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15화 (714/1,307)

# 715

나성범이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검사와 구청장을 역임한 국회의원 홍신표가 힘을 쓴다면 무혐의 처리될 것이다.

분명 사회 정의에 반하는 결과이다.

“알겠습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현수의 대꾸에 이 청장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현수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떠나는 것이 상책이라 여긴 것이다.

‘그렇게 된 거군. 그렇다면 방법이 없지.’

선량한 국민이 당했다면 분루를 삼키는 방법 이외엔 없다.

알다시피 현수는 평범한 국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순간 현수의 뇌리로 징벌도라는 단어가 스친다.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면 음해부터 하고 보는 나성범 보좌관과 홍신표 의원의 운명이 결정된 것이다.

조금 더 두고 보려던 애초의 생각을 접었다. 가만히 있으면 더 많은 악행을 저지를 것이다. 그걸 어찌 놔두겠는가!

국가 발전과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도 일찌감치 솎아내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온다.

“네, 김현수입니다.”

“접니다. 울림네트워크의 박동현.”

“아, 박 대표님! 반갑네요. 조금 격조했지요?”

“조금이 아니라 엄청 격조했지요. 그래서 김현수 사장님 얼굴 잊어버렸더랬습니다. 그런데 방금 뉴스에 나오더군요. 잘 봤습니다. 그리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에구, 벌써 보도가 된 모양이군요.”

“그럼요. 인터넷이 아주 난리입니다. 현재 압도적으로 검색어 1위에 등극해 계십니다.”

“헐! 나쁜 내용은 아닌 거죠?”

“당근입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 전부가 찬양뿐입니다. 이러다 현수교 교주 되시겠습니다. 하하하!”

짐짓 너스레를 떠는 박동현 대표이다.

현수가 뜨면 뜰수록 울림모터스 역시 널리 알려진다.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수십, 수백억을 광고료로 쓰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그러니 기분이 좋아서 이런다.

“그런데 웬일이십니까?”

“울림모터스의 사장은 김형윤 대표이사입니다. 그런데 지분으로 보나 뭐로 보나 김현수 사장님의 영향력이 크기에 회장님으로 추대되었음을 알려드리려 전화 했습니다.”

“네에?”

“회장님 되셨다구요! 계열사도 많이 있으시잖아요. 울림모터스도 이실리프 계열사에 끼워주십시오.”

그러고 보니 여러 회사를 만들었고 또한 관여되어 있다.

이실리프 무역상사, 이실리프 상사, 천지약품, 이실리프 농산, 이실리프 축산, 이실리프 농장, 이실리프 어패럴, 그리고 이실리프 엔진, 이실리프 정보, 이실리프 자원도 있다.

뿐만이 아니다. 대한의약품, 대한동물의약품, 울림네트워크, 울림모터스의 지분도 50% 이상이니 마음만 먹으면 현수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회사는 여느 재벌의 계열사와 다르다.

상호출자나 순환출자 방식으로 설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100% 독립된 법인이다.

경제 용어에 ‘금산분리’라는 어휘가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산업 자본의 은행 소유를 금하는 원칙이다. 다시 말해 기업이 은행을 소유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것이다.

재벌이 은행을 소유할 경우 그 은행이 사금고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동양증권이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하여 금산분리를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도 강하다.

기업이 제1금융권에 해당하는 은행만 소유하지 못하게 한 현행 법률의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저축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 대부업체 등을 통해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보호하거나 계열사를 확장시키는 데 사용하는 걸 제재할 수 있는 법이 없다는 것도 지적되었다.

하여 제1금융권은 물론이고 제2금융권까지도 금산분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다.

그래서 현수가 이실리프 뱅크 설립 인준을 신청했을 때 기획재정부 관료들 간의 갑론을박이 있었다.

