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17화 (716/1,307)

# 717

전체 무게가 12,000톤이나 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불과 몇 초 만에 아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마법은 역시 편리하다.

내친김에 다른 창고도 열어보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륜차와 리어카, 그리고 각종 농기구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이것 역시 전부 아공간에 담았다.

그리곤 황학동 상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납품 대금을 확인했다. 다음엔 이은정 실장에게 문자를 넣었다.

대금을 지정한 계좌로 보내라는 내용이다.

농기구 상인은 현수 덕에 전국의 전통 대장간들이 되살아났다면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물론 대장장이들을 대신한 인사이다.

창고의 바깥쪽에는 보도블록이 쌓여 있다. 이것 역시 어마어마한 양이다. 하여 이것들도 아공간에 담았다.

* * *

“흐음, 여기가 뉴욕이군.”

14시간의 비행 끝에 당도한 곳은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JFK Airport)이다. 잠시 후 입국심사대 앞에 섰다.

“헤이, 미스터! 우리나라엔 어떤 용무로 온 겁니까?”

“관광입니다.”

“머무실 곳은요?”

“포 시즌즈 호텔입니다.”

이 호텔은 뉴욕에서도 초특급에 속하는 호텔이다.

그걸 아는지 입국 심사대에 있던 흑인 공무원이 슬쩍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직 어린 듯싶은데 이런 호텔에 머물 능력이 된다는 것이 부러웠던 것이다.

“며칠 머무실 겁니까?”

“최하 3일입니다.”

“미국 내에 친척이 있습니까?”

“아뇨.”

몇 가지 질문에 더 답하고 지문을 찍었다.

현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양복 한 벌과 캐주얼한 옷 두 벌을 챙겨왔다. 그래서인지 세관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관광을 왔다면서 짐이 너무 적어서 그런 모양이다.

뭔가 물어보려는데 그의 전화기가 울린다. 그가 통화하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국인이 꽤 많이 보인다. 그중 현수를 알아보았는지 힐끔거리며 소곤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통과입니다. 즐거운 여행되시길 빕니다.”

“네, 그쪽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캐리어를 끌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택시를 타고 곧장 포 시즌즈 호텔로 이동했다.

혹자는 이 호텔을 뉴욕의 상징이라고 한다.

당연히 5성급 호텔이다.

맨해튼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호텔의 TY워너 펜트하우스는 1박에 4,100만 원이나 한다.

물론 이런 방에 묵는 것은 아니다.

현수가 예약한 룸은 1박에 대략 40만 원 정도 된다.

어쨌거나 이 호텔을 택한 이유는 수려한 조망 때문이다. 뉴욕의 자랑인 공원이 잘 보인다.

또 다른 이유는 퀸즈에 소재한 리조트 월드 때문이다.

이곳엔 라스베가스식 카지노가 개장되어 있다. 그리고 이곳은 포 시즌즈 호텔이 있는 맨해튼에서 전철로 갈 수 있다.

현수가 미국에 온 이유는 공원을 조망하고 카지노를 즐기기 위함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비싼 숙박비를 생짜로 낼 마음은 없다. 그래서 카지노를 이용할 생각을 품은 것이다.

룸에 들어와 여장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것들을 풀었다. 잠시 후 나직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네, 누구십니까?”

“미하일 그로모프입니다.”

“아! 잠깐만요.”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나가 문을 열었다.

미하일 레오니도비치 그로모프 뉴욕대 교수는 1943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일흔한 살이다. 서양인치고 체구는 아담한 편이다. 그리고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이다.

2009년에 아벨상을 수상했다. 그전에는 울프상도 받은 바 있다. 기하학 쪽에 대단한 식견을 가진 수학자이다.

“아!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

“오오! 반갑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둘은 오랜 지기처럼 환히 웃으며 포옹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노교수가 의자에 앉는 동안 냉장고를 뒤졌다. 대접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교수님, 여기 말고 라운지로 나갈까요? 음료라도 드려야 하는데 시원치 않네요.”

