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11화 (710/1,307)

# 711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양복 단추를 채웠다. 그러는 사이에 문이 열리고 사내 하나가 들어선다.

나이는 많지 않은 듯 보이지만 흰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금테 안경을 쓰고 있다.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둘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눴다.

박 교수에겐 지구상 어떤 수학자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긴 현수가 너무도 어려 보였다.

현수 역시 박 교수가 생각한 것보다 젊다 생각했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감사합니다.”

둘이 자리에 앉자 비서 역할을 자청한 김지윤 과장이 차를 가지고 들어선다. 아직 직원을 충원하지 않은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뵈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에구, 무슨 말씀을……. 교수님께 그런 말씀 들으니 남세스럽습니다.”

면전 칭찬에 현수는 얼굴을 붉혔다.

박 교수가 받게 되었을 필즈상이 현수에게 수여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누구도 부인치 못할 업적 때문이다.

현수는 박 교수의 것을 가로챈 듯한 느낌이다. 그렇기에 칭찬하는 말이 버겁게 느껴진 것이다.

“아시겠지만 국제수학자대회(ICM)는 오는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게 됩니다.”

“네.”

“개막일에는 대통령께서 계시는 자리에서 필즈상과 가우스상, 그리고 네반린나상과 Chern 메달이 수여될 것입니다.”

“……!”

네 가지 모두 대단한 권위를 가진 상이다. 특히 필즈상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칭해지는 것이다.

“올해는 네 가지 모두 김현수 부사장님에게 수여되는 것으로 내정되어 있습니다.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에구!”

현수는 나지막한 탄성만 냈다.

“개막일에 단상에 서주시길 당부 드리려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수학자 중 어느 누구도 필즈상을 받은 바 없다. 그렇기에 수상자가 발표되면 하루 종일 뉴스에 나오게 된다.

어쩌면 역사책에 기록될지도 모른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고, 네 개 모두를 한 번에 수여받은 사람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상을 주신다니 기꺼이 받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걸 받을 자격이 되는지요?”

“아이고, 김현수 부사장님이 아니면 누가 받겠습니까? 받으실 자격은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에구!”

현수는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내비어―스톡스 방정식을 살펴보았습니다. 정말 기발한 방법으로 증명해 내셨더군요.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역시 세계 최고의 두뇌답습니다.”

박 교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칭찬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칭찬 맞습니다. 참, 대회 기간 동안 응답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동료 수학자들의 요청이 빗발칩니다.”

박 교수가 방문한 목적이 드러났다.

여섯 난제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관한 직접적인 설명을 듣고 싶다는 뜻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시간이 되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게 일정 때문에… 미리 확정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번은 예년과 달리 참석 희망자들이 넘칩니다.”

잠시 박현주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예년의 경우를 보면 69개국 기초과학자 4,000명과 동반자 2,000명 정도가 참여했다.

그런데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138개국 기초과학자 18,000명과 동반자 21,000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갑자기 6.5배나 인원이 늘어난 것이다.

이것으로도 부족한지 나날이 신청 인원이 늘고 있다. 언론사 기자의 수효만 가뿐히 2,000명을 넘는다.

대회 당일 주최 측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10만 명 가까운 참석자 때문이다. 이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여 결국엔 잠실주경기장을 긴급 대여하게 된다.

그리고 현장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아무도 풀어내지 못했던 6대 난제 풀이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관한 새로운 증명이 학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흥분케 한 결과이다.

풀이도 풀이지만 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이 이런 위대한 업적을 남겼는지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몰려온 것이다.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으로 여긴 때문이다.

어쨌든 현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 솔직히 말씀드려 제가 너무 바빠 그때의 일정을 지금 확정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

다소 실망하는 표정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할 사람이 자리를 비울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풀이 과정은 미리 녹화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엔 누구든 참석하셔도 됩니다.”

“아……!”

사전 녹화를 하되 저명한 수학자들이 동석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 사전에 불러들이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면 지금 당장에라도 한국행 항공편에 몸을 실을 학자들이 널려 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혹시 있을지 모를 질문은 그날 인터넷으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어디에 있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했으면 합니다.”

“아……!”

박 교수는 또 한 번 탄성을 낸다. 이렇게 해준다면 현장에 참석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때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참! 저의 수학적 지식은 전부 소병익 교수님으로부터 연유되었다는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소 교수는 현수의 스승이다. 따라서 당연한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삼류대학으로 대접받는 모교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박현주 교수는 거의 모든 국내외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세계수학자대회 개회식 사회를 본다.

그날 방금 현수가 했던 말을 한다.

그 결과 소병익 교수는 검색어 1위에 등극하게 된다. 아울러 현수의 모교 수학과는 삼류가 아닌 일류로 올라선다.

현수가 초빙 교수 자격으로 간헐적 수업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업이 있는 날엔 모교 학생뿐만 아니라 타 대학 학생은 물론이고 졸업자인 수학과 석박사들까지 우글거린다.

심지어 다른 대학 수학과 교수들까지 들어온다. 물론 호기심 때문에 찾는 학생들이 훨씬 많다.

강의실 좌석은 한정되어 있고 수강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인원 제한이 불가피하다.

당연히 모교 수학과 학생 우선이다.