이실리프 그룹이 형성되어 가는 중이기에 준재벌로 인식하고 금산분리 정책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이실리프라는 사명을 쓰는 회사는 전부가 100% 독립된 회사이므로 같은 상호를 쓰더라도 재벌의 계열사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호출자나 순환출자와 관련이 없다. 당연히 자회사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실리프 뱅크의 경우는 사주인 김현수가 100% 출자자이고, 대출 위주 영업을 하는 것으로 신청되었다.

설사 이실리프라는 명칭을 단 회사에 대출을 해준다 하더라도 자신의 돈을 자신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동양증권처럼 외부로부터 조달한 돈을 무리하게 계열사에 지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은행 인준에 하자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아무튼 회의 끝에 이실리프 뱅크의 설립은 인준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주무장관의 사인만 남은 상태이다.

어쨌거나 박 대표의 말은 이어지고 있다.

“참, 언제 연예기획사까지 차리셨습니까? 다이안의 소속사가 이실리프 엔터테인먼트로 사명 변경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네에?”

이번에도 뭐라 말하기 전에 박 대표가 말을 잇는다.

“하긴 김 사장님 곡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으니……. 어쨌든 많은 회사를 직접 소유하신 거나 마찬가지이니 앞으론 회장님이라 부르겠습니다.”

“……!”

“회장님, 조만간 오셔서 엔진 손봐주셔야 합니다. 지금 잔뜩 밀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실리프 엔진은 순조롭게 설립 중입니다.”

박 대표의 말이 잠시 이어졌다.

엔진 제조 회사에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접촉하여 기술자들을 확보했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공장이 설립될 부지를 매입했다.

울림모터스 공장이 있는 경기도 광주에 소재한 땅이다.

그리고 한창호 건축사 사무소를 방문하여 공장 설계를 의뢰하였다.

동시에 엔진 제조를 위한 각종 설비와 장비들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원활한 부품 조달을 위한 작업도 병행되는 중이다.

울림모터스 역시 공장 증설을 위한 작업 중이다.

인근 부지를 매입하였고, 설계도 의뢰된 상태이다. 새 건물이 지어지면 기존 공장은 리노베이션11)된다.

뿐만이 아니다. 파워트레인12) 계통만큼은 직접 생산하는 것으로 결정지어졌다.

그렇기에 트랜스미션 제조 공장 등도 설립이 추진되는 중이다. 물론 광주 공장 인근에 조성될 예정이다.

부품의 경우는 조달하는 데 애를 먹이는 것이 있으면 전부 직접 제조할 생각이다. 공장은 북한 지역에 지어지거나 몽골과 러시아에 조성될 이실리프 자치구에 지을 것이다.

균형 개발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내일이라도 공장을 방문하죠. 제 스케줄을 확인한 뒤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네에.”

통화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다. 하여 직원들과 식사하러 나가려 하는데 신형섭 사장이 왔다.

“바쁘신가?”

전에는 ‘바쁜가?’라고 물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살짝 말을 올려주고 있다.

천지건설에선 부사장이지만 천지기획 사장이기 때문이다.

“네? 아뇨. 급한 일은 얼추…….”

“그럼 가세. 회장님께서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하셨네.”

“그래요?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주섬주섬 늘어놓았던 것들을 정리하곤 신 사장을 따라나섰다. 로비에 당도하니 경비원들이 각도 잡힌 경례를 붙인다.

이창진 회장은 한 달에 두어 번 얼굴만 비친다. 경영 간섭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따라서 신 사장과 현수는 이 건물 최고위 인사들이다. 그렇기에 경비원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수고 많으시네요. 피곤하시죠?”

현수가 말을 걸자 65세쯤 된 경비원이 손사래를 친다.

“네? 아,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연세도 있으시니 쉬엄쉬엄 하세요.”

“아이구, 아닙니다.”

대하기 불편한지 얼른 고개를 숙이곤 물러난다.

현관 밖으로 나가니 신 사장의 차가 멈춰 있다.

“타시게.”

“네.”