그로모프 교수의 눈이 동그래진다.

“오! 러시아어가 매우 유창하군요.”

“하하! 네, 러시아와 교역하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대단합니다. 거의 모국어 수준이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현수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자 흐뭇하다는 표정이다.

그로모프 교수는 호지 추측을 검증해 준 사람이다.

이 난제는 대수기하학의 주요 미해결 문제 가운데 하나로 특이점이 아닌 복소 대수다양체의 대수적 위상에 관한 문제이다.

어쨌거나 오늘의 방문은 사전에 연락된 것이다.

미국을 방문해야 하는데 아무런 목적도 없다면 이상하다 여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은사인 소병익 교수를 찾았다.

세계수학자 대회는 8월에 열릴 예정이다. 그로모프 교수는 당연히 참석한다.

이번 대회 초청 강연자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수는 1970년(니스), 1978년(헬싱키), 1982년(바르샤바), 1986년(버클리)에 초청 강연을 한 바 있다.

이번 대회는 이전과 약간 다르다.

메인 강연자로 김현수가 있고, 일곱 명의 교수가 보조 강연자 형식이다. 다시 말해 그로모프 교수는 보조 강연자로 참석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현수가 연락하자 아주 기뻐했다. 뉴욕에 갈 일이 있다고 하자 꼭 만나나고 신신당부했다.

하여 도착 일정을 알려주자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뉴욕을 찾은 이유는 이것 이외에도 두 가지가 더 있다.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면서부터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어쨌거나 그로모프 교수는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아닙니다. 라운지 같은 데 가봐야 번거롭기만 합니다. 음료수는 안 마셔도 되니 여기서 이야기합시다.”

“그럼 그러시죠.”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툼한 가방 속에서 서류 뭉치를 꺼낸다. 표지를 보니 ‘호지 추측 증명’이라 쓰여 있다.

역시 학자이다. 현수를 만나자마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려는 것이다.

“에, 이 풀이 중 요 부분의 이건 어떻게 해서 된 건지…….”

그로모프 교수가 질문하고 현수가 풀이를 설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자기 나이의 절반도 안 되는 사람이지만 배우려는 자세였다.

노교수의 이런 모습에 현수는 열과 성을 다하여 풀이를 설명했다. 그로모프 교수는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기발한 접근 방법이 절묘한 풀이로 이어지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 것이다.

시간은 흘러흘러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열띤 설명과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노교수의 휴대폰이 진동을 한다. 웬만하면 무시하겠는데 진동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 잠깐만요. 손자 녀석이네요.”

“네, 그러시죠.”

와이셔츠 소매까지 걷어붙였던 현수는 냉장고를 열고 생수를 꺼내 마셨다.

그러는 동안 교수는 베란다로 나가 통화했다.

“그래, 그래! 안 잊었어. 그렇다니까. 알았다, 알았어. 그래! 조금만 기다려 곧 갈 테니.”

잠시 후 통화를 마치고 온 교수의 표정이 약간 이상하다.

“왜, 무슨 일 있으세요?”

“깜박 잊고 있었는데 오늘 손자 녀석 공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봐야 하는데… 또 시간을 내주실 수 있는지요?”

“네?”

한참 설명하던 중이다. 그런데 중간에 끊고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말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교수는 몹시 미안한 표정이다.

“미안합니다. 손자 녀석이랑 약속한 거라…….”

“오늘 공연이 있다고 했나요?”

“네. 트라이베카에 있는 ‘그리니치 호텔’에서 파티가 열리는데 거기서 노래를 부른답니다.”

“……?”

방송국도 아니고 일개 파티장에서 노래를 부른다는데 몹시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다.

하여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리니치 호텔은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개장한 겁니다. 어제 트라이베카 영화제가 열렸는데 오늘 리셉션이 개회됩니다.”

“아! 영화제요.”

