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14화 (713/1,307)

# 714

“아! 그럼 그러시죠. 34층으로 오십시오.”

“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세청장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일단 사람이 오기로 했으므로 로비에 전화를 걸어 안내를 당부했다. 그런데 경비원은 현수로부터 직접 전화 받는 걸 몹시 황송해한다.

아버지보다도 늙으신 분이다. 오가며 자주 뵙기는 했지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처럼 어려워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네, 이실리프 무역상사 이은정 실장입니다.”

“아! 이 실장님, 김현숩니다.”

“어머, 사장님! 귀국하셨어요?”

“네, 어제. 그나저나 회사는 좀 어때요?”

“다행히 원상복구는 되었어요. 세무서에서 가져갔던 본체와 서류 모두 되돌아왔으니까요.”

“통관은 어때요?”

“그것도 모두 풀렸습니다.”

“다행입니다. 알았어요. 시간 날 때 들를게요.”

“네, 꼭 오세요. 결재하실 거 엄청 많아요.”

“에구, 웬만하면 이 실장님 전결로 처리하시라니까요.”

“그러고 있어요. 그래도 사장님이 보셔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시간 내서 꼭 오세요. 밤늦게 오셔도 돼요. 아셨죠?”

하긴 사무실 바로 위층에 살고 있으니 아무 때나 가도 상관은 없을 듯하다. 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수화기를 내려놓으려 할 때 눈에 뜨이는 기사 하나가 보인다. 클릭하고 들어가 보니 걸 그룹 다이안이 발표한 ‘지현에게’와 ‘첫 만남’에 관한 기사이다.

다음은 그 내용 중 일부이다.

하향세를 타고 있던 걸 그룹 다이안이 달랑 두 곡만 수록된 음반을 내놓았다. 말주변과 재치 부족으로 예능에서조차 초대받지 못하는 시들어가는 그룹이다.

무얼 믿고 이런 모험을 하는가 싶어 들어보았다.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이번 것은 ‘힐링 음반’이다.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피곤이 풀리는 듯하다.

두 곡 모두 샐러리맨의 신화라 불리는 천지건설 김현수 부사장이 작사, 작곡한 것이다.

새 신부에 대한 사랑 표현과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레는 마음을 노래한 곡이다. 이것은 신세계이다. 그리고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의 악곡 형식이다.

기사를 쓰면서도 두 곡을 무한 반복 재생시키고 있다. 모두에게 한 번씩 들어볼 것을 강권하는 바이다.

오늘 가장 공정한 것으로 평가되는 음악방송에서 두 곡 중 하나가 영예의 1위를 차지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원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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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가 결혼을 할 때 검소한 결혼식을 올렸다면서 작은 결혼식에 관한 기사를 썼던 바로 그 기자가 쓴 기사이다.

“후후!”

현수는 나직한 웃음을 지었다. 기분이 좋아서이다.

케이원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조연은 정말 어려운 상황이 닥쳐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성상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강변했다. 아울러 출연을 미끼로 방송사 관계자에게 뇌물 주는 일 또한 결코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여 불러주는 곳이 적었다. 여기에 KS엔터테인먼트와의 불화까지 겹쳐 다이안은 고사 직전인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부활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생각이 들기에 웃은 것이다.

그러다 옆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외교부 청렴도 중앙행정기관 중 꼴찌’라는 제목이다. 클릭하고 들어가 보았다.

2013년 국민권익위원회가 평가한 내용에 관한 것이다.

외교부는 지난 2010년 내부 청렴도 부문에서 전체 39개 조사 기관 가운데 가장 낮은 39위로 평가되었다.

이후에 실시된 조사에서도 2011년에는 24개 조사 기관에서 24위, 2012년에는 25개 조사 기관에서 24위로 평가되는 등 내부 청렴도가 3년 연속 최하위 수준이라는 내용이다.

원정 출산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건 애교에 속한다.

2011년 ‘상하이 스캔들’로 물의를 빚은 외교부와 재외공관은 추가로 다섯 명이 성추행 · 성추문에 연루돼 징계를 받았다.

하라는 일은 뒷전이고 나라 망신시키는 일만 하는 곳이다.

조직 차원의 혁신과 외교부 전체 직원들의 자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근데 질타한다 하여 고쳐질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외교부 직원들의 이러한 행태는 결코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이다. 외무고시 철폐와 비리에 연루된 모든 공무원 색출이다.

연후에 적격 심사를 통해 외교부 직원을 뽑고, 그들을 외교관으로 양성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쯧쯧쯧, 기다려. 너희도 손봐줄게.”

현수는 처벌장 규모가 커져야 함을 느끼고 이마를 짚었다.

농사지어 국민을 배불리 먹여야 할 땅을 쓰레기만도 못한 것들을 가둬두는 장소로 쓰는 것이 마뜩치 않은 때문이다.

“확 디오나니아 식량으로 써버릴까?”

이실리프 어패럴 박근홍 사장이 보낸 메일이 보인다.

국군 장병들이 사용하는 방탄 헬멧의 77%가 무용지물이라는 내용이다.

하여 42만 개 정도가 시급히 지급되어야 한다.

방탄복도 마찬가지이다. 필요량은 10만 벌인데 보유량은 3만 벌이다. 그나마 상당히 무거워 활동에 제약을 준다.

디오나니아의 잎사귀는 건조시킬 경우 상당히 가볍다. 이걸 가공하여 방탄 헬멧 및 방탄복을 만들 수 있다.

