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6
조금의 무례나 실수도 용납지 않겠다는 것을 알리라는 것이다. 하여 왜 그런가를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간결했다.
현수는 믿을 만한 사람이며 욕심이 없다. 아울러 러시아와 기꺼이 협력할 자세를 갖춘 인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를 함께해도 좋을 인물이라면서 무엇이든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렇기에 이토록 깍듯한 것이다.
아무튼 접견실에 자리를 잡자 로그비노프가 무언가를 꺼내 건넨다.
“뭡니까, 이건?”
“본국 외교관 신분증입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김현수 사장님을 본국 특임대사로 임명하셨습니다.”
“네? 뭐라고요?”
뜬금없는 외교관 신분증을 받아 들며 한 말이다.
“러시아 명예 시민권은 이미 갖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그러니 본국의 외교관이 될 자격이 있다면서 임명한 겁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한국은 이중 국적을 허용치 않는 국가입니다.”
“압니다. 하지만 콩고민주공화국의 외교관 신분도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여 본국에서 대한민국 정부로 예외 요청 외교 공문을 보냈습니다.”
“예외 요청 외교 공문이라니요?”
“대한민국이 이중 국적을 허용치 않는 국가이지만 김현수 사장님은 본국에서도 꼭 필요한 인물이니 러시아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 자격을 수여한다는 것입니다.”
“……!”
무슨 소린지 감 잡았다.
한―러 간 경제교류를 위하여 대한민국 정부에게 예외적으로 이중 국적을 허용하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니 손해 볼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경제 대국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 60년간 북한과 대치한 결과 전력도 상당하다. 하지만 결코 힘 있는 국가는 아니다. 주변국이 워낙 강성하기 때문이다.
항온 의류, 쉐리엔, 미라힐, 청향, 디오나니아 방탄복 등은 경쟁 상대가 없는 완벽한 독점 품목이다.
현재에도 그렇지만 향후에도 엄청난 부를 지속적으로 축적시켜 줄 것들이다.
그런데 욕심 많은 미국이니 지나 등이 가만있을 리 없다.
항온 유지 기술을 빼앗으려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쉐리엔 제조법을 원할 수도 있다.
기적의 치료제가 될 미라힐이나 홍익인간, 청향, NOPA 등의 기술을 탐낼 확률도 매우 높다.
그때 대한민국 정부는 현수를 보호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러시아는 다르다.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Edward Joseph Snowden)이란 인물이 있다. 미국인이다.
그는 전직 CIA 직원으로 미국 국가안보국 NSA에서도 컴퓨터 기술자로 일한 바 있다.
스노든은 2013년에 가디언지3)를 통해 미국 내 통화 감찰 기록과 PRISM 감시 프로그램 등 NSA의 다양한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광범위한 정보 수집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다.
스노든으로부터 15,000∼20,000개의 문서를 전달 받았다는 가디언지의 글렌 그린왈드 기자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미국과 동맹국 정부의 사찰 활동에 대해 폭로되지 않은 더 많은 비밀이 있다.
―미국의 정보 당국이 브라질과 라틴아메리카 통신 시스템을 어떻게 꿰뚫는지 보여주고 있다.
―미국 정부가 테러리즘과 국가 안보를 이유로 들어 이러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경쟁 관계인 산업 및 경제 분야에 관련된 문서도 많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스노든은 국가 비밀을 누설한 자이다. 하여 체포 즉시 국가 반역죄로 다스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스노든은 지난 2013년 8월 1일에 러시아에 1년간 체류할 수 있는 임시 비자를 발급 받았다.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할 곳에 머물게 된 것이다.
현수가 러시아 외교관 신분증을 갖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진다. 미국과 지나 등 현수의 기술을 노리는 나라들이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만일 현수를 납치하거나 위협하면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러시아가 적이 되기 때문이다.
쉐리엔이 탐나고 항온 의류가 탐나겠지만 러시아라는 힘센 적을 만드는 것보다는 가치가 적다고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 외교관이 되면 안전이 확보된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로그비노프의 말이 이어진다.
“조금 전 대한민국 외교부에 본국의 의사가 전달되었습니다. 아마도 허가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로그비노프는 주한 러시아 대사 콘스탄틴 바실리예비치 브누코프(Dr. Konstantin V. Vnukov)와 통화한 바 있다.
대사는 오늘 오전 미리 통지하고 외교부를 방문하였으며 외교부장관과 면담했다.
그 자리에서 러시아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양국 간 교류와 협력을 위해 현수를 러시아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로 임명하고자 하니 예외적으로 이중 국적을 허락해 달라는 말을 전한 것이다.
외교부장관은 느닷없는 요청을 받고 난색을 표했다.
현수가 잘나가는 기업가라는 것은 알지만 이런 요청은 일종의 실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모욕하는 처사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한국인이 외국, 특히 미국의 국적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미국 유학, 또는 이민을 가서 5년 이상 머물러 시민권을 얻는 것과 미국에서 태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미국의 영토 내에서 태어나면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자동으로 미국 국적이 발생된다.
소위 가진 자들의 원정 출산이 이래서 생겨난 것이다.
어쨌거나 현행 병역법과 국적법은 한국 국적을 가진 만 18세 이상 남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여한다.
그렇기에 복수 국적을 가진 자들에게 만 18세 3개월이 되는 때까지 한 나라의 국적만 선택하도록 요구한다.
한국 국적을 선택하면 당연히 군에 입대하여야 하고, 다른 나라를 선택하면 외국인이 되기에 입대하지 않는다.
참고로, 현 정부의 고위공무원 가운데 열다섯 명의 아들 열여섯 명이 한국 국적을 버리고 다른 나라 국적을 선택한 바 있다.
