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8
그리모프 교수가 내민 초청장을 본 사내는 정중히 허리를 숙인다.
“환영합니다. 그런데 뒤의 분은……?”
“동반자요.”
“아! 그러십니까?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 많이 늦으신 건 아닙니다.”
“고맙소.”
“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갑시다.”
현수는 그로모프 교수의 뒤를 따라 리셉션 장으로 향했다. 세계적인 배우들이 와서 그런지 꽃 장식이 대단하다.
호텔 안에도 기자들이 있다. 이들은 일정한 선 밖에서만 촬영을 허락 받았는지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을 향해 포즈를 취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친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정식으로 초청 받은 인사라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무조건 취재부터 하자는 의도이다.
“여기요. 이쪽을 봐주십시오.”
“이쪽도 봐주십시오.”
“다음은 이쪽으로 향해주십시오.”
그로모프 교수는 순박한 시골 노인처럼 기자들의 요청대로 이리저리 방향 잡아가며 바라본다.
셔터 눌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현수는 노교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포즈를 취했다.
혼자 뻘쭘한 것도 이상하고, 갑자기 어리바리해진 교수를 배려하기 위함이다.
잔잔한 실내 음악이 들리는 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화려한 드레스를 걸친 여배우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얼굴이 떠올려지는 남자 배우들은 턱시도 차림이 많았다. 공식적인 자리라는 의미이다.
아이언맨의 주인공이 보인다. 울버린도 보이고 스파이더맨도 보인다. 더 그레이의 주연 리암 니슨도 보였다.
“이것 참…….”
세계적인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모습이 왠지 낯설다. 그러던 중 디카프리오와 시선이 마주쳤다.
잘생겼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때 누군가 와인 잔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팅, 팅, 팅―!
모두의 시선이 쏠린 자리엔 로버트 드니로가 서 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를 빛내기 위해 특별히 가수 한 분을 모셨습니다! 윌리엄 그로모프입니다.”
짝, 짝, 짝, 짝―!
박수 소리에 이어 금발의 멋진 청년이 무대에 선다.
세계적인 스타들 앞에 서 있건만 강심장이라도 되는지 전혀 떠는 모습이 아니다.
“반갑습니다. 윌리엄 그로모프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을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들려 드릴 곡은 인도의 사상가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가 ‘동방의 등불’이라 칭한 대한민국의 최신 유행곡입니다.”
사람들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윌리엄을 바라본다.
“제가 이 곡을 선곡한 이유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힐링되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여러분도 같은 느낌을 느껴보시길 바라며 불러보겠습니다.”
마이크에서 입을 뗀 윌리엄이 무대 뒤쪽 악단을 향해 눈짓을 한다. 그러자 전주가 흘러나온다.
‘으잉?’
현수가 흠칫하는 사이 뒤쪽 누군가가 속삭인다.
“아! 이 노래 나도 알아요.”
슬쩍 뒤를 돌아보니 제니퍼 로렌스이다.
2013년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이다. ‘헝거게임’이라는 영화에서 활 쏘는 아가씨로 출연했다.
“이 곡 정말 좋아요. 그래서 매일매일 듣고 있어요.”
제니퍼의 곁에는 잿빛 머리카락을 가진 40대 중반 사내가 와인 잔을 들고 서 있다. 제니퍼가 출연한 헝거게임 시리즈를 만든 영화감독 프란시스 로렌스이다.
물론 현수는 모르는 사람이다.
이때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
윌리엄은 현수가 작사 작곡한 ‘지현에게’를 부르고 있다. 가사는 영어이다. 원래의 가사에 최대한 근접한 번역을 한 듯하다.
다만 지현이라는 발음이 어려워서인지 이를 ‘리사’라 바꿨을 뿐이다.
아름다운 선율에 서정적이며 감미로운 가사, 그리고 인간의 심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선율과 윌리엄의 그윽한 음성이 조화되자 모두들 입을 다문다.
이 노래를 들어본 사람은 감상하기 위함이고, 처음 듣는 이들은 ‘세상에 이런 노래가!’라는 표정이다.