“오늘의 리셉션은…….”

잠시 노교수의 발언이 이어졌다.

트라이베카 영화제는 뉴욕을 세계적인 영화 중심지로 키우려 로버트 드니로가 발족시킨 것이다.

이 영화제는 매년 4월과 5월에 걸쳐 약 1∼2주 동안 열린다. 올해는 드니로의 촬영 스케줄 때문에 앞당겨 개최되었다.

여배우는 스칼렛 요한슨, 나탈리 포트만, 밀라 쿠니스, 아만다 사이프리드, 크리스틴 스튜어트, 클로이 모레츠, 제니퍼 로렌스, 제시카 알바, 안젤리나 졸리 등이 참석한다.

남자 배우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채닝 테이텀, 휴 잭맨, 마크 월버그. 드웨인 존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담 샌들러, 톰 크루즈, 덴젤 워싱턴, 리암 니슨 등이 온다.

노배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촬영 스케줄까지 미루고 참석하는 것이다.

면면을 보면 그야말로 쟁쟁한 배우들의 총동원이다. 하여 트라이베카 지역은 현재 기자들로 북적이는 중이다.

그로모프 교수의 손자 윌리엄은 이들 앞에서 노래 부르게 된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일생의 영광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들도 참석한다. 따라서 잘만 하면 성공 가도를 달릴 수도 있다.

손자는 기념비적인 순간이니 이번 파티에 꼭 참석해 달라고 신신당부하면서 초청장까지 얻어주었다. 그런데 현수를 만나느라 파티 개최를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가셔야 하는 거네요. 그 파티.”

“네, 손자 녀석과 약속을 했으니……. 하지만…….”

노교수는 말을 잇지 못한다. 손자의 공연도 중요하지만 현수와의 만남 역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못내 아쉬운 것이다.

“초청장이 없으면 못 들어가나요?”

“네, 워낙 몸값이 비싼 사람들이 오는 자리인지라 이 초청장이 없으면…….”

말을 하며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초청장을 펼쳐 든 노교수의 말이 잠시 멈춘다.

“동반 1인이 가능하군요.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네? 제가요?”

“네, 가는 동안만이라도…….”

노교수는 요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중이다. 현수로부터 그것에 대한 힌트라도 얻고 싶은 것이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그럼. 교수님 덕분에 쟁쟁한 배우들을 보게 되겠군요.”

“아! 그래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현수는 준비해 온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원래는 그로모프 교수를 만나러 갈 때 입으려던 것이다.

둘은 택시를 타고 리셉션 장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엄청난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거의 대부분 기자들이다.

다들 리무진을 타고 오는데 노란 택시가 호텔 정문으로 들어서자 기자들의 카메라가 쏠린다.

문이 열리고 그로모프 교수가 내리는 사이에 최소 300번 이상 플래시가 터졌다.

이때 누군가 고함을 친다.

“뉴욕대 그로모프 교수님이시다!”

또 한 번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터진다. 세계적인 수학자의 방문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뒤이어 현수가 내렸다. 이번에도 엄청난 빛의 향연이 빚어진다. 누군지 몰라도 일단 찍고 보자는 의도인 듯싶다.

“……!”

잠시 말이 없다. 모두들 누구인가 하는 표정이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기억 속의 현수를 찾은 모양이다.

“한국! 신화창조 티저 영상에 나온 사람이다!”

“맞아! 세계 최고의 IQ 김현수다!”

“헉! 맞다. 6대 난제를 풀어낸 수학 천재다!”

차례로 현수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말들이 튀어나온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 플래시가 수없이 명멸한다.

현수는 자신을 알아봐 준 기자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그리모프 교수의 뒤를 따랐다.

레드 카펫을 딛고 나아가니 출입자를 제한하는 관리인 둘이 서 있다.

둘 다 근육맨이다. 슈트가 터질 지경으로 빵빵하다.

“어서 오십시오. 초청장 있으십니까?”

“여기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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