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9
그렇기에 하려고 나선다면 세뇌 마법을 써야 한다.
현수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무조건 믿는 절대 충성 마법(Absolute Fidelity)이 필요한 것이다.
“흐으음!”
현수는 밤새 턱을 쓰다듬었다. 때론 일어나 서성이기도 했다. 좀처럼 마음을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 5시가 되었을 때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올해는 유난히도 자주 내리고 양도 많다.
마당 저쪽 장독대에도 눈이 내린다. 눈이 장독들을 덮어간다. 그러던 어느 순간 본연의 색깔을 잃는다.
진한 갈색은 사라지고 순결한 흰색만 보인다.
“그래, 하자.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니까.”
생각을 굳히곤 컴퓨터를 껐다. 다이어리도 덮고 실내등도 껐다. 서재에 더 머물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침실로 가니 지현이 새근거리고 자고 있다. 슬그머니 다가가 팔베개를 해주니 기다렸다는 듯 품을 파고든다.
* * *
현수는 회의 도중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가 있다는 소리에 수화를 들었다.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꼭 통화하고 싶다고 간청하였기에 회의 중이지만 전달된 것이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저어, 김현수 사장님이십니까?”
“네, 그런데 누구시지요?”
분명 처음 듣는 목소리다. 그리고 기분 좋은 저음이다.
“반갑습니다. 포항공대 박현주 교숩니다.”
“아, 네, 압니다. 반갑습니다.”
“다행이네요. 알아주셔서. 하하하!”
긴장이 다소 풀린 듯한 음성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 주셨는지요?”
“당부 드리고 싶은 게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세미나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있는데 혹시 시간 내주실 수 있는지요?”
“네?”
유체[fluid], 즉 공기나 물 등 흐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물질에 대한 운동방정식인 ‘내이버―스톡스 방정식(Navier―Stokes Equation)’의 풀이를 검수해 준 사람이다.
그리고 올해 8월에 열리게 되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을 받을 후보자 중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무슨 용무가 있을까 싶다.
“방금 끝난 세미나 장소가 천지건설 본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시간 내주시면 잠시라도 뵙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회사로 오세요.”
“네, 몇 층으로 가면 되죠?”
“34층 기획영업단으로 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시선을 돌리자 박진영 과장 등이 눈빛을 반짝이며 바라보고 있다.
“그럼 하던 말을 잇겠습니다. 이번 방북 결과…….”
현수는 팀원들에게 차얀다 가스전 개발공사 및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를 수주했음을 설명했다.
공사 규모와 기간, 범위 등이 상상을 초월했는지라 모두 멍한 표정이다.
“내일 사장님과 회장님이 배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이 열립니다. 지금부터 보도 자료를 준비해 주십시오. 이상입니다.”
“……!”
말이 끝났음에도 모두 멍한 표정이다.
“뭐하십니까? 보도 자료 만들어야 한다니까요. 세부 사항에 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내 방으로 오십시오. 어서요!”
“아, 알겠습니다.”
박진영 과장이 가장 먼저 정신 차리는 모습이다. 현수는 단장실이란 팻말이 붙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엄규백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 팀장님.”
“아, 사장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덕분에요. 그쪽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 사직서는 제출했습니다. 현재는 팀원이 될 만한 사람들을 물색하는 중입니다.”
“그래요? 오늘 저녁때 시간 어때요? 식사나 하시죠.”
“네, 시간과 장소만 알려주시면 찾아뵙겠습니다. 갈 때 같이할 사람들을 데리고 가도 되는지요?”
“물론입니다. 같이 오세요.”
엄규백 팀장과 통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진영 과장이 노크하고 들어선다.
“부사장님, 차얀다 가스전에 관해…….”
세부 사항에 관한 질문이다. 현수는 한참을 설명했다.
핵심 공사는 러시아 동북 지역 야쿠티야 공화국에 위치한 거대 규모의 차얀딘스코예(차얀다) 가스전을 무리 없이 가동시키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지는 가스관 건설 작업이 병행된다. 설계가 끝나면 이곳으로부터 북한을 거쳐 남한까지 파이프라인을 연결한다.
공사의 종착지에 대규모 가스 저장 시설이 조성되어야 한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규모의 공사이다.
천지건설은 러시아 가스프롬과 협력하여 가스전 개발 공사를 한다. 연간 250억㎥씩 생산할 예정이다.
가스전으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레드마피아가 인력을 담당하고, 북한 지역은 북한 주민이, 남한은 남한 사람이 공사를 하는 것이다.
단 하나 일관된 것이 있다면 전체 공사를 천지건설이 주관한다는 것이다.
가스전 개발 공사와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는 천지건설의 역량만으론 불가능하다. 워낙 방대한 공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콩고민주공화국에 벌여놓은 해외 공사가 워낙 많아 일손이 달리기도 하다. 따라서 국내 다른 건설사들에게 적절히 일감을 나눠 줘야 한다.
이것에 대한 전권은 현수가 쥐고 있다.
외부엔 천지건설 신형섭 사장이나 이창진 회장이 주도하는 것으로 비춰지겠지만 내막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러시아에선 공사 기간을 5년으로 잡고 있다.
물론 천지건설은 그럴 마음이 없다. 공기를 줄일수록 이익이니 전체 공기 3년을 목표로 한다.
공사비용은 다음과 같이 잠정 합의되었다.