3분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대화를 멈춘 채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
노래가 끝났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일제히 감탄사를 터뜨린다.
“와아! 이런 노래 처음 들어보네.”
“세상에! 여기 소름 돋은 거 보여? 이거 누가 작곡한 곡이야?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러게. 누구 노랜지 확인해 봐야겠어.”
윌리엄이 다음 곡을 준비하기 위해 머뭇거리는 동안 오간 대화들이다. 이때 누군가 큰 소리를 낸다.
“윌리엄! 이 곡 누구의 노래인가?”
아담 샌들러이다. 1966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48세이다. 노래를 부른 윌리엄보다 두 배쯤 더 살았다.
“험험, 여러분의 반응이 이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귀를 의심했으니까요. 이 곡은 대한민국의 다이안이란 걸 그룹의 신곡입니다.”
“누가 불렀냐가 아니고 누가 작곡했느냐는 것이네.”
아담 샌들러는 요즘 차기 영화를 준비하는 중이다.
차태현이 주연한 ‘헬로우 고스트’라는 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주인공으로 낙점되어 있다.
이 영화의 메가폰은 크리스 콜롬버스 감독이 잡았다. 샌들러 바로 곁에 서 있는 장년의 사내이다.
아담 샌들러는 윌리엄의 노래를 듣는 동안 리메이크작 헬로우 고스트의 OST로 적격이라는 생각을 품었다.
그렇기에 큰 소리로 물은 것이다.
10장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이 곡은 김현수라는 사람이 작곡한 겁니다.”
“킴현수?”
수첩을 꺼내 현수의 이름을 휘갈겨 쓴다. 리셉션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알아볼 생각인 것이다. 이때 그로모프 교수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김현수? 설마… 맞습니까?”
“에구!”
현수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때 샌들러가 또 한 번 큰 소리를 낸다.
“윌리엄, 방금 그 곡 한 번 더 불러주게!”
“그래, 아주 듣기 좋았네! 한 번 더 불러!”
아담 샌들러의 말에 동조한 이는 덴젤 워싱턴이다.
“나도 한 번 더 듣고 싶네.”
이번엔 톰 크루즈가 한 말이다.
“저도 그 노래 한 번 더 듣고 싶어요.”
모두의 시선을 받은 여인은 제시카 알바이다.
“나도요.”
이번엔 안젤리나 졸리까지 나선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들려 드리겠습니다.”
윌리엄이 눈짓을 하자 전주가 울려 퍼진다. 사람들은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듯 집중하는 모습이다.
♬♪∼♩♪♬∼
“And I will love you forever.”
“와아아아!”
짝짝짝짝―!
노래가 끝나자 일제히 탄성을 내며 박수 친다.
이때 입구 쪽으로부터 누군가 황급히 들어온다. 리셉션장의 안전을 책임진 보안요원인 듯하다.
실내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다. 악단과 가수를 제외하고도 200명 가까운 인원이다.
보안요원은 부지런히 두리번거린다. 이때 그로모프 교수가 묻는다.
“미스터 킴, 이 노래를 정말 미스터 킴이 작곡한 겁니까?”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오! 대단합니다. 내 평생에 들었던 그 어떤 곡보다도 아름답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감탄사를 터뜨렸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은 뜻을 모른다. 러시아어이기 때문이다.
“과찬이십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다.”
“아닙니다. 정말 좋습니다. 허허허!”
노교수가 웃음 지을 때 또 다른 곡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이런……!’
현수의 표정이 단번에 바뀐다. 이번에 연주될 곡이 무언지 안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래가 시작된다.
이번 곡은 ‘첫 만남’이다.
노래가 시작되자 모두들 귀를 기울인다.
절반쯤 부르자 회색 양복을 걸친 사내가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샤를리즈 테론, 그리고 리암 리슨에게 시선을 준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 사내의 이름은 세스 맥팔레인이다. 이 사람은 곧 개봉될 ‘서부에서 죽는 100만 가지 방법’이라는 영화의 감독이다.
그리고 넷은 이 영화의 출연진이다.
‘첫 만남’을 이 영화의 OST로 쓰면 어떻겠느냐는 눈짓에 모두가 동의한 것이다.