그 결과 현수의 강의를 듣기 위해 일류대학에 갈 성적이 되는 학생들이 지원하기에 일류로 올라서는 것이다.

선배들은 영특한 후배들에게 창피당하지 않으려 열심히 공부한다. 이런 선순환 덕에 모교 수학과의 명성은 올라간다.

아울러 소병익 교수의 진가가 드러나 대한민국 수학계를 대표하는 학자 가운데 하나로 꼽히게 된다.

어쨌거나 박현주 교수는 원하는 바를 이루었기에 잠시 담소를 나누다 물러갔다.

“아! 여기요.”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한 현수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엄 팀장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 네에.”

엄 팀장이 환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인다. 그의 뒤에는 세 명의 사내가 따르고 있다.

“어서 오세요.”

“네, 사장님!”

자리에 앉자 다시 한 번 예를 갖춘다.

“인사들 하게. 김현수 사장님이셔.”

“처음 뵙습니다. 이성원입니다.”

“저는 최찬성입니다.”

“배진환입니다.”

30대 중반인 사내들 모두 다부져 보인다.

“이들은 국정원에 있을 때 동료입니다. 사장님과 함께하고 싶다 하여 퇴직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해주셔서.”

“아닙니다. 조직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는데 좋은 제안을 해주셔서 오히려 저희가 고맙지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십시다.”

말을 마친 현수가 벨을 눌렀다. 준비된 식사를 가져오라는 신호이다.

잠시 후, 종업원들에 의해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이곳은 박진영 과장이 알려준 한정식집이다. 한옥으로 지은 이 집엔 본관 이외에 여러 채의 별원이 있다.

사업상 긴밀한 대화를 나누기에 알맞은 집이다.

“일단 먹고 이야기합시다.”

“네, 그러시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그리곤 수정과를 앞에 놓고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이 친구들 이외에도 여덟 명이 더 합류하게 될 겁니다. 경찰 쪽 열두 명과 검찰수사관 여덟 명이 더 있습니다.”

“인원이 제법 되네요. 그럼 엄 팀장님이 서른두 명을 통솔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여덟 명이 한 팀이고, 이성원 씨, 최찬성 씨, 그리고 배진환 씨가 다른 팀을 맡았으면 합니다.”

“아! 네 개 팀이군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요청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인원을 더 모으고 있습니다. 그래도 되는지요?”

“현재 국정원의 총인원은 어느 정도 됩니까?”

“정직원은 약 7,000명이고, 정보 협조자 10,000여 명 등이 더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군요. 그런데 가칭 이실리프 정보 역시 그 정도 규모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배석자 모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어찌 개인이 국가기관에 버금갈 정보기관을 가지려 하느냐는 뜻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몽골, 러시아 등지에서 활약하게 될 겁니다.”

“그래도 인원이…….”

이성원 팀장이 뭔가 말을 이으려 할 때 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몽골과 러시아에 각각 남한 정도 되는 규모의 농장이 개설될 겁니다.”

“네? 얼마만 하다고요?”

모두들 흰자가 크게 늘어 있다. 상당히 놀란 모양이다.

“두 나라에 농장이 조성될 겁니다. 하나의 크기가 남한 전역과 맞먹습니다. 따라서 7,000명이란 숫자는 오히려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맙소사!”

“헐! 어찌 이런 일이…….”

모두들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한다.

이때 현수의 뇌리로 강남경찰서 수사과 이현준 경위가 떠올랐다. 지금은 조경빈의 연인이 된 톱 탤런트 이수연이 야쿠자에 의해 납치되었을 때 만난 사람이다.

이후 국회부의장 변의화의 아들 변병도를 손봐주고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에도 보았다. 당시 현수가 지현과 통화할 수 있도록 요청했을 때 주고받은 대화가 있다.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통용되는 나라군요. 대한민국은.”

“미안합니다. 하지만 힘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하나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경위라고 해봤자 별것 아니거든요.”

당시 이 경위의 표정엔 자조의 빛이 가득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경찰대학에 진학했다.

경위로 임관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순진하게 생각했는지를 깨달았다.

현실과 이상은 너무도 많이 달랐던 것이다.

어찌 보면 경위도 꽤 높은 직급이다. 그럼에도 어떤 때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무력감 때문에 실망이 컸다.

그렇기에 현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흐음! 어쩌면 몇 팀 더 꾸려질 수도 있겠구나. 아! 대구 동부경찰서의 최장혁 경사도 있네.’

지현이 강도에게 성폭행당할 뻔했을 때 몸을 던져 구해낸 사람이다. 현수에 의해 당뇨로부터 해방되었다.

얼른 메모해 두었다.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가끔 잊기 때문이다.

이때 엄 팀장이 뭔가를 꺼낸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이것은 지난 며칠간 직접 조사한 친일파 관련 자료이다. 내용이 방대한지 제법 두툼하다.

“흐음, 상당히 많군요.”

“네, 뿌리가 상당히 깊죠.”

엄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보고서를 만들면서 놀랐을 정도이다. 친일파와 후손들은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렸고, 그것은 너무나 단단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누군가를 부리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돈 몇 푼으로 선량한 국민을 친일파의 하수인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건 동북아참역사재단과 관련된 자료입니다. 함께하기로 한 동료들에게 부탁하여 만든 보고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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