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7
최 소좌는 방금 무얼 잘못 말한 건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있다 해도 아무런 말도 해선 안 된다. 입을 열면 손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윤정린 호위사령관이 다른 계급장을 달아주는 듯한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 확인하진 않았다. 계급 차이가 어마어마하기에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소좌의 계급장을 직접 손본 윤정린 호위사령관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간 뒤 입을 열었다.
“본 사령관은 이 시간부터 최철 소좌를 인민군 대좌에 임명한다. 아울러 귀관은 제1호위부에 배속되며 당이 내린 특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알겠는가?”
“네? 아, 알갔습네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늘같은 호위사령관의 말이니 일단 대답했다.
“귀관은 김현수 사장이 공화국을 방문할 때마다 최측근에서 호위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각별히 주의해 귀빈의 심사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알겠나?”
“네, 알갔습네다!”
“참, 귀관에겐 창전거리에 있는 아파트 한 채가 주어진다. 가족을 데리고 입주하도록!”
“네?”
평양시 창전거리 아파트는 다른 곳과 달리 24시간 전기가 공급된다. 또한 대동강이 조망되어 상당히 비싸다.
평양 중심가의 방 세 칸짜리 아파트는 3만∼5만 달러에 거래되지만 창전거리 아파트는 8만 달러까지 받는다.
따라서 이곳에 산다 함은 권력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변방인 신의주에서 정치위원이던 본인에게 이런 고급 아파트를 배정해 주겠다고 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뿐만이 아니다.
소좌에서 중좌, 상좌를 넘어 대좌로 무려 삼 계급이나 특진했다. 북한에서 대좌는 후방 부대 여단장을 맡는다.
이를 남한으로 치면 소령 1호봉에서 곧장 대령 10호봉쯤 된 것이나 다름없다.
참고로 소령, 중령, 대령 모두 1∼15호봉으로 구분된다. 각 호봉은 군 복무 기간 1년을 뜻한다.
그리고 소령 1호봉은 7년 이상 복무해야 달 수 있는 계급이다. 대령 10호봉은 21년 이상 복무해야 한다.
최 소좌는 졸지에 14년이나 번 셈이다. 이는 전시가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최 소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당연히 현수 때문이다. 현수가 최 소좌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야 방북 시 최 소좌가 편의를 제공하는 의전을 맡아달라는 청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앞으로 현수의 방북이 잦을 듯하다. 그때마다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데 소좌 계급으론 어림도 없다.
중좌나 상좌도 그러하다. 하여 대좌라는 말도 안 되는 삼 계급 특진이 이루어진 것이다.
훗날 최철은 ‘벼락 맞은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줄 한 번 잘 서는 바람에 진급 벼락을 맞았다며 놀리는 뜻이다.
“귀관에겐 소좌 이하 군관 네 명과 사관 여덟 명을 차출할 권한이 부여된다. 군관은 제1호위부에서 차출4)하고, 사관은 귀관의 뜻에 따라 어느 곳에서든 골라도 된다.”
“네, 알갔습네다.”
“사관의 경우 제1호위부에 적합하여야 하므로 영입 후 곧바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알갔습네다.”
소좌에서 졸지에 대좌가 된 최철은 군기 바짝 든 모습으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자세는 꼿꼿하지만 정신은 하나도 없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된 것이다. 하여 슬그머니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엄청나게 아팠다.
‘헉! 세상에 맙소사!’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 최 대좌의 눈빛이 달라진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본인에게 일어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윤정린 호위사령관은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언급했다.
제1호위부 특수임무대로 명명된 조직에겐 몇 가지 임무가 부여된다.
첫째는 현수가 방북했을 때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경호원 임무가 부여된 것이다. 누군가 현수에게 테러를 가할 경우 현장에서 사살할 권한을 위임받았다.
둘째는 김현수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행해 주는 것이다. 심지어 기쁨조에서 인원을 차출하는 것도 허락된다.
셋째는 현수가 행한 모든 일에 대해 보고를 하는 것이다. 호위뿐만 아니라 감시 임무까지 부여된 것이다.
현수가 방북을 마치고 남한으로 가면 최 대좌 및 호위부 이외에서 차출된 전사들은 호위부 특별 교육을 이수하게 된다. 일종의 사상 교육과 호위부만의 경호 교육 등이다.
특임대이니 그에 걸맞은 능력이 있어야 함이 이유이다.
어찌 되었건 호위사령부를 나선 최철은 어안이 벙벙했다. 본인에게 일어난 믿기지 않는 기적 때문이다.
평생의 소원이었던 평양에서 살게 된 것이 첫째이다.
둘째는 창전거리의 고급 아파트를 배정 받은 것이다. 정말 꿈에서나 볼 수 있던 곳이다.
셋째는 대좌로 삼 계급 특진된 것이다.
넷째는 호위사령부 휘하 제1호위부에 배속된 것이다.
다섯째는 특임대 대장이 된 것이다.
경호 대상은 김현수이다. 아마도 그의 연인인 브레즈네프 변호사도 포함될 것이다.
여섯째는 전용 차량이 배속된 것이다. 현수가 탈 의전용은 벤츠600이다. 이 차엔 ‘외 01―000’이란 번호판이 부여된다.
‘외’는 외국 대사관 차량임을 뜻하고, 01은 러시아를 뜻하는 숫자이다. 뒤의 ‘000’은 고유번호이다.
참고로 러시아 대사가 타는 차는 ‘외―01―001’이다. 재북한 러시아 대사 이상의 권력자임을 뜻하는 것이다.
최 대좌의 업무용 차량은 중형 휘파람이다.
차량 번호는 ‘평양 06―1472’이다.
앞에 붙은 ‘06’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제1호위부에 배속되었음을 뜻하는 숫자이다.
