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8
경험 많은 박진영 과장은 물론이고 유민우 대리와 현수의 대학 동기들도 입을 딱 벌린다.
어디 가서 이런 공사를 딸 거라고 하면 믿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아제르바이잔의 공사를 하면서 많은 경험을 축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설계 및 시공 파트에서 얻어지는 모든 정보를 취합하는 것이 여러분의 첫 번째 임무가 될 겁니다.”
“……!”
모두 대답이 없다. 멘붕 상황이기 때문이다.
건설회사들은 마진이 좋다.
지난 2008년 중견 건설회사 현장소장이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그는 아파트 분양가에 엄청난 거품이 끼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하길 32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분양하면 건설사는 6,000만 원 정도 이익을 챙긴다고 했다.
분양가의 30% 정도가 마진이라는 뜻이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 요즘 분양 광고를 많이 볼 수 있다.
3년을 살아보고 결정하라든지, 중도금 이자를 면제한다는 내용 등 상당한 혜택을 주는 듯한 것이다.
겉보기엔 돈이 급한 건설사들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단 한 푼의 손해도 없다.
어쨌거나 현수가 언급한 공사를 수주하려면 국제적인 건설사들과 치열한 입찰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엔 이만한 마진을 볼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의 절반인 15% 마진으로 수주했을 때 천지건설은 15조 4,500억∼18조 1,500억 원의 이익을 본다.
이 얼마나 큰 금액인가!
2013년 6월, 대한건설협회는 상장 건설사 111개사의 경영성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할 수 없는 건설사가 전체의 49.5%(55개사)나 된다고 발표했다.
원인으로는 일부 상장 대기업들이 영업 손실을 입었고, 최저 낙찰제 확대와 업체 간 과당경쟁, 그리고 이자비용 증가 등으로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15조 원 이상의 이익이 발생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박진영 과장이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현수는 이미 확정된 차얀다 가스전 개발공사와 파이프라인 연결공사, 그리고 사할린―3과 사할린―4 개발공사를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게다가 몽골과 러시아에 거의 한반도 크기만 한 농장을 신설하면서 도로와 철도, 공항 등을 조성해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아디스아바바 남쪽 아와사(Awasa) 지역에 40,000㎢에 달하는 새로운 이실리프 농장도 개설해야 한다.
천지건설이 큰 회사이기는 하지만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큰 공사들이 줄줄이 대기 중인 것이다.
만일 그것까지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싶다. 그러나 그럴 순 없다. 아직은 밝힐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 공사를 할 때 어찌할 것인지를 착실하게 준비하십시오.”
“네, 부사장님!”
“알겠습니다. 사장님!”
“자, 다음은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 공사 건입니다. 그건 어떻게 진척되었지요?”
“그건…….”
자신만만하던 박 과장의 말투가 갑자기 어눌해진다. 주도권을 쥘 확실한 패를 갖지 못한 때문이다.
그럼에도 브리핑은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회사 내부에서 취합한 각종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계획도면을 보여준다. 갖가지 디자인이 적용된 것일 뿐 확실히 당기는 맛이 없다.
‘연희 씨는 어떤 생각일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늘 리우데자네이루 공사를 따내기 위한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다닌다. 그런데 한 번도 보여주거나 생각을 말해준 적이 없다.
보다 구체화되면 그때 말하겠다고 했다.
‘이것도 내가 나서야 하나? 정말 사장님 말씀대로 항온마법진이 적용된 아파트와 빌라를 지어야 하나? 끄응! 그건 마뜩치 않는데.’
대한민국엔 항온마법진이 적용된 집이 딱 2채가 있다.
우미내 마을에 있는 집은 전체가 그렇다.
권철현 고검장 댁은 안방만 그러하다. 지현의 외조부인 안준환 옹은 현수가 마법사인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없는 항온아파트를 남의 나라에 지어주고 세계적인 이목을 받는 것은 사양할 일이다.
그렇기에 나지막한 침음을 낸 것이다.
“리우 건은 혹하는 맛이 없습니다. 조금 더 아이디어를 모아보세요.”
“죄송합니다. 부사장님!”
박 과장이 허리를 숙인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사과와 과도를 주고 반으로 잘라달라고 하면 99%가 꼭지 부분으로부터 수직으로 자른다고 합니다.”
느닷없는 사과 이야기에 모두들 시선을 모은다.
“수평으로 자를 수도 있고, 사선으로 잘라도 반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지그재그로 잘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수직으로만 자르려 할까요?”
“……!”
“그래서 고정관념이 무서운 겁니다. 지금부터는 새로운 각 도로 접근해 보십시오.”
“아……!”
모두들 나직한 감탄사를 낸다. 이때 현수는 대학 동기들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세계 7대 난제 중 6문제, 그리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새로운 방법으로 증명했다는 거 아시죠?”
“그럼요! 그래서 필즈상…….”
유민우 대리가 말을 이으려 할 때 현수는 손을 내밀어 제지했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제가 그 문제들을 풀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
언론사 인터뷰에서도 없었던 말이 나올 듯한지 모두들 입을 다문 채 현수만 바라본다.
“먼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수학자들은 어떤 수학적 개념을 들이댔을까? 어떻게 접근해서 풀어내려고 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러셨지요?”
김지윤 과장의 물음이다.
“왜냐구요? 그렇게 하면 못 푸니까요.”
“아……!”
누군가 나직한 탄성을 낼 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저보다 수학적 지식이 많은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그걸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분들이 접근했던 방법이 아닌 걸 먼저 찾아보았습니다.”