● 차얀다 가스전 개발 공사 : 128억 달러
●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파이프라인 : 278억 달러
● 북한 내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 : 53억 달러
● DMZ 통과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 : 4.5억 달러
● 남한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 : 46억 달러
● 가스 저장 시설 조성 : 22.5억 달러
이렇게 하여 책정된 잠정 공사비용은 532억 달러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63조 8,400억 원이나 된다.
이보다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잉가댐 조성 및 수력발전소 신축 공사, 킨샤사―비날리아 4차선 고속도로 개설 공사보다도 큰 공사가 수주된 것이다.
“후와! 진짜 엄청난 공사네요.”
박진영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회사의 아무런 도움 없이, 단 한 푼의 영업비도 쓰지 않고 거둔 성과라 하기엔 너무나 어마어마하다.
이 공사를 따기 위해 인도, 일본, 지나 등에서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치열한 로비전이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차얀다 가스전은 오래전부터 언론에 언급되어 오던 공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전격적으로 공사를 수주해왔다. 그리고 지금 비밀리에 그것에 대한 보도 자료 및 브리핑 자료를 작성 중이다.
이것을 받아보게 될 중역들의 눈이 얼마나 커지겠는가!
이창진 회장이야 경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으니 덜하겠지만 신형섭 사장은 환호작약할 것이다.
현수가 신 사장 쪽 라인이라는 것엔 이견이 없다.
따라서 아버지인 박준태 전무 쪽에 줄을 대고 있던 중역들은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건설되고 있는 공사만으로 이미 회사 내 권력의 저울추는 기울어 있다. 여기에 이번 것까지 포함되면 균형이라는 것은 아예 생각지도 못할 일이 된다.
회사가 총력을 기울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기에 일감을 나눠 줘야 할 상황이다. 여기에 어찌 쇠퇴 일로에 있는 국내 영업 파트를 비교하겠는가!
사실 현재 국내 영업은 손실만 입지 않으면 다행이라 할 정도로 좋지 못하다.
현수 덕에 천지건설의 이름이 널려 알려져 아파트 분양은 순조로운 편이다. 하지만 다른 건설사들이 워낙 애먹고 있는 중이기에 분양가가 낮춰졌다.
게다가 고정비용은 매달 늘면서 지출되어야 하는데 신규 사업은 벌일 엄두가 나지 않는 경제 상황이다.
사람들은 장기 불황 조짐을 피부로 느끼고 지갑을 닫았다.
다음은 연도별 경제성장률 표이다.
2014년엔 금융 불안을 겪고 있는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보다도 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여 일각에선 호황일 때 조성된 거품이 모두 꺼져야 다시 괜찮아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문제는 우리 경제와 사회에 낀 거품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국인 지나의 경기 침체로 인한 여파 역시 큰 문제이다.
아무튼 여러 이유로 국내 건설 경기는 맥을 못 추는 상황이다. 하여 차얀다 가스전과 관련된 공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건설사는 도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과장은 스스로 ‘김현수 라인’이라 칭한다.
처음엔 연희를 사이에 둔 연적 관계였다. 그때 본인은 기획3팀장이었고, 현수는 한낱 신입사원이었다.
그런데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아버지보다도 더한 거물이 되어버렸다. 본인이 20∼30년쯤 근무해도 될까 말까 한 위치에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얼마나 더 높이 올라갈지 예상할 수 없다.
천지건설 사장이나 회장 따위는 우습게 여길 위치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현수의 수족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대로만 정리해서 자료를 만들면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늘어놨던 자료를 챙긴 박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곤 정중히 고개 숙여 절을 한다.
“부사장님, 정말 존경합니다. 같이 일하게 되어 영광이구요. 그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그게 무슨…….”
현수의 말은 씹혔다. 박 과장이 아무런 대꾸 없이 상기된 표정으로 나간 때문이다.
“뭐야? 얘길 했으면 대꾸를 해야지.”
어떤 상황인지 모르기에 나직이 투덜거리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잘빠진 아가씨가 비키니 차림으로 있어서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기사 때문이다.
“이런 썩을……!”
스크롤을 내리며 기사를 읽던 현수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이다.
지난해 있었던 밀양 송전탑 건설 공사 반대 시위와 관련된 기사를 본 것이다.
당시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는 인권위에게 네 가지 사안에 대한 긴급 구조 요청을 했다.
주민 통행 제한과 음식물 및 식수 전달 제한, 그리고 비와 추위를 피하기 위한 비가림막 천막 설치 제한 및 의료진의 자유로운 통행 제한 등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인권위의 반응은 기각이었다.
그 다음 날 경찰과 주민들의 충돌이 있었다.
이로 인해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뿐만 아니라 경찰의 연행 과정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등 인권 침해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경찰 중 일부는 음주 상태였다.
다시 말해 술 먹고 공무 집행을 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와 경찰은 분명 국민을 위한 조직이다. 그리고 그들이 받는 급여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급된다.
그런데 상전인 국민을 이토록 우습게 여기고 있으니 어찌 욕이 안 나오겠는가!
이쯤 되면 국민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라 할 수 있다.
현수는 다이어리에 국가인권위와 경찰이라는 메모를 했다.
누가 기각 결정을 내렸으며 누가 음주 상태로 공무 집행을 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잘못이 발견된 자는 징벌도로 보내질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귀환하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에 관한 것이다.
2012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경영 공시’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부채는 무려 493조원에 달한다.
정부의 1년 예산보다도 훨씬 많은 금액이다.
그런데 부채 상위 열 개 기관은 6,102억 5,300만 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