노래가 끝났다. 이번에도 탄성과 더불어 박수 소리가 요란했다. 그리고 앙코르 요청이 들어와 한 번 더 연주되었다.
노래가 끝나자 세스 맥팔레인이 다가간다. 윌리엄에게 새 영화의 OST를 불러달라는 뜻을 전하기 위함이다.
이때 현수의 곁으로 다가온 사람이 있다. 조금 전 들어온 보안요원이다.
“손님, 잠시 저와 함께 밖으로 나가주시지요.”
“네? 왜요?”
“그냥 잠시 나가줬으면 합니다. 나가시죠.”
보안요원이 현수의 팔을 잡고는 강하게 끌어당긴다. 하지만 끌려 나갈 현수가 아니다.
“이 팔 놓으시죠.”
말을 하며 뿌리치자 맥없이 놓친다.
“그리고 왜 내가 나가야 하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손님, 좋은 말로 할 때 따라오십시오. 부정한 방법으로 입장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닙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입장해요? 내가?”
“네, 귀하는 초청장 없이 입장했습니다.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여기서 나가주십시오.”
현수의 시선을 받은 그로모프 교수는 당황한 표정이다. 초청장엔 1명 동반 가능이라고 쓰여 있었다.
문제는 그로모프 교수 또한 이 자리에 초청 받기에 적합한 인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곳은 영화배우와 감독들을 위한 자리이다. 수학과 교수는 웬만해선 초청받기 어렵다. 그렇기에 잠시 우물쭈물했다.
그러는 사이에 보안요원 하나가 더 들어와 현수의 좌우에 서서 끌어내려는 몸짓을 한다.
이때 무대를 내려선 윌리엄이 다가왔다.
“할아버지, 저 어땠어요?”
“윌리엄……!”
교수가 무어라 말을 이으려 할 때 현수가 소리쳤다.
“이 팔 놓으라 했습니다!”
“으읏! 이자가……?”
“이런 빌어먹을! 좋은 말로 할 때 나가자니까 왜 반항을 해? 나와! 어서!”
맹수가 으르렁거리듯 낮으면서도 단호한 음성이다.
“이 팔 놓는 게 좋을 겁니다.”
현수의 음성 또한 단호하다. 부아가 치민 때문이다.
왜 나가라는지 설명해서 납득이 되면 가지 말라고 해도 나간다. 리셉션에 참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팔을 잡고 힘을 쓴다. 어찌 부드럽게 대하겠는가!
“쟈니, 안 되겠어. 스틱스와 윌러드도 불러와. 조용히.”
“네, 대장.”
쟈니라는 자가 밖으로 나가자 대장이라 불린 사내가 현수를 노려본다.
“나가기만 하면…….”
대장이 뭐라 말을 이으려 할 때 윌리엄이 소리쳤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혹시 김현수님이십니까?”
“……!”
음성이 약간 컸는지라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이때 윌리엄이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여러분! 여러분! 이분입니다! 방금 전 제가 부른 노래를 작사, 작곡하신 분이요! 세계 최고의 IQ를 가진 김현수님입니다!”
“……!”
사람들의 시선이 더 많이 쏠린다. 이때 윌리엄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만든 신화창조라는 드라마의 티저 영상에 나왔던 바로 그분입니다.”
“아아! 맞다, 맞아!”
가장 먼저 현수를 알아본 사람은 제니퍼 로렌스이다.
조금 전 현수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어디선가 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서 본 건지 떠오르지 않아 고개만 갸웃거리던 중이다.
그러다 윌리엄의 입에서 티저 영상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마치 심 봉사가 개안하듯 깨달은 것이다.
“감독님! 저분, 저분이 연기하는 거 보신 적 있어요?”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진다.
“봤어. 대단한 카리스마였지.”
이 말을 필두로 현수에 관한 이야기들이 삽시간에 퍼져 나간다.
그러는 사이에 쟈니라는 보안요원이 스틱스와 윌러드를 대동하고 들어섰다.
대장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50대 장년인이 다가와 입을 연다.