현수는 부러 말을 끊었다. 모두들 눈빛이 반짝인다. 그리고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 충분히 짐작된다는 표정이다.
“맞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처럼 그렇게 해서 풀어냈습니다.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접근 방법으로 다가갔습니다. 그 결과가 여섯 난제를 풀어내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새로운 방법으로 증명한 겁니다.”
“아……!”
모두가 감탄사를 터뜨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리우 건은 다른 각도로 접근해 보십시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20대 건설사 전부가 달려든 상황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길 방법은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한 걸 적용하는 것뿐입니다.”
“……!”
모두의 표정이 바뀐다. 한번 해보자는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눈빛이다.
“자, 오늘은 오랜만에 만났으니 회식 한번 합시다.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용무가 있거나 꼭 가셔야 하는 분은 자유롭게 가셔도 됩니다.”
현수의 말에 모두가 웃으며 두리번거린다. 누가 감히 집에 가겠다는 소리를 할 것이냐는 표정이다.
“오늘 늦은 시각까지 회사에 잡아두었으니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내일 출근 시각은 오후 2시입니다. 이제부터 실컷 마시고, 푹 잔 다음에 출근하십시오.”
“와아! 사장님 만세!”
유민우 대리가 펄쩍 뛰어오르며 환성을 낸다.
오후 2시 출근이라면 마음껏 마셔도 된다는 뜻이다.
자재과에서 천지기획으로 자리를 옮긴 후 스트레스가 심했다. 지시받은 업무가 없었기에 일도 안 하면서 월급만 축내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명예퇴직을 권유했을 때 이를 거절한 사원들에게 대기발령을 내는 기업들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창고 비슷한 곳에 책상 하나만 딸랑 준다. 아예 회사 복도에 책상을 내놓기도 한다.
전화도 없고, 컴퓨터도 없다. 그리고 해야 할 일도 없다. 그런데 지각하거나 자리를 비우면 뭐라 한다.
아무런 일도 없이 며칠을 지내고 나면 대부분 명퇴자원서에 사인을 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유민우 대리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박진영 과장과 같은 공간에 있기는 하지만 소속이 다르다. 그렇기에 박 과장으로서도 아무런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
현수와 대학 동기 20명은 신입사원 연수교육을 받느라 자리를 비웠었다. 같이 자리를 옮긴 차애련은 갑작스런 복막염으로 병가 중이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았다. 하지만 술로 달래진 않았다. 자칫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현수가 왔다. 그리고 직원들을 살뜰히 챙겨주는 기분이다. 그렇기에 기분이 업(up) 된 것이다.
일행은 가까운 돼지갈비 집으로 갔다. 2차는 근처 생맥주집이다. 3차는 노래방이다.
그리곤 새벽 2시에 헤어졌다. 김지윤 대리는 박진영 과장이 에스코트했다. 괜스레 흡족한 기분이 들어 웃음 지었다.
“어휴! 여태 술 마셨어요? 속 괜찮아요?”
새벽 2시가 넘어 귀가했음에도 지현은 상냥하다.
“응! 괜찮아.”
“해장국 끓여놨어요. 한술 뜨세요. 속 풀리게.”
“아냐, 괜찮아. 술 많이 안 마셨어.”
현수의 이 말은 거짓말이다.
직원들이 주는 술잔 전부를 사양하지 않고 받아 마셨다. 그렇게 마신 양은 소주 5병 정도이다. 하지만 말짱하다.
알코올을 독으로 간주하는지 큐어 포이즌 마법을 쓰니 단번에 취기가 사라진 때문이다.
“나 샤워할게.”
“네, 그러세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현수는 창가에 앉아 조금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을 감상했다.
‘지현에게’라는 곡을 케이원 엔터테인먼트 조연 대표에게 주던 날에도 이렇게 많은 눈이 내렸다.
그날 지현은 눈이 좋다고 뛰어다니는 강아지처럼 즐거워했다. 그때를 떠올리곤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안 잘 거예요? 많이 늦었는데.”
“응! 난 괜찮아. 피곤할 텐데 먼저 자.”
“싫어요, 자기 옆에 있고 싶어요.”
지현이 현수가 앉은 소파 옆자리에 앉더니 품을 파고든다. 이럴 때 보면 페르시안 고양이 같다.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잠시 창밖 풍광에 시선을 주었다. 담장근처 정원에 켜놓은 수은등 덕분에 아주 잘 보인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러 3시가 가까워졌을 무렵이다. 갑작스레 위화감이 느껴진다. 하여 신경을 곤두세우려 할 때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채앵―!
강화 마법이 걸린 유리창에 뭔가가 부딪친다. 그리곤 원형으로 금이 간다.
쩌억―!
“……? 이런! 딥 슬립.”
졸다 잠든 지현을 안아 안방에 데려다 놓았다. 그리곤 서둘러 의복을 갈아입었다.
“으음, 흑룡인가? 와이드 센스!”
범위를 넓혀가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몇몇 경호원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현을 방에 눕히고 나오는 사이에 도주한 듯싶다.
“으으음!”
유리창에 간 금을 본 현수는 대물저격총을 떠올렸다.
유리창의 안과 밖에 각도를 꺽은 강화마법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일반 저격소총의 경우엔 바깥쪽에만 흠집이 발생된다. 그런데 안쪽 유리도 손상을 입었다.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무언가가 쏘아져 온 것이다. 그리고 흔적은 보니 대물저격총인 듯싶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체이탁 M200 LRRS6)이다. 유효사거니 1,700m, 최대사거리 2,270m짜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