그러려면 상당히 많은 잎사귀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 자란 잎사귀를 얻으려면 영양원 공급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쥐를 잡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보다는 인간쓰레기들을 공급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덩치가 크니 더 많은 영양을 제공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사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국세청장님이시랍니다.”

천지기획으로 자리를 옮긴 김지윤 과장이다.

“네, 안으로 모셔주세요.”

곧 문이 열리고 풍채 좋은 사내가 들어선다. 그의 뒤에는 비서로 보이는 40대 남자 둘이 있다.

“앉으시지요.”

소파로 안내하자 모두가 착석한다. 김 과장이 차를 내올 때까지는 별말이 없었다.

“인사드립니다. 국세청장 이혁인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김현수입니다.”

악수와 함께 명함을 주고받았다.

“이쪽은 제 비서인 박정호 사무관입니다.”

“김현숩니다.”

“여긴 조사과 이근안 사무관입니다.”

“……!”

반갑다는 인사말을 하려던 현수의 표정이 굳는다. 언젠가 통화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수가 멈칫하자 청장이 나선다.

“오늘은 이 사무관이 사장님에게 범한 무례에 대한 용서를 구하려 온 겁니다. 이 사무관이 그런 건 상부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방금 상부지시라 하셨습니까?”

“네? 아, 네에. 국회에서…….”

“제가 잘 몰라서 여쭙는 건데, 국회의원이 국세청 사무관의 상부인 건가요?”

“그, 그게…….”

이혁인 청장은 말실수를 했음을 떠올리곤 진땀을 흘린다.

이곳에 오기 전 청장은 직속상관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엄청난 질타를 받는 수모를 당했다.

장관은 이실리프 상사와 이실리프 무역상사에 대한 악의적인 세무조사의 근거를 물었다.

이 내용에 대해 보고받은 바 없기에 욕만 들었을 뿐이다.

통화를 마치고 노발대발하며 담당을 찾았다.

이근안이 불려들어 갔고, 배후에 홍신표 의원과 보좌관인 나성범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근안 사무관은 시말서 작성을 요구받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음을 통보받았다.

이제 진급하고는 안녕이다. 뿐만 아니라 비리 사실이 드러나면 파면 대상이 되어 인생 종치게 된다.

8장 용서해 주십시오

기획재정부 장관이 불같이 화를 낸 이유는 총리와 대통령으로부터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지적을 받은 때문이다.

이들 둘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이런 전화를 한 배후엔 한국은행장이 있다. 현수와 통화를 마친 후 사태 확인을 지시했다.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모든 장부가 압수되었고, 컴퓨터 본체마저 뜯겨가 업무 마비 상태라 한다.

선적을 기다리던 컨테이너들은 모두 풀어헤쳐져 있고, 들은 대로 전수 검사를 당하는 중이다.

수출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스피드는 정비 공장으로 들어가 해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현수가 왜 화를 냈는지 깨달은 한국은행장은 즉시 국무총리와 대통령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주지시켰다.

그 결과가 지금 현수 앞에 나타나 있다.

이근안은 뭐라 할 말이 없는지라 고개만 숙이고 있다.

이혁인 청장은 어떻게든 사태 수습을 해야 한다는 일념에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출셋길에 지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랬는지 물으면 답하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근안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사태가 이렇게 될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알고 지내던 나성범 보좌관의 말에 의하면 이실리프 상사 및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마약 밀매와 금괴 밀반출, 그리고 탈세 혐의가 있는 회사이다.

아주 지능적이기에 웬만해선 꼬투리조차 잡아낼 수 없을 것이라면서 고도의 집중력을 당부했다.

그날 둘은 강남에 있는 텐프로 룸살롱에서 만취되도록 잔을 비웠다. 물론 귀가하지 않았다.

다음 날,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출근했다. 그리곤 이실리프 상사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고서가 왔다. 이실리프 상사는 설립 이후 단 한 푼의 세금도 납부하지 않았다.

매출 금액은 0으로 표기되어 있다. 회사가 만들어지고 많은 직원을 뽑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당연히 엄청난 돈이 쏟아져 들어가야 한다. 직원들 급여만 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류를 보니 각종 중장비를 사들인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들은 이실리프 무역상사를 통해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보내졌다. 뭔가 냄새가 난다.

어떤 미친놈이 돈 한 푼 벌리지 않는 사업에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겠는가!

이근안은 앞뒤 가리지 않고 세무 조사 결정을 품신했다. 상부에선 서류를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고 결재했다.

그래서 이실리프 무역상사에 들이닥쳐 모든 장부 등을 압수해 간 것이다.

“저희가 대단히 큰 무례를 범한 걸 인정합니다.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국세청장은 분명 현수보다 스무 살 이상 더 먹은 어른이다. 그럼에도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알겠습니다. 원상 복구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으니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요.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주의, 또 주의하겠습니다. 뭐하나? 어서 고맙다 인사드리지 않고.”

청장이 말에 이근안 사무관의 고개가 바로 꺾인다.

“네? 아, 네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특별한 일은 없으신 거죠?”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흰 이만…….”

“네, 조심해 가십시오. 참, 나성범 보좌관이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현재 검찰에서 수사하는 중입니다. 무고죄로 처벌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혁인 청장의 말에서 묘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무고죄로 처벌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 내포된 발언이다.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 처분, 또는 징계 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하는 때에 성립한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를 보면 고소 사실이 허위라 할지라도 그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면 고의가 없다 판단하여 처벌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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