이들 고위공무원들은 ‘아들의 의견을 존중했다’라든지, ‘아들의 교육을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고 해명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국무총리실 대변인, 산림청장, 한국은행 부총재보, 정부 통합전산센터장,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등이다.
이 밖에 헌법재판소 과장 등 공무원 여덟 명도 있다. 특히 서기관 한 명은 아들 두 명 모두 군대에 보내지 않았다.
이를 조사한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들의 병역을 이행하지 않게 한 것은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을 보여야 할 고위공무원의 자세가 아니다’고 질타했다.
참고로, 현 정부의 외교관 자녀 가운데 복수 국적 보유자는 무려 130명이나 된다.
이들 가운데 절대 다수인 118명이 미국 국적 보유자이다.
외교관 명단(Diplomatic List)에 등재된 외교관(주미대사관 근무) 자녀의 경우엔 미국에서 출생하더라도 미국 이민법에 따라 자동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에서 제외된다.
그럼에도 이토록 많은 숫자가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는 의도적으로 자녀가 미국 국적을 얻도록 했음을 의미한다.
이쯤해서 생각해 볼 일이 있다.
만일 미국과 상충하거나 대립되는 외교 사안이 발생될 경우 이런 자녀를 가진 외교관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 국익이 지켜질 수 있을지 심히 의문이다.
자녀로 하여금 일본 국적을 얻도록 한 외교관도 둘이나 있다. 현안인 독도 문제 등이 보다 첨예해질 경우 이들이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는 심각하게 의심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제정신을 가진 권력자라면 이런 외교관 전원 보직 해임 내지는 파면 조치를 취함이 마땅할 것이다.
아울러 다시는 공직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공직 근무 중 부당하게 얻은 재물이 있는지 확인하여 전부 환수 조치함이 마땅하다.
어쨌거나 현수는 병역을 필한 당당한 예비군이다. 당연히 복수 국적을 가질 수 없는 상태이다.
하여 국법에 따라 그럴 수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하려 할 때 청와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를 마친 외교부장관은 러시아의 요청이 특별 승인되었음을 고지한다고 한다.
남은 것은 절차이기에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외교관 신분증을 전하려 왔다. 실세 중의 실세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는 현수와 친해둬서 손해 볼 일 없기 때문이다.
“아! 그렇습니까?”
“네, 절차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히 받죠. 대통령님께는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로그비노프는 더없이 정중하다. 현수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지닌 인물인지를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로그비노프가 남겨놓고 간 외교관 신분증의 요모조모를 살피는 현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다.
푸틴의 마음씀씀이 때문이다. 어떤 자세로 본인을 대하는지를 느꼈기에 흐뭇하다.
똑, 똑―!
누군가의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드니 테리나가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
“바쁘세요?”
“응? 아니, 왜?”
“최철 소좌가 뵙겠다고 해서요. 참, 특임대사 되신 거 축하드려요.”
어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가!
“고마워. 최 소좌는 지금 오시라고 하고.”
“네, 그럴게요.”
테리나는 마치 비서인 양 고개를 끄덕이곤 물러났다.
“최 소좌가 날 왜 보자고 하지?”
현수가 방북하기 전 최철 소좌를 불러달라는 청했던 이유는 대하기 편해서이다. 안면이 있으니 새로운 인물과 낯익히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노크 소리에 이어 문이 열린다. 정복을 걸친 최철 소좌이다.
“아! 어서 오세요.”
“네, 잠깐 뵙겠습네다.”
“뭐, 그러세요.”
현수가 손짓하자 맞은편 소파에 앉는다. 그런데 뭐가 좀 달라진 듯하다.
이전의 계급장은 갈색에 흰 별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최 소좌의 군복에 붙은 계급장은 바탕색이 노란색으로 바뀌어 있으며 별이 네 개나 된다.
“……!”
군대에서 흔히 쓰던 용어로 ‘마이가리’라는 것이 있다.
일본말 ‘마에가리(まえがり, 前借り)’에서 연유된 말이다. 뜻은 ‘미리 받기’, ‘당겨 받기’, ‘가불’ 정도가 된다.
일병이 휴가나 외박 나갈 때 폼을 잡으려 상병이나 병장 계급장을 달고 다닐 때 이런 말을 썼다.
현수는 북한에서도 이러나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갔습네다.”
“네? 그게 무슨……?”
“기러구 제가 오늘부로 조선인민군 제985군부대 특임대 대장이 되었음을 신고드립네다.”
“……!”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대꾸 대신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 최철 소좌는 영빈관에서 대기하던 중 영광스럽게도 985군부대로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985군부대는 호위사령부의 대외 부대명 가운데 하나이다. 최 소좌는 호위사령관인 윤정린 인민군 대장에게 불려갔다.
그 자리에서 대좌로 특별 진급되었다.
아울러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및 그 가계의 호위만을 전담하고 있는 제1호위부에 배속되었다.
4장 벼락 맞은 사나이
“귀관은 당과 공화국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있는가?”
윤정린 인민군 대장의 물음에 최철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습네다. 저는 충심으로 목숨 바쳐 당과 공화국을 보위하고 있습네다.”
“그래? 그럼 김현수 사장과는 어떤 관계인가?”
“네? 아, 김현수 사장님은 이전에 방북하셨을 때 제가 모셨던 분입니다.”
“그래? 김현수 사장은 어떤 사람인가?”
현수를 본 적 없는 윤정린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공화국을 위해 큰일을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준비된 대답을 들은 윤정린 인민군 대장은 최철 소좌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어깨 위의 계급장을 떼었다.
이때 최 소좌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렸다.
군인의 계급장을 뗀다 함은 사상범으로 확정되어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