천지건설 본사를 떠난 차가 메인 도로로 접어들 때이다.

“고맙네. 자네 덕일세.”

“네? 그게 무슨……?”

“자네 덕에 무능하단 소리를 면했네. 수고했어, 정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표정과 어투이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겁니다.”

“겸손해하지 않아도 되네. 자넨 그럴 자격이 있으니.”

“……!”

이런 말엔 대꾸하기 뭣해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사이에 목적지에 당도하려는지 속도를 현저히 줄인다.

“다 왔군. 내리세.”

“네.”

고풍스런 한옥 담장이 보인다.

잠시 후, 상다리가 휘도록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진 방으로 안내되었다.

“아! 어서 오게.”

먼저 와 있던 이연서 회장이 환히 웃는다. 얼른 예를 갖추고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자, 일단 식사부터 하세.”

“네, 회장님!”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냈다. 수정과와 식혜까지 마시고 나니 상을 치우고 다과를 내온다.

“이 집 음식 괜찮지?”

“아! 네. 맛이 좋았습니다.”

“음식보다도 차가 더 좋으니 한 잔 하세.”

“네, 회장님!”

잔을 들자 식사 시중을 들어주던 아가씨가 얼른 차를 따라준다.

“우전옥로(雨前玉露) 중에서도 특상품이라 하네. 일 년에 딱 한 번만 수확해서 귀하지.”

“아, 네.”

한 모금 입에 넣어보니 떫은맛 대신 감칠맛이 느껴진다. 괜히 칭찬하는 게 아닌 듯하다.

“수고했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는 이 회장이다.

“자네 덕에 우리 그룹이 크게 좋아졌어.”

“……!”

“이게 다는 아니지? 듣자 하니 아제르바이잔에서도 뭔가를 하려 한다던데.”

그룹 내에 이 회장의 눈과 귀가 많이 있는 듯하다.

“그곳에서 150억 달러 규모의 석유화학단지 조성 공사를 발주하려 한답니다. 한번 덤벼보려고요.”

90억 달러 대출 조건에 관한 이야긴 뺐다. 회사에 말해봤자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서이다.

“호오! 150억 달러라…….”

신형섭 사장의 눈이 반짝인다. 이 양반의 욕심의 끝은 대체 어딘지 궁금해질 정도로 흥미롭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아제르바이잔엘 다녀올 생각입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을 하게.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네. 아! 그리고 그거 수주 못해도 괜찮네.”

“허허! 참으로 대단하이. 그리고 신 사장!”

“네, 회장님!”

“이번에도 우리 김 부사장이 가면 계약서 써야 할 테니 그거나 준비해 놓으시게. 아울러 석유화학단지에 대한 공부 단단히 해놓고. 알았나?”

“네, 회장님.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아주 확실하게 준비해 놓도록 할 테니까요.”

둘이 짜고 치는 판이기에 현수는 실소를 머금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아이구, 이 사람아! 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 가거든 몸조심이나 하시게. 자넨 우리 회사 보물이니.”

“보물? 하하! 맞네, 맞아! 우리 김 부사장은 천지그룹의 보물이지. 아암, 그렇고말고.”

이연서 회장은 진심으로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대단한 손녀사위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 흡족한 때문이다.

“에구……!”

현수는 친인처럼 살갑게 구는 두 사람을 보고 계면쩍은 웃음만 지을 뿐이다.

“그나저나 보너스는 마음에 드나?”

“네? 그렇지 않아도 너무 과분하다는 말씀을 드리려 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보너스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회사 지분의 5%면 현재가로 8,630억이나 됩니다.”

“……!”

신형섭 사장은 아무런 말도 없다. 이 회장이 5%라는 말을 했을 때엔 액수가 제법 크겠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8,600억 원이 넘는다니 입이 딱 벌어진 것이다.

월 400만원을 받는 월급쟁이가 한 푼도 안 쓰고 모으면 215,750개월이 걸린다. 약 18,00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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