팀장은 입을 딱 벌렸다. 전투기 개발도면은 극비 중의 극비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펜은 여러 장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꼽자면 데이터링크 시스템이다.
12대의 그리펜이 있을 경우 하나만 레이더를 가동시키고 나머지 11대가 레이더를 끄고 있어도 그리펜끼리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이다.
이는 BVR 교전5)때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과 같다.
아무튼 엄 팀장은 깜짝 놀라고 있는데 현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뭘 그걸 가지고 놀라십니까? J―20의 도면도 있는데요.”
“네에……? J―20이라면 젠―20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나가 자랑하는 최신예 스텔스기요.”
“맞습니다. 그 젠―20의 완성도면이 있습니다.”
현수도 국안부 컴퓨터에서 이 자료를 보았을 때 많이 놀랐다. 제3국의 미친놈들은 자국 군사정보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