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0
“흐음, 개량된 종자 같은데 수확량은 어떻게 됩니까?”
김정은의 물음에 현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말씀드리면 아마 못 믿는다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설마 2배나 3배 정도 늘어나는 겁니까?”
어서 그렇다는 대답을 해달라는 기대에 찬 표정이다.
“아닙니다.”
“네? 그럼…….”
다소 맥 빠진다는 표정으로 금방 바뀐다. 북한 내에서도 종자개량을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 결과 5∼10% 증산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식량난을 해결할 수 없다.
현수는 빔 프로젝터와 노트북을 연결하였다. 그리곤 스크린이 내려오도록 리모컨을 작동시켰다.
누군가 알아서 실내조명을 하나하나 소등한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스크린에 집중되었을 때 앞으로 나간 현수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몽골과 러시아 접경지역의 지도입니다. 여기는 보르자이고, 이곳은 네르친스크입니다. 이 지역의 면적은 대략 10만㎢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잠시 말을 끊고 장내를 둘러보니 식량 이야길 하다 말고 왜 갑자기 지도를 꺼내서 설명하는지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몽골 지역을 보시면 여기 초이발산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 일대 역시 약 10만㎢ 정도 됩니다.”
“김 사장, 동무! 식량 이야기하다 왜 몽골과 러시아 이야길 하시는 겁네까?”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의 물음이다. 이에 가볍게 웃어주고 말을 이었다.
“공화국의 인구는 약 2,400만 명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2,400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많수다레.”
“기럼! 기거 보다야 훨씬 많디! 안 그렇소? 동무?”
“기럼, 기럼! 2,600만은 족히 될 거이디.”
“2,600만은 무슨……. 3,000만 명은 되디. 안 그렇소?”
누군가의 말에 또 다른 누군가가 대꾸한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려 한다. 이때 장성택이 한마디 한다.
“조용……!”
딱 두 글자에 왁자지껄하려던 분위기가 급속하게 냉각된다. 장성택과 김정은의 굳은 표정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발언이 이어진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2012년 공화국 곡물 생산량은 503만 톤으로 2011년도에 비해 5.9% 증가했습니다. 이 발표도 맞는 겁니까?”
“……!”
이번엔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하긴 말 잘 못 꺼내면 찍히는 분위기이다. 하여 준비된 말을 이었다.
“제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공화국 주민의 1인당 연간 곡물 소비량은 174㎏입니다. 이걸 인구수에 곱하면…….”
화면에 계산기를 띄워놓고 수식을 입력했다.
174 × 24,000,000 ÷ 1,000 = 417만 6,000톤
답이 나오자 말을 이었다.
“식대로라면 곡물이 남아야 합니다. 그런데 부족하죠?”
“……!”
모두들 입 다문 채 화면만 본다.
“여기서 계산하지 않은 건 동물사료 등으로 쓰이는 것들이 빠진 때문입니다. 아무튼 FAO에서는 그것까지 감안하여 연간 소요량을 540만 톤이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또 대꾸가 없다. 할 수 없이 말을 이었다.
“그럼 정말 540만 톤만 있으면 공화국의 식량난이 완벽하게 해결될까요?”
말을 마치고 잠시 쉬면서 모두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다 시선이 장성택에게 미쳤다.
그 역시 굳은 표정이다. 하지만 눈빛으로 대답한다. 그것만 가지고는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김정은의 눈빛 또한 이러했다.
“한 40만 톤쯤 더 증산이 되어도 식량난은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닥치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도 2012년처럼 504만 톤이 생산될까요?”
현수의 말에 모두들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제 해결책이 나오는가 싶은 것이다.
“공화국에선 식량증산을 위해, 식량자급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겁니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번에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다면 북한의 식량난은 벌써 극복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전 저는 몽골과 러시아의 두 곳을 보여드렸습니다. 그 지역은 북위 50° 인근 지역입니다. 같은 위도에 우크라이나라는 유럽국가가 있습니다. 아시죠?”
“……!”
아무도 대답은 하지 않지만 고개는 끄덕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곡창지대입니다. 저는 같은 위도에 있는 이 지역을 몽골과 러시아 정부로부터 각각 100년씩 치외법권지역으로 조차 받으려 합니다.”
“헐……!”
“아……!”
“헉……!”
이번엔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모두 놀랍다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지역을 합치면 한반도 전체와 맞먹는 크기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는 어느 정도 조율까지 마쳐졌습니다. 추후 로그비노프 대사님께 확인해 보시면 알 겁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로그비노프는 아직 알지 못한다는 몸짓을 한다. 그러면서 사실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푸틴 대통령님, 메드베데프 총리님, 그리고 알렉세이 울류카예프 경제개발부 장관님과 이야기된 내용입니다.”
로그비노프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나중에 확인해 주겠지만 김현수 님의 말이 맞을 겁니다.”
“으으음……!”
“허어, 세상에……!”
“어찌 저 넓은 땅을 개인이…….”
모두들 나지막한 탄성을 낸다. 그중엔 장성택과 김정은도 포함되어 있다. 공화국보다 넓은 땅이기 때문이다.
이때 현수의 발언이 이어졌다.