1472는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라는 뜻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특별히 내린 번호라 한다.
당연히 이 번호를 단 차는 웬만한 곳은 프리 패스이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백화원 영빈관에 당도한 최철 대좌는 로그비노프 특임대사가 현수와의 면담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제1호위부 소속 특임대장이지만 서열상 로그비노프보다는 한참 낮으므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최철은 생각을 가다듬었다. 뜻밖의 행운이 어떻게 해서 발생된 것인지를 가늠해 본 것이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오늘의 행운은 100% 현수가 불러준 때문이다.
당과 공화국에선 현수의 행동거지를 보고하라고 했지만 그럴 마음이 없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은혜를 베푼 사람인데 어찌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
대기하는 동안 최철은 성심을 다해 현수에게 충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현수와 당이 동격이 된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 머무는 동안엔 현수의 수족이 되어 일하리라 결심했다.
어쨌거나 느닷없는 보고를 받은 현수는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설명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김 사장님 덕분에 대좌로 진급하였습네다. 아울러 저는…….”
잠시 최철 대좌의 보고가 이어졌다.
“축하합니다. 누구 덕인지는 아시죠?”
슬쩍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이를 농담이라 생각지 않은 모양이다.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뭐든 말씀만 하시라요. 제까닥 하갔습네다. 적어도 공화국 내에선 무엇이든 하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김현수 사장님의 덕을 결코 잊지 않갔습네다.”
“하하, 네. 말씀만으로도 고맙네요. 그나저나 진급하셨으니 축하주가 있어야겠군요. 안 그렇습니까?”
“오늘은 제가 한잔 사갔습네다. 허락해 주시라요.”
한 석 달 치 월급을 포기할 생각으로 한 말이다.
더 원하면 기꺼이 일 년 치도 살 수 있다. 창전거리 아파트에 비하면 그야말로 푼돈도 안 되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여긴 뭐든 공짜인 곳 아닙니까? 그러니 오늘은 예서 드시고 다음에 사십시오. 전에 마셨던 백두산 들쭉술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알갔습네다. 다음엔 들쭉술을 준비하갔습네다.”
최철 대좌가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표정이 몹시 상기되어 있다. 그리고 좌불안석이다.
남한으로 치면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된 사람들의 표정이 이럴 것이다. 현수의 주위에 머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돈벼락을 맞았다.
민주영과 이은정, 이지혜, 김수진, 이춘만, 한창호 등등이 그들 중 일부이다.
북한에선 최철 대좌가 첫 번째 당첨자이다.
아무튼 현수, 테리나, 드미트리, 로그비노프, 표도르, 미하일, 최철은 밤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잔을 기울였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운 채 경청했다.
본인들에게 맡겨질 일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의 규모가 너무도 어마어마하기에 모두들 불안한 표정이다. 들을 땐 알지만 돌아서면 잊을까 싶은 것이다.
결국 테리나가 나서서 정리했다. 모두에게 각자의 임무를 깔끔하게 정리한 서류를 작성해 주기로 한 것이다.
IQ 높은 여자답게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해 있으니 한글 문서 작성도 가능한 것이다.
테리나는 현재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정도가 되어 있다. 현수를 만난 이후 죽어라 학습한 결과이다.
모두가 돌아간 뒤 현수는 창가에 앉아 마나 심법을 운용했다. 어제와 같은 곤혹스런 순간이 있을까 싶어서이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 2시가 조금 넘자 문이 열리고 베개를 든 테리나가 살금살금 들어온다.
살그머니 침대로 파고들었으나 아무도 없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창가에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는 현수를 보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저처럼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방해해선 안 된다는 걸 느꼈는지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곤 아침이 될 때까지 숙면을 취했다.
평양에서의 둘째 날은 이렇게 지났다.
* * *
“흐음!”
현수는 드미트리가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해서 제출한 ‘한국 내 활동 중인 삼합회 현황’이라는 보고서를 덮었다.
정림이라는 자가 이끄는 자들은 차이나타운 한송모텔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다. 숫자는 300여 명이다.
죽련방 소속은 부산, 14K파는 안산, 신이안파는 목포가 근거지이다. 이들 세 조직의 조직원들은 인천에도 있다.
“거의 1,000명이나 되는군. 어떻게 하지?”
귀국 후 흑룡이라는 자에게 당했던 저격을 떠올린 현수는 가장 먼저 삼합회 제거를 생각했다.
이들은 결코 득이 되지 못할 자들의 집단이다.
마약 밀매 및 인신 매매 등 온갖 강력 범죄를 일으키는 자들이다. 따라서 모두 제거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숫자가 너무 많다. 한번에 1,000여 명을 어쩐다는 건 10서클 대마법사라도 불가능하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단 좌표부터 확인해야겠군,”
컴퓨터를 부팅시킨 후 곧바로 국토교통부에서 제공하는 ‘브이월드’에 접속했다. 이것은 순수 우리 위성 기술로 만든 3D 공간 정보 서비스이다.
구글의 그것보다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게 있어서 일일이 가보지 않아도 되니 편하네.’
현수는 텔레포트를 해도 될 좌표들을 확인했다. 부산, 인천, 목포, 안산 등지이다.
인천의 경우는 한송모텔 옥상 위가 텔레포트할 장소이다.
지금은 깊은 밤이다.
북한을 다녀온 뒤 가장 먼저 청와대를 방문했다. 사전에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바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과 장성택은 차얀다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에 대해 만족을 표했다. 아울러 북한의 남침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
은하수관현악단의 공연을 보면서 김정은과 장성택에게 직접 확인한 것이다.
현 정권은 북한과 사이가 좋지 않다. 대통령을 옹호하는 세력이 그렇게 되도록 몰아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수와는 기꺼이 협력하지만 현 정권과는 대화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