“얼마 전 지나의 몽골 병합 시도가 무산된 거 아시죠?”
이번엔 반응이 있다.
“후안무치한 뙤놈들이 한탕 하려다 걸린 거이디.”
“맞아! 욕심이 너무 사나왔디.”
또 다른 반응이 나오기 전에 얼른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러시아가 개입하여 사태는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지나는 몽골 땅에서 철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빈자리는 러시아가 채울 겁니다.”
“기건, 기렇겠디!”
“아무렴! 러시아가 해결했으니끼니.”
몇 마디 말이 또 나오려 하기에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몽골 정부에 조차 신청을 할 겁니다. 그리고 러시아 정부는 저를 돕기로 했습니다.”
“으으음!”
모두들 나지막한 침음을 낸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려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제 IQ가 상당히 높다는 걸 아시죠?”
이번엔 모두의 머리가 거의 동시에 끄덕여진다. 현수는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는 좋은 머리로 종자개량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걸 이 땅에서 재배할 겁니다. 현재 제 목표는 이곳에서 재배한 질 좋은 농산물로 남·북한 주민 전체를 먹여 살리고 남는 건 수출하는 겁니다.”
훗날 이실리프 자치구라 불리게 될 이 지역 전체에 밀만 심는다면 수확량은 2억 8,750만 톤이나 된다.
성녀에 의해 수확량이 6.25배로 늘어난 밀 종자를 심었을 때의 일이다.
이는 전 세계 밀 수확량의 44%에 해당된다.
북한주민을 기준으로 하면 16억 5천만 명을 먹일 수 있다. 따라서 현수의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남한과 북한의 인구를 합쳐도 7,500만 명이 되기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자치구 전체를 농지로 쓸 수는 없다.
농사지을 사람들이 거주할 지역도 있어야 하고, 도로 등도 조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생을 향유할 제반시설들도 갖춰야 한다.
평생 일만하면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놀이동산도 있어야 하고, 테마파크도 필요하다.
영화관, 도서관, 병원, 쇼핑몰, 학교, 소방서, 경찰서 등등 온갖 것이 다 있어야 한다.
나라 하나가 신설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쨌거나 남북한을 합친 것만 한 땅덩이에 농사를 짓겠다고 한다. 전 국민이 먹고도 남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권력자들의 눈빛이 빛난다. 식량난을 해결한 방법을 자신들이 찾아낸 것 같은 눈빛이다.
“물론 공짜로 제공할 생각은 없습니다. 공화국으로부터 돈을 받겠습니다. 대신 값은 엄청 쌀 겁니다.”
다들 공짜로 주면 좋은데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어찌 공짜로 줄 수 있는가!
“아무튼 현재의 공화국은 식량난이 심합니다. 그걸 저는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제게 부족한 게 있습니다.”
“돈이 부족하오?”
“빈 땅에 농사를 지으려 해도 전기 같은 건 있어야디.”
“거기 물도 없는 곳 아닙네까?”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그러도록 내버려 두었다. 하여 아예 마이크를 내려놓고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잠시 후 다시 마이크를 잡자 조용해진다.
“전기는 풍력이나 태양광발전으로 해결 가능합니다. 물은 여기 보이는 이 강들로부터 끌어오면 됩니다.”
“……!”
실카강과 케롤렌강, 그리고 아르군강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일 수 있음을 보자 모두들 눈빛을 반짝인다.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것인지 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제게 부족한 건 사람입니다. 러시아 지역은 러시아 사람들을 고용할 계획입니다. 문제는 몽골지역입니다.”
말을 하며 기기를 조작하자 화면에 몽골 인구가 300만이라는 글씨가 나타난다.
“몽골 사람들도 고용하겠지만 저는 공화국 사람들을 썼으면 합니다.”
“……!”
모두들 침을 꿀꺽 삼킨다. 막대한 돈이 굴러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쯤해서 여러분께 제안 하나를 드리려 합니다.”
“뭡니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오랜만에 입을 연다. 뭔가 기대된다는 표정이다.
“공화국 내부에 속을 썩이거나 필요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치범수용소와 교화소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런 사람들을 보내주십시오.”
“아! 그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시디요.”
장성택의 말이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예민한 사항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의약품과 비료, 그리고 연료와 전력, 마지막으로 식량에 관한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질문 있으십니까?”
“……!”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는 숙천유전 개발과 석유화학단지 조성에 관한 건입니다. 미스 브레즈네프!”
공식적인 자리이기에 일부러 성을 불러주었다. 테리나는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 준비된 자료를 나눠준다.
배포가 끝날 때까지 잠시 시간이 흘렀다.
“자, 배포된 자료 표지를 넘겨주십시오. 거길 보시면…….”
숙천유전의 규모, 위치, 개발 가능성 등이 기록된 자료들을 읽느라 소음이 난다. 서둘러 뒷장까지 보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현수는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자! 이제 설명 드리겠습니다. 숙천유전은…….”
모두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한다.
레이저 포인터로 짚어가며 제반 사항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북한 당국자는 2월 5일을 기념일로 지정한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현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날이다. 그렇기에 북한의 교과서에 김현수란 성명 석 자가 인쇄된다.
『전능의 팔찌』 29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